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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전투종족-242화 (242/318)

“아무래도 나, 넬을 좋아하는 것 같다.”

“매력적인 여성분, 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이안과 레토의 대답이 양쪽에서 번갈아가며 울려댄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실내 연무장 벤치 위에 멍하니 앉아있는 카일.

본디 벤치 위에는 무조건 봉을 들기 위한 행동만 가능한 곳이라고.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 강조하며, 다른 생각은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오늘만큼은 카일 본인도 봉을 들어올리는 것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아마 처음인 것 같다. 운동에 이리 집중이 안 되는 순간은.

가족들이 이 사실을 들었다면 아마 크게 놀라지 않았을까.

‘설마 이런 식으로 역하렘을 찍을 줄은 몰랐는데.’

이안은 이미 확고한 마음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허면 남은 건 레토인데.

정말로 전력을 다해서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호감만 지닌 건지.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 카일은 레토를 붙잡고서 몇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이안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둘이 연적이 될 확률, 99.9 퍼센트.’

어이가 없어도 이리 없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둘이 사이좋게 넬이 여자인 것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으면서.

이후 여자라고 밝힌 후 같이 지내다보니 반해버리다니?

이상하지 않나? 비록 진짜 여자라고는 하지만, 남자라고 알고 지냈는데?

시간이 좀 지났다고 하지만 같이 훈련하고 떠들던 상대가 확 좋아지다니?

이게 말이 되나 싶다가도 그 앞에 ‘이성에 대한 마음’을 대입하면 다 해결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 논리적인 이유가 어디 필요했었는가?

사람 감정이 그리 논리적이라면 그 흔한 사랑 싸움은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큰일이네.”

“뭐가 큰일이라는 건데요?”

고개를 돌려보니 엘가가 서있는 것이 카일의 눈에 들어왔다.

“엘가님.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에요. 강의 시간이 비어서 운동하려고 온 건데 카일 당신이 있더라고요. 해서 운동에 방해될까 조용히 들어온 건데,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지 멍하니 앉아있어요?”

“…그게, 사정이 좀 있습니다.”

“무슨 큰일이라도 있어요? 다른 곳도 아니고, 카일 당신이 그렇게도 말하던 신성한 벤치 위에서 하라는 운동은 안 하고 멍하니 앉아서 도를 닦고 있었잖아요.”

엘가의 말에 카일이 쓴웃음을 짓고 만다.

전부 본인이 실제로 했던 말이다.

신성한 벤치 위에 앉아서 멍하니 앉아있지 마라. 도 닦는 것도 아니고.

일단 벤치를 점했으면 얼른 자세 잡고 봉에 온 신경을 기울여라, 라고 말이다.

“왜 그래요. 정말 무슨 일 있어요?”

전혀 보지 못 했던 카일의 행동에 살짝 놀란 것일까.

엘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곤 옆으로 다가온다.

“무슨 일 있는 모양이네요. 그렇죠?”

“….”

“속일 생각 따위 마요. 설마 내 남자 표정 변화조차도 못 읽는 여자일까봐요?”

그 와중에 은근히 ‘내 남자’ 라는 단어에 힘을 주는 엘가였다.

정말 작은 기회조차도 놓치지 않는 여자구나, 하고 생각을 하면서.

카일은 엘가에게 일단 현 상황을 살짝 이야기하기로 했다.

아무 상관이 없는 게 아니니까. 레토가 관련되어 있으니까.

레토는 리토리오 대공가의 가신이다. 즉 엘가의 수하라는 것이다.

그 수하의 상황을 아는 것 또한 상관으로서의 할 일일 터.

“엘가. 그, 레토 있잖아요.”

“네. 레토요. 갑자기 레토 이야기는 왜요?”

“혹시 요즘 레토가 조금 이상해지지 않았어요?”

조금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던 걸까. 엘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상해졌다는 그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는데요.”

“막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그냥, 평소와 좀 다른 모습이 보인다던가.”

“글쎄요.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는데. 항상 매사에 똑같은 사람이라.”

그래도 카일이 괜한 걸 물어볼 리는 없다고 생각한 걸까.

열심히 고민을 하던 엘가가 혹시? 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 그러고 보니까요. 저번에 처음 하는 질문을 했던 적이 있네요.”

“처음 했던 질문이라고요?”

“네. 그, 여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물건이 뭐냐고 묻던… 아, 잠깐만.”

스스로 답하고 스스로 답을 찾은 모양이다.

아, 하고 탄성을 흘린 엘가가 카일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설마. 혹시, 레토 여자 생긴 거예요?”

“날카롭네요.”

“정말로요!? 아니, 나한테는 한 마디 말도 없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생긴 건 아니고요. 생길 수도 있다는 정도?”

“그게 그거잖아요. 솔직히 레토가 눈치가 좀 없는 게 흠이지, 다른 부분들로는 일등 신랑감이에요. 거기에 리토리오 대공가의 유력한 가신 가문이기도 한데.”

그래도 제 사람이라고 아주 열심히 레토의 장점을 피력해준다.

역시 부하 아끼는 건 그 상관이라고 했던가.

“누군데요. 레토가 마음에 품은 여자가, 누군데요?”

“저도, 그리고 엘가님도 잘 아는 사람이죠.”

“…설마, 이제 와서 나는 아니겠죠?”

엘가의 질문에 카일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주먹을 쥐어보였다.

“…아니겠네요. 레토도 일단 사람이니까, 살고 싶다면 그럴 리는 없겠어요.”

“당연하죠. 마차 지나고 나서 타려는 인간은 다리를 분질러버릴 겁니다.”

