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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전투종족-253화 (253/318)

“긴 시간 끝에 마침내, 내가 돌아왔다.”

근 두 달 만에 보는 여인. 하지만 카일은 가차 없었다.

“뭡니까, 갑자기. 그 손발이 오글거리는 대사는.”

“이거? 글쎄. 동쪽에 있다 보니 그쪽 전사들 말투가 좀 붙은 것 같아.”

전사들 주특기가 어떻게든 본인들 센 척 하는 화법을 만드는 거라더니.

확실히 그게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황녀까지 저러는 걸 보면.

“그래서 그게 끝인 거야, 카일? 두 달 만에 다시 보는 건데.”

황녀가 눈을 흘기면서 투덜거리자 카일은 미소를 짓곤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는 이 여자가 원하는 대로, 가볍게 안아주고서 등을 토닥거린다.

“고생 많았어요, 율리카. 어서 와요.”

“응. 다녀왔어.”

한껏 미소를 지은 황녀가 슬금슬금 카일의 옆으로 다가온다.

정신적 고자가 아니고서야 지금 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안다.

“또, 또. 자꾸 이러시니까 제가 난처해하는 겁니다.”

“하지만 난 두 달이나 떨어져 있었잖아. 그러는 사이에 다른 여자들은….”

“안 했다고요. 진짜 아무 짓도 안 했다는데 왜 못 믿으실까.”

매일 마법 통신으로 연락하던 시기에, 황녀가 걱정하던 건 딱 하나.

자신이 없는 사이에 다른 여자들이 먼저 ‘거사’를 치르지 않느냐. 그것이었다.

그럴 일이 없어야 하지만, 정말 만에 하나 혼인도 전에 아이가 생긴다?

바로 주변 사람들은 그 아이를 지닌 사람을 정실로 생각할 것이다.

특히나 경쟁자가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공녀나 성녀라면 더더욱!

물론 카일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몇 번이나 되는 엘가와 티샤의 유혹이 있었지만 전부 참아냈다.

참고로, 성녀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유혹을 했었다.

특히 어깨 안마를 해주겠다면서 그 여린 손으로 어깨를 꾹꾹 누를 때.

노린 건지는 모르겠는데 자꾸만 숨결이 목을 간지럽혔다.

‘성녀로 태어난 게 다행이지. 만약 다른 여자였다면 남자 엄청 꼬였을 거야.’

아무튼 간에, 본인은 정말 결백하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고.

카일이 몇 번이나 더 말한 후에야 황녀는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것보다, 뭐 재미난 소식은 없나요?”

“음. 일단 동쪽 유목 부족들 전원이 그 봉을 드는 건 실패했어.”

“당연히 그렇겠죠. 저도 힘 좀 줘야 들 수 있는 건데. 벌써부터 들면 아버지가 본인을 증명하라며 그런 식으로 봉을 내려주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건 그래, 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황녀.

이후로 제국과의 공고한 평화를 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과.

어떻게든 자신들을 증명해서 용의 앞에 당당하게 서야 한다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솔직히 전부 예상하고 있던 거라 이렇다 할 감흥이 없었다.

그렇게 깨지고 나서 다시 한 번 싸우자고 외치면 그게 사람인가.

덤으로, 전승에서 용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고 있던 유목 부족들이다.

거기에 용이라 생각하는 존 나센 앞에 당당해져야 한다는 것도.

그래서 미친 듯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상황도 충분히 예상했다.

“아, 맞아. 그리고 말이야, 카일. 동쪽 끄트머리에 사는 부족들도 만났거든? 그런데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기는 끝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부라고 하더라고.”

“중심부라면… 잠깐만. 그 너머로 다른 세상이 또 있다는 겁니까?”

카일의 물음에 황녀는 흥미롭지 않아? 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긴 것도 뭔가 좀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달랐어. 그나마 교류가 좀 있어서 우리 말을 쓰기도 했지만 못 쓰는 이들도 태반이 넘었던 걸로 기억해.”

“그래서요. 그러면 그 동쪽에는 뭐가 있다던가요?”

참고로 바다 건너 새로운 세상에는, 마법과 과학 기술이 합쳐진 세상이 있었다.

마력석도 그렇고 기선이나 총기도 그렇고, 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

대체 어떻게 세계관을 구성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놀라운 발견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지닌 사람들이 산다고 하더라고. 키는 좀 더 작지만 더 튼튼해보이는 사람들. 거기에 머리는 까맣고, 이상한 단어를 막 사용했었는데… 뭐라고 했더라? 뭘 사용한다고 했는데 기억이 잘 안 나.”

황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카일은, 혹시나 싶어 슬쩍 말해보았다.

“설마, 그 단어가 막 ‘내공’ 이라는 건 아니겠죠.”

“어? 잠깐만. 맞는 거 같은데? 맞아. 그거 맞아. 내공. 그걸 막 몸에 쌓아서 사용한다느니, 그런 말을 했었어.”

“….”

혹시나가 역시나구나. 카일은 기가 막힌 한숨을 내뱉어야만 했다.

바다 건너는 기술이 보다 더 발전한 세상, 동쪽 너머에는 판타지가 아닌 무협 세상.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세계관 확장이 아니겠는가. 벌써부터 가슴이 다 웅장해진다.

“그런데 카일.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황녀의 근본적이면서도 제법 날카로운 질문.

그에 카일은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저번에 동쪽 유목 부족들과 만났을 때,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서요.”

“아. 그래? 하긴, 나도 그쪽 부족들에게 처음 들은 거니까.”

