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속 전투종족-297화 (297/318)

교단의 사제들은 전사들과 함께 한 부족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어. 어어?”

부락의 중앙에 수많은 부족민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한 번씩 나서서 무언가를 끙끙거리며 들어 올리고 있었는데.

“형제님. 저거, 저거 봉이랑 원판 아닙니까?”

그렇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원판이 끼워진 봉이었던 것.

운동기구라면 교단의 사제들 또한 이젠 굉장히 친숙한 것이 되었다.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동고동락했으니 당연한 일.

심지어 몇몇은 아예 잘 때도 봉을 껴안고 잔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그 물건이 이곳 유목 부족들 사이에서도 보일 줄이야.

제국에서도 이제야 제국민들 사이에 조금씩 퍼지고 있는 중인데.

기껏해야 아카데미와 교단에서만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설마 이 먼 동쪽에서 보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하하! 이거, 제 친구들 예상이 맞은 모양입니다.”

통역을 해주던 이가 호탕하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사제들의 표정에서 ‘저게 뭐야.’ 가 아닌, ‘저게 왜 여기 있어?’를 느낀 것.

그에 사제들은 그에게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형제님. 저 물건이 어떻게 이곳 부락에 있는 것인지요?”

“용께서 우리 늑대들의 후예를 시험하시고자 두고 가신 겁니다.”

“용… 존 나센 남작가 형제자매님들을 말씀하시는 것이고, 늑대의 후예라면… 아, 혹시 여기 계시는 동쪽의 형제자매 분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바로 그렇다고. 우리 동쪽의 모든 부족들이 푸른 늑대의 후예들이라고.

다만 지금은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나 송곳니는 무뎌졌고 발톱은 거칠어졌다고.

그 모습을 보신 용께서 그래서는 안 된다며 친히 길을 제시해주셨다고.

사제들은 보았다. 그리 말하는 남자의 눈에서 나오는 동경의 반짝거림을.

그것은 마치 프리실라 단장을 바라보던 신입 성기사의 것과 닮아있었다.

‘존 나센의 형제자매 분들께서 동쪽으로 출병했었다고 했던가.’

‘음. 여기서도 무언가 하신 것 같군. 역시, 그래야 존 나센의 형제자매님들이지.’

이후 교단 사제들은 전사들을 따라 부족장과 그 원로들과도 만나게 되었다.

그들 또한 친제국 성향을 지닌지라 교단의 사제들이라 하니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어디서 왔냐. 제국의 교단은 어떤 곳이냐. 그곳 사람들은 어찌 지내냐.

우리가 제국과 계속 원만한 사이로서 지내고 싶은데 조언을 해줄 수 있느냐.

며칠이든 좋으니 편히 묵다 가라. 이곳 초원에선 손님을 성실히 대접하는 게 규칙이다.

거기에 교단에서 그리 말하는 그 좋은 말씀들에 대해 듣고 싶다고.

사제들이 먼저 청하지도 않았는데 포교 활동에 대한 허락까지 해주었다.

일이 너무 말도 안 되게, 말 그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거기서 무언가 묘한 기운을 느낀 사제 중 하나가 입술을 뗀다.

“부족장 형제시여.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보시오, 제국의 손님.”

“우리가 손님이라곤 하나, 외지에서 온 낯선 이들이지 않습니까. 한데 이리 너무나 친절히 대해주시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그 말에 부족장과 원로들이 껄껄거리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이곳 동쪽 초원에서는 손님을 대접하는 게 규칙이라고.

설령 그게 적이어도, 싸우기 위한 목적으로 만난 게 아니라면 손님으로서 맞이한다고.

하물며 좋은 뜻으로 온 손님이라면 더더욱 잘 대접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소이다.”

다음 말은 부족장 옆에 위치한, 그의 아들이자 전사들의 리더가 받았다.

“그 하얀 옷 안에 숨기고 있지만, 전사들 눈에는 보입니다. 우리 전사들과 같은 길을 걷는 자들이라는 게. 당장 용께서 내려주신 물건을 보니 사제님들의 눈빛이 달라지던데.”

그 말에 사제들이 미소를 감추지 못 하고 웃고 만다.

자신들 또한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노력한 게 있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그 봉을 다루는 건 꽤나 자신이 있었다.

해서 사제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조금 해주기로 했다.

이곳 부족민들이 존 나센과 만났던 이야기를 해주었으니.

이번에는 자신들이 이야기를 하는 게 순서라고 여긴 것.

“사실 우리 교단에도 존 나센 형제분께서. 그러니까 여기 형제님들이 ‘용’ 이라 부르시는 곳의 일원께서 오셔서 우리 사제들의 나태함을 몰아내셨습니다. 이후로….”

이어지는 사제들의,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또 조금은 고단한 이야기들.

부족장과 원로들, 그리고 전사들은 그 이야기에 집중했다.

자신들, 푸른 늑대들의 후예들에게 진정한 ‘강함’을 일러주신 용.

그 위대한 존재들이 제국만이 아니라 교단에도 영향력을 끼쳤단다.

심지어 저렇게 순해 보이는 이들에게도 강함의 미학을 가르치기까지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스러우며 찬사가 나오는 이야기란 말인가!

전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었다.

심지어 원로 중 몇은 저들이 해주는 그 이야기들을 조금 더 모아서.

