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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 속 전투종족-21화 (21/318)

<21화 > 폭풍은두번친다폭풍은두번친다

“그여자랑, 무슨 관계죠?”

엘가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순간, 카일은 어? 하고 탄식을 흘렸다.

뭐지? 왜 저런 대사가, 저런 위험하기 짝이 없는 대사가 엘가의 입에서.

그것도 다름 아닌 자신을 앞에 두고서 덜컥 튀어나오는 것이지?

‘•••아니지? 아니 죠, 공녀님? 진짜아니죠?’

눈치 제로, 정신적 고자가 패시브인 남캐들과는 다르게.

카일은 아주 빠르게 엘가의 상태를 파악하고야 말았다.

여태까지 품고 있던 마음을 접고, 새로운 곳으로 눈길을 돌린 거다.

당장 레토에게로 달려가 이 등신 새끼야! 라고 목을 조르고 싶다.

이런 엄청난 미녀를두고서, 심지어 치트키 중의 치트키인 소꿉친구임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이 확 식어버리기까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것이니까 말이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디에서 이리 꼬인 것일까.

입술을 깨문 카일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 어짜냈다.

‘엘가는 그저 사랑을 원하는 소녀가 아니야. 분명히 사랑 받기를 원하지만 , 동시에 리토리오 대공가를 이끌겠다는 야망도 지닌 여자다. 그런 엘가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이해해주면서도, 동시에 가장힘들 때 결정적으로 힘이 되 어줄 수 있는. 그런 확신이 드는 사람.’

아마 소설에서는 레토가 그런 사람이 되 어가며 점점 관계 가 진전되는 걸 그릴 것이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따라야 하는 주군에서,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는 동 반자로 말이다.

정신적 성장을 하는 캐릭터 ! 그래, 이렇게만 보면 참 듣기 좋은 말이 다.

여기서 큰 문제는, 그부분이 도입부를 훨씬 지나서 진행되는 일이라는 점.

그리고그 사이에 카일이라는 ‘변수’ 가 없었다는 점이 될 것이다.

원래의 흐름이라면 레토의 자리를 흔드는 이가존재하지 않았을텐데.

어쩌다보니 자신이 그자리를 흔들다못해 아예 발을걸치기까지 했다.

이런 식이라면 급기야 엘가는 레토가 아닌 카일 자신을 선택할 게 분명하 다.

아니, 어쩌 면 이 미 선택을 끝냈을 지도 모르겠다.

“왜 대답을하지 않죠, 카일? 대답하기 난처한일인가요?”

엘 가의 말을 들으며, 카일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무슨 대답을 하든 전혀 이득을 볼 수가 없는 게 자명하다.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한다면 엘가는 분명 그 자리를 노릴 것이고.

반대의 대답을 내놓는다면 다음에는 티샤에게 접근할 것이었다.

참고로, 지금 엘가와 티샤의 만남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항상알게 모르게 티샤근처에 머무르고있는 이안,그놈이 걱정인 거지.

둘이 부딪치는 상상을 하면… 시발. 악몽도그런 악몽이 따로 없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까 보니 티샤의 뒤를 바삐 따라가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 ” …-

그놈의 우연히’ 가절대 우연히’ 가 아니지 않냐고요,공녀님.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런 파티장에서 한 명을 보고 있느냔 말입니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는 건 아웃. 방지 턱까지 없으면 이 공녀님, 장담 하는데 정말 엄청 나게 들이 닥칠 거 야. 그렇다고 여 자 친구라고 말하기 엔 티 샤나 이 안 눈치도 보이고 ….’

주인공 캐 릭 터와는 항상 무난한 관계 를 지 니는 게 좋다.

괜히 주인공이 아니다. 설령 이득은 없어도 손해를 보지도 않을 거다.

그러면 현 상황을 무난하게 넘길 수 있는 대답은, 역시 ….

“친구입니다.”

“친구라고요.”

“네.,,

“정말로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일부러 ‘일단은.’ 이라는말을 끼워 넣었다.

티샤가들어도, 엘가가들어도, 그리고 이안이 들어도 본인에게 더 유리한 해석을 할수있는.

그런 두루뭉술한 대답을 내놓은 것이 다.

