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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전투종족-282화 (282/318)

“이번 신년하례식은 이전보다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네요.”

“그렇습니까?”

황태자비의 말에 황태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본인이 보기에도 이번 신년하례식이 아마 가장 성대한 것 같았다.

원래도 황실과 세 대공가, 그리고 정계 요직의 귀족들이 오는 곳.

거기에 이번에 황제의 시선을 받으며 주술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한 이도 있고.

마찬가지로 검에 대단한 재능을 보여 제국 10강들이 인정한 자도 있다.

당연히 그들과 연을 맺어두기 위해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와중에 굉장히 귀하면서도 보기 힘든 손님도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폐하께서 저리 일찍 오셔서 기다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시는 것도 신기하네요.”

“어쩔 수 없지요. 오늘은 예상치 못 한 손님이 있으니까요.”

그 말에 황태자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야기는 들었다.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제도에 소문이 쫙 퍼졌으니까.

존 나센이 온다. 그것도, 남작과 그 자식들 모두가, 신년하례식에.

여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 바로 오늘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 부분으로 인해 장관들이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회의, 회의, 그리고 회의. 두 눈이 퀭한 채 궁을 돌아다니는 장관들.

안타까운 그 모습들이 황태자비의 눈에도 다 드러날 정도였다.

“장관 분들은 엄청 걱정을 하시는 것 같더군요.”

“아마도 만일이 사태를 대비해야 해서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장관들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남작가의 영애만 왔다면 모를까. 남작의 후계자도 있고, 또 카일. 그 친구도 있으니까요. …아아, 이제는 매제라고 불러야 하려나.”

그리 말하던 황태자가 반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 대공가 중 가장 마지막으로, 리토리오 대공이 제 후계자와 나타난 것이었다.

현 황제의, 부황의 정치적인 파트너이자 앞으로 자신에게도 그러해줄.

그리고 앞으로의 지지자가 되어줄 공녀에게로 다가간다.

“대공.”

“황태자 전하.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네. 잘 지냈습니다. 대공도 잘 지내셨는지요.”

황태자의 말에 리토리오 대공이 하하, 하고 난감한 웃음을 흘린다.

덕분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하는 마음이 황태자 부부의 마음에 들려는 찰나.

“대공 각하께서 요 며칠 관리를 하신다고 무리를 살짝 하셨다네요.”

웃는 낯으로 옆에서 나타난 엘가가 대신 말을 건넨다.

그에 황태자 부부는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안 좋아 보이는 곳은 없는데 묘하게 삐거덕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페하께서는 진작 당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2층에 계십니다. 다만, 이미 두 대공의 인사도 생락하셨습니다. 이 자리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자리이니 먼저 그쪽에 인사를 하는 게 맞다고 하시더군요.”

“여전하십니다.”

말은 그렇게 했다지만 리토리오 대공은 황제에게 향하기로 했다.

공식적인 인사는 몰라도, 사적으로는 항상 안부를 주고받았다.

나이도 동갑이고,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정치적 우군이었기에.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릴 것 같다고 들었어요, 공녀.”

한편, 황태자비는 엘가에게 다가가선 그리 말을 건넸다.

그 ‘좋은 소식’ 이 무엇인지 모를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태자비 전하.”

“괜찮겠나요? 조금은 소란스러울 것 같던데.”

황태자비의 말에 엘가가 미소를 짓곤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상대들이 전부 쟁쟁해서 경쟁할 맛이 좀 나겠다고.

그래야만 존 나센의 며느리 감이지 않겠냐고도 덧붙였다.

이후 엘가는 이번 기회에 그 소란스러움의 동지들을 소개하겠다며.

먼저 신년하례식장에 와있던 티샤가 있는 방향으로 태자비를 안내했다.

주술이란 게 굉장히 신기하다며, 한 번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말이다.

“흠.”

여인들이 이야기를 할 땐 끼어드는 게 아니라고 했다.

과거 자신의 여동생들인 황녀들에게서, 그리고 이후에는 태자비에게서.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황태자는 그레이트 홀에 서있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안, 이라고 했던가. 저 청년도 왔군. 아니지. 이제는 이안 경이라고 해야 하나.’

어지간해서는 남에 대한 인정을 하지 않는 5황녀이다.

제 여동생이 실력 좀 괜찮다는 이들을 얼마나 괴롭혔던지.

황태자는 그 부분만 생각하면 머리가 다 지끈거릴 정도였다.

한데 저 이안이라는 검사에 대해선 그 5황녀도 인정을 했다.

굉장히 뛰어나다고. 아마 다음 제국 10강에는 무조건 들어갈 거라고.

저기서 조금만 더 성장한다면 검으로는 누구도 닿지 못 할 것이라고 말이다.

심지어 5황녀의 다음 말에 의하면, 그 남자가 직접 가르쳤다고 한다.

존 나센 남작. 유목 부족을 이끌던 가한을 먼지로 되돌린 자.

주먹질 한 방에 지도를 바꾸고, 도약 한 번에 하늘을 날던 인물.

