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
마력선 한 척이 엔진이 터지기 직전까지 속도를 내고 있었다.
“얼마나 온 거지?”
“이전의 항로 상황에 대입해보면 이제 3분의 2 지점을 넘어섰습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항해 속도라 할 수 있었다.
본토의 항구를 출발하였을 때는 이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마력석을 온전히 항해에만 투자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여유분을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전투에 쓰일 마력석을 고려하지도 않았다.
지금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루. 아니, 한 시간이라도 더 빨리.
본토에 다다라서 자신들이 보고 겪은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괴물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불가능하다면 하다 못 해 만들 준비라도 해두어야 해.’
‘상상조차 하기도 무섭다. 어떻게 손짓 한 번에 항구 절반을 날려 보낸단 말이야.’
‘잔혹한 놈들이다! 본토에 닿는 순간 대학살극이 벌어질 게 분명해!’
‘그 놈들과 싸웠다는 제국이라는 국가가 이걸 빌미로 쳐들어올 수도 있어!’
아마 존 나센과 제국이 들으면 각각 무슨 개소리냐고 소리칠 것이다.
존 나센은 ‘내가 약한 놈들까지 해칠 것 같냐!’ 라고 불쾌해 할 거고.
제국은 바다 건널 생각조차 없고 존 나센과는 다시는 싸우고 싶지 않다고 할 상황.
“더 속도는 못 내나? 마력석은 아직 여분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
반 이상이 해수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망가졌다곤 하지만.
그래도 못 쓰게 된 것보다는 쓸 수 있는 게 더 많았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엔진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곤란합니다.”
“으으음.”
“그나마 항해 전 신대륙 쪽에 다수가 남아서 이 정도입니다. 만약 그들이 다 승선했다면 무게 때문에 아직 절반 지점조차도 통과하지 못 했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말이었다. 절반조차 못 지났을 거라니.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서 경고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차라리 이 방법은 어떻습니까.”
부관 하나가 자신이 들고 있던 무언가를 내민다.
그에 함대 사령관이었던 자가 탄식을 흘렸다.
“그건… 글쎄. 오히려 괜한 짓이 될 수도 있어.”
부관이 내민 것은 마력 통신기였다.
통신 거리가 월등히 뛰어난 대신 마력석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다.
해서 정말 비상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게 원칙.
무엇보다 거리가 너무 멀면 100퍼센트 통신이 되는 것도 아니라서 문제였다.
“아직 본국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항해에만 쓰일 마력석이 남은 상황에서 그걸 사용했다가 허탕이라도 친다면 속도를 지금처럼 유지할 수가 없을 거네.”
“하지만 엔진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어차피 엔진을 고려해서라도 속도를 줄여야 한다면, 차라리 좀 더 늦추고 마력석을 아껴서 여기 사용하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평소라면 가당치도 않다고 내쳤을 의견이다.
뱃사람들이 더 빠른 항해를 포기한다니, 치욕적인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보통 상황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비상 상황. 거의 국가 재난 사태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리 내게.”
결국 고민하다 못 한 사령관이 마력 통신기를 받아들었다.
이후 부관이 잽싸게 뛰어 내려가 상태가 가장 좋은 마력석들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마력 통신기는 작동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가지고 온 마력석으로는 어림도 없는 모양이었다.
“이 정도로는 잡히지 않는 모양이군.”
“어쩝니까?”
“마력석을 쓰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 물릴 수는 없어. 가서 더 가져오게.”
사령관의 말에 부관이 다시 마력석 창고로 뛰어간다.
이후 아예 마력석을 커다란 주머니 채로 들고 왔다.
“이 정도가 한계입니다. 항해 여유분을 생각하면 아슬아슬합니다.”
“부디 이번에는 통신이 닿기를 바라야겠군.”
입술을 깨문 사령관이 다시 한 번 통신기를 작동시켰다.
그렇게 긴장과 초조함으로 가득 찬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띠링-!
마침내 본토 쪽 마력 통신기가 이쪽의 요청을 확인했다.
“닿았습니다!”
“어서, 어서 전송 암호부터! 마력이 다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알려야 해!”
“네! 암호 말씀드리겠습니다. 발신 암호는 ‘플란서가 동쪽으로 염소를 타고 꽃을 꺾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입니다. 이후 수신 암호는 ‘죽은 자가 축제를 벌이니 토끼가 춤을 추며 불꽃이 튄다.’입니다. 확인하셨습니까?”
“…되었다. 쌍방 확인 끝났어.”
자신들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렸겠다, 사령관은 다급하게 본국에 현재 소식을 알렸다.
망명자들을 추적하던 이들을 쫓아 신대륙에 도착을 했는데.
그곳에서 감히 항거할 수도 없는 거대하고도 압도적인 존재들과 조우했다.
그들은 마법 대포를 우습게 막아내며 비행병조차도 너무나 가볍게 처리한다.
심지어 그곳의 제국이란 곳은 그 괴물들과 몇 년을 싸웠다는 초강국이다.
“…현재 본국의 전력으로는 방어조차도 힘들 것이며, 이미 그들 중 일부가 요구 사항을 내밀기 위해 본국으로 향할 것임을 예고. 이에 대한 대비 필수. 방어는 최악이니 차라리 요구 사항을 들어주는 것이 올바르며 요구 사항에 대한 것은 이후 보내는….”
마력석들이 힘을 잃고 돌덩이가 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보내야 한다.
사령관은 정말 미친 듯이 단어들을 넣어가며 본국으로 소식을 전달했다.
이제 본국의 반응을 기다려야 한다. 적어도 받았다는 확인은 있어야 한다.