어 장 관리를 하는 것 같아 찝찝하긴 하지 만 어쩔 수가 없다.

아직 어느 노선을 타야할지 결정은커녕 생각조차 제대로 하지 못 했다.

주인공 모두와 무난한 관계를 맺으려고 한 카일에겐 정말 난처한 상황.

본작의 내용조차 제대로 모르는 그에 겐 그 관계 가 유일한 희 망이 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이런 양아치 같은 답을 내놓는 게 전부였다.

“그런 대답, 여자가 듣기엔 상당히 짜증나는 대답인 거 알죠?”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나 혼자만이 아니라, 티샤도 그럴 수 있고요.”

“•••그 부분도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단은 친구다, 그렇게 답할 생각이라고요.”

엘가는 묘한 눈길로 카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냥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왜 하필 이런 여자와 얽혀서는 일이 또 이렇게 꼬인 건지!

“난 말이죠, 카일. 내 가문의 수장이 되고 싶어요.”

“•••예?”

“리토리오 대공이 되고 싶다는 말이에요.”

그러세요? 아,그렇군요. 알겠습니다.고생하세요! 라고 넘어갈 일이 아니 다.

왜 저런 엄청난 말을, 다른 누구도 아닌 카일 본인 앞에서 하고 있느냐.

그건 이전에 엘가에게 해준그 말이 원인일 것이다.

당신이 대공가의 주인이 되어야한다! 나는그렇게 생각한다! 엘가 당신 은할수있다!

‘•••음. 스스로 생지옥 무덤을 팠구나. 염병.’

카일은 그렇게 생 각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에는, 그냥 레토의 질투심이 라도 이끌어 볼 요량이었다.

여태껏 지니고 있던 마음에 금이 가긴 했지만, 완전히 사그러든 건 아니기 에.

만에 하나 그가 지금이 라도 돌아봐준다면 자신 또한 그럴 생 각이 었다.

하지만 레토는 끝내 엘가의 마지막 기대마저 저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계속해서 카일이라는 남자에게 시선을 던지든 말든.

조금도 개의치 않은 모습으로 덤덤히 옆만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하아.’

그래. 이럴 줄 알고 있었잖아. 예상했던 일이잖아.

이제는한걸음씩,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그에게서 멀어지자.

레토는 절대 나를 여 인으로 봐주지 않아. 돌이킬 수 없어.

돌아오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에 이제는 정말 지쳐버렸다.

이전까지는 어려서, 혹은 철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확답을 해야 하는데 레토는 끝내 그걸 거절했다.

그리고 엘가는, 더 기다려줄 시 간도, 여유도, 그리고 마음도 없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수하가 아니다.

잠깐의 불장난을 칠 요량으로 사귀는 연인도 아니 다.

동지, 동료, 동반자, 그이상의 존재가필요하다.

그런 부분에 서 레토는, 안타깝게도 이하였다.

자신은 한 남자의 여 자로 살다 죽을 생 각이 없다.

가슴 속 이 불길은, 저 리토리오의 대공 작위를 원하고 있다.

때문에, 그가 더 나아갈수 없다면 본인 또한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남은 건 아쉬움과 후회, 슬픔을 묻고 또 풀어내는 것 뿐.

‘그보다… 저 남자는 어디 가는 거야?’

어느 순간 엘가는 카일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특히 조금 전 발코니 쪽으로 사라진 티샤의 뒤 를 쫓는 카일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마음 한 곳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불길이 타올랐다.

애당초 자신이 가진 적이 없는데,왜 빼앗겼다는생각이 드는걸까.

이 성은 웃기 지 도 않은 일 이 라고 엘 가를 뜯어 말리 고 있었지 만.

이미 레토로 인해 엉망진창이 된 엘가의 마음은 통제를 벗어난 상태였다.

“레토.”

“네,공… 엘가님.”

“가서 카일 존나센,그남자좀 데려오세요.”

“존 나센 남작가의 카일 말입 니까? 어떤 이유로 데 리고 오면 되 겠습니 까. ”

“그건….”

답할 수 없었다. 엘 가는, 레토의 그 질문에 대 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애 당초 어떤 이유로 카일을 불러오고자 하는 게 아니 니까.

