熲 52화 >신께서 속삭이시길, 운동 좀 해라
“오늘 나들이 가 즐거우셨을지 모르겠어요.”
“즐거웠고 말고요. 요 근래 가장 즐거운 주말이 었습니다.”
귀중한 토요일을, 일주일에 단 이틀 밖에 없는 주말 중 하루를 소비했다.
거 기 에 운동도 제 대로 못 했으니 원래 라면 불안감이 치솟았을 터 다.
하지 만 교단에 서 생 각지 도 않은 대 련을 하게 되 었다.
그것도 예상치 못 한 기습이 아니라 서로가 마주 보며 정체를 밝히고 겨루 었다.
심장의 울림, 그뜨거운고동, 쏜살같이 내달리는 혈류, 거친 숨결.
최선을 다해서 겨루었고 미약하게나마 승기도 어느 정도 가져오기도 했 다.
단련도 좋지만, 그 단련의 결과를 시험하는 자리야말로 진정한 천국이다.
.
존 나센의 의지는 오늘 하루 그 어떤 운동도 못 했다는 걱정을 전부 지 워버렸다.
‘빈말이 아니 야. 진짜 아까 대련만 생 각하면 가슴이 다 웅장할 지경 이네.’
아직도 당시의 대련만 떠올리면 온몸이 저릿저릿 울린다.
근육들이 아우성을 지르며 어서 또 싸우자고 난리를 치고 있다.
팽팽히 당겨진, 날이 선 정신은 어느 강자 앞에서도 기세를 잃지 않을 거다.
도대체 왜 존 나센의 사람들은 힘을 기르지 못 해서 안달인가 싶었다.
전투 이야기만 나오면 세 살 먹은 어린 애들이 되어서 눈을 반짝인다.
그렇다고 또 여기저기 들이치면서 깡패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고향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어서, 그래서 탈출 각을 쟀던 것 인데.
‘이 게 이해 가 된다니. 나도 존 나센 사람 다 되 었구나. •••아. 원래 존 나센 사람이긴 하지만.’
이렇게 되니 율리 카와 다시 한 번 겨루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프리실라가 번쩍 이는 번개와 같았다면, 율리 카는 산사태 같았다.
정말 제대로 겨룬다면 오늘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즐겁지 않을까.
“도착했어요, 카일 형제님.”
성녀의 말에 카일은 창 바깥을 바라보았다.
오전에 출발하여, 다시 아카데미에 돌아오니 해가뉘엿뉘엿 저물고 있다.
다행히도 저녁 먹고 간단하게 운동 정도는 할 수 있을 듯 하다.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아뇨. 오히려 성녀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단의 사제 분들을 위해서 그런 선택을 내 리셨으니까요. 추기경 예하나 기사단장님 께 도 그렇고.”
“네! 제가 두 분께 잘 전달 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언제 한 번 또 교단 에 가시겠어요?”
“초대만해주신다면 얼마든지 그러겠습니다.”
당연히 가야지. 암, 가야 하고 말고. 가서 확인 할 게 많은데!
지금은 사제들 수준이 너무 처참해서 기본 중의 기본만 프리실라에게 알 려주었다.
일단 최소한의 근력과 코어 수준을 갖추어야 뭐라도 제대로 할 수 있으니 까.
그 외 에 헬스장으로 만들 건물과 그 안에 놓을 기구들도 차츰 갖춰 나갈 것이다.
얼마후에 찾아가서 그 상황을 보고 거기에 맞춰 프리실라에게 조언을 해 주면 될듯하다.
“그러면 먼저 가볼게요. 카일 형제님.”
“저 녁 기 도를 올리 셔 야 하는 모양이네요. 성녀님 ! 잊지 않으셨죠? 기도 후 에 뭐 하시라고요?”
“알고 있어요! 절대 안빼먹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다행히도 성녀의 근면성실함은 소설에 정확하게 기재되 어 있다.
즉 몇몇 사람들처럼 하라는 운동 안 하고 빈둥거리는 이는 아니라는 뜻이 다.
“ 아!”
먼저 예배당으로 가다 말고 갑자기 몸을 돌려서 다가오는 성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카일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찰나.
“카일 형제님!”
