熲 20화 > 폭풍은 두 번친다 폭풍은 두 번친다
“엘가 공녀님이 저를 보자고 하신다고요.”
카일의 반문에 레토가 자기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인다.
조금 전부터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엘가의 눈빛이 떠오른다.
그시선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눈에서 레이져라도쏘는 줄알았다.
그런 엘 가가 너무 부담스러 워 서 , 무슨 생 각을 하는지 알 방도가 없어 서 .
티샤를 찾는다는 적당한 이유로 자리를 움직이기까지 했다.
“예.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카일.”
당연한 일이다. 애당초 레토는 엘가의 일에 의문을 가지지 않으니까.
심지어 본인의 생각조차 끼워 넣지 않는다.다만충성할뿐이다.
정작 그 충성의 대상자인 엘가는 무조건적인 충성보다는 다른 걸 원하는 데.
상하 관계가 아닌, 단 한 번만이라도 수평적인 관계를 원하는데 말이다.
“•••가죠. 앞장서세요.”
레토가 답답한 거야 당연한 일이다. 이놈도 전형적인 고구마다.
이안이 그래도 몇몇 부분에서 저돌적이고 시원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이 레토라는 놈은 그런 것도 없이, 너무 소극적인 캐릭터 그 자체.
‘이 새끼 컨셉은 점차 다가가는 소꿉친구 같은 건가? 지랄. 그러다가 기회 만 뺏기는 거지.’
하지만 그건 그거고, 상관 업무 수행하는 비서라면 또 다른 일이다.
평생을 모셔야 할 분을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건 확실히 불쌍하다.
거 기 에 이 안마냥 입을 잘못 놀려서 사람 성질을 돋우는 것도 아니 다.
‘레토를 따라나지 않는다면 또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엘가를 만나게 될 터 ’ •
그럴 바에 차라리 얌전히 엘가의 요구에 따르는 게 좋다.
여전히 카일 자신과존 나센은리토리오 대공가에 찔리는부분이 있으니 까.
!
“잠깐만요!”
하지 만 모두의 생 각이 똑같을 수는 없는 일.
티샤가 갑작스레 레토와 카일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와락 얼굴을 찡그린 다.
“왜 엘가공녀님이 카일을 데리고오라는 거죠?”
“이 유는 말씀드렸다시 피 저도 잘 모습니 다. 그냥 데 리고 오라는 명을….”
“저번에 공녀님이 직접 말씀하셨죠. 여기는 리토리오 대공가가 아니라고. 공녀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요. 그러면 이유도 모르면서 명령이라고 갑자기 사람을 이렇게 막끌고 가는게 이상하지 않은가요? 어차피 다똑같은 아카 데미의 학생일 뿐인데 말이죠.”
“그게… 그렇긴 합니다만…,”
상당히 논리적인, 레토 입장에서는 반박할부분이 없는 의견이다.
그래서 그런지 레토는 마땅한 답을 찾지 못 한 채 끙끙거렸다.
‘역시애가맹하다, 맹해.’
만약 레토가 이안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면 티샤의 말을 무시했을 것이 다.
엘가님의 명령이라고 다시 한 번 말하며 카일을 끌고 가도큰 문제는 없었 을 터.
어차피 뒷배가 확실한데 굳이 물러날 이유 따위 없으니까 말이다.
“저,그쪽분 성함은….”
“티샤에요.”
“아, 네. 티샤. 당신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불쾌하실 것도 이해해요. 하지 만 저로서는 어찌 할 수가 없습니 다. 카일을 데 려 가는 게 제 가 받은 명 령 인지 라….”
거기서 굳이 일일이 상황설명 하지 마.듣는사람속은더 터진다.
“한 번만 양해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양해고 자시고 지금….”
“티 샤.”
카일은 손을 내밀어 티샤를 제 지했다.
여기서 티샤가더 나선다면 괜히 그녀에게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
엘 가 스스로 이곳은 리토리 오 대 공가가 아니 라지 만, 누가 그걸 곧이 곧대 로 받아들일까.