그가 직접 이끌며 육체 단련을 지도했다는 게 황녀의 말이었다.

약할 수가 없다. 그래, 그게 사실이라면 무조건 강할 수밖에 없다.

그 존 나센이 나약한 자를, 노력하지 않는 자를, 가능성이 없는 자를.

굳이 지도하고 이끌어서 그 수준을 올려줄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저 청년을 가장 먼저 휘하에 두는 게 중요하겠군.’

존 나센의 지도를 받았지만 존 나센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는 건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한다는 것이고, 욕심도 있다는 뜻이다.

하니 조건만 맞는다면 자신의 검으로서 두는 것도 가능할 거다.

‘옆에는… 흐음?’

이안의 옆쪽에는 한 여귀족이 서있었다.

그리 대단한 위세를 지닌 가문은 아니다.

오히려 얼마 전만 해도 귀족이라는 이름조차 지키지 못 했던 곳이다.

허나 운이 좋게도 카일의 눈에 띄어, 그리고 황제에게 증명을 하여.

황실 기사단이라는 굉장히 영예로운 곳에서 경험을 쌓게 된 영애.

‘그래. 넬이라고 했지. 저 영애도 검술이 나쁘지 않았어.’

냉정히 보자면 근처에 서있는 이안에는 견줄 수가 없다.

여기사들을 생각해보면 분명 우수한 재능이지만, 따지자면 별과 보름달 수준이랄까.

하니 원래는 넬이 이안에게 더 많은 눈길과 관심을 주는 게 맞다.

검사로서 더 뛰어난 검사에게 지니는 일종의 부러움, 내지는 동경심으로.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군.’

넬이 이안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이안이 넬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도 아주 간절한 눈빛으로. 굉장히 오랫동안.

저런 시선을 황태자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이런 연회 자리에서, 귀족가 자제든 영애든.

이성을 만나면 항상 내보이곤 하던 그런 눈빛이었다.

좋은 때로군, 라고 중얼거리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황태자였다.

“황태자 전하.”

뒤에서 굉장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하고 탄식을 흘린 황태자가 고개를 돌린다.

“카일?”

존 나센 남작가의 사람들이 왔다는 소식은 듣지 못 했는데?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둘러본 황태자는 억, 하고 놀라고 말았다.

저 앞쪽에서 한 거대한 중년 남성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려주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건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인 모양.

본격적으로 신년하례식의 시작을 알리기 전 지니는 대화 시간임에도.

모두가 침묵한 채 그 중년 남성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자네, 어떻게….”

“소란스러운 건 싫다고 하셔서 말입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시종장 분께 알리지 말아달라고 하고 이렇게 조용히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침음을 내뱉은 황태자는 고개를 들어 2층을 바라보았다.

이미 황제도 대충 눈치를 챈 것인지 황태자를 보고 있었다.

끄덕-.

네게 기회를 주마. 그 뜻이 황태자에게로 전달되었다.

그에 고개를 살짝 죽인 그는 다시 몸을 돌렸다.

“가지. 아무리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해야 할 것 아닌가.”

황태자의 말에 카일도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후 황태자가 움직이자 나머지 귀족들도 신년하례식장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너무 조용해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 한 사이에 ‘누군가’ 왔다는 것을.

“존 나센 남작.”

그 이름이 황태자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귀족들이 흠칫, 몸을 떤다.

누구는 과거 있었던 아카데미 반파 사건을. 또 누구는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광경을.

그리고 다른 이들은 유목 부족들을 갈아마시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

약한 놈은 꺼져라, 하며 황태자의 멱살을 쥘 것 같은 거대한 남자.

하지만 그는 주먹을 드는 대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뒤를 따라서 리어와 레아도 황태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귀족들이 보기엔 그래도 존 나센이 황태자여서 숙이는 모습으로 비쳤겠지만.

실상은 황녀의 오빠되는 사람이기에. 미래 며느리의 오라비 되는 쪽이기에.

이들 모두가 사돈댁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것 뿐이었다.

“어서 오시오. 이리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군요.”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주 즐거웠습니다.”

당연히 즐거웠고말고. 황제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리토리오 대공은 영 몸 상태가 별로라서 따스하게 조언도 해주고.

마지막에는 교단에 가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단련의 장을 보고 진심으로 웃지 않았던가.

“즐거웠다면 다행이겠군요.”

마침 시종장이 신년하례식장 안으로 들어선다.

시간이 다 되었음을 눈치 챈 황태자는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 또한 슬슬 시작하라는 듯 손짓을 한 번 해보였다.

띵―!

시종장이 종을 울리자 식장 안의 귀족들이 소리를 낮춘다.

그에 맞춰 황태자가 중앙으로 나아가선 주변을 둘러보며 운을 뗀다.

“귀빈 여러분. 이리 발걸음을 해주어 참으로 감사하게 여기는 바요. 치열하고, 또 보람차게 보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동안 고생한 자들을 위하여 이 자리를 마련했으니. 폐하.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제국의 번영과 황제의 안녕을 기원하며, 경사스러운 자리가 마침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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