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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전투종족-243화 (243/318)

“…드디어, 다 됐다!”

목걸이를 들어 보인 성녀가 이곳저곳 열심히 살펴본다.

딱히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중심부에 있는 로자리오 성도 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다.

이 정도면 수호성에게 주는 선물로는 충분할 것이다.

‘티샤 자매님의 조언이 나쁘지 않았어.’

카일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다 확실하게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마음을 전해야 할지, 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한 상황임을 성녀는 깨달았다.

황녀는 현재 자리를 비운 상태다. 그렇다면 엘가와 티샤, 둘 중 하나인데.

그 중 성녀는 티샤를 찾아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음, 글쎄요. 저는 제 마음을 담은 장신구를 드렸거든요.”

“장신구요?”

“네. 성녀님. 카일이 비싼 옷이나 좋은 병기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부피가 큰 선물을 주면 부담스러워 할 것 같고. 그렇다면 제가 정성스레 준비한 조그마한 물건이 가장 낫겠다는 판단이 있어서 그랬어요.”

티샤의 조언을 받아들여, 성녀는 카일에게 줄 목걸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본인만의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닌, 교단 전체의 감사함을 담은 물건이었다.

목걸이에 들어간 이 로자리오 성은 교황이 직접 축복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움직이실 때도 크게 불편하시지 않으실 거예요.’

목걸이를 품에 꼭 안고서, 성녀는 예배당을 나섰다.

“성녀님, 안녕하세요! 어디 가시는 건가요?”

“네. 잠깐 산책을 좀 하려 합니다. 형제님들은 강의를 가시는 모양이네요.”

“오늘 과제가 너무 많아요! 성녀님! 부디 저희에게 이 시련을 이겨낼 용기를!”

“부디 과제에 집중하실 수 있도록 기도를 올려드릴게요.”

“좋은 오후입니다. 성녀님.”

요 며칠 강의에 나가면서 학생들과도 조금은 가까워졌다.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어려워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지금처럼 몇몇 학생들이 가까이 다가와주고 인사를 건네고.

그러면서 정말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언젠가 흐릿하게나마 꿈꾸었던, 성녀 본인이 희망하던 삶.

모든 의무를 내려놓은 채 평범하게 살아가는 자신과.

그 옆에서 자신을 성녀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서 대해주는 누군가.

‘카일 형제님이라면 아마 지금쯤 실내 연무장에 계시겠지?’

성녀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참고로 예배당에서 실내 연무장까지는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15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성녀가 실내 연무장에 도착한 건 30분이 훨씬 지난 후였다.

아카데미에서 그리 오래 지냈으니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여전히 극악무도하다 싶을 정도의 길치 능력은 나아지지를 않았다.

그나마 이번에는 여러 학생들이 돕고 도와서 한 시간 전에 도착한 것이다.

만약 학생들이 돕지 않았다면 한 시간이 훨씬 넘도록 빙빙 헤맸을지도 모른다.

“카일 형제님? 안에 계시나요?”

겨우 실내 연무장 앞에 도착한 성녀가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녀는 벤치 위에 멍하니 앉아있는 카일을 볼 수 있었다.

“카일 형제님?”

혹 운동에 방해가 될까, 최대한 조용히 이름을 불러본다.

그러나 카일은 듣지 못 한 것인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불러보아도 카일은 여전히 묵묵부답.

왜 저러시는 거지? 하고 생각하던 성녀는 그 건너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레토가 더 낫다니까요?”

“이안이 더 낫죠, 엘가님.”

최대한 예의는 지키고 있으나 첨예하게 대립하는 기운이 가득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라는 생각이 성녀의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카일을 두고서도 저렇게 대립하는 분위기는 절대 만들지 않던 티샤와 엘가다.

혹 그로 인해 카일의 마음이 떠나가면 본인들만 손해라고 해서.

성녀 또한 싸우는 모습은 절대 보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아, 성녀님? 언제 오셨어요?”

이제야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카일이 몸을 돌린다.

그리고는 자리를 권하듯 제 옆의 벤치 쪽을 가리켰다.

운동만을 위한 신성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 위에 앉으라니.

확실히 카일이 무언가에 정신을 빼앗긴 모습이 역력해보였다.

“저, 카일 형제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살짝 멍하신 느낌이 들어요.”

“그게요. 그러니까… 음, 이거 벌써 세 번째 같은데.”

엘가, 그리고 티샤, 이번에는 성녀까지.

카일은 침음을 흘리곤 조금 전의 상황을 성녀에게 상세히 알려주었다.

“…에? 아니, 잠깐만. 잠깐만요, 카일 형제님.”

누가 누구를 좋아해? 그것도 심지어, 두 남자가 한 여자를?

그 소식에 성녀조차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 했다.

“그러니까, 이안 형제님이 넬 자매님을 좋아하시는데… 그 넬 자매님을 레토 형제님께서도 좋아하는 것 같다… 이건가요?”

“상황이 대충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괴, 굉장히 이상한 상황이네요.”

“그렇게 이상할 건 없지 않나요? 우리들도 한 사람을 좋아하고 있는데.”

잠깐 휴전 상태에 들어간 것인지, 티샤가 슬쩍 화제를 돌린다.

그러자 엘가도 큰 문제가 될 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고위 귀족 가문의 여가주가 남자를 여럿 데리고 있었던 경우도 있답니다, 성녀님.”

“어… 하지만, 넬 자매님께서는 경우가 조금 다르지 않나요?”

“날카로운 지적이네요. 저랑 티샤도 그래서 잠깐 의견 대립이 있었답니다.”

