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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6화 (7/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6화

땅이 미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우성연이 두려워하며 고개를 들었다.

저 지평선 너머, 무언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던전 내에서는 어떤 몬스터가 나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법이었다. 특히나 이렇게 클리어 정보가 없는 경우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전멸당하기 딱 좋지.

퉁, 퉁, 땅울림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무언가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먼지 속에서 붉은색 형상이 나타난 순간 우성연이 비명을 질렀다.

“괴, 괴물 황소다!”

- C급 몬스터 : 붉은 털의 청동 황소가 출현했습니다.

- 몬스터의 상세 정보를 열람하시겠습니까?

우성연의 비명에 맞추어 시스템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흘깃 옆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도망갈 힘도 없는지 우성연은 자리에 주저앉은 채였다.

아직은 조금 시간이 있다. 나는 우성연에게 충고했다.

“포기하지 마. 상세 정보 읽어.”

“그런 걸 읽어 봤자……!”

“네 특성 뭐야?”

“그, ‘돌진하는 무사’…….”

사기 글을 읽고 이치에 맞는 글인지 제대로 고려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달려든다, 싶더니 특성도 역시나, 였다.

다행히 어떤 특성인지 알고 있기에 나는 우성연을 향해 일어나라는 의미로 고개를 까닥했다.

“일단 일어나. 저거 골치 아프니까.”

“설마…… 너, 저 황소를 상대해 본 적 있단 소리야?”

우성연의 눈에 희망의 빛이 살짝 스쳤다. 딱히 숨길 일도 아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보다 더 지독한 환경에서였지만.

우성연이 안도의 웃음을 지으며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말을 끊어 냈다.

“하지만 저 두개골은 어지간한 갑옷보다 두껍고 외피는 뚫기 어려워. 다릿심도 돌진력도 장난 아니야.”

내가 원래의 상태였다면야 저따위 황소는 뿔을 잡고 저 멀리 내던지면 끝일 테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뿔을 잡고 내던지기는커녕 황소의 돌진을 피해 다니는 것도 체력에 부칠 거다.

우성연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여긴 사방이 탁 트였는데 그냥 빨리 도망치는 게……!”

그때, 청동 황소가 달리던 것을 서서히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황소의 눈이 보일 정도의 거리였다. 붉은 털의 황소는 시퍼런 불꽃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이쪽을 인식했다.

- ‘투우 경기장‘이 활성화됩니다. 해제까지 00:10:00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초원에서 커다란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황소가 버티고 선 바로 뒤에서 타오른 불길은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순식간에 양쪽으로 뻗어 나갔다.

넓게 퍼지던 불길은 나와 우성연이 서 있는 곳에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가 결국 우리의 등 뒤에서 꺾여 하나의 불로 이어졌다.

“이, 이게 무슨!”

“메시지 봤잖아.”

불꽃으로 이루어진, 원형의 투우 경기장이 만들어졌다.

볼까지 닿는 열감. 등 뒤에서도 불꽃의 열기가 느껴졌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우리가 도망가지 못하게 막은 거야.”

“어, 어, 어어어어어떡해!”

“너, 돌진하는 무사라고 했지.”

나는 소지창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어 우성연에게 던졌다. 우성연은 손을 떨었지만 아이템을 받아 들었다.

“이게 뭐야?”

“요정 실프의 발자국. 착용해.”

“어, 어어…….”

“빌려주는 거다.”

나는 못을 박았다.

요정 실프의 발자국은 내가 착용하고 있는 님페의 바람의 열화 버전이다.

님페의 바람은 바람을 일으켜 사용자의 움직임을 신속하게 만들어 주는 동시에 체온을 보존해 주고 체력 +3%의 옵션이 붙어 있지만, 내가 우성연에게 준 아이템은 그런 옵션이 없다.

그래도 초보자에게는 과분한 아이템이다.

“돌진하는 무사 특성이라면 특성 개화 보정으로 순발력이 좋아졌을 거야. 황소의 신체 구조상 달리다가 갑자기 곡선으로 꺾지는 못해. 그 점을 잘 이용해 봐.”

각성해서 순발력이 좋아졌으니 저 정도 아이템을 가지고 있으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다.

나는 허벅지에 차고 있던 단검 두 개를 뽑았다. 황소의 투레질이 들렸다.

“이 ‘투우 경기장’ 의 활성화 제한 시간은 10분이야.”

우성연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나는 10분간 도망 다니라고?”

“그래, 너 챙겨 줄 정신없으니까 알아서 잘 살아남아.”

