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돌려서, 카일이 이제 막 남쪽에서 제국으로 복귀할 쯤.
멀리 바다 건너에서는 한 척의 배가 아주 열심히 귀환을 서두르고 있었다.
‘멍청한 것들, 멍청한 것들.’
‘제발 혹시나, 하고 대비 좀 해줘. 제발 준비라도 하고 있어.’
속으로는 이런 간절한 기도를 올리면서 말이다.
“얼마나 남았나?”
“방금 전 뮤 섬을 지났으니 이제 닷새 정도만 더 나아가면 될 겁니다.”
본국의 영해에서 가장 끄트머리에 위치한 뮤 섬을 지나쳤다.
일단 코앞까지 돌아오긴 했다. 그래, 어떻게 돌아오긴 했는데.
문제는 본국에 연락을 취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 귀관들의 말도 안 되는 개소리는 잘 받았다. 얼른 복귀할 수 있도록. 나머지 소설은 이후 취조실에서 듣도록 하겠다. 허튼 생각은 않기를 바란다. 그대들의 식솔들은 이후 바로 자택 연금에 들어갈 것이다. ]
콰직!-
아직도 그 답장만 생각하면 열불이 뻗치는 느낌이었다.
가족들을 연금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본인들을 믿지 못 해서 그렇다.
정말 필사적으로, 모든 부분을 과감 없이 그대로 알렸는데.
조금이라도 이상함을 느끼고 대비라도 하겠다는 답을 하면 좋을 텐데.
본국은 그 답 하나만 해놓고 더 이상의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이후로 정말 미친 듯이 내달려서 여기까지 다다랐다.
체포를 할 생각이면 차라리 먼 바다까지 함선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평소라면 절대 하지도 않았을 생각까지 하는 이들이었다.
“혹시 모르잖습니까. 우리 이야기에 그래도 이상함을 느끼고 회의라도 할지.”
부관 몇이 다가와서 사령관에게 그런 위로의 말도 건네 보았다.
하지만 그들 또한 속으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 당장 내부의 일도 바쁠 텐데.
거기에 언제 외부에서 또 전쟁이 날지 모르는데 신경을 쓸 여력이 없을 거라고.
그 부분이 예상이 가는 게 너무나 슬픈 현실이었다.
“남은 마력석은?”
“이제 바닥입니다. 뮤 섬에서 조금이라도 지원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랬다간 곧장 체포할 가능성도 있어서 부득이 지나친 게 컸습니다.”
“빌어먹을. 본국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였더라면.”
욕을 하고 싶다가도 막상 그러지를 못 한다.
솔직히, 본인들도 그런 내용의 통신을 받으면 그럴 것 같았기에.
‘황당하지. 아니, 황당함을 넘어서서 그냥 애들 장난에 불과한 정도야.’
사람이 갑자기 날아와서 비행 슈트를 입은 비행병을 격추시키고.
손으로 내던진 물건에 마법 대포가 박살이 나고, 함선들이 침몰한다는 내용.
이건 소설로 써도 당장 사람들이 몰려와 욕을 할 만 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그게 전부 실제였다는 점이다.
그 전부를 여기 있는 모두가 제 눈으로 직접 보았기에.
어떻게든 본국에 사실을 전하려고 이리 다급히 나아가는 게 아니겠는가.
“본국에 다다랐으니 행동 강령을 알려주겠네. 절대 저항하지는 말되 어떻게든 사실을….”
쿠구구구…!
순간, 고요하기만 하던 저 멀리, 바다 건너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진인가? 하지만 곧 고개를 내저었다.
본국이 머지않았다지만 여전히 이곳은 바다 한복판이다.
지진이 날 수가 없다. 그게 아니라면, 해저 지진이라도 된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징조는 어디 한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겨, 견시 보고! 견시 보고!!”
“무슨 일이야! 혹시 해일인가?”
“아닙니다! 고, 공중입니다!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접근 중!”
공중에서 무언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가능성은 오직 하나, 슈트를 걸친 비행병이다.
‘…잠깐만. 이 근처에서 슈트를 운용할 수 있는 함선을 본 적이 없는데?’
그러면 섬에서 날아왔단 말인가? 그것도 불가능하다.
이 근처에 있는 섬 대부분은 아무도 살지 않은 작은 무인도.
그나마 사람이 극소수 산다는 뮤 섬엔 비행병 자체가 없다.
와중에 견시는 아예 비명까지 내지르고 있었다.
“비, 비행병이 아닙니다! 너, 너무 빠릅니다!!”
쿠과과과과―!!!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열심히 귀환하던 이들이 혼비백산하던 찰나.
공중을 말 그대로 꿰뚫으며 두 개의 인영이 그대로 그들을 지나쳤다.
*
만페르펜 공화국은 현재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외부에선 끊임없이 적국들이 국경을 오고가며 긴장 상태를 불러일으켰고.
내부에서는 아직도 쿠데타의 영향이 짙게 남아있었다.
와중에 남은 잔당들을 정리하라고 보낸 이들은 대뜸 이상한 소식까지 전했다.
신대륙에 닿은 순간 함대가 전멸했으며 비행 슈트 전부를 잃었다고.
현재 겨우 돌아오고 있긴 한데 같이 보내는 이 물건들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
설령 만들지 못 한다고 해도 고민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말이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당연히 쿠데타 정권은 격노하여 그들을 배신자로 규정했다.
바로 가족들을 자택 연금시켰고 각 항구마다 병력들을 배치했다.