여전히 웃으면서 말하고는 있지만 상당히 섬뜩한 대답이었다.

덕분에 엘가가 ‘농담이에요, 농담!’ 이라고 하며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그러면 티샤도 아닐 테고, 성녀님이나 황녀 저하도 아닐 테고… 다른 여학생이라는 건 확실히 알겠는데 카일, 당신도 알고 나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답을 찾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엘가는 원래 영리한 여인이니까.

어? 하고 잠깐 침묵하던 엘가가 슬그머니 말을 잇는다.

“혹시… 넬이에요?”

“정답입니다.”

“진짜로?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로 알고 있었다면서요! 그런데 갑자기 이성으로 보고 있다는 게 가능한 일이에요?”

“남자라는 동물은 생각보다 단순해서요. 그리고 남자인 줄 알았던 거지 실제로 남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넬이 그렇다고 남자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말이죠.”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말이긴 하네요.”

고개를 끄덕거린 엘가가 갑자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 건방진 부하가 상관한테는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다니.

이거야말로 보고 불성실이 아니냐고, 장닌식으로 중얼거리면서.

“그런데요. 카일, 그게 당신이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인가요? 내가 보기엔 전혀 아닌데? 아, 혹시. 넬까지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여기서 더 허락 안 하겠다고 이미 대답까지 다 들었는데.”

황녀, 공녀, 성녀, 그리고 마녀. 이 넷이 모여서 회담을 했고 결론을 이끌어냈다.

네 여자가 서로 경쟁하고 또 화합하면서 카일의 곁에서 행복하게 머문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의 여인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조건을 카일에게로 들이밀었고 카일은 확인 도장을 찍었다.

엘가도 그 부분이 떠올랐는지 ‘그러네요.’ 하고 넘어간다.

“지금 제가 걱정하는 건 다름이 아니라….”

끼익, 덜컹-.

“아, 카일! 여기 있었네요. 엘가님도 계셨군요?”

“운동하러 온 건가요, 티샤?”

“네. 다음 강의까지 한 시간이 조금 안 되게 남았는데, 도서관에 가자니 한 권도 제대로 집중해서 못 읽을 것 같어서요. 그냥 가볍게 운동이나 좀 하려고요.”

기구 앞으로 다가가서 자신이 사용할 것을 점검하는 티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카일이 저도 모르게 웃을 정도였다.

그러다말고 무언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티샤가 고개를 돌린다.

“카일도 그렇고 엘가님도 그렇고. 벤치에 앉아서 뭐하세요?”

“아, 그게….”

“이리 와 봐요, 티샤. 지금 카일이랑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흥미로운 이야기요?”

두 눈을 반짝인 티샤가 ‘저도 들을래요, 그 이야기’ 라고 말하며 다가온다.

덕분에 졸지에 두 여자에게 남의 연애사 이야기를 하게 된 카일이었다.

“…음. 레토 씨가 넬을 좋아한다고요.”

“네, 티샤.”

“좋은 일 아닌가요? 축복할 만한 일인데.”

“거기까지라면 그렇죠. 그래요, 거기까지라면 말이죠.”

그러자 티샤와 엘가, 두 여자가 으엥?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실은요. 조금 전에, 넬이랑 잠깐 만나고 오는 길이에요.”

“넬이랑요?”

“왜 갑자기요?”

“다리 좀 놓아주느라고요. 정확히는, 이안과 넬 사이의 다리.”

순간, 두 여자의 입술 사이로 ‘어?’ 하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본인들이 잘못 들었나, 혹시 카일이 레토를 이안으로 잘못 말했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카일의 반응을 보고서 눈치를 챈 것이다.

“아니, 아니. 잠깐만. 잠깐만요, 카일. 그러면 지금….”

“그러면 이안이랑, 레토랑. 넬을 사이에 두고 싸울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럴 확률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죠.”

카일의 대답에 두 여자가 멍하니 두 눈을 깜빡거린다.

그러다가 곧 아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티샤? 엘가님?”

“아, 미안해요. 카일. 너무 갑작스러운데, 또 너무 재미있어서.”

“티샤 말이 맞아요, 카일. 그 이안이랑 레토가? 연적? 와, 이런 건 상상도 못 했는데.”

이게 그렇게 웃어 넘길 정도로 가벼운 문제가 아니에요.

분명히 이렇게 되면 그 눈치 제로인 이안과 레토가 나보고 도와달라고 할 텐데.

나는 대체 누구를 이어주어야 한단 말입니까!

카일의 그런 절절한 외침에 비로소 두 여자도 심각한 얼굴이 된다.

생각해보니, 진짜 이안과 레토라면 카일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할 만 하다.

“음… 난처하겠네요, 카일.”

“그러니까요. 티샤. 이 상황을 어쩌냐고요.”

“어렵게 생각할 거 없잖아요. 조금 더 나은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게 낫죠.”

남의 연애라고 그렇게 말해도 되는 겁니까, 엘가님.

카일이 혀를 차자 오히려 티샤도 거기에 동의한다며 의견을 내놓는다.

“역시 이안이 좀 더 낫지 않겠어요? 레토 씨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어? 잠깐. 티샤? 뭐라는 거예요. 그 남자보다야 우리 레토가 훨씬 낫죠.”

“저는 이안이 그래도 요만큼은 낫다고 생각해요.”

…아니, 저기요. 저기요? 지금 너님들끼리 뭐하는 건데요.

아직 남자들의 사랑싸움은 시작도 안 했는데.

뜬금없이 각 진영의 후원자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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