마력 양이 아슬아슬하다. 얼른, 얼른 확인을 해주어야만 안도를….
띠링!-
“본국에서의 수신입니다!”
“얼른! 뭐라고, 뭐라고 보냈지? 일단 받았기만 했나? 아니면 내용을 봤나?”
“잠시 기다리셔야 합니다. 바로 오는 게 아니라… 아! 수신 완료!”
부관의 말에 사령관과 그 주변의 이들이 다급히 모여들었다.
중요한 순간이다. 본국에서 미리 준비를 해준다면 안심할 수 있다.
그 괴물들이 약속 하나는 잘 지킨다고, 제국 사람들이 말했었다.
정녕 그게 사실이라면 본국도 제국처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 귀관들의 말도 안 되는 개소리는 잘 받았다. 얼른 복귀할 수 있도록. 나머지 소설은 이후 취조실에서 듣도록 하겠다. 허튼 생각은 않기를 바란다. 그대들의 식솔들은 이후 바로 자택 연금에 들어갈 것이다. ]
“….”
“….”
“… ….”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던 모두가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원래라면 본국이 자신들을 배신자로 간주하고 체포하겠다는 사실에.
그리고 가족들이 인질로 붙잡혔다는 소식에 절망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단 한 가지 장면만이 그들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콰과과과과과광!!-
손짓 한 번에 거대한 항구 절반을 지워버린, 한 남자의 모습 말이다.
“…제발.”
제발, 신이시여. 부디 그 괴물이 제발 좀 늦게 오기를.
우리가 본국으로 돌아가서 상황을 설명하기 전까지만 기다려주기를.
바쁘게 귀환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
“성녀님?”
“….”
“성녀님!”
“아, 네! 카일 형제님. 부르셨나요?”
“아까부터 멍한 모습이시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카일의 물음에 성녀는 무언가 고민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아니고요. 그냥… 어디서 신께 올리는 기도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랬답니다.”
기도라. 제국 어딘가의 누군가 굉장히 간절한 모양이다.
부디 그 기도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카일은 성녀의 손을 붙잡았다.
“일단 가죠. 곧 출발할 것 같아요.”
“벌써 준비가 다 된 건가요?”
“준비라고 할 것도 없어요. 이미 형님이랑 누님은 준비 끝이고, 남은 건 이제 도움닫기가 될 지점의 상황이랑 이후 섬의 위치 정도가 될걸요?”
몇 번 휙휙, 하고 날아가다가 이렇다 할 섬이 없으면 바다로 뛰어들 거다.
그리고는 어지간한 범선 따위는 ‘느려.’ 하고 지나칠 정도의 속도를 낼 것이다.
아무리 여유롭게 간다고 해도… 열흘이면 가지 않을까 싶다.
“막내야.”
리어가 슬그머니 카일을 부른다.
이제 슬슬 떠날 시간이 가까워진 모양.
“잠깐 다녀올게요.”
여인들을 두고서 바로 형과 누나 앞으로 달려간다.
“이제 가시려고요?”
“그래야지. 이곳 사람들도 준비는 끝났다고 하고, 섬들 위치도 전달 받았다.”
슬쩍 둘러보니 땅은 최대한 단단하게 다져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아예 방벽까지 세워서 후폭풍에도 대비했다.
말 그대로 정말 철저한 준비. 리어와 레아가 주의를 주니 충실히 따랐다.
“이게 모두 막내, 네 덕분이다.”
“제가 뭘 했다고요?”
“모르는 거야, 카일? 네가 저번에 다녀간 이후로 여기 사람들 우리 존 나센 말이면 다 들어!”
쿨럭, 하고 마른기침만 내뱉고 마는 카일이었다.
수영해서 들어갔다가, 파도잡이 때려잡고 다시 수영으로 귀환.
오는 길에 로이더들 양성한 놈들까지 전부 배에 싣고 오기까지 했다.
그 때는 그냥 화가 나서 일단 저지르고 본 거였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미쳐도 정말 어지간히 미친 짓이었다.
“아무튼, 다녀오마. 올 때까지 기다리진 말고. 네 볼일 보거라.”
“에? 저는 카일이 우리 올 때도 마중 나왔으면 하는데요, 오라버니?”
누님. 누님이랑 형님이 언제 오실 줄 알고 마중을 나와요.
그러면 저 여기서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는데요.
“막내도 제수씨들이랑 시간을 좀 보내야지.”
“아, 아하. 그러네요. 음, 갑자기 질투 나네?!”
그동안 내가 애지중지 한 동생인데! 빼앗기는 것 같아!
장난스러운 기운으로 말하는 레아 때문인지, 리어가 한숨을 흘린다.
“제수씨들이랑도 인사 좀 해야겠다.”
“그러면 가서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이쪽으로 오라고만 하고, 막내 넌 좀 떨어져있어라.”
“에?”
“할 이야기가 좀 있으니.”
*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저러는 거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리어, 그리고 옆에서 보충 설명을 하는 레아.
그런 남매의 말을 굉장히 주의 깊게 경청하는 티샤와 엘가, 성녀와 황녀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카일!”
엘가가 카일을 부른다. 이야기가 다 끝나고, 이제 출발하려는 듯 했다.
“다녀오마.”
“잘 다녀오세요, 형님. 누님.”
“응! 잘 다녀올게! 올케들도 한 달 후에 보자!”
인사를 끝낸 두 남매가 저 앞쪽에 준비된 너른 공터로 향한다.
그리고 잠시 후.
콰과과광!!-
두 개의 섬광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