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속 전투종족-246화 (246/318)

평소와 다름이 없던 제국 아카데미.

그곳에 얼마 전부터 작은 소란스러움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제국 최대의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건국절이 다가온 것이다.

이때는 제국 전체가 전승절보다도 더한 축제 분위기에 들어간다.

모두가 이 자랑스러운 국가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동시에 이 영광과 번영이 만 년이나 지속되기를 바라는 때.

물론 건국절이라 하여 모두가 쉬는 것은 아니다.

국정을 논하는 자들에게 휴식은 사치라는 게 초대 황제의 유지.

따라서 제국 공무원들과 황실은 이 시기에도 쉬지 못 한다.

다행인 부분은, 아카데미의 학생들까지는 그 일꾼으로 쳐주지 않는다는 것.

해서 건국절 연휴인 일주일은 아카데미의 학생들 또한 합법적으로 쉴 수 있다.

대부분은 이 시기에 고향을 방문하거나, 아니면 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 중 가장 인기가 있는 여행지는 역시나 따뜻한 기운이 남은 남쪽 바다.

특히나 이번에는 남쪽의 모든 독립 영주들이 제국에 고개를 숙인 상황이다.

당연히 남쪽으로 여행 계획을 잡고 있는 이들 또한 아주 많았다.

“…어디를 가자고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카일은 그 여행 계획을 갑작스레 전해 듣게 되었다.

“남쪽이요, 카일. 마침 엘가님께서 그쪽에 가진 별장이 있다네요!”

남쪽으로 갔다간 그쪽 섬사람들이 기겁을 할 것 같은데.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얼마 전, 바다를 수영해서 오고간 카일이다.

거기에 파도잡이인지 뭔지 하는 놈도 그대로 격침시키기도 했다.

듣기로는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이 다녀갔다고.

제국이 기른 괴물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소문이 돈다고도 했다.

‘그냥 마음 편히 운동이나 하려고 했는데.’

요즘 여자들에게 너무 많이 시달리고 있는 카일이었다.

이러다가 카/일이 되는 건 아닐까 진지하게 걱정이 될 정도.

바로 어제는 기습 공격까지 받았다.

심지어 그 정체는 티샤도, 엘가도 아닌 성녀였다.

“카일 형제님. 혹시 아이는 몇 명이나 생각하시나요?”

그 한 마디에 사레가 들린 카일은 몇 분을 콜록거려야만 했다.

단순히 그 말만 한 게 아니라, 하필 성녀의 복장이 너무 공격적이었다.

기어코 드레스를 입히고 말겠다는 엘가의 의지에 넘어갔던 것인데.

어쩌다 따라나섰던 카일은 그 광경을 눈에 담았고 처음으로 정신을 놓았다.

이미 물렁해진 상태에 또 다시 성녀의 2차 공격이 퍼부어진 것.

그런데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바로 그 상상을 하고 마는 게 남자인데.

‘덤으로 잊을 만 하면 자꾸 이안이랑 레토, 그리고 넬 연애사 이야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요즘 운동에 통 집중을 하지 못 했다.

겨우 루틴은 돌리고 있는데 그 이상을 해내지 못 한다고 할까.

이러다가 또 형과 누나가 방문하면 그 때는 진짜 혼날 수도 있다.

“네? 가요, 카일. 건국절이잖아요. 아카데미도 일주일이나 통으로 쉬는데!”

“그… 티샤는 도서관에 일주일이나 박힐 수 있는 때 아닌가요?”

학기 초에는 밤까지 새가며 주술 공부에 열을 올리던 티샤다.

그 부분을 일깨워주는 것과 동시에, ‘님 주술에 대한 애정 떨어짐?’ 이라는 도발을 한 것.

하지만 이 주술 천재 마녀는, 카일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버린 후였다.

“아, 이미 볼 건 다 봤어요. 새로 주문한 책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고.”

“….”

무슨 동네 서점도 아니고, 그 큰 도서관의 주술 관련 서적들을 다 봤다고?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개소리 작작 하라고 일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하는 이가 다름 아닌 티샤다.

주술에 대해서는 진심 백 퍼센트. 아니, 천 퍼센트로 발휘하는 여자다.

그 티샤가 설마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터.

“카일 형제님!”

티샤 하나로도 이미 버거운 상황인데, 그 다음 공격은 성녀가 개시한다.

아무래도 이 둘, 이미 연합 전선을 꾸린 것이 확실했다.

“제국 건국절이 코앞이라는 거 아시나요?!”

“네. 알고 있죠. 티샤한테 들었습니다.”

“그 연휴 기간 때 남쪽 바다로 간다고 들었는데, 저도 가고 싶어요!”

아직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는데요, 성녀님.

일정을 짜거나 인원을 정하기는커녕 간다고 말도 안 했어요.

카일이 어이가 없다는 듯 성녀를 바라보았지만, 성녀는 그냥 헤실헤실.

남쪽 바다가 보고 싶어서, 그 광경이 너무나 기대된다는 반응이 전부였다.

“카일!”

“카일님!”

너희는 또 왜. 왜 둘이 갑자기 그렇게 전투적으로 오는데.

다음 손님은 이안과 레토. 요 근래 묘하게 대립 중인 두 사람이었다.

아마도 넬을 두고서 연적이 될 것임을 뒤늦게나마 눈치 챈 모양.

거기에 각각 티샤와 엘가에게 재촉 겸 응원까지 당하고 있다.

아마 밀려나면 단순히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자를 아는 사람에게 빼앗긴 것 플러스.

심하게 부담되는 주변 지인에게 온갖 잔소리 듣는 것까지.

‘이제 와서는 절대 밀려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겠지.’

일단 둘 모두 응원은 하겠다만, 딱 거기까지다.

