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순순히 당해줄 생각이요? 없는데요?
릭 소어는 현재 상황에 대해 무척 화가 났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도련님을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서자는 놈들이었는데
•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갑작스레 돌변해서는 관두자고 강력히 의견을 제시 했다.
그러면서 이런 건 도련님도 원하시지 않을 거라는 이유를 들먹이는데.
덕분에 릭은 이것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알수 있었다.
‘존 나센의 카일. 그 놈이 무슨 수작을 부렸어.’
그리 생 각하니, 이건 오히려 좋은 기회 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존 나센이다. 수작질을 부려봤자 결국 협박이 전부다.
몸이 너무좋아서 생각이란 걸 안한다고하는데, 그런 존 나센이 뭘 하겠 는가.
해서 그들을 붙잡고 얼른 사실대로 말하라고 했다.
혹시 폭력을 휘둘렀냐고. 너희들의 육체에 심각한위해를 가했냐고.
그런데 돌아온대답이, 어이가 없다못해 심히 가관이기까지 했다.
‘안마라니. 빌어먹을, 그건 또 무슨 수작이 야.’
다른 이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 같이 안마를 당했다, 였다.
존 나센의 힘을 생 각해보면 그 안마도 확실히 위 험은 할 것이 다.
문제는, 대체 어느 이가 ‘안마를 당해 죽을 뻔 했습니다.’ 라고하면 고개를 끄덕이느냐는것.
당장 릭 본인도 그까짓 안마가 도대체 뭐 라고 이 리 얼어붙었어 ! 라고 소리 칠 뻔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직접 카일을 찾아가서 정확한 사정을 물어야겠다.
비록 힘으로는 카일을 넘어설 수 없으나 아직 아카데미의 시선은 곱지 않 다.
그 부분을 잘 이용하면 그를 압박하고 원하는 것을 이끌어낼 수 있다.
“지금 카일 존나센은실내 연무장에 있답니다.” 소식을 들은 릭은 바로 실내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시간이면 마침 그곳에 다른 여러 학생들도 있을 시간이다.
카일이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진작 확인했다.
그렇다면 그 타인들이 자신에겐 하나의 천연 방벽이 된다.
그곳으로 가서 강하게 항의를 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리라.
이 정도는되 어야미래의 대공이 되실도련님의 충직한수하라고할수 있
다!
미련한 너희들은 그까짓 힘에 굴복했으나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내 심 으로, 충심 으로, 그리고 귀 족으로서 의 자존심 으로! 이 겨 내 리 라! !
그리고 잠시 후.
“잘들어가세요, 릭 선배님.” “넵.” 물리 치료가 끝난 릭은 얌전히 제 방으로 돌아갔다.
과연 또 학장실에서 호출이 날아올까. 무슨 이상한 소문이 퍼지지는 않았 을까.
안마로 사람 괴 롭히는 안마 폭력배 가 나타났다는 말과 함께 말이 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되 어도, 별 다른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모두가 알아서 입을 다물고 얌전히 지내는 모양이다.
‘솔직히 물리 치료 좀해줬다고 질질 짜면서 다니는 건 모양 빠지니까. 거기 에 리토리오 가신단의 자제나 친척이라는, 무기일 수도 있으면서 동시에 족 쇄가 되는 것도 있고.’
형이나 누나 입장에서는 굳이 반응해야 하냐며, 성가신 일이라며.
그 시간에 운동 한번 더 하는 게 낫겠다며 대처를하지 않았을 거다.
비로 그것이 스노우 볼이 되어 구르고, 종국에는 아카데미 반파 사건까지 간거다.
원래 사람이란 게 정해진 선을 자꾸 뛰어넘으려고하는 동물이다.
처음에는 눈치껏 하다가도 반응이 없으면 괜찮네? 하고 더 세게 들어온 다.
그러 다가 선을 넘 어서 욕 엄청 먹 거나 아예 이승 하직하는 거다.
‘역시 물리 치료가 최고지. 그 다음은 금융 치료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헬스장을 벗어나는 카일.
아마 지금쯤이면 리토리오 대공가에 자신의 서신이 당도했을 것이다.
심혈을 기울여 한 글자, 한 글자 아주 온갖 정성을 다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반성. 그 정도면 판사님들도 너 감형! 해주실 거다.
