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화 嗲 괴로운 그이름, 방학
후우-.
노기사의 입에서 긴장에 젖은숨이 흘러나온다.
전성기 시절의 것에 비교할수 없이 노쇠한육신이다.
힘 이 가득하던 팔은 가늘어졌고 굳건하던 다리도 많이 얇아졌다.
수없이 검을 휘둘러도 멀쩡했으나 이젠 세 번도 힘들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젊을 적의 것과 똑같다. 변하지 않았다.
죽는 순간까지도 이 눈빛은, 그리고 기세 만큼은 영원할 것이다.
“허억, 허억….”
겨우 숨을 고르며 후들거리던 몸을 억지로 진정시 킨다.
쓰러질지 언정 검을 지팡이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
검극은 항상 상대에게로, 나아갈준비를 마친 채 기다린다.
“그거 아시오?”
어느 정도 호흡이 진정되자 노기사가 천천히 입을 연다.
“이 노구가 죽는 날까지, 당신을 다시는 보지 못 할 것이라 여겼소.”
“그렇습니까.”
“그대는 나와 다르니까. 절대 멈추지 않을 테니까.그에 반해 나는 고작 병 에 패하여 이 런 꼴이 되 었으니 , 같은 무인이 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상태 였었 지요.”
그 말에 맞은편에 서있던 또 다른 노인이 고개를 내젓는다.
“우리 또한 언제든 병에 걸리고, 때로는 목숨도 잃습니다. 강해지는 것은 개인의 노력에 달렸으나수명은 개인이 아닌 하늘에 달린 법.그것까지는어 찌 할수 없지요.”
“그렇지.그렇지요.결국하늘에 달린 것이지요.해서 이렇게 그대를다시 만난 것도, 하늘께서 허락하신 일인가봅니다.”
스릉—.
검 을 세 운 노기 사가 마지 막 일격 을 준비 한다.
더 싸우고 싶지만, 더 겨루고 싶지만 이제는 한계다.
몸이 버티지 못 한다. 나이란, 세월이란, 이렇게나 무섭다.
“더는 싸우지 못 하는 나를 용서하시오. 나이를 먹으니, 너무 힘들군요.”
“오히려 제가말리려고했습니다.저기 선 가족 분들이 걱정하지 않습니까. ”
노기사는 슬쩍 고개를 돌려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과 싸우며 침대 위 에서 골골거리던 자신인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선 진검을 들고 싸우고 있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서, 걱정과뿌듯함으로 뒤섞인 눈빛을 한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프리실라.’
그 작던 아이 가 어느새 다 큰 처 자가 되 었다.
한창 때의 자신보다훨씬 더 강해졌다. 제국 10강으로까지 불린다.
그러나 여전히 , 그의 눈에는 조그마하던 제 손녀 일 뿐이 다.
‘고맙구나.이 할아비의 마지막소원을 잊지 않아주어서.’
손녀가 할아비를 생각해 이끌어낸 오늘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다.
과거 영광스러운 전투를 치렀던 상대.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던 숙적.
하지만 분노나 증오보다는 끝없는 단련의 결과를 느끼게 해주었던 인물.
“그러고 보니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군요. 그래, 그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嘗,,
“닐입니다. 닐.고향사람들은모두그렇게 부릅니다.”
“닐이라. 나는 오토 프란츠입 니다. 참으로 웃긴 일이군요. 만난 게 수십 년 전인데, 이제야서로의 이름을 알게 되다니.”
“뭐 어떻습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위대한 전사였으니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닐 영감의 말에 오토 경이 껄껄! 웃음을 터트린다.
침상에 누운 뒤로이렇게 후련하게 웃어본적이 언제였던지.
비록 몸은 무거우나 마음만큼은 전성 기의 그 시 절로 돌아간 느낌 이 다.
앞에 무엇이 있든 벨 수 있을 것 같은 그 자신감, 그 감각.
그래, 바로 이것이 었다. 이것을 꿈에서도 그리지 않았던가!
