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속 전투종족-198화 (198/318)

아카데미에서 검술 강의를 맡고 있는 케인 교수.

한때는 나름 유명한 기사였던 그는 지금은 후배들에게 많은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그리 대단한 가문 소속은 아니지만 제국 아카데미 교수직은 대단히 명예로운 자리다.

때문에 일단 아카데미 교수에 있다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예의를 갖추어준다.

아카데미는 크게 보면 황실의 것이고, 교수는 황실의 사람이 되니까.

“케인 발렌 교수는 황명을 받드시오.”

하지만 그런 교수도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는 일개 백성이 될 뿐이다.

‘이,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분명한 황실의 문장이다. 옆에 도열한 이들은 황실 기사들이다.

바닥이 대리석이든 말든, 본인이 저명한 아카데미 교수이든 말든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무릎을 꿇느냐. 그리고 무슨 잘못을 했느냐.

케인 교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혹시 본인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없는데? 그런 적이 전혀 없는데?!

소문만으로 전해지는 술 마시고 황제를 욕했다는 짓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항상 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말만 했다.

애당초 본인부터가 기사 출신인데 어찌 황실에게 반하는 짓을 할까!

“케, 케인 발렌이 삼가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자신과 같은 이에게 황명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세상 누구라도 지금과 같은 갑작스러운 일은 무섭기 짝이 없을 것이다.

“아카데미의 검술 강의를 맡고 있는 케인 발렌은 들으라. 앞으로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그대가 맡고 있는 아카데미 1학년 학생, 이안의 출석을 보장하라.”

“…?”

“이상이오.”

황명을 전하는 사자가 서신을 접고서는 케인 교수를 내려다본다.

황제 폐하의 지엄하신 명에 얼른 답하지 않고 뭐하냐는 눈치.

“아, 아아! 화,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갑자기 이안의 이름이 왜 나오는지, 출석을 보장하라는 건 또 무엇인지.

그걸 다른 이도 아니고 황제가 직접 명령까지 내리는 건 또 왜 그러는 것인지.

모든 것이 이해하기 힘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답은 정해져있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그대의 충심에 감탄하실 것입니다. 이안의 결석 이유는 그대가 알아서 해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황실의 사자와 기사들이 썰물처럼 사라진다.

남은 건 바닥에 멍하니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케인 교수뿐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황명에 들어가있던 이름은, 자신이 맡고 있는 1학년 학생이었다.

이안, 요즘 들어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는 유망주 중의 유망주다.

그를 가르치는 맛에 살 판이 났었는데, 갑자기 황명이라니?

‘혹시 이놈이 무슨 이상한 짓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기엔, 황명에 들어간 한 달의 출석 보장이 좀 이상했다.

처벌을 받는다면 당장 아카데미 퇴학이 맞는데 대뜸 출석 보장이라니.

이상하다. 당황스럽다. 그래서 당연히 궁금하다. 궁금한데….

‘황실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상관하지 않는다.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대공도 아니고, 일개 귀족에 불과한 본인이 살 길은 단 하나다.

황실이 나섰다면 그냥 얌전히 입 다물고 있는 거다.

여기서 괜한 관심을 지니면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뿐이다.

그냥 황제의 명만 충실히 이행해주는 게 본인에게 훨씬 이롭다.

한편.

“…교수는 황명을 받드시오.”

“황제 폐하!!”

“…는 들으라. …카일 존 나센의 출석을….”

“받들겠습니다!!”

케인 교수를 시작으로, 몇몇 교수들이 사이좋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들은 저마다 황명을 받들겠다며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이들이 황제에게 받은 것은 단 하나.

바로 두 남학생의 출석 보장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네, 카일.”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다 기대되는데요.”

전쟁성 장관과 카일은 전쟁성 본청 앞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전쟁성 쪽 기사들 및 요원들이 대련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상대는 다름 아닌 이안, 단 한 사람이었다.

“자네야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증명이 된 사람이지. 대공 각하께서 특별히 부탁까지 하셨을 정도니까. 하지만 저 친구는 아니네. 그리고 유목 부족은 상식이 그래도 통하는 서쪽 왕국 연합이나 남쪽의 섬사람들이 아니야.”

“그 또한 이해합니다. 훨씬 더 사납고 거칠겠죠.”

모름지기 가장 무시무시한 이들이 바로 유목 부족이라고 했다.

제국도 그들이 혹 준동할까 친 제국 성향의 부족들을 밀어준 게 아닌가.

괜히 싸우지 말고, 피 보지 말고 서로 조용히 지내자는 뜻으로.

전쟁을 치르면 제국이 패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승리하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저들은 정해진 수도도, 영토도 없다. 그냥 떠돌 뿐이다.

이러니 어디를 점령해도 아무런 영향을 줄 수가 없다.

바로 그게 유목 부족을 상대하기가 힘든 이유이다.

그 사나운 인간들에, 딱히 어디를 점령해도 끝나지 않는 전쟁에.

언제 어느 때에 갑자기 날아들지 모르는 기습까지 걱정해야 한다.

“듣자하니 유목 부족의 패배를 이끌어내는 방법은, 압도적인 승리라고 하던데요.”

“그러네. 다시는 싸우겠다는 생각조차 못 하게 만들어야지.”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압도적인 실력의 강자들도 배치해야 하고요.”