아예 새로운 전승으로 만들어내 후대에 알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위대하신 용께서 우리 늑대만이 아닌, 제국민들에게도 영광을 내리셨으니!

진정한 강함이란 끝없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또 승리하는 것.

거기에는 저 사제들이 말하는 나태했던 자신의 과거와도 싸우는 게 있었다!

이보다 더 대단하고 더 멋지며 더 영광스러운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역시, 위대하신 용께서는 어디를 가셔도, 그 분들의 의지를 내뿜으시는군요.”

“부족장! 이 이야기를 토대로 전승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이건 제국의 이야기이니 그들의 것이 아닐까 싶소만.”

뭐야, 이 사람들 갑자기 왜 이래.

사제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전사들이 옆으로 다가온다.

그리곤 ‘안다!’ 라고 외치면서 사제들에게 어깨동무를 권한다.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사제들이 통역을 해주던 이를 바라본다.

그에 남자는 웃으면서 기꺼운 대답을 내놓았다.

“여러분들더러 형제라고 하는군요.”

이후에는 전사들이 사제들을 일으켜서 어디론가 데려갔다.

아까 전 사제들이 지나친 부락 중심부, 원판을 끼운 봉을 들던 곳.

그곳에 다다른 전사들이 사제들더러 봉을 가리킨다.

“참고로, 우리 부락에선 인정을 받은 전사만 이것을 들 자격을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 전사들은, 여러분들에게 그 자격을 한 번 주기로 했습니다.”

“그런… 우리들은 손님에 불과한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면 우리 모두가 형제이거늘. 자격은 충분합니다.”

그 말에 사제들은 더는 사양하지 않고 순서대로 봉 앞에 섰다.

솔직히 아주 조금은 만만하게 보았다. 그리 무겁지 않아 보여서.

하지만 곧 그 작은 마음마저 없애면서 ‘아직도 마음의 수련이 부족하구나!’를 실감했다.

당장 내일은 걷는 게 아닌 달리기로 고행길을 유지해야 할 듯 싶다.

“흐읍!”

첫 번째 사제가 봉을 들어 올린다.

일단 땅에서 떨어지기는 했고, 다음으로 가슴께로 올려야 하는데.

‘어, 엄청나게 무겁다!’

순간적으로 ‘이건 못 든다.’ 라는 생각이 들자 사제는 미련 없이 봉을 내려놓았다.

빠르게 포기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과한 자만심은 몸을 해친다고 했다.

카일이 항상 강조하던 것이 바로 ‘나의 중량은 어디까지인가.’ 였다.

내 주제를 알고 한계를 시험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해야지, 그 이상은 자만이라고.

“나태만큼 무서운 것이 자만심, 그리고 오만. 거기서 오는 건 오로지 부상입니다.”

이후로도 사제들이 나섰으나 쉽사리 봉을 드는 인물은 없었다.

보기보다 정말 장난이 아니게 무거웠고, 아주 조금은 긴장도 해서.

결국 누구도 성공하지 못하자 사제들의 표정이 굳었다.

‘수련이 부족하다. 단련은 역시 해도 해도 부족해.’

‘내일부터는 하체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상체부터 해야겠군.’

‘신께서 실망하실 일이다. 오호 통재라!’

한데 그런 사제들의 반응과는 달리, 전사들은 오히려 박수를 쳤다.

그 이유를 묻자 전사들이 굉장히 정확하게 한 단어를 외친다.

“정자세! 정자세! 정자세!!”

저것을 든다고 해도 정자세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용에 대한 모독.

그렇기에 모든 푸른 늑대의 후예들은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킨다.

그 전사들에게 있어 정자세를 유지하던 사제들은 역시나 형제에 어울리는 자들이었다!

*

다음날 새벽. 기도를 올린 사제들이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이곳 부족민들의 환대는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만 머무를 수는 없다. 자신들은 더 나아가야 한다.

“떠나시는 겁니까?”

남자가 다가와서는 사제들 앞에 선다.

그리고는 어제 막 배운 대로, 조금은 어설프지만 성호도 긋는다.

“네, 형제님. 더 먼 곳으로 가고자 합니다.”

“그렇군요. 대부분의 부족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겁니다. 다만, 여기서 더 동쪽으로 가시면 나오는 부족들이 현재 조금 날카로운 분위기를 낼 수도 있으니 유의하셔야 합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제국과의 전쟁은 끝났지만 부족 간의 싸움은 여전하다.

애당초 통일된 국가가 있는 게 아니니 어쩌면 당연한 일.

그나마 ‘용봉지회’ 라는 것 덕분에 꽤나 줄었다고는 한다.

“그건 아닙니다. 다만, 그 동쪽 그 너머. 늑대들의 후예 중 어느 누구도 가지 않았던 머나먼 곳. 동쪽의 끄트머리. 영혼들이나 산다고 하던 그곳에서 웬 외지인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외지인들. 동쪽의 끄트머리. 거기까지 들은 사제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들 또한 그곳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직 어느 누구도 닿지 못한 곳.

그곳에 가서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한데 와중에 신기한 소문이 있습니다.”

“어떤 소문입니까?”

“그곳에서 온 자들이 무언가를 들고 다니면서 이것의 출처를 혹시 아냐고 묻고 있답니다. 엄청 귀하게 다루는 게 마치 대단한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죠. 은빛이 감도는 기다란 무언가라고 했는데… 정확한 건 잘 모르겠군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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