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 속 전투종족-116화 (116/318)

熲 116화 嗲노력이 부족하다! 부족해!!

세 번, 딱 세 번이 전부였다. 공방을 주고받은 횟수. 단 세 번.

다른 이들 같았다면 몸풀기 수준에도 못 미치는 횟수에 불과했을 터다.

하지만그세 번 만에 이안은 자신과 카일의 격차를 다시금 깨달았다.

‘역시, 아직 멀었다. 나는, 멀어도한참멀었어.’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자존심이 상해서,한번 더 달려들었을 것이다.

분명하다.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패배를 인정하지 못 했을 거다.

그 알량한 자존심, 자부심, 그래. 그것들 때문에 말이 다.

“더 할건가요?”

앞에 선 카일의 물음에 이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본인의 수준을 확실히 알았다. 또한 넘고 싶은 산의 높이도 절실히 깨달았 다.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이를 악물고 또 도전했을 테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것이 미련한 짓임을 안다. 그저 오만함임을, 멍청한 자의 객기임을 안다.

자리에서 일어난이안은후우, 하고숨을 내뱉었다.

그동안 가슴에 지니고 있던 무거운 무언가 조금은 줄어든 느낌 이다.

패배를 당한 것 치고는 크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얻은게 아예 없는건아니다.’

보다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가 어떤 곳에 서 있고, 상대는 또 어떤 곳에 서 있는지.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더 노력해야하는지!

“잠깐이지만 어울려주어서 고맙다, 카일.”

“별 거 아니었어요.”

얌전히 물러나는 이 안을 바라보며, 카일은 생 각했다.

역시 주인공이다. 다른조연이었다면 악에 받쳐서 다시 달려들었을 텐데.

제 패배를 인정하지 못 하고, 자존심을 버리지 못 하고 미련한 짓을 반복했 을텐데.

그 짧은 사이 에 성 장하여 다음을 바라보는 시 야를 가지 게 되 었다니.

‘존 나센 사람들이 보면 좋다고 박수라도 치겠네.’

바람직한 변화를 보인 자에게는 그만한 박수를.

그렇지 못 한 자에게는 유감스러움을 담은 매 질을.

존 나센의 모든 이들이 사람다운 사람임은 바로 그런 행동 양식 덕분이었 다.

“다음. 레토.”

“•••예?”

“뭐해요. 얼른 앞에 안서고.”

“저, 저까지 말입니까? 저는 아무런 말도 ••.”

“그냥 오는 기회 가 아니 에요. 잔말 말고 빨리 서요.”

그러자 레토가쭈뼛거리며 실외 연무장 가운데에 선다.

딱봐도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심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안 잡아먹어요. 뭘 그렇게 긴장해요.”

“잡아먹지는 않지요. 그런데 잡아먹을 듯 몰아붙이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카일.”

오호. 이제는할말 망설이지 않고 잘만하네?

여태까지 행동이고 말이고 자꾸 내보이지를 않아서 답답했는데.

“오늘은 달라요. 손도, 발도 안 쓸 겁니다.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으면 돼요.”

“뭐를 던진다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죠.”

“던지면 피할 수는 있고요? 못 할 거 같은데.”

카일의 말에 끄응, 하고 침음을 흘리는 레토였다.

“난분명 말했어요. 가만히 서있기만하라고. 아,괜한걱정은하지 마요. 이 쪽도 그냥 가만히 서 있기 만 할 거 니까.”

“대체 무슨 말을….”

채 말을 다 끝맺지 못 하고, 레 토가 그대 로 자리 에 얼어 붙는다.

동시에 뒤에 얌전히 서있던 이안까지 대번에 안색이 굳어서는 바짝 긴장 한다.

레토를 바라보고 있는 카일에게서, 심상치 않은 무언가 흘러나온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절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당장 도망치고 싶은 무언가.

그런데 또 정작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할 수 없는 것이 기도 했다.

‘뭐뭐야.’

‘미친.’

미친 듯이 내리치는 벼락을 보는 것 같다. 거대한 화마를 앞에 둔 것 같다.

사람으로서 감히 항거할수 없는, 괴기스러운 무언가를 마주한 느낌이다.

그제야 레토는 이해할 수 있었다.

카일이 자신더러 왜 가만히 서있기만하라는 말을 했는지.

아무 것도 쓰지 않을 터 이 니 그냥 버티 라고 했는지 말이 다. 널

‘마침 오늘 상황이적절했지.’

아까 전 일만 떠올리면 아직도 분노가 타오른다.

약쟁 이들 놓친 것, 그 이유가 고작 몬스터 따위에 게 막혔다는 것.

무엇이 되 었든 속 터지는 소리 다. 복장 뒤 집 어 지는 이유다.

덕분에 감정선을 이끌어내는 게 무척 편했다. 아주 자연스러웠다.

떠올리기만해도 짜증과 분노가 무럭무럭 치솟으니 말이다!

“어으….”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이안과는 다르게, 레토는 많이 힘겨워 했다.

몬스터와 드잡이질을 벌이고 스스로 방랑 생활을 하며 그래도 적응이 된 이안과는 다르게.

최고의 근무조건이 조성된 대공가에서 지냈으니 당연한결과였다.

‘이런 건 어디 소년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었어.’

살기라고 했던가, 아니면 무슨 압박감이라고했던가.

아무튼 상대방의 기세가확 바뀌면서 그 앞에서 버티는 장면이 있었다.

만화니까, 만화이기에 그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여겼었다.

아무리 사람이 무서운 표정, 기세를 내보여도 같은 사람이 어찌 꼼짝도 못 할까.

단순히 겁을 먹는 게 아니라 아예 움직이지도 못 할 정도로 마비가 될까 싶었다.