앞으로 다가온 성녀가 카일의 두 손을 와락 맞잡는다.
천천히 저물어가는 노을을 가득 받은 채, 밝은 미소를 짓는다.
“오늘 정말 멋지셨어요!”
“아… 예, 예. 감사합니다.성녀님.”
“앞으로도 쭉 멋질 수 있도록! 제가 열심히 기도할게요!”
그런 성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카일은 생각했다.
작가 이 새끼. 도대체 이런 성녀는 왜 조연급에 머물렀던 거냐.
너 성녀 안티지? 이런 시발! 작가가성녀 안티였던 게 확실해!
“또 뵐 게요, 카일 형제님. 마저 평 안한 주말 보내시 길!”
그리 말하고 도도도! 예 배 당으로 뛰 어 가는 성 녀 .
카일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성녀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아, 성녀님! 성녀님!!”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 세웠다.
“네에에?!”
“반대편! 반대편 !!”
“네에에에?”
“예 배 당 반대쪽이 에요! 거 기 가 아니 라 반대쪽! !”
생각해보니, 성녀는 운동치 만이 아니라 심각한 길치이기도 했다.
이 거 예 배 당까지 잘 찾아 갈 수 있으려 나 몰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내리기는 했는데, 길치는그래도 헤맨다.
날이 밝아도 헤매는데 어둠까지 깔리니 더더욱 걱정이었다.
차라리 그냥 예배당까지 같이 가줄까, 그리 생각하다가도.
얼른 돌아가서 운동 루틴 한 번 돌리 겠다는 의 지 가 승리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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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여기가 어디일까요.”
카일의 걱정은, 안타깝게도 기우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예상대로 현재 성녀는 이상한 곳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안그래도 처참한수준의 길치인데, 날까지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래서는 10분이면 갈 거리를 한 시간이나 헤맬 것이다.
‘이상하네요.분명히 여기로 가면 예배당이 나왔는데?’
안되겠다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다행히 저 멀리 몇몇 학생들이 걸음을 옮기는 게 성녀의 눈에 들어왔다.
“저기!….”
“성녀님.”
막 사람들을 부르려는데, 뒤에서 갑작스레 한목소리가 툭 떨어진다.
화들짝 놀란 성녀 가 고개를 돌리 니 ,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건 여 인의 붉은 눈동자였다.
때마침 마법이 발동되며 가로등들이 일제히 점화된다.
덕분에 성녀는 그 다음으로, 타오르는 불꽃 같은 머리칼도 함께 눈에 담았 다.
‘이 자매님은….’
붉은 머리야 아카데미를 찾아보면 여럿 있다.
하지 만 지 금 보는 여 학생 처 럼 , 찬연하게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머 리 는 찾 기 힘들다.
거 기 에 붉은 눈동자는 더더욱 그렇다. 딱 한 가문의 직 계들만 지 닌 조합이 다.
“리토리오대공가….”
“네.대공가의 엘가블레스데 리토리오라고 해요. 아까오전에도한번 뵈 었죠.”
엘가는 그러고는 성녀의 행색을 살짝 살폈다.
“교단에서 지금 막 돌아오신 모양이네요.”
“네 ? 아, 네. 지금 막 돌아왔답니다, 자매님.”
“좋네요.혹시 성녀님, 잠깐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성녀가 살짝 난처한 기색을 보인다.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는 건 그녀의 성격에 맞지 않는 일.
하지 만 시 간이 늦어서 이 러다간 저 녁 기도 시 간을 놓칠 수도 있다.
« ” …-
그런 성녀의 속내를 눈치 채지 못 할 정도로 엘가가 미 련하지는 않다.
재빠르게 최선의 협상 카드를 골라낸 엘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예배 당으로 가시는 모양이 네요. 같이 가드릴 테니 그동안 이 야기를 나누 면 될듯한데.”
“아!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녀 입장에서는 예배당으로 안내를 받고, 부탁도 들어줄 수 있으니 참 좋 은제 안.
아마 카일이 옆에 있었다면 ‘훌륭한 협상의 자세다.’ 라고 엘가를 칭찬했 을 거다.
“카일은 먼저 돌아간 모양이네요.”
