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카일 형제님. 제가 정말로 황궁에 가도 되는 걸까요?”
마차 안에 타고 있던 성녀가 그리 묻자 카일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걱정할 게 뭐 있냐는 듯. 애당초 이리 가는 것도 황제가 친히 불렀기에 가는 건데.
“교단에 대한 시선이나 성녀님의 위치 때문에 걱정이시라면,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만남을 청하셨으니 당연한 겁니다. 혹 교단의 중립성을 해칠까, 그 부분 때문이라면 조만간 성녀 자리를 물려줄 텐데 딱히 문제 삼을 것도 없고요.”
황궁으로 향하는 길에 카일과 동행하게 된 건 다름 아닌 성녀.
갑작스레 그녀와 좀 만나고 싶다는 황제의 뜻이 전해진 것이었다.
성녀는 그 이유에 대해서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제국의 황제와는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직접 만남을 청할 그 어떤 이유도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설마… 아, 아니겠지? 황녀님께서 카일 형제님의 첫 번째가 될 수 있도록 무슨 수를….’
오죽하면 속으로 이런 걱정까지 하고 있을 정도일까.
“….”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일은 안심하라는 듯 성녀의 옆으로 앉았다.
“걱정 마세요. 그냥, 요즘 황녀님이 어찌 지내시는지. 이전부터 현재의 행보에 대한 뜻을 가지고 있었는지. 황녀님의 유일하다 싶은 벗이었던 성녀님께 묻고 싶으신 게 아닐까요.”
“혹시, 혹시 카일 형제님과 관련된 말씀을 하시려고 한다면….”
“황제 폐하가 그 정도로 속이 좁으신 분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아버지께서 황제 폐하 이야기를 할 때 ‘사람은 참 좋다.’ 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겠죠.”
카일의 그 말에 성녀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겉보기에는 전투와 단련만 잘 할 것 같은 존 나센 남작이지만.
또 은근히 사람을 파악하는 눈 또한 다른 이들에 비해 뛰어났다.
“아무튼, 저는 황제 폐하의 부름보다는 다른 게 걱정입니다.”
“어떤 게 걱정이시라는 거죠?”
“마차 타고 가는 거요.”
“…아.”
황궁까지 멀지도 않은데, 그냥 뛰어가게 해주지.
성녀님 기도 때문에 유산소도 제대로 못 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마차를 보내버리면 정성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타게 되잖아.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카일은 이번 보건성 회의 주제를 떠올렸다.
“초심자에게 있어 가장 적당한 중량의 시작은 어느 지점인가.”
존 나센으로서 절대 양보 못 하는 주제라 할 수 있었다.
*
카일은 따로 먼저 떨어져나와 신설된 부처, 보건성으로 향했다.
회의에 참석해서 고문으로서 할 일이 끝나면 본인도 황궁으로 가겠다고.
그리 성녀와 약속한 후 재빠르게 보건성 건물로 향하는 카일이었다.
타다다닷―!
물론, 굳이 마차로 가도 되는 걸 뛰어서 말이다.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성녀는 마저 황궁으로 이동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걱정이다. 그리고 아직도 무섭다.
황궁이 어떤 곳인가. 제국의 심장, 제도에서도 핵심이 되는 곳이다.
그 안에 기거하는 인물이 누구인가. 바로 제국의 지존, 황제이다.
먼발치에서 보거나, 혹은 아주 찰나였으나 인사를 올린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개인적인 만남을 지니는 건 처음이었다.
혹시 내가 뭘 잘못 했나? 황녀님께서 무슨 안 좋은 이야기를 하셨나?
예전이라면 이런 부분에 대해 딱히 걱정도 하지 않았을 텐데.
카일과의 관계에서 난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덜컥 겁이 난다.
옆에 프리실라 단장이라도 있었다면 조금은 안심이 되었을 테지만.
그녀는 현재 차기 성녀의 옆에서 호위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오십쇼, 성녀님. 황궁 방문을 환영합니다.”
황실 기사들을 거느린 채 친히 시종장이 성녀를 맞이한다.
귀빈 중의 귀빈을 이렇게 맞이하게 되어 아주 큰 영광이라고.
심지어는 폐하께서 아까부터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시종장 딴에는 성녀의 위상을 더욱 높여주기 위해 일부러 내놓은 말이었지만.
덕분에 성녀는 더 큰 부담감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위축되고 말았다.
‘카일 형제님. 부디 빨리 와주세요. 저 너무 떨려요.’
시종장의 뒤를 따라 응접실로 향하며, 성녀가 그리 속삭였다.
이후 안내하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니 안에서 만남을 청한 남성이 성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게.”
“조, 존귀하신 분을 뵙습니다!”
황제를 보자마자 성녀가 바로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는 절까지 올리려고 하자 황제가 굉장히 당황한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었는데.
“왜 그러는가. 그만 두게. 성녀는 위대한 존재를 모시는 이가 아닌가.”
“하지만… 그, 카일 형제님의 장인 어른이 되시니까….”
성녀의 말에 황제가 으응? 하고 탄식을 흘린다.
두 눈까지 껌뻑거리는 게 굉장히 당황한 눈치가 역력하다.
잠깐 성녀를 바라보던 황제는 잠시 후 껄껄! 하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그런가. 그래, 그 이유라면 충분히 이해했다. 아무튼 인사는 되었으니 어서 일어나게. 황녀가 이 말을 듣는다면 친구한테 너무 과하게 했다고 투덜거리겠군.”