“존 나센의 닐! 오토 프란츠가 마지막으로 검을 겨누겠소이다! 잘 받아보 시구려!”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오토 프란츠 경.”
오토 경의 입가에 환한미소가서렸다.
그렇게나무겁던 몸이 오늘만큼은 깃털처럼 가볍다.
멈출 수 없는 웃음, 미친 듯이 두근거 리는 심 장.
한 번 무인이 었던 자는 평생을, 아니 . 죽어서도 무인인 법 이 다.
“하아아앗!!”
노기사의 고함과 함께, 예기를 품은 검이 섬광을 토해냈다.
채애앵!!-
널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 대련을 끝마치니 프리실라가 닐 영감 곁으로 다가왔다.
그에 닐 영감은 허허, 웃으면서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짓을 했다.
“고생 이라니요. 강자와의 싸움이 고생 이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오히려 제 가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군요. 한 번도 잊은 적 이 없었던 숙적 이 었 습니다.”
닐 영감의 말에 프리실라는 미소를 지었다.
뛰어난 강자, 자신의 숙적.
프리실리 본인조차 함부로 승리를 논하기 힘든 인물이다.
그런 닐 영감이 제 조부에 대해 내놓은 평가는그러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단한번도존경하지 않았던 적이 없는조부다.
그분에 대한평가가 이리 후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이제 돌아가시는 겁니까?”
“그래야지요. 작은 도련님께서 늦어도 일주일 안으론 돌아오라고 하셨으 니까요.”
이 렇게 나 압도적 인 강자가 존 나센에 는 넘 쳐 난다니.
가끔드는 생각인데, 그곳 사람들이 정말같은 ‘인간’ 이 맞기는 한가싶다.
“오토 경과 다시 한 번 검을 나누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모두 단장님 덕 분입니다.”
“제 가 뭘 했다고 그러십 니까. 오히 려 감사 인사는 카일 형제님 께 드려 야죠
” •
“그렇군요. 작은 도련님께도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허허허.”
인자한 미소를 짓는 닐 영감.
조금 전 압도적 인 기세로 무시무시 한 싸움을 벌이 던 이 가 맞나 싶다.
“그러고보니 단장님도제국 10강이라고하셨지요?”
“네. 부끄럽게 나마 그런 호칭을 달고 있습니 다.”
“혹 시간적 여유가되신다면 존 나센에 한 번 방문하시지요.”
“아…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제가교단에 소속되어 있는몸이라서. 할 일
이 많아 개 인적 인 이유로 몸을 빼 내 기 가 조금 난처한 상황입 니 다.”
“허허. 강요하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단장님을 위한 말씀입니다.”
자신을 위한다는 말. 닐 영감의 그 대답에 프리실라가귀를 기울인다.
“얼마 전 검을 휘두르시는 걸 보니 답답하신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습니
까?”
“•••보이셨습니까?”
“이 노인네가 그런 경지에까지 오르지는 못 했지만, 대신 옆에 그만한 경 지를 이룩하신 분들이 몇몇 있으셔서 말입 니 다. 가끔 그런 답답함을 보이 실 때가 있었지요.”
닐 영감의 말에 프리실라는그 누구가누구인지 예상이 갔다.
열에 아홉은 존 나센 남작, 그리고 그 후계자인 리어가 될 터.
‘제국의 평가에 의하면 10강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강자라고했지.’
누구는 자존심 상해할수도 있지만 프리실라는 아니었다.
10강이라는 인간을 벗어난 범주의 강자들이 존재하는데.
그 10강조차 압도하는 강자는 왜 존재 하지 않겠는가.
“제 가 모시는 분들은 그 답답함을 오래 지 나지 않아 뚫고 나가셨습니 다. 어쩌면 단장님도 아주 작은, 그러나 또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으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인자한웃음과함께 말을 끝낸 닐 영감이 고개를 숙인다.
조금 더 쉬 다 가라는 제 안에도 괜찮다며 이대로 돌아가겠음을 밝힌다.
