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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전투종족-239화 (239/318)

“교단에 방문하신 걸 환영합니다, 카일 형제님.”

오늘은 성녀와 함께 간만에 교단을 방문하는 날이다.

성녀 본인의 강력한 요청도 있었고 카일 본인도 한 번 가봐야 했기에.

거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교황의 권유도 있었으니 당연한 행보였다.

자신과 성녀를 맞이하는 성기사들에게 마주 인사를 한 후.

안쪽으로 들어가니 간만에 보는 인물이 서있었다.

“프리실라 단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그러네요.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카일 형제님.”

“영광이라뇨. 말씀이 조금….”

“아닙니다. 요즘 제국을 아주 소란스럽게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리 말하는 프리실라의 입가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아마도 황실 연회에서 있었던 네 명의 여인들 사건이 온 사방으로 퍼진 모양.

덕분에 카일은 그저 웃지요, 라는 듯 하하!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반박을 한다고 해서 없는 일이 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요즘 단련은 어째, 잘 하고 계십니까?”

“항상 똑같습니다. 카일 형제님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하루도 빼먹지 않고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답니다. 다만 실전 상대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라고 말하며 은근한 눈길로 카일을 바라보는 프리실라 단장.

그에 성녀가 ‘단장님!’ 하고 눈치를 주지만 카일이 조금 더 빨랐다.

“필요하시다면 당장이라도 대련 한 번 해드리고요.”

“카일 형제님께서는 그러시다는데, 성녀님은 허락해주시겠습니까?”

“하아…. 두 분 모두, 다치시면 절대 안 돼요. 아시겠죠?”

“아하하. 아주 조금만 다치도록 하겠습니다, 성녀님.”

“카일 형제님!”

“부디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 성녀님.”

“단장님까지?!”

그렇게 오자마자 대뜸 프리실라 단장과 한바탕 부딪친 카일이었다.

이전처럼 적당하게 부딪치는 것으로는 둘 모두 만족하지 않았다.

언제 또 이렇게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르고, 방해할 사람은 더더욱 없기에.

두 남녀는 연무장이 거의 반파될 정도로 싸운 끝에야 겨우 떨어졌다.

“후우우… 전보다 더 빨라지신 것 같네요, 단장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전부 다 막으셨습니다. 카일 형제님.”

어깨와 다리 쪽에 상처가 난 카일이지만, 모두 초반에 난 상처들이다.

속도에 대한 감을 잡으니 무섭게 적응했고 결국 프리실라가 먼저 물러서야만 했다.

‘역시, 존 나센의 사람은 이렇다니까.’

프리실라 단장이 고개를 내젓는 동안 성녀는 카일에게 한창 잔소리를 퍼붓고 있었다.

“제가 뭐라고 말씀드렸죠, 카일 형제님?!”

“자신의 몸은 자신이 아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요!”

“적당히 하라고도 하셨죠.”

“더 빠르게 멈추실 수도 있었잖아요.”

“하지만 이게 존 나센이라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성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제 잘 알고 있다.

성녀의 잔소리가 더 심해지기 전에 그냥 슬그머니 안아주기.

이러면 말문이 턱 막힌 성녀는 바동거리다가 이내 가만히 몸을 맡기곤 했다.

예전이었다면 성녀라는 자리 때문에, 아니면 부끄러워서라도 몸을 뺐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오히려 성녀도 은근히 이 상황을 기다렸던 것 같다.

카일이 슬쩍 주변을 살피니 프리실라도 큰 동요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 저쪽도, 그리고 교단 내부에서도 이미 전부 수긍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그래야 성녀가 교단 측에서 빠져나와 이리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이유가 될 테니.

“교단에 오자마자 한 바탕 한 겐가.”

교황은 카일을 보자 껄껄 웃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남들이라면 당연히 교황인 자신을 먼저 보러 올 텐데.

누가 존 나센 아니랄까, 대련을 청하는 이는 절대 지나치지 않았다.

“혹 언짢으셨다면 사죄를 드리고 싶습니다, 성하.”

“언짢기는 무슨. 본디 무인들의 삶이란 그런 것이지. 나처럼 편히 자리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는 게 전부인 사람으로선 왈가왈부 할 수 없는 것 아니겠나.”

마치 사정이 있는 사위를 이해해주는 장인을 보는 느낌이다.

“이리 자네를 부른 건 성녀의 거처 문제 때문이라네.”

“거처… 문제라고요.”

“언제까지고 교단에서만 지낼 수는 없는 일이지. 그렇지 않은가?”

그 말에 카일은 교황이 말하는 거처 문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지금 당장의 숙소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둘이 정말로 결혼까지 할 생각이라면 성녀는 성녀 직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부부의 연을 맺으면 교단에서 나가야 하는 규칙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서로에게 집중하려면 교단보다는 바깥이 더 용이하다.

교황은 바로 그 부분을 언급하며 이후의 거처를 묻고 있는 중이었다.

“일단 카일, 자네는 아카데미를 졸업하기 전까지 제국에 머물 테지.”

“예, 그렇습니다.”

“허면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되는 건가? 제국에 머물 건가,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는가?”

카일은 아주 잠깐 고민에 빠졌다. 여러 생각들이 휙휙 지나친다.

“아마도, 일단 제국에서 더 머물 것 같습니다.”

“그런가?”