“근데 10분이 지나도 쫓아오면 어떡해!”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검은 반장갑을 낀 두 손을 가볍게 꺾으며 풀었다. 상태창의 수치는 모르겠지만 팔에 힘은 충분했고, 다리도 후들거리지 않는다.

이 정도면 쉬운 편이지.

“10분 후면 죽어 있을 테니까.”

- 투우 경기장의 해제까지 00:09:59

황소가 제자리에 멈춰 있는 동안 정지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친 투레질 소리가 들렸다. 곧 돌진할 기세였다. 나는 우성연을 향해 소리 질렀다.

“닥치고 이제 뛰어!”

“너, 너는 어쩌고!”

말이 안 통하네.

멍청하게 서 있다가 그대로 황소에게 받힐 것 같기에 나는 우성연의 등을 발로 찼다.

“으악!”

황소가 돌진하기 시작했다. 자욱하게 일어나는 흙먼지 때문에 황소의 모습이 사라졌다.

5초나 흘렀을까.

움직이는 타이밍은 감으로 맞췄다.

나는 우성연과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간발의 차이로 황소가 내가 서 있던 곳을 박살 낼 기세로 지나쳤다.

“우왁, 우와악!”

소리 지르지 말라니까!

황소의 고개가 우성연 쪽을 향해 돌려지기 전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단검을 하나 더 꺼내어 황소를 향해 던졌다.

눈 사이에 명중한 단검은…… 꽂히기는커녕 깡!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

황소의 고개가 이쪽으로 천천히 돌아왔다.

이런 씨…….

몸을 돌린 황소가 다시 천천히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아직도 9분 남짓.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체력도 없는데 정말 죽을 맛이다.

지금의 내가 9분씩 뛰어다니며 황소를 피할 수 있을 리는 없다. 최대한 체력을 보존하면서 승부를 봐야 했다.

나는 몸을 돌려 님페의 바람을 이용해 앞으로 뛰었다. 흥분한 황소가 포효하며 나를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 경고! 님페의 바람을 사용하기에 당신의 체력이 부족합니다.

뻘건 시스템 메시지가 허공에 떴다. 젠장, 달리는 데 방해돼! 나는 힘껏 발을 박찼다.

- 님페의 바람에 사용 제한 시간이 생깁니다.

- 제한 시간 00:01:00

겨우 1분밖에 안 주는 거냐!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어차피 내 체력을 생각하면 승부를 봐야 할 때였다.

몇 걸음 내딛지도 않았는데 숨이 벅차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만 옆으로 돌려 따라오는 황소를 보았다.

내 예상보다 약간 더 멀리서 황소가 달려오고 있었다. 다섯 걸음 앞에는 불꽃으로 된 벽!

다 잡은 사냥감이라고 생각한 건지, 황소는 아주 기세 좋게 달려왔다. 흙먼지는 여전히 자욱했다.

“뭐 해?! 도망쳐!”

멀리서 우성연이 소리쳤다. 황소는 이제 열 걸음 앞.

아홉 걸음.

여덟 걸음.

피부로 몬스터의 살기와 열기가 느껴졌다.

“지금!”

달려오던 황소에게 치이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순간.

나는 발을 굴렀다.

사용 시간이 겨우 30초쯤 남기는 했지만 님페의 바람은 내 몸을 공중으로 훌륭하게 도약시켜 주었다.

내게로 달려들던 황소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황소의 눈길이 허공으로 도약한 내게 따라붙었지만 이미 한번 붙은 속도는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며 허공에 대고 발을 굴렀다. 공중으로 쏘아 낸 바람이 붕 뜬 내 몸을 땅으로 밀쳐 냈다.

그러나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지진 않았다. 나는 떨어지면서 황소의 머리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의도한 대로 정확하게, 양손에 단단한 것이 들어왔다. 그리고 신체에 가해지는 충격.

“윽……!”

됐어!

나는 황소의 뿔을 잡고 내 몸을 황소의 몸체 위로 올렸다.

갑자기 자신의 뿔에 가해진 압력에 황소가 놀라 머리를 쳐들었지만, 나는 이미 양손으로 단단히 황소의 뿔을 잡고 몸체에 올라탄 후였다.

청동처럼 강한 외피를 가진 황소라 몸체에 난 털은 빽빽하고 칼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뿔이 난 머리통과 귀 사이, 두개골이 보호해 주지 않는 연약한 부분은 존재했다.

나는 떨어지지 않도록 두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고, 허벅지에 장비해 두었던 두 단검을 양손에 쥐었다. 그리고 단검 두 자루를 황소의 귓불 뒤, 연약한 부분에 콱 꽂았다.

- 쿠아아아앙!

황소가 고통에 놀라 포효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 님페의 바람 사용

- 제한 시간 00:00:10

“사용 중단!”

