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속 전투종족-221화 (221/318)

“어라.”

달력을 체크하며 운동 루틴을 짜던 카일이 탄성을 흘린다.

이제 보니까 바로 내일이 자신의 생일이었던 것이다.

‘생일. 생일이라.’

자연스레 과거 존 나센에 있던 순간이 떠오른다.

생일 축하한다고 하던. 당신들의 아들이, 자신들의 동생이 된 걸 고맙다고 해주던 가족들.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그들이 생일 축하 선물이라고 해준 것은.

‘새로운 봉. 새로운 원판. 케틀벨. 새 벤치.’

떠올리기만 해도 벌써부터 가슴이 다 웅장해진다.

생일 축하한다면서 그런 걸 쥐어주는 가족들이라니.

더 끔찍한 건 정신은 싫은데 몸은 자연스레 받고 있었다는 거다.

존 나센을 탈출하고 싶었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는 몸.

분명히 내용물이 바뀌었음에도 피에 새겨진 본능은 영혼마저 이겨냈다.

그 결과, 아카데미에서 하드 루틴을 돌리는 본인을 볼 수 있지 않았던가.

‘그래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형님, 누님까지. 다 진심이시긴 하셨지.’

강철보다도 단단할 것 같은 다른 가족들과는 다르게.

본인은 어릴 적부터 병치레도 잦고 몸이 상대적으로 허약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과보호 경향이 묘하게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운동 열심히 해라. 이거 더 먹어라. 우리 한 세트만 더 하자.

아카데미에 와서도 단 거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술은 조심해라.

누가 다치게 했니. 다쳐서 운동을 못 해서 약해질 수 있잖니. 등등….

‘생각해보니 처음 여기 세상에 왔을 때 침대 위에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지.’

심지어 그 날이 카일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이거 참 운명의 장난도 이런 희한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웃차.”

끼기긱!!-

다른 이들은 한 네 명이 달라붙어도 못 할 무게로, 숄더 프레스를 시작한다.

“으아아아….”

“저걸 도대체 어떻게 해….”

그 경악할 만한 광경에 한창 운동을 하던 남녀 학생들이 기겁을 한다.

본인들도 노력에 노력을 기울여 나름 튼튼한 몸을 지니게 되었다.

귀족 치고는 굉장히 올바른 몸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카일도 이 정도면 평균은 쳤다고 고개를 끄덕였으니 말 다 한 셈.

하지만 그들도 카일이 감당하는 무게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 했다.

저걸 하다가 팔이 부러지든, 아니면 어깨가 빠지든 할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무게에 깔려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 한다던가.

우당탕!!-

이때, 갑자기 실내 연무장 문이 열리고 소란스러움이 전해진다.

그에 아카데미 학생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뭐야, 하고 중얼거린다.

이곳은 카일이 관리하는 성스러운 실내 연무장.

황명에 의해 존 나센 식으로 관리가 되는 곳이다.

때문에 소란스러움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금지다.

여부에 따라 카일이 임의대로 바로 쫓아낼 수 있다.

만약 따르지 않는다면? 뭐, 그 인간 안전을 장담 못 하겠지.

“카, 카일 학생! 카일 학생!!”

다만 여기에 살짝 애매해지는 기준을 지니는 존재들이 있다.

예로 들자면 지금처럼 교수가 들이닥친다던가.

“후우.”

한숨을 내뱉은 카일은 기구에서 내려와 섰다.

그리고는 애타게 자신을 찾아 헤매는 교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수님.”

“아! 카, 카일 학생! 여기 있었군!!”

“과도한 소란스러움은 절대 금지입니다. 교수님들이라고 달라지는 건 없….”

“지금 즉시 방으로 돌아가서 준비 좀 하게!”

“예?”

이건 갑자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지?

한창 루틴 돌리고 있는데 왜 방으로 돌아가서 준비를 해.

“화, 황명이 떨어졌네. 얼른 입궁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일세!”

그러자 조용히 운동을 하고 있던 학생들이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신다.

입궁을 하라는 황명이라니? 일개 귀족한데 황제가 직접?

“…저요? 지금요? 이렇게 갑자기?”

“그렇다네. 그러니까 얼른….”

“황명 전하러 오신 분, 좀 기다려 달라고 하세요.”

오늘도 여지없이 루틴의 중요성을 먼저 논하는 카일이었다.

그리고 교수 또한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단, 일단 그렇게 말은 했네. 하지만 폐하가 워낙 급히 찾으시는 것 같아서 말이야.”

카일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찾는다고? 또 무슨 문제가 터진 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다 할 문제는 없는데?’

일단 본인이 일으킨 사건, 사고. 없다.

제국 외부에서 발생한 외교적 문제. 이것도 없다.

혹시 내부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지만, 엘가가 조용했다.

‘그렇다면 내부 문제도 아니라는 거잖아.’

혹시 황녀를 동쪽으로 보내는 것 때문에 그러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카일은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마 동쪽에서 활약한 자신을 불러 의견을 물으려는 것일 터.

‘그래. 어찌 되었든 타지로 자식을 보내는 거니까. 이해가 가네.’

황제가 찾는 이유도 얼추 알아냈겠다, 남들이라면 얼른 입궁 준비를 하러 갔겠지만….

‘최대한 루틴 빨리 돌리자.’