여태껏 눈치도 없이 굴다가 이제 와서 저러고 있다니.

아무리 로판 속 전형적인 남캐들이라지만 좀 아니잖아.

카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사이, 바로 앞까지 들어온 이안과 레토가 합창한다.

“나도 가겠다!”

“저도 가겠습니다!”

“아직 가겠다고 말도 안 했어, 이것들아!”

도대체 어디서 뭔 소리를 듣고 이러는 건지.

여행 계획이나 목적지는커녕 건국절 연휴 언급조차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대체 왜 이 사람들이 벌써부터 달려들고 있는 것인지.

“어머. 다들 벌써 모였네요.”

그 이유를, 카일은 잠시 후 나타난 엘가를 보며 알 수 있었다.

그래. 저 여자가 이번 일의 주모자였다.

“엘가님이죠?”

“뭐가요?”

“제국 건국절 연휴에 여행을 갈 거라고 흘린 거.”

“안 갈 생각이었어요? 당연히 가야죠. 이렇게 많은 인원들이 원하고 있는데.”

일의 순서가 참으로 웃기기 짝이 없다.

분명히 저 남녀들은 카일이 간다고 해서 본인들도 가겠다고 하는 건데.

정작 카일 본인은 저 사람들이 원하고 있으니 수락해야 한다! 라는 설득을 당하고 있다.

심히 어이가 없지만, 그렇다고 냉정하게 잘라내기는 그렇다.

잔뜩 기대 중인 티샤와 성녀. 그리고 내심 긍정을 원하는 엘가. 그리고….

“아니, 잠깐만. 티샤랑 엘가님. 그리고 성녀님까지는 이해해요. 그런데 이안, 당신이랑 레토, 당신은요? 갑자기 왜 가겠다는 건데요?”

“그거야 넬이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으니까요.”

이것마저도 엘가의 계략이었던 모양이다.

무조건 바다로 갈 수밖에 없는 인원들을 긁어모아 카일 앞에 데려다 놓는다.

그러면 그리 모질지 못 한 카일로서는 한숨을 내뱉으며 수락할 것이다.

정말이지. 누가 차기 대공 아니랄까 벌써부터 계산이 아주 능하다.

“가는 거죠, 카일? 가는 거예요?”

“바다가 보고 싶어요, 카일 형제님. 엄청 큰 호수보다 더 넓다고 들었어요!”

“혹 이동 수단이나 지낼 곳은 걱정하지 마요. 우리 리토리오 대공가에서 전부 부담할 테니.”

“…네, 네. 갑시다. 가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여자 셋이 설득하면 누구든 넘어간다.

유혹이나, 아니면 마음이 약해져서, 뭐 그런 말랑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이거 거절했다간 세 명한테 돌아가면서 얼마나 시달리려고.’

여자가 생긴 남자라면 응당 지녀야 할 현명함.

다행히 카일은 이안이나 레토와는 다르게 그걸 비교적 일찍 알아차린 상태였다.

“그러면 결정한 걸로 알고, 당장 내일 바로 출발하죠.”

“내일요? 아니, 일단 준비는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엘가님?”

“이미 다 했어요, 카일 형제님!”

“네. 이미 다 했어요. 저도, 성녀님도, 그리고 이안이랑 레토 씨도요!”

“넬이랑 나도 다 했답니다, 카일.”

그새 일처리까지 다 끝내버린 모양이다.

심지어 ‘아, 그리고 카일 당신 운동 기구들도 미리 보내두었어요!’ 라고 말한다.

어쩐지 아까 실내 연무장 쪽이 살짝 소란스럽다 싶었다.

그냥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무시하고 왔더니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무섭다, 무서워.’

다시 한 번 시달리지 않게 정신 바짝 차려야한다는.

그 다짐을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하는 카일이었다.

*

“별장 방문을 환영합니다, 공녀님. 그리고….”

카일을 흘끗 살핀 대공가의 별장 관리인이 고개를 숙인다.

“미래의 대공 부군 분을 뵙습니다.”

아직 그 단계 아닙니다. 아직 아니라고요. 아직은!

카일이 황당하다는 시선을 하나 별장 관리인은 요지부동.

오히려 엘가가 너무 좋다며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사회생활 하나는 잘 하는 관리인이었다.

“자! 일단 다들 방으로 가서 짐 좀 풀어요.”

“바닷물에 들어가는 건 좀 그렇겠죠, 엘가 자매님?”

“남쪽이 좀 따뜻하다곤 하지만 그 철은 지났죠. 그래도 발 정도는 담그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성녀님이 원하신다면 바로 바닷가부터 갈까요?”

저쪽은 저쪽대로 바쁜 것 같고.

“흠흠. 넬. 그 가방 줘라. 내가 들겠다.”

“이안님. 이 가방은 제가 들기로 했습니다만.”

“두 분 다 괜찮으니까 본인 분들 짐 들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 운동 할 겸 제 손으로 들고 올라가면 되니까요.”

저쪽도 저쪽대로 나름 바쁜 것 같다.

‘갑자기 또 남쪽이라니.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어차피 물은 엎질러졌다. 일은 벌어진 후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즐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 아니겠는가.

“아. 혹시 배 타고 싶으신 사람은 말해요.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는 유람선이 있거든요!”

“저요! 저 타고 싶어요, 엘가 자매님!”

성녀가 가장 먼저 손을 들자 티샤가 따라서 나선다.

거기에 넬이 동조하니 이안과 레토는 자연스레 붙어가는 게 당연해졌고.

“카일은요?”

이미 답은 정해진 것 같은데 뭘 물어보고 있습니까.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린 카일은 가볍게 덤벨 컬을 하며 답했다.

“언제 출발합니까? 바다에 왔으면 유람선 정도는 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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