나는 악을 쓰듯 소리쳤다.

10초 정도는 남겨 둬야 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온몸을 보호하듯 감싸 주던 바람이 사라졌다.

이제 님페의 바람은 사용할 수 없다.

남은 건 이제 내 의지의 문제였다.

황소는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달리는 기세는 전혀 죽지 않았다.

그야 그랬다. 목 깊은 곳에 있는 핏줄을 잘라 낼 만큼의 힘이 있었다면 편했겠지만…… 지금 내 근력으로는 단검으로 황소의 외피 중 가장 약한 부분을 약간 뚫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황소는 여전히 흉포한 기세로 머리를 흔들며 나를 떨쳐 내려 했지만 나는 단검을 더 단단히 박으며 버텼다.

나를 떼어 내기 위해 황소는 미친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높게 앞발을 들며 머리를 흔드는 황소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이름처럼 외피가 정말 매끈한 청동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뜨끈한 열기와 고약한 악취가 느껴지는 황소의 몸체는 정말 끔찍했다.

한동안 나를 떨어트리려 마구 달리던 황소는 내가 어지간해서는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차렸는지 서서히 멈추어 섰다.

시간은, 얼마나 남았지?

우성연은 살아남았나?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얼굴 앞으로 불길의 열기가 훅 닥쳐들었다.

“윽……!”

절로 신음이 터졌다.

C급 몬스터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의 지능은 있다. 황소는 나를 떨어트리기 위해 얼마간의 피해를 감수하기로 한 모양인지, 자신의 등에 매달려 있는 나를 불꽃의 벽으로 들이밀었다.

- 경고! 앙겔루스의 가호를 장비하기에 당신의 마력이 부족합니다. 충격 감소 옵션이 하락합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불이 날름거리며 피부에 붙는 것이 느껴졌지만 황소의 머리에 박은 단검을 놓을 수는 없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황소가 나를 짓밟고 지나갈 테니.

그렇게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손에서 힘이 빠지고, 다리도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허공에 뜬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 투우 경기장의 해제까지 00:01:50

그럼 단검을 꽂은 시점부터 5분이 넘었다는 거로군.

이만하면 오래 버텼다.

불꽃이 앙겔루스의 가호가 덮지 않은 부분의 피부를 좀먹듯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손과 다리에서 동시에 힘을 풀며 님페의 바람을 다시 가동시켰다.

황소가 마침 나를 떼어 내려 몸을 흔드는 타이밍이라, 나는 생각보다도 더 멀리 날아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풀밭에 데굴데굴 구르자, 온몸이 아팠다.

자신의 몸에서 겨우 떨어진 적을 알아본 황소가 힘차게 콧김을 내뿜었다.

서서히 달려오는 발굽, 자욱한 흙먼지, 하늘을 불사를 듯 치솟아 오르는 불꽃의 벽.

허공으로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출현했다.

- C급 몬스터 : 붉은 털의 청동 황소가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 투우 경기장이 해제됩니다.

- C급 몬스터 : 붉은 털의 청동 황소가 사망했습니다.

음머어어어!

쿠당탕!

더럽게 늦었군.

나는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시지와 함께 흙먼지 속에서 황소의 거대한 몸체가 쓰러졌다. 빽빽한 붉은 털 밑으로 보이는 외피에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내 소지창에 몬스터에게도 듣는 ‘페탈의 죽음’이라는 독약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역시 뭐든 모아 둬서 나쁠 건 없다니까.

뭐, 상태창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C급 몬스터 한 마리 처리하는 데 이 정도 부상에 10분 컷이라. 불이 엉겨 붙은 등이 따갑기는 했지만 포션만 발라도 나을 테니 상관없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페이스였다.

“우와아아악!”

황소가 쓰러진 것을 보자 저 멀리 도망쳐 있던 우성연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더 다가오는 것을 손으로 막았다.

“미친, 진짜 클리어했어! 와, 도대체 뭐야? 너 사실 S급 헌터인 거 아니야?!”

“가까이 오지 마. 그리고 좋아하기는 이를 텐데.”

나는 허공의 메시지를 가리켰다.

- 축하합니다! 던전 클리어 조건 중 1/3을 충족시켰습니다.

우성연의 얼굴이 퍼렇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나는 씩 웃었다.

“이 짓을 앞으로 2번 더 해야 해. 알아서 잘 살아남아라. 클리어되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 주긴 할 테니.”

그리고, 나가면 그 사기꾼 새끼는 화형식 결정이다.

……너는 나가면 진짜 나한테 죽었다. 화형식에 더불어 고슴도치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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