하물며 리토리오는 공식적으로 그 일을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즉, 존 나센의 입장에선 사과를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
그럼에도 카일이 굳이 사과를 전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은근히 엘가의 위치를 조금 더 띄워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리토리오 대공에게 일러바치는 것.
‘엘가를 통해서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놈은 없 겠지. 정말모른다면 우리 리토리오 대공님께서 친히 모가지 비틀어서 대공 가 바깥으로 내던져 야 하고. 다만 걱정인 건 … 너무 대놓고 일러바친 건가 싶 은 그 부분인데.’
사과를 하니 이제 그만 경계와불신의 눈길을 거두어 달라는 문구.
이걸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넣어버렸다.
최 대한 완곡하게 써 서 눈치 가 없는 자라면 그냥 넘 어갈 수도 있다.
하지 만 상대 는 리 토리 오 대 공, 그 엘 가의 부친 이 자 제 국의 기 둥 중 하나다 •
그까짓 부분도 눈치 못 채면 대공 계급장 떼야 할 거다.
‘마치 그쪽 내부 정리 좀하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려나.’
찝찝하긴 했지만 결국 결론은 뭐 어때! 나도 피해자인데! 하는 마음가짐.
솔직히 리토리오 대공이 나서서 존 나센은 죄 가 없다, 라고 했는데 그 밑의 것들이 지랄이다?
당장 대공의 권위를 무시한 죄로 싸그리 잡아서 너 숙청을 먹여줘도 할 말 이 없다.
거기에 이건 엘가가은근히 원하던 일이기도했다.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것만큼 중요한 게 뭐다? 상대편 세력 깎아내 기다.
그런 상황에 그 일은 너무나도 좋은 명분이 될 것이 었다.
“카일.”
!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딱 엘가와마주치게 되었다.
뒤에는 여전히 레토가 따라붙고 있는데 카일을 보더니 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엘가의 관심을 빼앗아가서 그러는 거냐고? 아니, 설마.그럴 리가.
지금 저놈은 그냥 카일이 ‘약한놈’ 이라고 해서 기분이 상한 것뿐이다.
아무리 자신이 약해도, 그게 사실이라고해도, 남에게 직접 듣는 건 똑같이 기분 나쁘니까.
“본가에 서신이 들어갔어요.”
저번처럼 정원에서 잠깐의 티타임을 가지는 사이.
대공가의 공녀는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그리 중얼거렸다.
“반응은 어떻습니까?”
“모르죠. 아버지의 속내를 알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걸요.”
“그래도 대충 예상은하실 거 아닙니까. 대공의 따님으로서, 대공가의 공 녀로서.그리고 미래의 대공으로서.”
그러자 레토가슬쩍 인상을 찡그리며 입술을 달싹거린다.
아마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려는 모양.
거기에 대해 카일은 이렇게 대답해주고싶었다.
‘이 등신아.네가모시는분이 뭐 중립파수장이니? 어? 당장대공되고 싶 어서 안달이 난공녀님인데 그럼 거기서 중립 기어라도박고 있을까?’
이 러니까 시발, 회수가 400편을 가뿐하게 뛰 어넘지.
이 사람도 아닌 것들 사람으로 바꾸려면 400편이 아니 라 4천 편은 족히 필 요할 거다.
얼굴을 부여잡고 당장이라도 신을 찾고 싶은데, 엘가가 있어서 참는다.
조만간 저 자식도 물리 치료를 해줘 야 하나 싶기도 하고.
다행히도 레토가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그의 주인인 엘가가 미래의 대공, 이라는 부분에 아무 언급도 하지 않은 채.
뭔가를 골똘히 생 각하다가 막 운을 뗀 게 그 이유였다.
“글쎄요.굳이 예상해보자면… 제법이다, 라고생각하실 것 같네요.”
“불쾌한 게 아니라 제법이다, 라고요.”
“아버지는. 리토리오 대공께서는 그래요. 능력 있는 자의 오만은 그럴 만 한 이유가 있다고. 거기서 실패하고 넘어지면 그의 수준이 딱 거기까지인 거고, 그마저 넘어서면 이제는 오만이라 불러서는 안 되는 수준에 닿았다고 할 걸요. 항상 철저하게 능력을 따지시는 분이니까.”