“예. 귀한 딸아이를 먼 타지로 보내셔야 하는 분들이 너무 많으셔서.”

그러자 교황이 다행이라는 듯 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내심 성녀가 정말로 교단을 나서야 하는 게 서운했는데.

생각해보니 자신과 비슷한 처지가 하나 더 있지 않았던가.

‘심지어 그게 제국의 황제라면… 카일, 자네도 눈치가 살짝 보이겠군.’

그런 의미에서 리토리오 대공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딸이 차기 대공이니 공작가를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딸과 이별하는 일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교황 성하. 잠시….”

이때, 바오로 추기경이 조심스레 옆으로 다가와선 무언가 속삭인다.

그러자 교황이 ‘아아.’ 탄성을 흘리곤 고개를 끄덕거린다.

“잊고 있었군. 바로 나가보겠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성하?”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성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교황이 손을 내젓는다.

“그런 게 아니고, 이번에 동쪽으로 떠나는 사제들이 있어서 말이다.”

“동쪽으로 떠나는 사제들이요?”

순간 카일의 눈동자에 매서운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반 년 전만 해도 뛰는 것은 고사하고 계단 오르기조차 힘겨워하던 사제들.

카일의 말을 빌리자면 꿈에 나올까 무서운, 그야말로 처참하기 짝이 없는 광경.

그 때가 떠오른 것인지 카일이 슬그머니 입술을 뗀다.

“성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도 한 번 그 사제 분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가? 허면 같이 가지. 자네가 배웅을 해준다면 그들도 즐거워할 것 같네.”

그렇게 교황의 뒤를 따라, 성녀와 손을 맞잡은 채.

카일은 누구보다 성실한 교단의 교인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오.”

그리고 마주한 사제들은, 카일이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릴 정도였다.

‘반 년 만에 저 정도라고? 곰이 사람 된 수준인데?’

비실비실하고, 심각한 운동 부족에, 식단조차 엉망이었던 사제들.

하지만 지금은 지나가는 소형 몬스터 따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동안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스스로 고행길을 걸은 자들이지. 어떠한가?”

“확실히… 저 분들의 신실함이 몸으로 다 느껴질 정도입니다, 성하. 설마 저 정도로 바뀌실 거라곤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제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네. 저들은 그 형제자매들 중에서 그래도 먼저 앞서나가고, 더 인내한 자들인 것이지. 그래도 카일, 자네가 그리 말해주니 참으로 기쁘군.”

동쪽으로 떠나는 사제들의 모습은,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아가는 행렬이 아니었다.

오로지 사제들만으로 이루어진. 그래, 말 그대로 ‘전투 사제단’ 의 모습이었다.

‘기사들이 훈련을 맡았다더니 저렇게 바뀐 건가.’

카일 본인이 전수한 존 나센 식 단련에 기사들의 경험이 더해졌다.

그렇다면 사제들이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지는 안 봐도 뻔한 일.

저들이 손에 망치만 들어도 어디 몬스터 퇴치하러 가는 수준은 될 거다.

“이제야 비로소 저 신실한 마음으로, 아주 먼 곳까지 나아가 신의 뜻을 퍼트릴 수 있게 되었어. 고맙네, 카일. 자네가 아니었다면 훨씬 나중에 있었을 일이었을 텐데.”

성녀를 통하여 교단에 변화의 바람을 넣은 것도 카일이고.

제국의 온 사방을 평정하여 교단이 마음껏 떠날 수 있도록 한 것도 카일이다.

교황의 저 말은 결코 예의상 한 번 던져본 빈 말이 아니었다.

“잠깐 실례하겠네. 형제자매 분들에게 배웅 인사라도 해야 할 터이니.”

교황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를 틈타서.

성녀는 카일을 벤치에 앉히곤 그 옆에 앉아 머리를 기대었다.

“덕분에 조금은 더 마음 놓고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카일 형제님.”

“성녀님도 이젠 충분히 쉬어도 될 자격을 얻으셨으니까요.”

“…혹시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슬그머니 카일을 바라보는 성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제가 더는 성녀가 아니라고 해도, 카일 형제님께서 실망하시지….”

“저한테는 영원히 성녀님이십니다. 지금도, 나중에도. 항상 그대로일 거예요.”

확신에 찬 카일의 목소리에 성녀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

[ 이거 참,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건 안다지만 질투가 나서 미치겠네. ]

마음껏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 세 여인들과는 다르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쪽에 가있는 황녀는 몸이 달은 눈치였다.

“어쩔 수 없잖아요. 황녀님은 거기서 황녀님의 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그래도…. ]

“시간 많습니다. 돌아오셔도 넘치는 게 시간이니까 아무 걱정 말고 잘 하다 오세요.”

카일의 설득에 황녀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 아, 그리고. 혹시 소식 들었나? ]

“무슨 소식이요?”

[ 공녀가 아직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건가? ]

“엘가님이라면… 딱히 이렇다 할 특별한 말은 없었는데.”

[ 음, 아무래도 황실에 가장 먼저 전해진 거라 그쪽엔 이제 막 전해졌으려나. ]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지, 카일이 두 눈을 깜빡거리자 황녀가 말을 이었다.

[ 남쪽의 독립 영주들 말이다. 기억하지? ]

“네. 가서 수영 좀 하다 왔죠. 거기가 왜요? 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 정확히는 남쪽 섬의 문제가 아니야. 처음 보는 배들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왔다던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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