황명 따위, 존 나센 의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

황궁을 이렇게 자주 드나드는 남작가 자제가 또 나올까.

아마 불가능하겠지. 다시는… 아. 아니구나. 존 나센 남작가가 남작가를 유지하는 이상.

언제라도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겠구나. 이거 참 놀라운 일이다.

황제의 곁을 보좌하는 시종장은 그리 생각하며 카일을 맞이했다.

“아마 자네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늦게 올 것이네. 거기에 대해 크게 신경은 쓰지 말고.”

그러니까, 늦어도 상관은 없으니 잘 맞이하라는 말이었다.

시종장은 황제의 그 말에 속으로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이도 아니고 황제가 입궁을 명했는데, 바로 달려오는 게 아니라 늦게 온다니?

하다못해 대공들조차도 황제의 명령만큼은 그 어떤 경우에도 바로 받아들이는데.

“안녕하십니까, 시종장님.”

그리고 황제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예상했던 것보다 한 시간은 늦게 황궁에 들어온 카일이었다.

이것까지 예상하고 계셨던 것인가. 역시 황제 폐하시다.

라고 생각하며 시종장은 잽싸게 카일을 황제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폐하. 명하신 대로 존 나센의 카일이 도착했나이다.”

“어서 들이게.”

허락을 받은 시종장이 문을 열어주며 들어가라고 손짓을 한다.

그에 카일은 감사하다고 작게 말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황제 폐하. 존 나센의 카일이….”

“되었네. 그런 걸 받자고 부른 것이 아니니 편히 있게.”

예법마저 강제로 캔슬시키다니. 역시 존 나센은 대단하구나.

거기에 내가 벌인 일도 있으니 저럴 만도 하겠고.

그리 생각하며 카일은 황제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후 얌전히 자신을 부른 이유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갑작스레 입궁을 명한 것은 미안하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폐하. 오히려 너무 늦은 것에 사죄하고 싶습니다.”

카일의 말에 황제가 그러면 비긴 것으로 하자며 미소를 짓는다.

갑작스레 입궁하라는 명령을 내린 자신. 그리고 늦어버린 카일.

이 정도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돌릴 수 있지 않겠냐면서.

“바쁜 사람을 오래 붙잡고 있을 수는 없지. 그래. 자네를 부른 이유가 무엇이냐.”

역시 황녀님이 동쪽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 의견을 구하는….

“내일이 카일, 자네의 생일이라지?”

“…예?”

순간 저도 모르게 황제의 물음에 반문을 흘리고 말았다.

아무리 존 나센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는 법.

당장 남작도 황제 앞에서는 그 대우를 확실하게 해주지 않는가.

“아. 죄송합니다. 폐하. 제 실수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다시 묻겠네. 내일이 자네 생일, 맞는가?”

도대체 왜 이 타이밍에 생일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면서도 카일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폐하. 내일이 제 생일이긴 합니다만.”

“그렇군. 그랬어. 다행이야. 참 다행이군.”

그러니까 왜 생일인지 묻는 거고, 왜 다행이냐고 하는 건데요.

카일이 두 눈만 껌뻑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쓰는데.

“하마터면 생일임에도 축하 연회는커녕 축하한다는 말조차 못 할 뻔 했네.”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황제는 뜬금없이 축하 연회를 운운하고 있었다.

“연회… 라니요? 폐하. 이 우둔한 자가 폐하의 말씀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듣는 그대로라네. 카일, 자네가 제국을 위해 한 일이 지금껏 몇 개인가. 그에 대한 이렇다 할 보상조차 제대로 해주지 못 했네.”

그거야 카일 본인이 원하지 않았기에 그랬을 뿐이다.

혹 존 나센 남작이 보기에 ‘정치와 접점이 생기면서 운동을 소홀히 한다.’ 라는 생각을 심어줄까 조심하고 또 조심한 것이 그 이유.

“이번 동쪽 건도 그러하다네.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슈렐리츠 대공도, 그리고 10강들도. 한 것이 없다며 굉장히 난처해하고 있다더군. 그들을 위한 연회를 열고자 했음에도 자격이 없다면서 극구 사양했고 말이야.”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는 몰랐습니다.”

“모르는 게 당연하네. 해서 조금 난감하던 찰나에, 자네 생일이 내일이라고 하더군. 그걸로 해서 자네와 그들을 위한 연회를 열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황제의 말에 카일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롯이 자신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두 손을 내저으며 거절했을 거다.

그 시간에 차라리 운동을 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다른 이들까지 관련이 되면 무조건 거부하기가 좀 그렇다.

본인들은 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분명 전투도 치렀고, 고생도 하지 않았는가.

그들에 대한 황제의 선물이라면 카일도 생각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 말해주니 참으로 기쁘군.”

됐다. 황제는 속으로 그리 중얼거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슈렐리츠이니 10강이니, 전부 핑계에 불과했다.

모든 것은 카일의 생일 축하 연회를 준비하기 위한 포석일 뿐.

어쩌다가 황제가 일개 남작가의 자제 생일을 챙기게 되었을까.

이 상황을 본다면 선조들이 땅을 치며 통곡하지는 않을까.

“허면 내일 다시 사람을 보내겠네. 카일.”

라는 생각 따위, 황제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즐거워하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