정 말 그래 준다면 이 쪽이 야 환영 이 다.
사실 쓰다 보니 내가왜 이러고 있어야하나조금 짜증이 난 건 사실이다.
해서 굳이 안써도되는부분, ‘거 내부 관리 잘좀하시죠.’ 라는투를 넣었 다.
그런데도 불쾌해하기는커녕 제법이라고 여긴다니. 감사할 일이지.
“이걸로만족하십니까?”
“네. 당신은 누구 하나 다치는 일 없이 깨끗하게 걸림돌 치웠고. 나는 오라 버니의 사과를 대신 받아낸 공녀 타이틀을 얻었죠. 오히려 나는 당신이 걱정 인데요? 정말로 존 나센을 대표해서 사과를 해도 되겠어요? 후계자는 따로 있는걸로아는데.”
“걱정 마세요. 아버지도 형님도, 이런 일에 신경 전혀 안쓰니까.”
이런 이야기 해봤자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하고 다시 중량이나 치고 있을 거다.
가끔 보면 너무 자신을 믿는 것 같아서 걱정이기는 하다.
이러다가 자신이 무슨 헛짓거리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사실 헛짓거리 할 일도 없었다.
아버지고 형이고, 몸이 너무 좋아서 머리가 고생할 일이 없는 케이스니까.
“하실 말씀이 끝이라면 전 이제 가보겠습니다.”
오늘이다. 티샤에게 주술에 대한중요한서적을 찾아주는 날.
원래 나중에 이안이 찾아주는 건데 그냥본인이 하기로 했다.
그 답답이, 아가리 파이터, 어그로 깎는 장인에게 주긴 좀 아까운 이벤트 다.
아마 지금쯤이 면 티샤가 기 다리고 있을 것이 다.
오늘 만나자고 어제 말해두었으니 잊지는 않았겠지.
“왜 그리 급해요. 잠깐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지.”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마신 걸로 하겠습니다. 티샤가 기다리고 있어서.”
마지막 말, 티샤가 기다리고 있다는 부분은 일부러 말한 것이다.
티샤는, 그래. 받아줄 수 있다. 하지만 엘가는 좀 그렇다.
아름답고 머 리도 좋고 장차 대 공이 된 다면 권 력도 엄청 나게 쥘 것이 다.
바로그게 문제다. 이 여자는분명 자신을 이용하려고들 거다.
순수한 사랑이나 두근거리는 연애는 꿈도 못 꾼다.
‘정치판에 끼는 순간 이 힘은 독이 된다.’
이것저것에 묶이다보면 이 강력한힘은 족쇄가될 것이다.
해서 아버지도, 형도, 중앙 권력과는 아예 연을 끊은 거다.
청산에 살면 모두가두려워하는 용이 되는 거고, 정치판에 나서면 동물원 속 맹수가 된다.
카일.”
“네,엘가님.”
“여자 앞에서 다른 여자 이 야기를 꺼 내는 건 조금 그러네요.”
“티샤와 나름 친하게 보여서 그랬는데 …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물론 카일의 목소리는 ‘내가 정말죄송할 짓을 하긴 했나?’ 라는 느낌이 든 다.
그에 레토가 인상을 찡그리며 한마디 하려는데 엘가가그를 막아 세웠다.
“알겠어요. 이만가보세요.”
“좋은 티타임 가지시길.”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자리를 뜨는 카일이었다.
부디 엘가가 자신을 대공 자리 에 오르기 위 한 잠깐의 파트너 , 라고만 여 겨 주기를 바라면서.
널
« ” …-
찻잔에 담겨있던 차가 다 식어버렸다.
그러는동안엘가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아무 말이 없었다.
‘티샤한테 가야해서, 나와는 차 마실 시간조차 없다?’
차라리 다른 이유로 거절을 했다면 조금은 나았을 거다.
다른 여자를 들먹 이 다니 . 여태껏 한 번도 다른 여 자한테 밀린 적 이 없는데!
‘이러면 내가, 기분이 나빠서라도당신을 멀리 할줄 알았나보죠?’
엘가는 희미한 질투심을 머금은, 그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