뜸 따위 들이지 않는다.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러니 용건부터 간단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묻는다.
“갑자기 카일을교단에 초대하실 줄은몰랐습니다, 성녀님.”
“카일 형제님은 좋은분이니까요!”
“•••그렇죠. 좋은 사람이죠.”
나와는 다르게,그는 참 좋은 사람이 야. 그래 서, 더 가지고 싶어.
내 옆에 있었으면 해.그리고 가능하다면, 나만을 위해서 좋은 사람이기를.
“그리고굉장히 멋지기도하세요! 정말! 너무 멋지셨어요!”
“멋졌다고요…?”
“네! 막 슈슉! 하니까 파팡! 하고 하는데!”
뭔 가 엄청 대 단한 걸 표현하고 싶은 모양인데,그게 잘 안 되 는 모양이 다.
덕분에 엘가는 그냥 본인의 상상력으로 성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떠올 려야만 했다.
“교단에 서 카일과 굉 장히 좋은 시 간을 보내 셨나 보네 요.”
나는, 나는혼자끙끙거리면서 카일, 당신이 돌아올때까지 기다렸는데.
당신은 모르겠지. 상상도 못 했겠지 . 내 가 이러고 있을 거라곤.
그런데 말이야.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어. 초조하게 누구를 기다릴 줄 은.
“네.프리실라 단장님이랑도,추기경 예하와도 같이 있었어요.”
“추기경과 함께… 말입니까.”
엘가의 물음에 성녀는 또 재잘재잘, 교단에서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았다.
카일이 사제들의 건강을 위한 방법을 생각했고 추기경의 허락하에 시작 할거라고.
그리 고 곧 사제 들을 위 한 특수한 장소도 만들 것 이 라고 말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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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말에 엘가의 머리가재빠르게 돌아간다.
누군가는 카일이 교단의 사제들을 생각해서, 추기경도 기꺼이 받아들였 다 여길 수도 있지만.
추기경이나 되는 인물이 외부인의 제안을 그리 빨리 수용한다? 그저 단 순한 호의 라고 보기 에는 너무 과해 . 분명 , 분명 뭔 가 다른 게 있어.’
엘가는 리토리오의 직계이다, 대공가의 여식이다.
그 안에 숨겨진 정치 적 인 의 도들을 읽 어내는 데 에는 도가 튼 인물이 다.
‘•••그런 건가. 카일의 호감을 사겠다. 하지만대체 왜?’
이유들은 몇 가지로 추려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엘가는또 한번 제대로된 대답을찾았다.
‘혹시 카일에게 은근히 제안하고 있는 건가? 거처를 정하지 못했다면, 교 단으로 오라고?’
카일은 존 나센 남작가의 막내 이 자 동시 에 둘째 아들이 다.
후계에서 밀려난 직계들은 얌전히 본가에서 지내거나, 아니면 가문을 떠 난다.
가족 간 다툼이 없다면 그냥 머무르는 게 보통이나 당사자의 의견이 있다 면 떠날수도 있다.
그리고 카일은, 존 나센에서는 거의 하지 않았던, 아카데미 행을 고집했다
•
이 렇게만 보면 충분히 가능성 이 있는 이 야기다.
사제들 중 몇몇은, 또 성 기사들 중 몇몇은 후계 에 서 밀려난 귀족 출신이 다.
“•••그래서요?”
그래서 카일 당신은, 그들의 제안을 수용하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어… 카일 형제님은 굉장히 즐거워 보이시던데요.”
성녀의 대답에 엘가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갑작스레 교단으로 초대를 받았다고 할 때부터 불안하다 싶 었는데 .
설마교단까지 나설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성녀, 당신. 설마 이런 목적으로 카일을…!’
엘 가가 막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로 쏘아붙이 려 는 찰나.
“아아! 그리고! 공녀님 이야기도 했어요.”
“•••에에?”
정작엘가의 입에서 튀어나온목소리는,귀엽게 띄워진 탄식이었다.
“카일 형제님이 엘가공녀님 칭찬을 막하더라고요.추기경 예하앞에서요 !”
« ” …-
엘가의 얼굴이 그녀의 머리칼만큼붉게 변하는 데에는, 몇 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