熲 49화 >신께서 속삭이시길,운동 좀 해라
“하아, 하아….”
프리실라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선다.
이렇게 몸이 지칠 때까지 검을휘둘렀던 게 대체 언제였던가.
까마득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그만큼 이례적인 일이었다.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검에 취해버렸다.
결투가 아닌 대련임에도 살초까지 섞는, 말그대로 미친 짓까지 벌였다.
상대측에서 당장 분노하여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쳐도 문제가 없을 터.
“후우.
그러나 자신을 상대했던 저 남자는, 존 나센의 카일은, 똑같이 숨을 고를 뿐이다.
맨손으로 검사와 상대하여, 그것도 제국 10강과 겨루어 여기까지 왔다.
대 단한 일이 다. 아니, 대 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해 도 한참 모자르다.
세상이 경악할 만한 일이다, 세상 사람들이 경외할 만한 일이다.
“더 오실 겁니까?”
카일의 물음에 프리실라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충분했다. 비록 아직도 더 검을 휘두르고 싶은, 검사로서의 본능이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겨우 돌아온 이성이 그녀의 검을 붙잡았다.
“다행이네요. 실은 저도 좀지쳐서.”
그리 말한 카일은 자리 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
어지간히 힘든 운동을 해도 이 정도로 지치거나 경련이 오지는 않는데.
그래도 명색이 제국 10강이라고, 프리실라와의 싸움은 엄청난 활동량을 채워주었다.
‘와. 이걸로 과부하 제대로 걸렸겠는데.’
뜻하지 않던 운동을 한 것 같아 절로 어깨춤이 나온다.
물론 ‘시발? 내가왜 즐거워하지?’ 하고 바로스스로를 타박했지만.
아무튼 이것으로 두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제국 10강은 역시 강하다는 것, 그리고 얼마 전 율리카는 전력으로 싸운 게 아니라는것.
‘율리카황녀는 얼마나 강하려나. 아, 갑자기 궁금해지네.’
프리실라의 검은 변화무쌍하면서도 부드럽고 우아했다.
얼마 전 겨루었던 율리카가 굉장히 투박하고 거칠었던 것과는 완전히 달 랐다.
그럼에도 몇 번의 공방이 끝이었다. 지금처럼,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게 아 니었다.
과연 그 율리카가 진짜 전력을 보인다면 또 어떤 싸움을 벌일 수 있을까.
그리 생각하니 카일은저도모르게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 같았다.
역 시 나 자리 에 주저 앉아 거친 숨을 내 뱉는 프리 실라.
그녀는 제 맞은편에 앉아 굉 장히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는 카일을 바라보 며 중얼거렸다.
‘•••할아버님. 이제야, 이제야 당신을 이해했습니다.’
만약 과거의 제 조부도 현재의 자신과 같은, 이런 싸움을 벌였다면.
이런 가슴 뛰는 결투가 다 있구나! 하고 감탄을 토해냈을 것이다. 확실하 다.
검사로서 절대 숨길 수 없는 본능, 꺾 이 지 않는 투쟁심, 그걸 자극한다.
그 앞에서 승리든 패배든, 그것들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리 가슴 뛰는 싸움을 또 언제 해보겠는가. 이리 즐거운 대결을 또 언제 할수있겠는가!
.
스윽—.
자리에서 일어선 프리실라가 천천히 걸음을 뗀다.
카일 또한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채고 몸을 일으킨다.
“카일 형제님.
바로 앞까지 다가온 프리실라는,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기 사단장으로서 , 제국 10강으로서 , 그리고 검 사로서 , 그 모든 자존심 을 내려놓는.
프리실라가보일수 있는 최고의 예우이자 감사인사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왜 그토록 동경했던 분이, 패배 앞에서도 후련하다 하셨는지.
나이를 드시고, 병환까지 얻으셨음에도, 꼭 다시 그들과 겨루고 싶다고.
그러지 않고서는 죽지도 못 하겠다며 기어코 일어나 다시 검을 잡으셨는 지.
프리실라는 비로소 자신의 조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 말씀을 해주시니 저도 기분이 참좋네요.”
미소를 지은 카일이 이번에는 먼저 손을 내민다.
그 손을, 프리 실라는 한 손이 아닌 두 손으로 맞잡았다.
“좋은대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굉장히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몸에 아주 제대로과부하가 걸렸거든요.오우, 근육쫙쫙 땡기네.
“아, 그리고 혹 나중에 시간이되신다면….”
프리실라가 카일에게 뭔가를 부탁한다.
그리고 카일은 잠깐 생 각하다가 고민해 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 였다.
널
“대 단하세요!! 정말 대 단하세요, 카일 형제님 !!”
대충 정리를 하고 마차 쪽으로 다가가자, 성녀가 깡충깡충 뛰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원래라면 바오로 추기경이 그런 성녀를 적당하게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추기경도 충격을 먹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정말로 프리실라 단장과대등하게 겨루다니! 이제 고작성인이 된 청년에 게!!’
존 나센이 강하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제국의 정복사업이 멈춘지 30년이 다되어간다.
그 긴 시간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존 나센에 대한 두려움을 흐리게 만들었 다.
어느 순간부터는 예전의 그 전설들이 과장된 것이라고 여기는 자들도 생 겨났다.
그저 황실이 포장을 한 것이라고, 설마 정말 그랬겠느냐고.
제국의 10강이 전부 몰려가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수 있을 거라고.
꽤나 많은 제국 사람들이 그리 생각한다고 들었다.