정확히는 부족 자체가 다르지만, 황녀는 그 부분까지는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무튼 말이야. 엄청 신기했어. 막 무림맹이 어쩌고, 정파와 사파가 싸우는데 와중에 무슨, 뭐라고 했더라? 무슨 교라고 했는데 이것도 기억이 가물가물해.”

“마교요.”

“어, 어! 마교! 뭐야, 카일. 나보다 더 잘 아네! 아무튼, 마교까지 일어나서 지금 동쪽이 엄청 소란스럽대. 오죽하면 피난민들이 생겨서 슬슬 유입되고 있다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정파와 사파, 그리고 마교까지.

설마 싶었던 무협의 기본 틀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는 언젠가 우리 제국과도 한 번 접촉하게 될 것 같아.”

당연히 그럴 거다. 일단 존재한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제국과 만난다는 것이니까.

것보다 무협이라면, 아무래도 이안의 검술에 한 단계 더 성장을 위한 장치일 듯 한데.

카일이 보기에 이미 이안의 검은 완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육체를 완벽하게 다루는 자 앞에서, 손에 들린 병기 따위는 보다 더 쉽게 다룰 수 있을 테니!

“아마 접촉하게 된다면… 여러 가지 부분에서 참 재미있을 것 같네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정말로, 여러 부분에서 흥미로울 것이다.

마법이 주를 이루는 세상과, 내공을 통한 묘리들이 주를 이루는 곳.

이 두 세상이 마침내 만났을 때 과연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마나를 다루는 거랑 내공을 다루는 거랑 어떤 차이점이 있을지, 그것도 궁금하고.’

특히 가장 궁금한 건, 역시나 누가 더 강하냐는 것이다.

제국 쪽의 실력자들과 동쪽 너머, 무협 세계의 고수들.

그들이 부딪쳤을 때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는 굉장히 관심을 끌 부분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과연 그 새로운 고수들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

존 나센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그것도 살짝 궁금했고.

‘…아니, 아니지. 그냥 고향 사람들은 고향에 있는 게 좋아.’

지금도 충분히 무서운 사람들인데, 새로운 강자들이 나타났다!! 라고 좋아하며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난 이들을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분명히 이런 말도 하겠지. 너무 내공이라는 것에 기대는 게 아니냐고.

고도로 단련된 육체는 마법도 이겨내는 궁극의 무기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한편, 늘어지게 하품을 한 번 한 황녀가 카일의 무릎 위에 그대로 누워버린다.

카일이 제 손가락으로 슬쩍 황녀의 볼을 찔러보았지만, 요지부동이다.

“이제 2학기도 곧 끝 아닌가? 내 말 맞지, 카일?”

“네. 이제 조만간 기말고사 치르고, 학년이 마무리될 겁니다.”

“그러면 겨울 방학이네. 이번 방학에는 어쩔 생각이야?”

“당연히 고향으로 가야죠. 기다리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러자 황녀가 흐음, 하고 무언가 고민이라는 빛을 낸다.

아마 이번에도 따라갈까, 말까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참고로, 황녀님은 같이 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런 고민을 없애주기 위해, 카일은 바로 결론부터 말해주기로 했다.

“어? 정말? 내가 먼저 가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에 어머니께 서신이 왔어요.”

“어머님께서? 왜?”

“이번 방학에 다시 한 번 다들 영지에 왔으면 한다고 하시네요.”

아직 시간이 남긴 했지만, 그래도 슬슬 준비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정말로 다들 마음이 확고하다면 존 나센에 와서 정식으로 인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그게 남작 부인의 뜻이었고, 존 나센 남작도 그에 동의한 상태였다.

“…한 마디로, 손님이 아니라 미래의 가족으로서 방문하기를 희망한다, 이거죠.”

“오오. 역시, 어머님께서는 다르시구나. 역시, 존 나센의 안주인다우시군.”

감탄한 황녀가 두 눈을 깜빡거리다가 말을 잇는다.

“그러면 공녀는. 또 다시 방학에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괜찮대?”

“살짝 난감하지만 저번처럼 두 달 내내 있을 건 아니니까요. 2주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하니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데.”

“쯧. 그렇게 바쁜 여자는 매력이 없잖아. 카일.”

은근히 엘가를 견제하는 황녀였으나, 카일은 딱히 상관없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여자 넷이 한 자리에 항상 있으면, 그거대로 피곤하거든.’

나중에 결혼을 해도 엘가는 대공으로서, 그리고 성녀는 교단의 사람으로서.

각자의 자리도 있으니 항상 같이 있지는 못 한다는 게 카일의 생각이었다.

그런 식이면 넷이나 되는 여인들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고.

“거기에 티샤도 바이엔 대공가와 최근에 계약을 맺었어요. 아예 정식으로 주술 연구소 겸 교육관을 세우고 그곳을 점차 발전시키기로 말이죠.”

“좋은 소식이네. 바이엔 대공가와 손을 잡았다면 탄탄대로가 보장된 거잖아.”

네 명 중 가장 지위 부분이 아슬아슬하던 티샤의 도약이었다.

그 계약으로 순식간에 제국 내에서 주술 부분으로 저명한 인물이 되었으니까.

“정말 잘 되었어. 그런 식이면 황제 폐하께서 보내셨다는 것도 명분이 더 세워졌겠어.”

“…황제 폐하가 뭘 보내셨는데요.”

“아, 카일.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황제 폐하께서 존 나센 남작령으로 사람을 보내셨거든.”

황녀는 황제가 왜 사람을 보냈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카일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 없다고 하실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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