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속 전투종족-306화 (306/318)

처음에는 제갈소연이 굉장히 놀란 기색을 지워내지 못했었다.

무슨 진을 이용한다고 할 때만 해도 이게 뭔지 감이 안 잡혀서.

진법을 말하는 건가요?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별안간 번쩍! 하고 눈앞이 점멸하는가 싶더니.

주변이 바뀌자 헉, 숨을 들이마시곤 휘청거리기까지 할 정도였다.

“이, 이게 대체….”

분명 자신들이 있던 곳은 이 거대한 제국의 심장이라는 제도였다.

보통의 사람들이 살기에 가장 좋은 기후를 지닌.

주변에 펼쳐진 수없이 많은 장관들이 펼쳐진 곳이었다.

하지만 번쩍거림이 잦아들고 눈앞에 나타난 곳은 더는 제도가 아니었다.

꽤나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곳, 차가운 공기가 맞이해주는 곳.

화려하고 웅장한 제국의 중심이 아니라 북쪽의 끝자락이었다.

속임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모든 게 너무 많이 바뀌었다.

덕분에 제갈소연은 이게 말로만 듣던 도술이냐고 놀라워했다.

검선 또한 겉으론 무덤덤한 척 해도, 속으로는 꽤나 감탄하고 있었고.

“으으음!!”

하지만 그런 검선이 육성으로 감탄하고 마는, 놀라운 상황이 일어났다.

손님을 맞이하러 왔다며 마중을 나온 한 청년을 본 게 그 이유였다.

“안녕하십니까. 리어 존 나센입니다.”

통역 마법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 리어의 말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 말을 듣자마자 검선은 두 눈을 번뜩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혹시, 자네가 그 청년의 아버지인가?”

존 나센. 아니, 이쪽 세상 사람들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나이차가 거의 나지도 않는 얼굴인데, 갑자기 아버지냐고 묻는다니.

하지만 검선 입장에선 또 그럴만한 것이, 반로환동의 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젊은 청년이 벌써부터 그런 경지에 있다니 정말 엄청난 일인데.

부친이라는 인물은 더 대단할 테니 반로환동 정도는 당연히 했을 거라고 여긴 것.

물론, 리어는 카일의 아버지가 아닌 형이었지만 말이다.

“막내 이야기를 하시는 거라면. 저는 그 아이의 형 되는 사람입니다.”

“아, 아아. 그렇구만.”

인사를 했는데 날아온 건 대뜸 아버지냐는 질문이었지만.

리어는 조금도 불쾌하다거나 이상하다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강하다. 노인 같지만, 결코 노인이 아니야.’

그 또한 검선을 보고서 직감한 것이다.

보통 인물이 아님을. 제국 10강보다도 더 강한 자임을.

어쩌면 진짜로 자신의 아버지에 견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음을!

“가시죠. 이미 막내에게선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좋군. 어서 가세! 이곳 주인장 되는 분을 어서 만나서 겨뤄보고 싶군!”

“에? 거, 검선이시여! 너무 갑작스레 가시면….”

무례가 아니냐고, 일단 인사부터 나누는 게 먼저 아니냐고 하려는 찰나.

조용히 검선의 뒤를 따르던 리어가 제갈소연을 돌아본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이곳은 이러는 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

“하, 하지만….”

“괜찮습니다. 인사치레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하느냐. 강하지 않느냐. 그리고 그 강함에 걸맞은 노력을 한 자인가. 오직 그뿐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리어는 몸을 돌려서 검선의 뒤를 따랐다.

“어어….”

묘하게 다르다. 강호에서 만나던 이들은 모두가 자존심을 챙기던데.

인사를 제대로 하거나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검을 뽑곤 하던데.

저 남자는 마치 태산처럼 굳건한 느낌이 확 드는 것 같았다.

‘참으로 신기한 곳.’

그리 생각하며 제갈소연은 재빠르게 검선과 리어의 뒤를 따랐다.

“막내와는 겨루지 않은 모양입니다.”

손님들을 안내하던 리어가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검선이 가벼운 웃음을 흘리더니 상황을 설명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손님과 싸우는 것은 아쉽지만 불가능하다고.

대신 무슨 진을 타고 가면 그곳에 원 없이 겨룰 상대가 있을 것이라고.

특히나 자신의 부친은 이 세상 최강이니 마땅히 긴장을 하는 게 좋다고 말이다.

“그렇습니까.”

리어가 검선을 흘끗 쳐다보다가 말을 잇는다.

“막내가 아버지 생각을 해준 거군요. 아마 본인도 엄청 하고 싶었을 텐데.”

이들 주변에 맹의 사람들이 있었다면 농담이 지나치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겨우 약관인 애송이가 어찌 검선 어르신을 앞에 두고 호승심을 부리냐고.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들은 검선은 계속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본디 절제란 또 하나의 강함 아니겠는가! 이 노구도 그런 젊은이의 노력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네. 해서 꾹 참고, 이곳까지 이렇게 바삐 온 것이지.”

“그렇습니까. 이해합니다. 절제란 곧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고, 그 싸움에서 이기는 자만이 진정한 강자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는 법이지요.”

리어의 말에 검선이 말이 좀 통한다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이런 말을 하면 노인네의 잔소리라고 여기거나.

그게 아니면 무슨 큰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처럼 과한 반응을 보이는데.

바로 옆의 이 청년은 마치 세상을 관조하는 자 마냥 반응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걸음을 옮겨 마침내 성 안에 마련된 메인 홀에 들어선 순간.