“맞아. 그래서 지금 저 이안이라는 친구의 실력을 보고자 하는 것이네.”

전쟁성 장관의 말에 카일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학기 초의 이안이었다면 당연히 탈락이었을 것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마인드가 썩었으니까. 애당초 본인이 데려오지도 않았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존 나센에서 구르고 구르면서 달라졌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 존 나센 남작이 손수 잘근잘근 밟아주었다.

그런데도 바뀌지 않았다면 참 여러 부분에서 대단한 일이다.

“시작하려는 모양이군.”

1:1 대련은 볼 것도 없이 이안의 승리였다.

그것도 단 3합 만에 승부가 났다. 기술이나 심리전 싸움도 아니었다.

이안은 그냥 순수한 힘 하나만으로 기사 하나를 무너트렸다.

“장관님. 1:1 말고, 그냥 다 붙이시죠.”

“그래도 되겠는가?”

“그게 존 나센에도 명예로운 일입니다. 저 친구더러 1:1 하라고 하면 그건 저와 존 나센에게도 참 불쾌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수준이 되니까 그냥 혼자 가서 한타 하고 다 때려 부수겠다.

아무 문제없다. 그럴 만한 힘을 지녔으면 그런 말을 해도 된다.

“알겠네.”

고개를 끄덕인 장관이 기사들과 요원들을 소집한다.

잠시 후 그들은 일제히 이안을 포위하고서 검을 뽑아 들었다.

거기에 진심으로 대하겠다는 듯 살기까지 피어 올린다.

사방에서 번뜩이는 검의 예기가 쏟아진다.

자신을 노려보는 이들의 눈빛과 진득한 살기가 넘쳐난다.

어지간한 사람도 이런 상황이 되면 주눅이 들게 된다.

담이 커도, 생과 사를 오고간 이도, 긴장하는 게 당연하다.

“안 오면 내가 갑니다.”

하지만 이안에게는, 이런 숫자 놀음 따위 아무 의미도 없었다.

잠시 후. 본청 앞에 서있는 인물은 이안 혼자 뿐이었다.

“끝났다, 카일.”

“고생했어요. 그래서 힘들어요?”

“전혀. 이거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남작님께 맞아 죽을 것 같은데.”

잘 아네요. 아버지가 교육은 참 잘 해두셨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카일이 슬쩍 고개를 돌린다.

“이제 되었습니까?”

“…괴물이군. 존 나센에 가면 다 저렇게 되는 건가?”

“설마요. 저 친구가 특이 체질인 거죠.”

카일의 대답에 장관이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가 뒤에서 한 기사가 슬쩍 옆으로 다가와선 소식을 전달한다.

“…카일. 대공 각하께서 도착하셨다고 하는군.”

“벌써 오셨습니까? 빠르시네요.”

“자네의 참전 의사를 황실에 전하고, 황실에서 조치를 취하는 걸 보고 오신 모양이야.”

아마 지금쯤이면 아카데미에 황명이 전해졌지 않을까 싶다.

그 내용은 당연하게도, ‘우리 훌륭한 친구들이 제국을 위해서 나선다 하니 교수들은 출석 좀 어떻게 해줘라.’ 라는 부탁 같은 명령일 테고 말이다.

“카일.”

“대공 각하.”

잠깐 기다리고 있으니 슈렐리츠 대공이 웃는 낯으로 나타났다.

이미 10강들 대부분이 출전한다는데도 카일이 낀다니 더더욱 좋은 모양이다.

“자네가 전쟁성까지 왔다는 건….”

“정식으로 제국 군단 휘하에서 잠시 복무하는 형식으로 가겠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겁니다. 저한테 누가 이상한 임무 내리면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 웃으면서 슬그머니 제 주먹을 내려다보는 카일.

대공 앞에서 협박 비슷한 걸 하는데, 누구도 제지를 하지 못 한다.

지금은 협박보다 ‘어떤 새끼가 미쳤다고 존 나센에 명령을 내려.’ 라는 생각을 하느라 다들 바빴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카일. 그대의 참전 소식에 5황녀 저하도 참전 의사를 밝히셨네.”

“예? 10강 대부분이 출전이라고 해도 전부 보내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프리실라 단장은 당연히 교단 소속이니 출전하지 않을 테고.

율리카는 황실 직계이기에 당연히 남겨둘 줄 알았다.

만에 하나 제국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출전해야 하니까.

“어쩌겠는가. 황녀 저하의 뜻도 뜻이고, 황태자 전하도 허락하셨다고 하더군.”

어째 황태자 전하가 아주 흔쾌히 허락했을 것 같은데요.

어깨를 한 번 으쓱인 카일은 품에서 무언가를 대공에게 내밀었다.

“이게 무엇인가?”

“서신입니다. 원래 제가 보내야 했는데, 대공 각하께서 보내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요.”

발신은 당연히 카일 존 나센. 그리고 수신은 다름 아닌 존 나센 남작령이었다.

그걸 확인한 슈렐리츠 대공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법 통신도 있는데 왜 굳이 서신으로 보내는가? 더 오래 걸릴 텐데?”

“아, 그거요.”

카일이 씨익, 미소를 짓더니 대답한다.

“대공 각하의 말씀 그대로, 더 오래 걸리라고 하는 겁니다.”

“으음?”

“마법 통신으로 바로 알렸다간, 장담하는데 우리들을 바로 따라잡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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