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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전투종족-202화 (202/318)

두두두!!-

너른 대평원 위를 질주하던 한 무리의 전사들이 눈을 가늘게 뜬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이들의 시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기에 말까지 전부 멈추게 하곤 바닥에 납작 엎드려 귀를 댄다.

“…많지는 않다. 둘에서 셋 정도.”

“정찰병일 확률이 높겠군.”

“어쩔 거냐. 판단은 네가 내린다.”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습격대 조장이 잠깐 고민한다.

자신들이 이리저리 쏘아 다니며 제국군의 정찰대를 척살하는 건 이제 전부 알려졌다.

그럼에도 정찰조를 계속해서 보낸다는 것은 둘 중 하나를 의미한다.

적들의 대규모 공세가 코앞까지 다가왔거나.

그게 아니면 자신들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이거나.

“결정해라. 점점 가까워진다. 이탈할 거면 당장 이탈해야 하고, 매복을 한다고 해도 바로 해야 들키지 않는다. 빨리. 조장.”

땅바닥에 귀를 대고 있던 전사의 재촉에 조장은 잠깐 더 고민한 후 결정을 내렸다.

“잡는다.”

적의 정찰병이라면 반드시 잡아 죽여야만 한다.

이쪽의 안전을 조금이라도 보장하는 것과 동시에, 적들에게도 피해를 누적시키는 일이다.

눈과 귀를 잘라내다 보면 결국 정찰조의 인원을 배로 늘릴 수밖에 없을 테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역으로 줄어들 테니까.

그리고 설령 함정이라고 해도 상관은 없다.

어찌 되었든 저들은 미끼다. 그렇다면 미끼만 낚아채서 도망가면 된다.

이 초원의 길은 본인들이 더 잘 안다.

그저 넓은 평원처럼 보이겠지만 자세히 보면 얕은 구릉이나 큼지막한 웅덩이, 조그마한 물길 같은 장애물들이 도처에 많이 존재한다.

그것들을 이용한다면 자신들을 사냥하려는 자들이 오기 전에 미끼만 잡고 도망칠 수 있다.

몇 번 성공하다 보면 제국 놈들도 이런 낚시를 더는 하지 못 할 터.

“알겠다. 그러면 바로 숨도록 하자.”

말들을 다독인 유목 전사들은 살짝 구배가 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말과 함께 납작 엎드린 채 상황을 살폈다.

“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찰대로 보이는 세 기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단한 무장들은 하지 않았다. 굉장히 가벼워 보이는 차림이다.

그걸 보면 속도와 민첩성에 중점을 둔 정찰병들이 확실해보였다.

“잊지 마라. 빠르게 놈들만 죽이고 이탈한다. 적의 장비나 말에 연연하다간 되레 우리가 잡힐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걱정하지 마라. 우리도 우리 목숨이 가장 소중하다는 건 안다.”

“좋아. 그러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던 조장이 적당한 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손을 든다.

동시에 매복하고 있던 다섯의 조원들이 막 일어서는 순간.

스릉-.

“…어?”

은빛 섬광이 그들의 목을 정확하게 갈라냈다.

*

“오. 제법이네?”

황녀가 장하다는 듯 이안의 등을 두드린다.

자신이 나설까 했는데 이안이 나서 자신이 가겠다고 했을 땐 의심을 좀 했다.

하지만 이어진 검 솜씨를 보니 왜 나섰는지 이해가 갔다.

존 나센 남작이 왜 그렇게 미친 듯이 갈구고 쪼았는지도 알았다.

이안이라는 이 청년, 알고 보니 굉장한 원석이었다.

‘단순히 검술이나 몸의 움직임만이 전부가 아니야. 사람을 해칠 때, 살심을 품고 그걸 결행할 때. 저도 모르게 품는 망설임도 거의 없었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고 해도, 무조건 강자가 될 수는 없다.

그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천부적인 재능이 하나 필요하다.

야성. 원래부터 지니고 있는 거칠기 짝이 없는 성질.

그것이 없다면 해봤자 무술 실력 좀 고강한 이에 불과하다.

검에 천재적인 소질을 가졌다고 해도, 무신이라고 불릴 만큼 무투술이 좋다고 해도.

야성,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살의를 감당하지 못 하면 소용이 없다.

강자들의 싸움은 결국 누구의 기세가 먼저 꺾이느냐로 갈리기 마련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안 저 녀석은 확실히 타고났어.’

카일이 친구를 아주 제대로 사귀었네. 역시 내가 인정한 남자다워!

결국 결론은 카일에 대한 것으로 내려버리는 황녀였다.

“음.”

한편, 카일은 목 없는 귀신이 된 이들을 대충 살펴보고 있었다.

굉장히 참혹한 장면임에도 이상하게 별 감흥이 없다.

혐오감도, 두려움도, 하다못해 미안하다는 마음도 일지 않았다.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약한 놈들이 기습까지 하려 했으니 죽는 게 마땅하다, 일 뿐.

이것도 존 나센 의지 덕분인가 싶다.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다.

황녀와 이안 앞에서 토악질을 하며 비실거리면 체면이 서지를 않는다.

무엇보다 이곳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 지극히 단순한 전장의 한복판이다.

“이놈들, 역시 단순한 정찰대는 아니네요.”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 그 소치르라는 놈의 휘하에 있는 습격대가 분명해.”