그들이 귀환한다면 바로 붙잡아서 취조를 할 생각으로 말이다.
콰아아아앙!!-
하지만 그 병력들이 마주한 것은 배도, 본국의 사람들도 아니었다.
“흐억!”
“으아아아!!”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두 남녀.
이어지는 보고에 의하면 슈트를 입은 비행병도 아니란다.
둘 모두 그냥 평범한 옷만 걸친, 평범한 사람이었다.
“적의 기습이다! 발포! 발포!!”
당장 항구에 대기하고 있던 병력들이 가용 가능한 모든 화력을 동원했다.
마법 대포를 쏘아 보내고, 소형 마력포를 전부 퍼붓고, 마력 폭탄까지 전부 다!
항구의 한 곳이 완전히 사라지는 화력이었다.
아예 지형이 바뀌어서 다른 곳이 되어버렸을 정도였다.
그곳에 누가 서있든, 설령 강화 슈트를 입은 비행병이라고 해도 버틸 수는 없다.
그게 맞는 일이다. 원래는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환영 인사 치곤 좀 험한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라버니?”
하지만 정작 연기가 걷히고 나타난 건, 표정이 어두운 한 여인과.
“제대로 단련을 한 놈이 하나도 안 보이는구나. 대화를 할 가치가 없겠군.”
크게 실망했다는 말투로 답하는 한 명의 거대한 남자였다.
두 남녀는 기겁한 병사들과 장교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
혹시나 몰라서 미리 가지고 온, 제국에 남은 이곳 사람들의 물건들을 꺼내놓았다.
그리고는 혹시 당신 사람들이 돌아와서 자신들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자신들은 그거 하나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리 대접하면 서운하다고 말했다.
‘…이건, 이건 아니야.’
‘뭔가 잘못 되었어. 저게, 저게 사람일 수가 없잖아.’
사실 공화국 병사들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일선 장교들 또한 이미 적으로 간주할 수 있는 단계를 한참 넘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윗선에서는 그저 외부의 적이라고만 간주하며 공격을 명령했다.
아무리 강한 자라고 해도 결국 마법 대포를 계속 맞다보면 쓰러진다고.
이곳 대륙에서 더 강력한 대포를, 더 많은 마력석을 지닌 국가가 최강국인 것은.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완벽하게 정립된 유일한 사실이지 않느냐고.
급기야 반 강제적으로 공격을 개시하는 곳이 생겨났다.
이미 바닥까지 내려앉은 국격을 더 떨어트릴 수는 없다.
내부의 적에게까지 패하면 자국민들에 의해 정권이 전복될 것이다.
그 생각들에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거다.
“레아.”
“네, 오라버니.”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말자.”
“으음… 노력은 해볼게요.”
그리고 정확히 닷새 후.
“….”
바다 건너, 새로운 세상 새로운 국가와 조우를 했었고.
그곳에서 ‘존 나센’ 이라는 미지의 괴물들을 만났던 이들이 돌아온 그곳은.
“늦었군.”
두 초신성이 대폭발을 일으킨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와중에 또 목숨을 잃은 이는 없다는 게 더 무서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
“드디어! 드디어 완성이 되었습니다!”
과장스러운 몸짓까지 해가며 리어와 레아 앞에 나타난 의원들.
분명 의회에서는 꽤나 큰 목소리를 내는, 원로 대접까지 받는 이들인데.
남매 앞에서는 일개 하인. 아니, 노비 수준에 불과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완성이 되었네요?!”
“암요. 그렇고말고요. 그래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물건을 만들어야 해서 아무도 죽지 않은 거니까.
만약 이들이 다른 뜻으로 여기 왔다면, ‘정복’을 원했었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진작 불귀의 객이 되었을 거다.
‘그 장면을 보고서도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나.’
심지어 공화국 소식을 들은 다른 나라들이 이때다! 하고 달려들었을 때.
왜 자꾸 기구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을 방해하냐고, 격노를 하면서.
두 남매가 각각 찢어져 다가오던 또 다른 두 나라를 말 그대로 송두리째 박살냈다.
이번에도 사망자는 없었다. 죽음에 다다른 치명상도 없었다.
그게 더 무서운 일이었다. 죽이는 것조차 귀찮다는 뜻이 아닌가.
허무맹랑한 소리로 일컬어지던, 신화 속의 ‘신’ 이 강림한 것처럼 보였다.
“여, 여기입니다. 얼른 보시고 평을 들려주시지요.”
이후 공화국은 모든 병기 생산을 중단했다.
그리고 전국의 모든 장인들을 불러서 남매가 원한 기구를 만드는 데에 동원했다.
어떻게든 빨리 저들을. 아니, 저 신들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헤에. 오라버니. 이거 좀 마음에 드는데요?”
그토록 무시무시하던, 마치 항거할 수 없는 폭풍과도 같았던 여인.
그 여인이 지금은 기구를 만지작거리며 행복하게 웃고 있다.
“그렇구나. 으음. 음… 마음에 들어.”
세상을 통째로 집어삼킬 것 같았던 거대한 재앙이었던 남자.
그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근육을 뽐내며 기구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
혹독한 겨울 그 자체인 줄 알았는데, 웃을 수 있다는 걸.
공화국의 사람들은 기구를 소개한 바로 그 때 처음 알았다.
“여러분.”
“에, 옙!”
“이걸로 똑같이 더 만들어주세요.”
그러면서 레아가 굉장히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이곳 사람들에겐, 끝을 알 수 없는 무저갱이 아가리를 쩍 벌린 모습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