“…허어.”

검선의 입술 사이로 여러 의미가 뒤섞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뭐 이런… 사내가 다 있단 말인가.’

입가에 그려져 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강자로서 응당 지니고 있던 여유마저 점차 옅어져간다.

정마대전이라도 벌어지지 않는 이상 이럴 일은 없을 거라고 여겼는데.

여전히 등선은 멀고도 험하지만 그 경지에 아주 조금은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검 손잡이를 쥐고 있는 걸 보면 참 당혹스러웠다.

“황제 폐하에게서. 그리고 막내에게서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유가 된 한 중년 남성이 앞에서 다가왔다.

손에는 영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무언가를 든 채로.

*

차를 마시거나, 혹은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거나.

그도 아니면 서로에 대해서 어떻게 소개라도 한다던가.

제갈소연은 처음 마주한 때를 그리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선도, 그리고 이곳 가문의 주인이라는 자도.

애당초 그럴 생각은 없었던지 그냥 서로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검선의 저런 모습…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이 이질적인 기운도 그렇고.’

검선이 왜 검선으로 불리는가.

그것은 검으로 단순한 강호인, 혹은 고수로 끝이 아닌.

그 존재 자체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본디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더는 그 사람이 아닌 존재.

맹의 수없이 많은 고수들을 후지기수로 두고 있는 인물.

제갈소연이 어릴 적에도, 그녀의 조부가 맹의 군사였을 때도.

검선은 계속 검선으로서 그 자리를 지켜왔었다.

때문에 지금과 같은 모습은 더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세상을 관조하던 자가 다시금 강호에 막 발을 들인.

호승심에 불타오르는 무사마냥 두 눈을 번뜩이고 있는 게 말이다.

심지어 둘이 마주하고 나서 계속 저러고 있다.

그 어떤 말도 없이, 그냥 서로를 계속 살피고 있는 게 전부다.

덕분에 제갈소연 입장에선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말려야 하나, 싶다가도 어떻게 검선을 말릴까 싶고.

슬쩍 끼어들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자니 괜한 짓이 될 것 같고.

이렇다 할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건 처음이었다.

제갈세가의 사람으로서 문제 해결을 해내지 못 하면 안 되는데.

상황이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레아.”

“네, 어머니!”

그런 두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리아 남작 부인이 제 딸을 부른다.

“네 아빠한테 할 거면 최대한 멀리 가서 하라고 말씀드리렴. 근처에서 하다가 괜스레 너희가 가져온 기구 상하기라도 하면 이 엄마한테 혼난다고.”

“헉. 그러면 절대 안 되죠. 아버지께 꼭 말씀드릴게요.”

라고 말하는 모녀도 본능적으로 ‘쩝’ 하고 입맛을 다시고 있는 중이었다.

하필이면 카일이 직송으로 보낸 아버지 효도 선물인 터라.

순위에서 밀린 상태이니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게 그 이유였다.

“아버지!”

레아가 깡충거리며. 아, 물론 어디까지나 본인 입장에서만 깡충이다.

옆에서 보고 있던 제갈소연은 무슨 이형환위라도 쓰는 줄 알았다.

분명 여기 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저 앞까지 날아갔으니.

“거기 서 계시는 아가씨는, 어떻게 온 걸까요?”

남작 부인의 말에 제갈소연이 아, 하고 얼른 예를 취했다.

“제갈세가의 제갈소연입니다. 안주인 분을 뵙습니다.”

“아… 조금 어려운 말이네요. 그보다, 막내가 굉장히 신기한 분들이라고 하더니 맞는 모양이네요. 저 이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 보는데.”

여전히 둘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고 있다.

그나마 그 사이로 레아가 들어가선 ‘여기서 계속 이러시면 어머니가 곤란하시다는데요!’ 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는 저기 계시는 가주께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음, 그러면 미안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주겠어요? 저 양반이 곧 한바탕 할 것 같은… 아, 지금 나가네요. 레아! 확실히 말씀드린 거 맞지?!”

“당연하죠!”

“그렇다네요. 자, 우리는 가서 가볍게 단련이라도 하죠!”

원래 가볍게 차 한 잔 하는 게 맞지 않나? 갑자기 단련?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갈소연의 몸은 이미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중이었다.

“먼 곳에서 오신 분에, 스스로도 굉장히 관리를 잘 하신 분 같으니 특별히 우리 레아가 봐주는 선에서 간단하게….”

콰아아아앙―!!

순간 지축이 흔들리는 진동과 함께, 커다란 굉음이 모두를 덮쳤다.

지진이 났다거나 화산이 폭발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

하지만 가장 무시무시한 건 진동도, 굉음도 아니었다.

“힉?!”

여인이라지만 그래도 강호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수련을 거친 제갈소연이다.

그런 그녀가 주저앉을 정도로, 거세게 불어 닥치는 거대한 두 힘의 충돌.

어지간한 이라면 그대로 기절했을지도 모르는 수준이었다.

‘이, 이게 도대체….’

맹과 마교의 날고 기는 고수들이 싸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마치 산과 바다가 서로 건곤일척을 겨루는, 그런 느낌이었다.

“괜찮습니다. 별것 아닙니다.”

와중에 리어는 제갈소연의 머리 위를 슬며시 가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남작 부인과 레아는….

“네 아빠 차례 끝나면 이 엄마도 한 번 붙어봐야겠구나.”

“어! 그러면 다음은 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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