그냥 갑자기 일은 이 불길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변덕 때문에 그런 것이 다.

“•••일단, 데리고 와요.”

이유도 없이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좀처럼 없는 엘가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레토로서는, 이런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혹 존 나센의 카일과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

다른 남자였다면 직접 물어보기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레토는 끝끝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차피 자신은 명령만 따르면 그만이라고, 아직도 그리 여겼다.

“다녀오겠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레토가 사라진 후.

‘나진짜왜이러는데!’

엘가는 제 머리를 감싸쥐고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 접점도 없는 외간 남자를 이렇게 부르는 건 처음 벌인 짓이다.

혹 리토리오 대공가에 안 좋은 말이 나올까. 제 흠이 될까 조심하고 또 조 심했다.

그런데 왜 이리 갑자기,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벌인 것인지.

명령을 무르기에는 이미 늦었다.

위에서 살펴보니, 레토는 벌써 카일과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정말로 카일이 燚층으로 올라오고 있었고 말이다.

“데리고 왔습니다, 엘가님.”

“고생했어요, 레토. 이만 내려 가 보세요.” 레토까지 사라진 후, 단 둘만이 남게 되 었다.

« ” …

« ” …-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지만,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다

불러놓고 무슨 말을 해 야 할지 잘 몰라서 . 기 껏 생 각한 주제 가….

“오늘 사고를 좀 쳤다고요.”

따위였다.

‘이 바보 멍청아!’

이건 시비를 걸기 위해 부른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여태 한 번도하지 않았던 실수들이, 오늘 모조리 쏟아져 나온다.

레토 때문에, 그리고 카일 때문에. 자신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졌다.

‘레토, 레토. 그 멍청이. 그 바보 멍청이 때문에 !’

그런 엘가의 마음은, 어느순간불평이 되어 입 바깥으로흘러나왔다.

모르겠다고 한다고. 레토마저도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그에 반해서 카일, 당신은 아니야.’

처음이 었다. 자신이 그렇게도 원하던 대답을 해준 이 가.

때가 아니다, 당신 자리가 아니다,위험하다,그런 말따위가 아닌.

그자리는 당신의 자리이니 더 노력하라고,더 싸우라고.그리 답해준 이는 ,정말 처음이었다.

아직도 그 순간만 생 각하면 심 장의 고동 소리 가 들리는 듯 했다.

헌데 오늘 그 남자의 곁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티샤라는 여자. 처음 카일과 마주했을 때도 그녀가 있었다.

자신과 카일은 그 어 떤 관계 도 아니 다. 이 런 마음을 품는 것 자체 가 웃긴 일이다.

그럼에도,이 꺼지지 않는불길은도대체 무엇인지 알수가없다.

엘가는 결국 그 열기를 참지 못 하고 이런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여자랑, 무슨 관계죠?”

그러자 카일은 고민하는 빛을 보이더니 답했다.

친구라고. 일단은, 친구라고 말이다.

.

‘…하.’

그 대답에 숨겨진 뜻을 자신이 모를 리가 없다.

이도저도 아닌 대답으로 지금 상황을 모면하겠다는 게 아닌가.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묘하게 기분이 좋기도 하다.

어찌 되 었든 카일도 자신을, 어 떤 이 유로든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 기 에.

‘뭐,됐어. 지금은 그보다….’

이렇게 앞에 카일이 서있으니, 다시 한번 듣고싶은말이 생겼다.

“난 말이죠, 카일. 내 가문의 수장이 되고 싶어요. 리토리오 대공이 되고 싶 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얼른, 저번처럼 그 확신에 찬 답을 내게 해줘.

그 응원 한 마디가,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뜻 한 조각이,내겐 너무나 필요했 어.

대 공가를 손에 쥐 는 방법은 내 가 생 각할게 . 어 떤 희 생을 치 러 야 할지도 내 가고민할게.

당신은 그냥 할수 있다고만, 꼭 해낼 수 있다는 그 한 마디만해주면 돼.

내 곁의 어느 누구도 해주지 못했던 일을. 카일, 너는 해냈잖아.

« ” …-

침묵하고 있던 카일이, 막 입술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웅성웅성-.

갑자기 연회장이 소란스러워지 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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