손수 성녀를 일으켜 세운 황제가 성녀에게 자리를 권한다.
“이리 갑작스레 불러서 많이 놀란 모양이군.”
“아, 아닙니다. 폐하.”
“아니야. 짐이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 했어.”
직접적으로 미안하다는 말만 하지 않을 뿐, 이미 사과를 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교단의 소식은 들었네. 새로운 성녀가 곧 자리할 거라고.”
“네, 폐하. 저보다 훨씬 더 좋은 분이 성녀가 될 거랍니다.”
“그런가. 5황녀 말로는 그대가 교단에서 가장 착한 인물이라고 하던데.”
이후로 황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교단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아카데미의 생활은 어떠한지.
카일과 가까워졌는데 혹 운동 때문에 힘든 부분은 없는지.
다른 여인들과 마찰은 없는지, 그런 부분들을 말이다.
“으음.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런 황제가 본론으로 들어간 것은, 황녀의 근황 이야기를 시작한 순간.
“대강의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네.”
“네, 폐하. 황녀님이 보조교사를 자원한 것 말이죠.”
“솔직히,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만큼 놀란 이는 없을 거야. 그 아이는 내가 잘 아니까. 어쩜 그리 무력을 좇는 일에 진심인 것인지.”
자식들 모두가 성격이 제각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황실의 일원이라고 품위를 찾으려고 하는 건 비슷했다.
누가 봐도 ‘아! 위대하신 황가의 분들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지만 5황녀, 율리카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황녀임에도 품위를 찾기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것에 매달렸다.
하고 싶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기어코 그걸 해내고 말았다.
“그나마 그 아이가 사치나 향락이 아닌, 본인의 강함에 대한 추구를 원하는 아이여서 다행이었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참으로 큰일이 날 뻔 했어.”
그 말에 성녀는 저도 모르게 아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확실히, 자신이 보기에도 황녀는 강함만을 추구해서 참 다행이었다.
다른 걸 원했다면… 아마 벗으로 두지 못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 녀석이, 이번에 보조교사를 청했을 때 어찌나 어이가 없었는지.”
“하지만 잘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성녀의 대답에 황제가 ‘바로 그게 놀랍다는 거야!’ 하고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히 며칠 버티지 못 하고 관두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담당하는 교수가 ‘도저히 못 데리고 있겠다.’ 라는 말을.
최대한 예의를 지켜서 우회적으로 은밀하게 전달할 줄 알았는데.
희한하게도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잠잠했다. 한 달 넘게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말이 들렸다면 바로 사람들을 보내서 그만 두게 했을 것이다. 한데 너무 조용하더군. 사람들을 시켜서 알아보려고도 했지만, 또 괜한 짓 같기도 하고.”
“이해했습니다.”
“그대가 보기에 어떠한가. 정말, 제대로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가?”
고민이라는 듯 턱까지 만지작거리는 황제.
그 모습에 성녀는 속으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제국의 절대 지존, 모든 이들의 위에 서는 위대한 존재.
그럼에도 자식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 명의 부모.
다만 티를 내려고 하지 않을 뿐, 여느 부모와 다를 바가 없었다.
“폐하.”
해서 성녀는, 앞에 앉은 한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주기로 했다.
“황녀님과 저는 벗입니다.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 하면서도 또 나름 잘 어울리는, 그런 벗 말이죠.”
“알고 있네. 그래서 너무 고마웠지. 그 아이와 성녀가 친구라니.”
“그래서 잘 알고 있습니다. 황녀님은 잘 해내실 겁니다. 걱정하는 모든 분들의 마음을 기우였다고 말하고 싶어서라도 그리 해낼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드럽고 또 잔잔한 목소리. 그러나 그 안에는 분명한 의지가 깃들어있다.
황제가 그걸 눈치 채지 못 할 리가 없다.
“…황녀가 아주 좋은 벗을 두었군. 참, 대단한 녀석이구나. 사위도 그렇고, 벗도 그렇고.”
기분이 좋은지 연신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황제.
직후 시종장이 옆으로 다가와선 조심스레 입술을 뗀다.
“폐하. 카일 부마가 알현을 청하고 있나이다.”
“일찍 왔군. 보건성 회의가 생각보다 일찍 끝난 모양이야.”
어서 안으로 들이라는 황제의 명령을 시종장이 재빠르게 전달하러 간다.
그리고 얼마 뒤 문이 열리면서 카일이 안으로 들어섰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어서 오게, 막내 사위.”
아직 약혼도 올리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사위라고 칭하는 황제였다.
카일을 매우 살갑게 대하려는 목적만이 있는 것 같겠지만.
또 은근히 황녀가 마지막은 아닐 거라 믿는 아비의 마음까지 보이고 있다.
‘아무튼. 좋은 분임에도 절대 방심할 수가 없어요.’
고개를 내저은 카일은 성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가볍게 보건성 쪽의 일을 황제에게 들려주었다.
“회의는 잘 끝났습니다.”
“이제는 직접 보고까지 하는 건가?”
“고문이니 이런 일도 해야죠. 오히려 제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바로 황제 폐하께 중요 사안들이 올라오는 건데 말입니다.”
카일의 말에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황제.
이후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 하고 탄성을 흘린다.
“폐하?”
“남쪽 섬에서 소식이 왔다네. 두 사람이 돌아온 것 같다고 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