말만 귀족이지 사실상 평민이라고 봐야 하는 게 넬 쪽 사정이다.

그렇다면 많은 남편을 거느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해서, 넬이 희망하는 건 명예로움을 실천하는 기사다.

그리고 기사들은 전원이 단 한 명만의 남편, 내지는 부인만을 둔다.

평생 한 반려만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표본이랄까.

“그러니까 이안이 낫다니까요, 엘가님. 넬한테 필요한 건 기사로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줄 사람이에요.”

“이안은 아직 기사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부부 둘이 기사면 오히려 결혼 생활부터 시작해서 나중의 자식들 양육까지, 도저히 이끌 상황이 아니에요. 한 명이 무武 라면 한 명은 문文으로 가는 게 가장 좋은 상황 아닐까요?”

둘의 휴전은 단 1분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다시 한 번 넬의 연인으로서 누가 더 낫냐는 대립이 시작되었다.

“….”

그 모습을 카일은 멍하니, 하지만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어차피 내 일도 아니고 진짜로 싸우는 것도 아니니 아무 걱정도 없다.

이렇게 그냥 적당히 보고 있으면 묘하게 재미있다고 할까.

“카일!”

갑자기 두 여자가 대뜸 자신을 바라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예?”

“카일 생각은 어때요? 레토랑 이안. 둘 중에 누가 더 나은데요.”

“이안이랑 레토 씨, 둘 모두 카일이 가르쳤잖아요. 그러다 보면 막 성격이라던가, 아니면 인간성. 그 외의 모든 부분도 다 알았을 거고요. 카일이 보기엔 누가 넬의 연인으로 더 좋아보여요?”

아니, 갑자기 왜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하는 건데요.

그리고 애당초 우리끼리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나요?

어차피 고르는 건 넬이고 싸워야 할 건 이안이랑 레토인데?

“아. 생각해보니 이안이랑 넬이랑 이어주려고 카페에 갔다고 했네요. 그러면 카일은 이안 편이라는 소리 같은데. 아닌가요?”

분명 학기 초에는 이안, 하면 가슴을 팡팡 두드리던 티샤였다.

답답해서, 저게 같은 사람이 맞나 싶어서. 카일 반만 좀 따라가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같이 좀 지내다보니 그래도 우정이란 게 좀 생긴 모양이다.

그닥 친하지도 않은 레토보다는 이안이 더 낫다고 편을 드는 것을 보니까 말이다.

“아니죠. 티샤. 오히려 그만큼, 이안은 카일이 챙겨주지 않으면 답이 없을 정도로 답답하다는 거죠. 그럴 바에 차라리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레토가 넬을 위해서라도 좋을 거예요.”

엘가의 말에 카일은 저도 모르게 글쎄다. 라고 말할 뻔 했다.

답답하기로, 눈치 없기로는 이안 뒤통수를 때릴 정도로 대단한 레토 아닌가.

솔직히 둘 중 누가 더 눈치 없을까 로는 승부를 가릴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엘가 입장에선 그래도 이안보다는 레토일 것이다.

예전에 품고 있던 감정이나, 아니면 다른 것들은 되었다 치고.

당장 자기 사람이니 더 잘 되기를 바라는 게 당연한 일일 터.

‘그렇다고 그걸 나한테 묻는 건 사절이란 말입니다.’

자신이 이안을 도와준 이유? 이안보다 레토가 더 좋아서?

설마, 그럴 리가. 그냥 이안이 먼저 이야기를 해서 다리를 놓아준 거다.

레토도 은근히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나서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지금은 ‘괜히 나섰다.’ 라는 마음만 강해질 뿐이었다.

“저, 티샤. 그리고 엘가님. 여기서 우리가 말할 주제는 아닌 것 같은데….”

“성녀님은요?”

“네?”

“성녀님은 이안과 레토 중에 누가 넬의 연인으로 더 낫다고 보시나요?”

갑자기 카일에게서 성녀로 옮겨붙은 질문의 불길이었다.

그 물음에 성녀가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말이다.

“어,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시면 난감하답니다, 자매님들! 카일 형제님 말씀대로 그 이야기는 여기 계시는 분들이 말할 게 아니라고 보는데요.”

“그러면! 성녀님은 이안과 레토 중에 그냥 누가 더 좋은 사람 같나요?”

대체 왜 포기하지 않고서 저렇게들 열정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혹시 내 로맨스도 잘 풀리니 이젠 남의 로맨스에 참견할 여유가 생긴 걸까.

‘그보다, 성녀님이 원래 이런 질문 날아오면 현명 그 자체의 대답을 하셨던 것 같은데?’

원작에서 이안과 레토, 티샤와 엘가에게 엄청난 조언을 하던 성녀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말이죠, 자매님들.”

그리고 성녀는, 이번에도 가장 정확한 대답을 내놓았다.

“여기서 두 분이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차라리 넬 자매님께 물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그 분들이 당사자인데, 그쪽에 묻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

“그러네요. 역시, 성녀님은 다르시단 말이죠!”

“그러면 지금 갈까요, 엘가님? 넬 반응이 궁금한데.”

“일단 이안 마음은 알았다면서요. 가야죠. 우리 레토만 뒤처지는 건 절대 못 본다고요.”

그러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두 여자가 성녀 손을 붙잡는다.

‘저는 왜요?!’ 라는 성녀의 질문은 가뿐히 무시하고서, 그대로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뭔데.”

졸지에 혼자 남게 된 카일.

그의 손에는 두 여인들에게 끌려가기 전 성녀가 준 목걸이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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