심 지 어 말을 내 어주겠다고 해도 그 또한 되 었다고 한다.
“제국 풍경도 볼 겸 유산소도 할 겸, 두 다리로 가겠습니다.”
이 곳과 아카데 미의 거 리 가 꽤나 될 텐데 , 그걸 뛰 어 가겠다니 .
심지어 한창 때의 젊은이도 아니고 백발이 가득한 노인이 말이다.
하지만 프리실라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바깥으로 내놓지 않았다.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저 노인은, 노인이지만또노인이 아님을.
“언젠가 또 한 번 뵙 기를 바라겠습니 다. 자,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 다.”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갈때도정말순식 간에 사라지는 닐 영감이다.
허허허!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지는데 어이가 없을 지경.
도대체 어디서 저런 괴력이 나오는 것인지,희대의 미스테리다. « ”
…-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프리실라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여태까지. 아니, 평생토록 동경할 인물인 조부를 찾아갔다.
“왔느냐.,,
아까 전의 그 전장을 호령하던 기사는 어디로 사라지고, 다시금 노쇠한 기 색이 역력해진 노인으로 돌아온 오토 프란츠.
하지만 그 눈빛은 여전했다. 오히려 전보다 훨씬 더 맑고 강렬해졌다.
“프리실라.”
“네,할아버님.”
“결정했다. 이번 년도 안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날 거다. 반드시 그럴 거야.”
“그러셔야죠. 무조건 그러셔야죠.”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찾아갈 거다. 닐. 그 사내, 아니. 이젠 그 영감인가? 아무튼, 다시 한 번 그 자를 만나러 갈 거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드시! 반드시 승부를 볼 것이야!”
오토 경이 껄껄! 하고 호탕한웃음을 흘린다.
얼마전까지 세월에 병이 더해져 골골거리던 모습은 전부 사라졌다.
이길 수 없음은 진작 알고 있다. 그럼에도 승부를 논하는 것은, 앞으로는 절대 약해지지 않을 거라는스스로에 대한 약속일 것이다.
“오늘 느꼈다. 아직 내가 죽지 않았음을. 강자를 앞에 두고서 미친 듯이 두 근거리던 이 심장. 얼른 싸우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르는 이 투쟁심! 그래. 이 오 토 프란츠! 아직 죽지 않았어 !”
주름이 가득한 손으로 강하게 주먹을 쥐 면서.
한 때 휘하 기사들을 호령하던 그 강인한 목소리를 내면서.
저물어가던 노기사는 다시 한 번 예기를 세운다.
“네. 그러세요, 할아버님. 꼭 그러세요. 닐 영감님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러겠지! 그 영감도 놀랄 거다! 내가 보다 더 멀쩡해진 모습으로 돌아간 다면! 분명 그럴 거야! 껄껄껄! 기다리시게, 닐! 내 조만간 다시 만나러 감세!”
세 상이 다 떠 나갈 듯 호방한 웃음과 함께 스스로에 게 약속하는 오토 프란 츠.
그런 조부를 따라 미소를 지으면서, 프리실라는 기쁨의 눈물을 삼켰다.
‘존 나센. 존나센이라.’
궁금하기는 했으나 굳이 방문해볼 필요성은 느끼지 못 했다.
더 강해지곤 싶으나눈앞에 놓인 일들이 워낙 많았기에.
누군가를 이끈다는 것, 어떤 일에 책임을 진다는 것, 참으로 힘든 일이다.
거 기 에 휘 말리 다보니 마음 놓고 단련을 하는 것도 어 려울 지 경 이 었다.
하지만 오늘 따라, 진심으로 그곳을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그곳은 대체 어떤 곳인지. 어떤 이들이 사는곳인지.
무엇이 특별하기에 강자들이 이리도 선망하는 것인지 !
‘•••맞아. 생각해보니 성녀님께서 존 나센에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교황 성 하께 말씀 드릴 거 라고 하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