‘그런데 짜잔.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아직도 그 당시의 상황이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그 어떤 악몽보다도 더 무섭고, 어떤 재앙보다도 더 두려웠던 그 장면.

새로 들여온 기구가 사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냥 거치대에 불과했을 때.

존나센 남작, 자신의 아버지가짓던 얼굴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무 효과도 없는 기구였다. 덕분에 이거 하느라 시간 버리고, 근손실도 났어.”

악귀도 그런 악귀 가 없었다.

아니, 오히 려 악귀 가 그 모습을 보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 칠 것이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냐고. 사탄보다 더 한 놈이 여기 있다고 외치면서 !

그 앞에 서 카일은 물론이고, 같이 운동하던 리 어도, 레 아도, 그리고 성 사람들도.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던 쇠질을 멈추고 존 나센 남작의 눈치를 보았다.

그 존 나센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단련을 멈추지 않던 이들이 말이다 !

그만큼 존 나센 남작이 짓고 있던 표정은, 내뿜고 있던 기세는, 사람의 것 이 아니었다.

바로그때 알았다.만화에서 보던 게 그저 허구가아니었음을.

눈빛으로, 표정으로 사람 하나 죽일 수 있다는 게 가능함을.

“끄, 끄으….”

당시의 상황과비슷하게 재연하는건, 어렵지 않았다.

좋든 싫든 결국 자신은 존 나센의 사람이 니 까. 존 나센 남작의 아들이 니 까

“허, 허억….”

버텨라, 버텨. 레토. 남자라면 두 다리에 힘 빡 주고 버텨.

육체의 고통은 이제 익숙하잖아. 그렇다면 마음도 단단해질 수 있어.

고통에 대 한 두려움이 적 어 지 면 적 어 질수록 용기 가 생 기 는 법 .

이미 충분히 맞고또 맞으면서 저도모르게 고통에 대한 면역이 생겼을 거 다.

그렇다면 고통도 없는 이까짓 두려움, 충분히 버틸 수 있다.

‘흠.’

슬쩍 레토의 상황을 살펴본다. 예상보다 더 잘 버티고 있는 중이다.

당장이 라도 게 거품 물고 기 절할 줄 알았는데 . 다리를 후들거 리 며 주저 앉 을 줄알았는데.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용케 힘은 주고 있다.

이 상태에서 조금만 더 진지한 표정을 지어볼까 생각도 했다.

그 로이더들을 끝내 붙잡지 못 하는 상상을 하면 될 듯 하다.

하지 만 그리 했다간 정말 보기 흉한 상황을 목도할 수도 있다.

이쯤하자. 그래. 이 정도면 일반인 치고 충분히 버텼다.

레토의 존엄성도 지켜줘야지. 여기서 강제로 흑역사를 만들기는 좀 그렇 다.

일그러져있던 표정을 천천히 원래대로 돌린다.

머릿속 가득하던 연합의 일과 마티유의 말들을 애써 밀어둔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던 기운까지 깔끔하게 치워낸다.

“…허억! 헉!”

풀썩!—

그제야 레토가 자리에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내뱉는다.

뒤에 서있던 이안 역시 시퍼렇게 질려가던 얼굴빛이 제 상태로돌아온다.

“어때요, 레토.”

“에,예?”

“제 가 끝내기 전까지 제자리에 서있었나요?”

카일의 물음에 레토는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서있었나? 시작은분명 그랬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리에 감각이 없다. 아니,조금 전의 기억 자체가 없다.

마치 예리한무언가에 한무더기로뭉텅 잘려나간 것 같다.

극한의 공포와두려움에 내던져진 사람의 무의식적 망각.

그것이 레토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자, 잘 모르겠습니다. 카일. 제 가, 제 가 서 있었나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곤란한데요. 다잡았어야죠. 몸도, 마음도.”

“그게… 어떻게….”

“사실잘 버텼어요. 제법 많이요. 그렇죠, 이안?”

이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대로, 레토는 버텼다. ‘겨우’ 이긴 했지만, 어찌 되 었든 버텨냈다.

“아직 부족해요. 더 몰아붙여요.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무슨 일이 닥쳐도 하던 운동부터 다 하고, 그 다음에 해결할수 있 도록.

거 기서 왜 운동 이 야기 가 나오냐고 묻고 싶었지 만, 참았다.

그랬다간그대로 카일의 매콤한주먹 한 대가 날아들 것 같았다.

“노력이 부족해요.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 이안, 당신도 인정하죠?”

•••인정한다. 더힘내야겠지.

“레토 당신도요. 이안처럼 못 할 거면 최소한 정신은 살아있어야죠. 안 그 래요?”

“그,그런것 같습니다.”

분명 본인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한 것 같은데.

또 카일이 저렇게 말하고 있으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카일이 이룩한 경지 가 매우 높기에 ? 아주 강한 사내라서 嘗 아니, 그게 아니 다.

“사실 있잖아요. 내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요. 진짜, 갑자기 눈이 돌아서 무 슨 짓을 저지를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노력해 서 그만큼 더 빠르게 진전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조금은 행복해 질것도 같은데.”

하다못해 우리 성녀님도 푸쉬 업을 열다섯 개나 하고 있는데.

남자 자식들이 아직도 이렇게 비실거리면 어쩌냐. 이 웬수들아.

톞주도 아니고 세 달이 지났으면 이렇다 할확실한 진전을 보이란 말이야.

그게 트레이너에게 보여줄 수 있는 회원님의 가장큰 정성이라고.

웃고는 있지만, 전혀 웃는 게 아닌 카일을 바라보며.

이 안과 레 토는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고개 를 끄덕 였다.

항상 착하기 만 할 것 같던 카일에 게 서 , 악귀 가 보이는 순간이 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