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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전투종족-223화 (223/318)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카일님! 이,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이건 넬이다. 본인이 한 게 아무 것도 없는데 황실 연회에 같이 가자고 해서.

거기에 너무 감격을 받아서 아카데미에서부터 마차 안에 들어와서까지.

열심히 머리를 처박으며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저러다가 이마라도 깨질까 걱정스러워서 몇 번이나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뿐, 다시 ‘감사합니다!’ 반복이라 그냥 포기했다.

“꼭 가야 하는 건가? 차라리 검이나 더 휘두르고 싶은데.”

단련을 해야 한다는, 아주 올바른 답을 하고 있는 건 당연히 이안.

가서 말실수 하면 또 혼나는 거 아니냐고 걱정도 하고 있다.

하지만 요 근래 카일이 이안을 살펴봤을 때, 그건 기우인 듯 했다.

알게 모르게 이제는 조심성도 많이 늘어난 이안이니까.

“….”

그리고, 카일 바로 옆에 앉아서 얼굴만 붉게 물들이고 있는 건 티샤.

황녀는 이미 황실 연회 고정이고, 엘가는 리토리오 대공가 대표로 오고.

성녀까지 교단의 손님으로서 연회에 참여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남은 건 티샤 혼자여서. 그래서 같이 가자고 한 게 전부다.

하지만 티샤에게는, 그런 카일의 제안이 약간 다르게 들렸다.

‘그냥 너무 당연하게, 나한테 먼저 왔다고 했어.’

그게 무슨 말이겠는가. 본인 생각이 가장 먼저 났다는 게 아닌가!

황녀도 아니고 공녀도 아니고 성녀도 아니다. 티샤, 본인이었다!

절대 우위를 점할 수 없다고 여겼는데. 첫 여자 친구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런 자신을 생각해준 것인지 카일이 손을 내밀어준 것이다!!

‘어, 어떻게든 가장 예쁜 드레스를 입기는 했는데….’

티샤 기준으로는 지금 입은 드레스가 가장 비싸고 예쁜 것이었다.

여태까지 꼬박 모은 돈의 거의 절반 이상이 이 의상에 들어갔다.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미쳤냐고 피를 토했을지도 모른다.

주술 재료 구입비로 알게 모르게 한 달에 나가는 돈이 얼마인데.

그걸 위해서 아카데미 입학 전까지 얼마나 아끼고 또 모은 것인데.

그 돈으로 주술을 위한 게 아니라, 드레스를 사버리는 데에 쓰다니.

‘그것도 심지어, 여러 벌도 아니고 단 한 벌….’

다행히 엘가가 이런 때에 쓰라며 몰래 쥐어준 돈이 있었다.

부담스러워하며 받지 못 하겠다고 하니 공짜가 아니라고 했다.

나중에 자기가 난처할 때, 그 때를 위한 것이라나 뭐라나.

황녀도 부담스럽고 성녀도 부담스럽지만.

티샤는 역시 엘가가 가장 껄끄럽다고 여기고 있었다.

‘황녀 저하는 그래도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고, 성녀님은 워낙 착하시니까 예측이 되는데… 엘가님은 예측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또 안 되는 것 같아서.’

물론 지금은 엘가가 가장 큰 은인이기는 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지금 입고 있는 드레스는 꿈도 못 꿨을 것이다.

“티샤?”

“네, 네! 카일! 불렀어요?”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어요. 몇 번이나 불렀는데 대답도 안 하고.”

“에에? 아, 미안해요! 너, 너무 긴장했나 봐요.”

급히 내놓은 핑계였지만 또 그럴싸한 이유기도 했다.

실제로 마차에 탄 일행 중에서 황궁에 들어갔던 건 카일이 유일하다.

이안도, 넬도, 그리고 티샤도. 어느 누구도 그럴 일이 전혀 없었다.

어지간한 귀족이라고 해도 감히 꿈도 못 꾼다는 일이다.

대귀족 가문, 혹은 대공가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하는데.

어느 곳에도 포함되지 않는 자신들이, 황실 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제 손님이라고 하면 알아서 잘 대해줄 테니까요.”

그리 말하며 티샤의 손을 살포시 잡아주는 카일.

하지만 티샤는 바로 그 부분 때문에 더 긴장이 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실수하면… 카일도 같이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거잖아.’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는 티샤였다.

다행히도 예법이라면 본인 주변에 황녀, 공녀, 성녀가 있어서 잘 배우지 않았던가.

실수해서는 안 된다. 본인을 위한 게 아니라 카일을 위해서라도.

그와 함께 온 사람으로서 절대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덜컹-.

한창 내달리던 마차가 점차 속도를 줄인다.

황궁 바로 앞까지 다다른 모양인지 바깥이 살짝 소란스럽다.

다만, 다른 이들처럼 일일이 내부 검사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이 마차가 다름 아닌 황제의 명으로 직접 보내진 황실 마차였기 때문.

신원은 황제 본인이 보증하겠다는 것이니 검문하는 것부터 말이 안 되었다.

“…카일. 황궁이란 곳이 이렇게 들어가기 쉬운 곳이었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이 마차부터 황제 폐하가 직접 보낸 거니까 그렇죠.”

