熲 90화 >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끝났군. 강자들의 대결 치고는, 참으로 빨리 끝났어.
언덕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던 슈렐리츠 대공은 그리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니 주변 기사들이 일제히 뒤를 따르고, 곧 지휘관들이 모여든 다.
“대공 각하.”
“어찌되었습니까?”
어찌 되긴 뭘 어째. 다 끝나버렸지. 대공이 속으로 그리 중얼거린다.
전투를 바로 앞에 둔 제국군이 뜬금없이 이런 곳에서 머무르고 있는 이유.
존나센의 세 남매에게 강력한요청을 받아군단을 뒤로 물렸었다.
혹 연합이 압박을 받을 수도 있으니, 도발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 그리 해달란다.
심지어 말이 좋아 요청이지, 거의 요구라고해도무방할 정도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슈렐리츠 대공에게 군단을 물리라는 요구를 하다니.
황제나 같은 대공이 아니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전쟁성의 핵심 세력은죄다슈렐리츠 출신, 거기에 대공 자신도 손에 꼽히 는지휘관.
이런 자 앞에서 군권에 영향을 가하려는귀족이라니, 믿을수 있을까.
그러나 슈렐리츠 대공은 그들의 뜻에 따라 군단을 최대한 먼 거리로 물렸 다.
황제의 명령권을 지 니고 있기도 하지 만, 그보다는 강자에 대한 대우를 한 것이었다.
더하여서 물리지 않는다면 이들이 무슨 불편함을 내비칠지도 걱정되 었고 말이다.
‘그 때문에 자세히 눈에 담지는못 했지만….’
먼 곳에서나마 본 것으로 충분했다. 기세를 읽고, 마나의 흐름을 느끼고, 그것으로 족했다.
평 범 한 병 사들, 그리 고 중간 수준의 지 휘 관들이 야 아무 것도 모르겠지 만.
자신이나검의 형제 기사단은 저들의 싸움이 시작된 때부터 끝이 난순간 까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무언가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또 감탄을 흘려야만 했다.
강하다, 라는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인간이 아니다.’ 라는 말이 어 울릴 거다.
처음 나섰던 삼걸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 둘은 분명 무언가를 사용했다.
제국의 10강보다도 더 강한 마나의 흐름을, 기세를 확실히 느꼈다.
그들을 상대하였을 때 과연 얼마의 피해가 나겠는가, 10강의 안위 가 보장되겠는가.
그러한 부분들을 고려하였을 때 그 슈렐리츠 대공조차 확답을 내릴 수 없 을 정도였다.
정작 존 나센의 삼남매는 웃으면서 그 셋을 말 그대로 두들겨 팼지만 말이 다.
“슬슬 준비하지.”
“전투준비 말씀이십니까?”
“아니. 연합측에서 바로 항복 의사를 표명할 것이다.”
“•••예?”
저 걸 보고도 항복을 안 하면 미 친 거 다. 아니 , 미 친 것도 아니고 그냥 자살 희망자다.
강경파의 논리가 무엇인가. 설령 이길 수 없다고 해도 최대한 많은 피해를 주자.
그래서 우리를 지워내려면 제국 또한 엄청난출혈을 각오해야 할 거라 알 려주자.
연합의 처절함을 각인시켜 제국 내부에서부터 전쟁에 회의적인 주장을 생기게 하자, 이거다.
과거부터 제국에게 당한 게 너무 많은 연합이다. 잃은 게 많은 자들이다.
그렇기에 연합 내 강경파는 도저히 사라질 수 없는 파벌이다.
하지 만 그것도 어느 정도 감당할 수준이 되 어 야 외 칠 수 있는 것이 다.
지금처럼 그냥 웃으면서 때려 부수는 자들 앞에서는 대들어봤자 아무 소 용이 없다.
저들은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자고 하면 ‘좋다!’ 하면서 더 달려들 괴물들 이니까.
싸움의 와중에 흘리는 피는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결실이라고 하며 만족 할이들이니까!
“대공 각하. 정말로 연합이 항복을 하겠습니까?”
“먼저 기습을 가하는, 제국에 감히 적의를 들이민 자들입니다. 제국이 어떤 처우를 결정할지 뻔히 알 텐데 과연 그리 할까요?”