“이렇게 몇 번 더 반복하다보면 그 자도 어쩔 수 없이 움직이겠죠. 본인들 병력이 갉아 먹히는 건 딱히 반가운 일이 아닐 테니까요.”

오늘로 세 번째로 조우한 습격대다. 그리고 전부 이안이 처리했다.

숫자로 보면 그리 많지 않다. 이번 여섯까지 합쳐도 열다섯이 안 된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평균 이상의 훈련을 받은 전사이다.

적들 입장에선 나름 쓸 만한 전력이 계속 사라지는 것이니 신경이 쓰일 거다.

‘해서 일부러 시신 처리도 제대로 안 하고 있고.’

마치 ‘제국군 습격하고 싶으면 해봐라. 그런데 그 전에 너희 전사들 목이 먼저 다 떨어질 거다.’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꼴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동료 전사들에게 비겁하다고 원망을 들을 것이다.

받은 은혜는 그대로, 받은 원수는 열 배로 갚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안. 말만 챙겨서 갑시다.”

카일과 그 일행이 챙겨가는 건 오직 말 뿐이다.

이미 노획한 말들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두었다.

본인들이 탄 말이 지치면 언제든 갈아탈 수 있도록.

사실 말을 타는 것보다 그냥 뛰고 싶은 게 카일의 솔직한 속내였다.

승마도 운동이 된다고는 하지만 뛰는 것만큼은 못 하다.

그렇지 않아도 전혀 운동을 못 하는 터라 초조함과 약간의 분노까지 생긴다.

얼른 그 소치르인지 뭔지 하는 놈을 만나지 않으면 이안을 봉으로 쓸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강한 적을 앞에 두고 이상한 곳에 조금의 힘을 쓰는 건 예의가 아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체력을 아껴두어야 한다. 그리고 쓸 때 써야 한다.

상대방은 제국의 10강조차 꺾었다는 인물이다. 합당한 대접을 해주는 게 맞다.

“오늘만 벌써 세 번. 이틀 다 합치면 7번이다, 카일.”

“그래서요.”

“놈들이 아무 반응이 없는 것 같아. 이 정도로 조용할 수가 있나?”

“아니죠. 오히려 바로 알아차리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카일의 대답에 황녀가 그 말이 맞다며 맞장구를 친다.

“습격조는 어쩔 수 없이 며칠은 독자적으로 움직여. 보고도 당연히 만나서 이루어지고. 그 사이에 공격을 당해서 전멸해도 며칠 동안은 모르는 거지. 정해진 날에 모이기로 했는데 모이지 않으면, 그 때서야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고 여기는 거고 말이야.”

“…그렇다면 적의 대장은 아직도 부하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군.”

“이제 알았을 수도 있죠. 그리고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찾으려고 할 테고.”

이쪽의 정체가 단순한 정찰대도, 그렇다고 미끼도 아니다.

특별히 엄선되어 파견된 습격조 척살대다. 만나는 족족 전부 잡아 죽일 수 있다.

그걸 알게 된다면 당연히 그쪽 지휘관도 대응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본인이 직접 나서서 싸우는 거지.’

본인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자이니 분명 그럴 것이다.

아마 이대로 짧으면 하루, 길어도 사흘이면 마주할 듯 했다.

“황녀님.”

그러기 전에, 먼저 옆에 있는 경쟁자부터 떼어내야 한다.

“그 소치르인지 뭔지, 제 거라고 했습니다.”

“응. 알겠어. 그런데 말이야, 카일? 내가 먼저 발견하면 내 거 아닌가?”

“제발 좀. 이래서 제가 황녀님이랑 같이 안 움직이려고 했는데.”

“알겠어. 농담이니까 그렇게 진지하게 반응하지 마.”

이럴 때는 또 누가 존 나센 아니랄까 정색 백 퍼센트다.

황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사이 다시 유목 전사들을 찾기 위해 말에 오른다.

“그런데, 카일?”

또 무슨 이상한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말에 오른 카일이 한 번 말해보세요. 라는 표정을 짓는다.

“나도 너만큼 싸우는 거 좋아해. 그런데 그런 나보고 포기하라는 거잖아.”

“그래서요.”

“나한테 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게 무슨 거래도 아니고, 꼭 그래야 하는 건가요.”

“거래는 아니지만 연인이잖아. 그러니까 양보하면 또 받는 것도 있어야지.”

푸헉, 콜록! 콜록!-

얌전히 서있던 이안이 대뜸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당황한 건 카일.

‘이 새끼는 나랑 황녀랑 언제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였는데 이제 와서 놀라는 건데?’

눈치가 없는 게 본인 연애에만 국한된 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역시나 이안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뭐야, 카일. 너 정말로 황녀 저하와….”

“이제 와서 알았다는 이안, 당신의 눈치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고개를 내젓고선 노획한 말들을 끌고 갈 준비를 한다.

그러자 황녀가 잠깐, 하고 카일을 말린다.

“괜찮겠어? 동쪽 유목 부족만큼이나 그들의 말도 사나운데.”

“그러겠죠. 말들도 나름 영리한 동물이니까, 제 주인이 아닌 다른 이가 끌고 가려고 하면 반항이라는 걸 하겠죠.”

카일은 그렇게 말한 후 슬쩍 말들을 쳐다보았다.

푸힝-.

그러자 말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아마 이 말들이 사람이었다면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지 않았을까.

“방금 전으로 해서 주인 바꿨다네요.”

“엑….”

이번에도 존재감을 과시하는 존 나센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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