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속 전투종족-293화 (293/318)

드디어 오늘, 바로 오늘이다.

인간 세상에 뛰어든 신들이 마침내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날.

‘제발, 제발 좀 얼른 가주세요.’

항구에 모인 이들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그렇게 빌고 있었다.

저 두 남매가 악의를 품고서, 엄청난 사상자를 발생시킨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항거할 수 없는 존재가 주는 두려움은 대단한 것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모든 기술자들이 이를 악물고 작업을 한 것 아닌가.

얼른 저 둘을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심지어 타국에서조차 얼른 그래달라고 은밀히 부탁을 했다.

필요한 모든 자원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며, 그 남매 좀 돌려보내라고.

이미 남매에 의해서 모든 국가들의 전투력이 급감한 상태다.

저들이 떠나고 나면 그걸 회복하기 위해 내치에만 몰두할 것이다.

어쩌다보니 이곳의 강제적인 평화를 몰고 온 존 나센이었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저건 왜 배에 싣지 않은 겁니까?”

한 의원이 용기를 내서 레아에게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남매가 부탁한 운동 기구들을 가득 실은 거대한 컨테이너.

원래라면 마력선에 실어서 보낼 것으로 계획이 된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컨테이너는 전부 마력선에 실어두었는데.

저 하나는 왜 그러지 않고 항구에 덩그러니 있는지, 그게 궁금했다.

“아, 저거요? 가져가려고요.”

“그… 아국에서 다른 화물들과 함께 반드시 보내드리겠다고….”

“그랬죠. 하지만 너무 늦어요. 당장 저거 오는 데에만 몇 달이라면서요.”

너무 늦는다. 그 말에 옆에 서있던 선장과 선원들이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몇 달도 정말 최대한 일정을 당기고 당겨서 잡아둔 예정 날짜다.

마력 엔진도 가장 우수한 것으로 준비하고, 마력석도 최고로 마련했다.

이쪽에서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시일을 계산하여 알려준 것인데, 그래도 늦는다니.

“그래서, 저랑 오라버니가 하나씩 짊어지고 가려고요.”

“….”

의원은 저도 모르게 옆에 있는 컨테이너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보고 또 봐도 사람이 들 수 있는 물건이 절대 아니다.

강도는 물론이고 방수 기능까지 있기에 그만큼 무게가 늘은 상태다.

들기는커녕 깔리는 순간 바로 뭉개져서는 형체도 찾기 힘들 거다.

당장 저걸 마력선 위에 싣는 데에만 사흘이 꼬박 넘게 걸렸다.

그런데 눈앞의 이 여자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들고 가려고!’ 라고 답하고 있었다.

“그, 그렇군요.”

하지만 의원도, 그리고 자리에 모인 공화국의 모든 이들도.

레아의 말에 고개만 끄덕거리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맨손으로 공화국은 물론이고 인접한 다른 국가들까지 싹 밀어버린 여자다.

사상자 하나 없이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든, 말 그대로 신의 후예다.

그런 존재에게 저까짓 컨테이너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터.

“슬슬 출발하자꾸나.”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리어가 입술을 뗀다.

그에 레아가 고개를 끄덕거리곤 의원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나 해서 말씀 드리는 거지만, 늦으시면 안 돼요? 다들 기다리고 있거든요.”

남매가 따로 가져가는 컨테이너는 저들이 요구한 양의 반도 되지 않는다.

맛보기용으로 한 번 가져가는 거고 본편은 당신들이 가져오는 거라며.

얼른 오지 않는다면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여기로 올 수 있다나 뭐라나.

심지어는 저 둘이 아예 모든 컨테이너를 싹 다 가져가려고도 했다.

하지만 워낙 컨테이너가 커서 옮기기엔 부적합하다는 게 결론이었다.

거기에 험하게 굴리다가 자칫 내부의 물건이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누군가 그 가능성을 제기하자 리어도, 그리고 레아도.

바로 본인들이 직접 들고 가겠다는 의견을 철회했을 정도였다.

“걱정할 거 없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 안 된다면 저희 목숨을 걸고서라도 임무를 완수할 겁니다. 두 분께선 안심하시고 원래 계시던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암,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이 또 여기에 올 거다.

지금이야 저 운동기구들만 챙겨서 간다고 하지만.

나중에 또 오면 그 때는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최악의 경우는 공화국 전체가 식민지로 되어버리는 것.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지금처럼 우호적인 관계면 충분하다.

다행히도 저들 또한 어디를 지배하는 것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해서 공화국 내부에선 재빠르게 회의 결론을 내놓았다.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저들의 요구에 응한다.

마침 타국들도 바짝 긴장해서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혹 우리게 부족한 게 있다면 그쪽에 청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얼른 가요, 오라버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고향 사람들 모두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카일 반응도 보고 싶고!”

쿠구궁!-

저 거대한 컨테이너를 무슨 보따리 들 듯 바로 어깨 위로 올리는 레아.

그 충격적인 광경에 항구에 모인 이들의 입이 쩍, 하고 벌어진다.

한편 레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리어 또한 컨테이너 앞으로 다가가려는 찰나.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갑자기 의원들 앞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헉.”