“아앗!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마차가 가는 길에서 모두 우리가 탄 마차가 지나가기 전까지 그 자리에서 멈춘 채 기다리고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확히 봤어요, 넬. 황실의 마차가 지나가는데 당연히 그러겠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천천히 달리던 마차가 마침내 완전히 멈춰 선다.

직후 마부석에 앉아있던 황실 기사가 내려서는 마차 문을 연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카일은 일단 이안과 넬부터 내보냈다.

다음으로 자신이 나가고, 마지막으로 티샤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

황궁의 모습을 비로소 눈에 담은 티샤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화려한 수식어 따위로는 지금의 이 순간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냥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실례처럼 여겨졌다.

그건 이안도, 넬도 마찬가지인지 모두가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반응이 왜 이래. 뭐가 좋다고. 안에 운동 기구도 하나도 없구만.’

그 사이에서 오직 카일만이 존 나센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 카일, 자네인가?”

이때, 뒤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카일은 곧 미소를 짓곤 꾸벅, 고개를 숙였다.

“슈렐리츠 대공 각하.”

표면상으로 이번 연회의 주인공이 될 슈렐리츠 대공.

전장에서의 그 모습과는 다르게 지금은 제법 평범한 모습이었다.

“이안, 자네도 왔군.”

“대공 각하.”

이안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린다.

슈렐리츠 대공도 과거 10강이기도 했던 강자이다.

때문에 이안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

“흠. 그런데, 처음 보는 이들의 얼굴이 있군.”

“네, 대공 각하. 이쪽은 넬. 제 옆은 티샤라고 합니다.”

먼저 티샤가 나서서 슈렐리츠 대공에게 인사를 올린다.

다음은 넬 차례였는데, 살짝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존경하는 이를 만나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본인 정체를 들킬까 걱정도 되는 모양.

사실 카일이 넬을 데리고 온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한 번 숨긴 일은 영원히 숨기는 게 맞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이렇게 숨길 수는 없는 일이다.

되레 나중에 그게 넬의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다.

‘심지어 황실 연회에 정체를 속이고 들어왔다? 이거 나중에 알려지면 보통 곤란한 게 아니야.’

해서 카일은 이번 기회에 황제와 슈렐리츠 대공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그 두 사람을 도와주었으니 이 정도는 부탁해도 될 일 아닌가.

카일의 계획은 이러하다.

일단 황제가 자연스럽게 넬의 정체를 묻게 하고 진실을 전달한다.

당연히 아카데미에 무언가를 속이고 들어온 게 문제가 될 터.

거기서 넬의 실력을 보여주고, 이후 슈렐리츠 대공이 바람을 잡는다.

꽤 훌륭한 실력을 지녔는데, 잘만 다듬으면 좋은 기사가 될 것 같다고.

거기서 황제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마땅히 벌해야 하나 실력이 아까우니 없던 일로 해주겠다. 대신 다시는 오늘과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라고 말하면 대충 마무리.

‘넬에게는 이게 최선이야.’

원래라면 그녀가 활약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그녀가 나설 곳을 카일 본인이 전부 쓸어버렸다.

서쪽, 남쪽, 그리고 동쪽까지. 이렇게 되면 넬이 나설 곳이 없다.

이러다간 기껏 몇 단계나 성장했음에도 제 이름을 알리는 게 불가능할 정도.

그에 대한 미안함도 있으니 이렇게 갚으려는 것이었다.

물론 넬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녀를 골탕 먹이려는 게 아니라, 연기력이 너무 떨어진다.

진실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황제 입장에서도 곤란하다.

“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넬입니다, 대공 각하!”

“넬이라. 아, 혹 카일과 이안이 말하던 그 기사 꿈나무가 자네인 것인가?”

“예?”

“동쪽에 있을 때 두 사람이 자네 이름을 몇 번 거론했었네. 굉장히 좋은 실력을 지닌 아카데미 학생이 있는데 나중에 한 번 소개하고 싶다고 말이지.”

“아아… 그, 그저 영광일 따름입니다!”

슈렐리츠 대공 입장에선 당연히 넬에 대한 기대가 생겼을 것이다.

이미 강함으로는 10강도 충분히 감당하는 카일과.

아직은 조금 부족하지만 머지않은 때에 충분히 10강 자리를 노려볼 만한 이안.

그 둘이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 하니 어찌 기대가 되지 않을까.

“카일. 슈렐리츠 대공이 넬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그러네요.”

“잘 됐어. 항상 기사, 기사 노래를 부르던 놈이잖아.”

“그것도 그러네요. 그리고 참 대단해요, 이안.”

“응? 무슨 소리냐, 갑자기?”

이안의 반문에 카일은 그런 게 있어요, 하고 어서 들어가자며 일행들을 이끌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 아직도 넬이 여자라는 걸 모르고 있는 것일까.

눈치가 없는 게 당연하다지만 이건 없어도 너무 없는 수준이 아닌가.

아마 넬이 여자임을 밝히는 순간 가장 크게 놀라는 건 이안이 아닐까 싶다.

*

“슈렐리츠 대공 각하 입장이시오!”

“존 나센 남작가의 카일 입장이오!”

대공과 남작가의 자제. 뭔가 심히 이상한 조합.

하지만 그 외침에, 연회장에 있던 어느 누구도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굉장한 기대감을 띤 채, 출입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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