‘전혀! 말도 안되는 소리 ! 제국 10강? 그들 수준의 강자들로 일개 군단을 만들어 야 겨우 가능할 것이 다! 과장이 나 포장 따위 가 아니 었어. 오히 려, 오히 려 축소가 되 었다고 봐야 한다!’
사실 바오로 추기경이 프리실라의 청을 들어준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존 나센에 대한 약간의 의구심이 있어서 그렇기도했다.
그리도 강한 자들이 도대체 왜 그 촌구석 동네 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가.
제국마저 힘겹게 했다면 아예 그 일대를 다 정복하고도 남을 텐데.
고작 남작가라는 작위 하나만 받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 다!
라고, 바오로 추기경은은연중에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 그 생각은 산산조각이 났다.
아예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박살이 나서 가루가 되 었다.
“아, 아주 멋진 대련이었습니다. 카일 형제.”
“감사합니다,추기경 예하.저도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 와중에 또 기 분까지 좋단다. 얼굴 표정만 봐도 미소가 귀 에 걸릴 정도 다.
프리실라가 검을 들고서 싸운 것과는 달리 카일은 맨손이 었다.
그러니 더 큰 두려움, 더 거대한 압박을 느꼈을 것이 당연한데.
어찌 사람이 저리 태평할수 있단 말인가. 어찌 저리 즐거워 보일 수 있단 말인가!!
“피곤하지 않으세요, 카일 형제님? 제가신성력으로….”
“아아아!! 아닙니다! 절대 안됩니다!!”
“네? 왜, 왜요?”
“이 과부하를 느껴 야 합니다. 신성력으로 치유하면 다 날아간다고요.”
“에…? 무, 무슨 말씀이신지이해를못하겠어요…!”
성녀만이 아니라 추기경도 역시나 이해를 못 한 얼굴이다.
그에 카일은 그런 게 있다고 대충 둘러댔다.
어차피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확률이 거의 90퍼센트 이상이니까.
“아무튼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히려 …
” •
오히려, 이렇게 기분이 좋을 때 마무리하고 싶다.
이곳 교단까지 일부러 찾아온 이유. 사제들의 체력 실태 조사!
“추기경 예하.”
“네,말씀하시지요, 카일 형제.”
“몸을 썼으니 이제 마음을 채우고 싶습니다. 돌아가면 즉시 사제님들을
만나보고 싶네요.”
“아아 피곤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방금 전까지 그리 대련을하고….”
“가서 씻고 옷만 갈아입으면 괜찮을 겁니다. 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얼른 사제들 상태 좀 보고 싶은데,체력 좀 쓴 게 대수겠는가.
카일의 말에 바오로 추기경 짧은 탄식을 흘리고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정말이지 … 사람이 아니다. 프리실라 단장과 대련을 했음에도 저리 멀쩡하다니! 허풍이라고 해도 대단하다고 할 정도인데, 저건 아무리 봐도 허풍이 아니지 않은가!’
왜 황제가나서서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이들을 설득했는지.
야만족이 라는 자들에 게 제국의 귀 족 작위 까지 내 어주었는지 , 다시금 이 해하게 되 었다.
그것은 승자의 자비도, 강자의 아량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이상의 피해를막고싶은, 간절함이 담긴 소망이었다.
“추기경 예하! 저는 카일 형제님이랑 같이 돌아갈게요!”
“아… 네.그러세요.”
아마도 성녀는 카일과 더 많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모양이 었다.
조금 전 있었던 대련, 거기서 쏟아진 멋져도 너무 멋진 모습들.
딱히 몸을 움직이는 데에 재능이 없는 성녀로서는 무척 흥분되는 주제들 이었다.
“가요, 카일 형제님 ! 제 가 아까 형제님 이 어떻 게 싸우셨는지! 막 이렇게 주 먹을 슉! 슈슉! 하고 막는 거! 전부 알려드릴게요!”
“어 굳이 알려주실 필요가 있나요? 제가그 당사자인데요.”
“아니에요! 달라요! 카일 형제님은 당장의 싸움에 집중하시느라 모르셨 을 거예요! 아까 형제님이 얼마나 멋졌는데요! 성서에 나오던 용사만큼이나 멋있었다고요!!”
어디를 가나 용사가 존나 세 긴 하죠. 아니 면 용사도 존 나센 이 라던 가.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카일은 성녀를 따라 마차에 올랐다.
« ” …-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바오로 추기경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듣자하니 존 나센 남작가의 후계 자는 이 미 정해졌다고 했는데 .
허면 차남, 카일은 어찌 되는 것인가? 가문에 남는 것인가? 아니면 떠나는 가?
‘존 나센 남작가는 지난 30여 년 동안 제국에 제대로 섞인 적이 없었다. 장 자인 리어 존 나센이 아카데미에 왔었다고는 하나 교류보다는 이렇게 존 나 센의 직계를 아카데미에 보내는 것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게 더 강 했었지.’
장녀인 레 아 존 나센은 1년 만에 사고를 치고 가문으로 돌아갔다.
이후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존 나센의 제국 행이, 저 카일이라는 이로 재 개되 었다.
이것이 무엇을의미하는가. 어떤 바를뜻하는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바오로 추기경은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만에 하나 카일 존 나센이 이후의 거처에 대해서.
존 나센이 아닌 제국 어딘 가를 생 각하고 있다면.
그 거처가정말로 만에 하나, 이곳교단이 된다면?
‘더는 황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교단이 자립 할 수 있을 가능성도 생 기 지 않겠는가?’
바로 그순간, 바오로 추기경의 머리에 원대한 계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