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5. 재채기, 생리 현상, 왜 의식되는 거지? (6/12)

눈을 뜨니 침실이었다. 물론 그녀의 개인 침실.

지하는 몽롱한 얼굴로 부스스 천장을 바라보다가 금세 핫! 하고 눈을 크게 떴다.

“뭐지? 꿈이었나? 아니었나? 뭐였지?”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헝클이며 미친 듯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분명 내가 엄청 위험한 짓을 했던 거 같은데, 뭐였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제야 어젯밤 일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바로 어젯밤, 강시류의 넥타이를 통 크게 확 잡아당겼던 것이다.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마주한 시류의 눈동자는 바다처럼 깊었다. 그의 눈썹이 서서히 찌푸려졌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내가 그랬죠? 내 허락 없이 함부로 어디 가지 말라고.”

“…그래서 이렇게 위험한 짓을 하시는 겁니까?”

“위험하긴 뭐가 위험한데요? 왜요? 이상한 생각이라도 했어요? 아니면 목이라도 졸렸어요?”

“…….”

“만약 놔주면 어디 갈 건데요?”

“서재에 갈 생각입니다.”

“그래서요?”

“그 말 그대로 제가 묻겠습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글쎄요, 엄청 아찔한 유혹?”

시류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작은 악당처럼 반들거리는 그녀의 눈빛.

“잠이 덜 깨신 것 같군요. 그만하세요.”

“뭘요?”

“도대체 이건 또 어떤 종류의 장난입니까?”

“또 못된 소리. 못된 눈빛. 헤픈 남자 주제에 감정은 하나도 안 내주고.”

“…….”

“사람을 집에 두고 싸돌아다니기나 하고 뭐가 그래요? 적당히 좀 하지. 언제든 떠나고 싶으면 말하라고, 그런 말을 먼저 하는 게 어디 있어요? 해도 내가 해야지.”

시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야 내가 덜 자존심 상하지. 그래도 내가 여잔데, 미리 그렇게 다 판자로 막아 놓으면 나중에 무슨 재미로 말해? 어떻게 하든 내가 손해야. 날 너무 생각해 주는 게 오히려 매번 날 속상하게 한단 건 알아요?”

도도한 말 속에 담긴 미세한 떨림으로 자신을 선동하는 그녀.

언제나 이렇다.

강렬하게 끌리는 마음만 커진다.

어느 날 무작위로 떨어진 빗방울이 땅속으로 스며들듯 그녀라는 사람도 자신의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온종일 그녀가 만든 빗방울이 가슴을 먹먹하게 적셔, 그녀란 사람 자체를 심장에 머물게 만드는 그녀의 언어.

몇 번이고 냉정해지자고, 감정 따위 묻어 버리자고 굳건히 결심을 하건만, 끝끝내 파헤쳐 한 방에 무너뜨릴 힘이 있는 그녀의 말들.

속상하게도, 애틋하게도, 한없이 설레게도 만드는 그녀의 말하는 법.

그녀가 아니라면 누가 자신을 이토록이나 흔들겠는가.

시류가 천천히 지하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 손이 뺨에 닿을 듯 스쳐 아래로 내려가선 넥타이를 쥐고 있는 지하의 손목을 잡았다. 그대로 천천히 떼어 낸 시류가 말했다.

“이런 장난 그만하십시오. 한 번만 더 하면, 절 감당하셔야 할 겁니다.”

그대로 일어나 서재로 사라졌다.

지하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거절당했는데, 대놓고 팽 당한 거 맞는데도 왜 이렇게 심장이 뛰지? 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거지? 아무리 봐도 그건 수치스러움이나 민망함 같은 게 아니라 확실히 두근거림이었다.

맙소사! 기분 나쁘지도 않다니!

단지 드는 의문.

“감당이란 거, 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데? 나 그거 좀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화산처럼 호기심이 일었다면 자신은 구제불능 욕망의 덩어리일까?

아무튼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대충 그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 그렇게 팽 당하고서 아마도 내 방으로 들어와서 잔 거 같은데.”

지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으앗! 왜 유혹했어. 왜. 왜? 그럴 거면 제대로 성공이라도 하든지! 아니면 적어도 여자로서 자존심은 상했어야지! 얼굴이나 빨개지곤!”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자신의 패배. 무엇보다 자신이 달라붙은 꼴이었다. 필요하면 얼마든 더 뻔뻔할 수도 있었지만 상대가 시류라면 얘기가 달랐다.

“앞으로 얼굴을 어떻게 보지? 하, 나 참 처참하다.”

뒤늦은 민망함과 수치스러움에 치를 떨며 지하는 시트를 확 젖혔다. 그런데 침대에서 내려서려다 문득 뭔가가 다리에서 느껴져서 내려다보았다.

작은 상자.

갸웃거리며 상자를 들었다. 천천히 열어 보니 그건 찰랑거리는 가늘고 예쁜 팔찌였다.

그리고 함께 있는 카드.

지하는 얼른 카드를 열어 보았다.

“설마….”

생일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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