“이, 이쪽으로 옵니다.”

“어째서? 호, 혹시 뭐가 마음에 안 드나?”

마치 죽음이 실체화되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두렵고 또 소름이 돋는 일이 있었던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몸을 돌려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하지만 의원 모두가 본인의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용기를 내서? 아니, 그게 아니다. 어차피 도망가도 따라잡힐 테니.

그렇게 되면 정말 고통스럽게 죽을 것 같아서, 그게 무서웠을 뿐이다.

“여러분.”

앞으로 다가온 리어가 대뜸 그들에게 책 하나를 내민다.

당장이라도 주먹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나온 건 책이라니.

의원들은 그 광경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이, 이것이 무엇입니까?”

“선물입니다. 동시에 과제이기도 합니다.”

과제? 갑자기 과제라니. 이건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를 전혀 못 했다는 의원들의 표정에 리어가 말했다.

“막내가 당신들과 같은 이들을 위해 만든 겁니다.”

그리 말하는 리어의 입가엔 은은한 미소까지 걸려있었다.

덕분에 그의 앞에 서있던 모두가 크게 놀라고 말았다.

항상 두려움이 절로 생겨나는 무표정만을 고수하던 존재인데.

막내 운운하더니 갑자기 웃는 모습이 너무 이질적인 것이었다.

“그걸 참고해서 단련을 하면 됩니다.”

“가, 갑자기 단련이라니요?”

“다음번에 왔을 때, 당신들의 허약한 몸이 아주 조금은 더 건강해졌기를.”

“에, 에에?”

다음번에 온다. 당신들의 허약한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란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말이지 않나!

언제든지 다시 올 수 있는 존재다. 심지어 다시 오겠다고 말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에게 주어진 이 책은, 그야말로 유일한 구원줄이자 성서였다.

적힌대로 따르면 다음번에 들이닥칠 폭풍에서 무사할 수 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봅시다.”

얼른 돌아가서 새로운 기구들 맛 좀 보여주겠다고.

아주 그냥 싱글벙글 두 존 나센은 그대로 ‘순간이동’을 전개했다.

투― 콰아아아앙!!-

마법 대포는 따위로 만들어줄 가공할 만한 굉음과 함께.

두 남녀가 그대로 하늘 위로 치솟는가 싶더니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

“….”

공화국 사람들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본인들 말로는 자신들 또한 당신들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라는데.

대체 어떻게? 어떤 구석을 봐서 저것들이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란 말인가.

사람이 점프 한 번에 공중으로 치솟아서 날아갈 수 있었나?

집채 만 한 컨테이너를 들고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있을 수가 있나?

“…또 온다고 했지요.”

“심지어 와서는 우리들의 수준을 확인한다고도 했습니다.”

의원들은 재빠르게 리어가 주고 간 책을 살펴보았다.

맨 첫 장에는 ‘카일 존 나센’ 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아마도 이 책을 만들었다는, 저 존재들의 동생인 모양이었다.

*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그거 끼고 오신 거라고요.”

“응! 카일!”

헤헤! 하고 웃으면서 다시 한 번 카일을 꼭 안아주는 레아.

이번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고가게 된 카일이었다.

“거의 다 왔는데 혹 내용물이 상하지는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잠깐 확인 좀 해보았지.”

그래서 남쪽 섬에서 리어와 레아가 다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거다.

혹 본인들이 가지고 오던 컨테이너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이쯤 되면 그냥 해외에 운동기구 만드는 식민지 하나 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매우 강력하게 든 카일이었지만, 일단 지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이걸 말해봤자 제 형과 누나는 그럴 생각은 절대 없었다고.

왜 본인들이 다른 곳을 지배하는 귀찮은 짓을 하겠냐고 대답할 것이었다.

“…물건이나 좀 보죠.”

“후후후! 궁금하지? 궁금해 죽겠지, 카일?!”

솔직히 조금, 아니. 좀 많이 궁금하기는 하다.

레아는 그렇다고 쳐도 리어까지 운동기구 운운하니 웃고 있다.

저걸 보면 굉장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온 것 같은데.

“…오. 이거 과부하 엄청 걸리네요.”

“그렇지? 거기 사람들이 마력석인가? 그걸 통째로 깎아서 무게추를 만들었더라고!”

“덕분에 그냥 무겁기만 한 게 아니라 추가 역으로 힘까지 내더구나.”

“좋네요. 이 정도면 아버지도 만족하실 것 같습니다.”

“막내 네가 보기에 그렇다면 참 다행이구나.”

하하! 후후! 하고 웃고 있는 존 나센 남매들.

“….”

그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남쪽 독립 영주들.

그리고 제국에서 파견을 나온 이들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미친. 대체 저걸 어떻게 짊어지고 여기까지 온 건데.’

‘그곳 사람들 말을 들으면 오는 데에만 몇 달 걸린다고 하지 않았나?’

‘신이시여. 제발 저들이 운동에만 영원히 만족하도록 해주소서.’

‘황제 폐하 만세, 현명하신 황제 폐하, 부디 천수를 누리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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