“최고로 잘 드는 칼 세 자루를 전부 날려먹었는데, 누가 더 싸우려고 하겠 는가.”
심지어 그 칼을 부러트릴 수 있었음에도, 그냥 이만 상하게 하고 말았다.
다시 한 번 예기를 갈무리해서, 날을 잘 세워서, 또 덤벼보라고.
존 나센은 연합에게 그리 부탁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부탁이 아니라 요구이려나.
“어찌 매듭을 지을지 그대에게 일임하겠네. 다만, 너무 거칠게 대하지는 말게.”“승자의 자비나 여유 따위가 아니야. 나또한 이번 기회에 연합을 없애
버리고싶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 이리 하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 야.”
처음에는 황제 가 왜 그런 서신을 보냈는가 싶었다.
그렇게도 연합을 싫어했고, 또 지도에서 지워버리고 싶어 했던 양반이.
왜 이제 와서 거칠게 대하지 말라는 말까지 남기는 것일까.
연합을 지워서 얻는 이득보다, 조금 더 존속시켜서 얻는 이득이 더 크다는 것인가.’
대체 그 이점이 무엇일까, 조금 전까지 고민하던 슈렐리츠 대공.
그에 대한 답은 머지 않아서 곧 알 수 있었다.
“연합이라는곳, 엉망이긴 해도 괜찮은 사람도 있더군요!”
피투성이가 되 었음에도 얼굴 가득 환한 웃음기를 띠고 있는 레 아 존 나센.
그뒤에 선리어존 나센도 은은한 미소를 짓고서 입술을 뗀다.
“10강 말고도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더 있다니.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기 가 막힌 탄식을 흘리며, 슈렐리츠 대공은 고개를 돌렸다.
피투성이가된 채로헤헤 웃고 있는존 나센의 남매들이다.
으레 할 법한 전공 자랑 따위 가 아니 다. 그냥 싸울 만한 강자를 또 만나서.
그래서 하하호호 하고 있는 저들이 솔직히 말해서. 아주 조금은, 무서웠다 •
“형님, 누님. 얼른 가서 피부터 닦으세요. 상처도좀확인하시고요.”
“어머, 카일. 누나걱정해주는 거야? 누나가 쓰러질까봐?”
“아뇨. 그냥 보기 흉해서요.”
다행히도 존 나센 가문의 막내 라는 카일은 그나마 정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카일을 바라보며 바로 저 청년이야말로 유일한 희망이지 않을까, 대공 은그리 생각했다.
널
정해진 시간이 되기 전에, 마티유는 약속대로 수뇌부를 이끌고 왔다.
그리고 슈렐리츠 대공 앞에 무릎을 꿇고 정식으로 항복을 청했다.
원래 수뇌부의 인원은 그가 끌고 온 숫자보다 훨씬 더 많아야 했다.
문제는 그 수뇌부의 반 이상이 항복을 결사반대하던 강경파들.
敢만의 목숨을 무슨 셈법 하듯 정리하고 있는, 근거 없이 목소리만 큰 자들 이었다.
그 강경파들이 하도 지랄을 해대니 마티유의 분노가 폭발한 건 당연한 일.
권력이 크든, 목소리 가 크든, 결국 중요한 것은‘힘’ 그 자체 다.
비록 카일에게 대패했다고는 하나 삼걸은 삼걸, 마티유는 대적 불가의 강 자다.
결국 항복에 반대 하는 수뇌 부의 강경 파와 그 휘 하들을 모조리 제 압한 후.
마티유는 나머지 인원들을 이끌고서 존 나센과의 약속을 이행했다.
“어서들 오시게.”
슈렐리츠 대공은 그런 연합의 인사들을 적당히 대우해주었다.
먼저 뒤통수를 친 연합임에도, 대우를 해주니 마티유를 따라온 온건파들 은얼떨떨한모양.
당장 이를 갈며 연합의 무장 해제와 치욕적인 항복을 요청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노린 거죠.”
호록—.
친히 대공이 내어준 지휘관 막사에서 몸에 좋다는 차를 마시며, 카일이 중얼거린다.
“그게 무슨 말이니, 카일?”
“황제요. 힘으로 다 취하면 골치 아프다는 걸 아는 거예요. 심지어 제국군 의 힘으로 밀어버린 것도 아니고 그냥 저랑 형님, 누님이 나서서 찢어버렸잖 아요? 그 상황에서 연합을 취해봤자 얼마 가지 않아서 내부에서 온갖 잡음 이 생길 거라는 거죠.”
그럴 바에 차라리 연합의 내부에 거대한균열을 일으키자.
마침 존나센이라는 최고의 정과 망치가특별히 나서주었다.
그걸로 구멍을 내고 시간을 두면 알아서 금이 가고, 마침내는 갈라질 것이 다.
바로그때 제국이 진입하면 아주 부드럽게, 든든히 다먹어 치울수 있다.
황제는 아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냥 제국이 전부 밀어버리면 안되는 거야?”
끄덕끄덕-.
물론 레아나 리어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음.”
잠깐 생각하던 카일은 제 형과 누나가 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를 내세 웠다.
“제국도 생 각보다 약하니 까요?”
“아하. 하긴.”
“이해했다. 아직 약하긴 하지.”
아마 황제나 대공들, 그리고 10강들이 들었다면 펄쩍 뛰 었을 지도 모른다 •
제국에게 당한수많은 국가들과 실력자들도 길길이 날뛸 수도 있는 이유 다.
하지 만 존 나센이 고개를 끄덕 이 면, 그게 맞는 말이 다. 같이 고개를 끄덕 여 야한다.
안 그러면 친히 그 고개를 뽑아버 릴 수도 있는 위 인들이 넘쳐나니 까.
“그러면 이제 어쩌시는 겁니까? 다끝난 것 같은데.”
“그 악독한 것을 절대 만들지도, 생각조차 하지도 않는다고 약속을 했지 않느냐.허면 그걸 믿고 이제 그만 고향으로돌아가야겠지.”
“•••거짓말일 수도 있을 텐데요. 안심을 하려면 아예 연합 전부를 직접 다 둘러봐야 하지 않을까요. 저 는 그래 야 한다고 생 각하는데.”
카일의 의견에 리어는 고개를 내저었다.
“한다 했으면 믿어주는 거다. 그래서 잘 이행하고 있으면 좋은 거고.”
“만약 아니면요?”
“아니면 그때 또 찾아가서 뒤엎으면 되는 거 아닐까, 카일!”
그 말에 카일은 생각했다.
혹시 이 인간들, 합법적으로 깽판치고 싶어서 여지를 남겨두는 건 아닐까.
운동만하다보니 몸이 쑤셔서 가끔 내려와서 풀고 가는 거로 말이다.
“물론 철저하게 확인은 할 거야.그래 해달라고 요구도 할 거고. 이번 일은 존 나센으로서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고향 사람들도 그리 생 각할거 야.”
“누이 말이 맞다.또다시 일이 벌어지면,그때는 더 많은존 나센의 사람들 이 내려오겠지.”
•••제국과 연합이 눈에 불을 켜고 증폭인지 폭주인지 죄다 박멸할 것 같다.
지금도 감당이 안 되는데 존 나센이 더 몰려온다? 악몽도 그런 악몽이 없 을 것이다.
“카일.”
“네,형님.”
“다행이다.”
“•••예?”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카일이 두 눈을 껌 뻑 거리 며 다음 말을 기 다리 니 레 아가 카일의 머리를 쓰 다듬는다.
“오라버니가그동안네 걱정을알게 모르게 많이 했거든.우리 막내,정말 괜찮을까 하고. 나도 괜찮은 척 하면서도 솔직히 걱정이 되 었는데 오늘 보니 이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누이 말대로다. 카일. 오늘 정말 대단했다. 무척 잘 싸웠다. 부모님께 꼭 말씀드리 마.
규격 외 의 강자와 싸운 걸 부모에 게 자랑이 라고 말하는 이들은 존 나센 밖에 없을것이다.
조금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카일은 제 형과 누나의 말에 웃어버리고 말았 다.
이런 방식 이 존 나센의 방식 이자, 그곳의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