황족이 아니라면 제국의 어느 누구든 엘가의 눈치를 살필 것이다.
귀족들조차 그러할 진데 일개 평민에 불과한 티샤는 더더욱 난처해질 수 있다.
“괜찮아요. 잠깐 할 이 야기 가 있나 보죠.”
“할 이 야기 가 있으면 당사자가 오는 게 당연하잖아요.”
“상대는 리토리오 대공가의 공녀에요. 누구에게 가는 게 아니라, 누가 오 는 게 더 당연한사람이에요. 이러면 티샤까지 난처해질 수도 있는데 그꼴은 보고 싶지가 않네요.”
“하지만 저는 괜찮은걸요!”
“제가 안 괜찮아요. 저 때문에 괜히 남 피해 보는 건 싫으니까, 바로 다녀올 게요.”
카일의 정성스러운 설득이 아무래도 제대로 먹혀든 모양이다.
물론그 설득 부분에서 논리 부분이 먹힌 건지, 아니면 티샤를 걱정하는 부분이 먹힌 건지는 알 수 없겠지 만 말이 다.
“•••알겠어요.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금방 올 테니까 이안 데리고 좀 있어줘요. 그 인간이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
맞는 말이 었다. 이 안이 라면 사고를 치 고도 남는다.
어쩌면 지금도 이미 사고를 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 알겠어요. 카일이 오기 전까지 잘보고 있을 게요.”
이 안 따위 를 걱 정해 서 가 아니 다. 다만 걱 정 인 건, 그가 누구의 추천장을 받 았냐는 것이다.
그가문제를 일으키면 북부 변경백의 추천장에 대한의문이 제기될 것이 다.
그리고 그 추천장을 같이 받은 인물은 이안 외에 둘의 인물이 더 있다.
바로 티샤 자신과 저 기 레토를 따라가고 있는 카일이 바로 그들이 다.
‘이안,그남자가사고를 치면 나는물론이고 카일까지 난감해져!’
자신은 주술 때문에,그리고 카일은 존 나센 이 라는 출생 때문에.
평판이 매우 중요한 아카데미에서 이미 안좋은 쪽으로 소문이 좀 났다.
거기에 이안으로 인해 눈총까지 받는다면 아카데미 생활은 최악으로 치 달을 터.
본인만을 위한 게 아닌 카일을 위해서라도, 이안을 감시해야만 했다.
탓탓!-
카일을 뒤로 한 채 티샤는 거의 뛰는 수준으로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 인간이 또 사고를 칠지 모른다는 카일의 말을 들은 순간.
어째 그의 예감이 맞을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든 것이다.
아니겠지?진짜아니겠지?설마,자리를비운지 10분도채 안되었는데!
라고 생 각하며 막 이 안이 있던 곳에 돌아온 티샤는 ‘아.’ 하고 탄식을 흘렸 다.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자군! 이안! 그대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마음대로:
•••카일. 아무래도, 제가늦은 것 같아요.
티샤는 그리 생 각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 었다.
널
“데리고 왔습니다, 엘가님.”
“고생했어요, 레토. 이만 내려가보세요. 그리고 아무도 못 올라오게 하고. ”
“알겠습니다.”
아무도올라오지 못하게 하라니.왜 또그래요,공녀님.불안하게.
카일은 꼴깍, 하고 마른침을 삼키 며 바로 앞에 서 있는 엘가를 쳐 다보았다.
‘…레토 병신고자 새끼. 넌진짜 죽어야 해.’
그저 단순한 예쁘다, 혹은 아름답다, 따위의 말로는 부족하다.
괜히 그녀가 사교계의 꽃이니 리토리오의 장미니 불린 게 아니다.
엘가는 찬란히 타오르는 하나의 불꽃이자,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붉 은장미였다.
그녀의 앞에 선다면 어떤 이라고 해도 눈을 뗄 수가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 아찔한 아름다움에 취해서, 그 다음은 매혹적인 자태에 이끌 려서.
마지막에는 화룡점정을 찍는 여인의 당당함에 반해서 말이다.
‘장미니 꽃이니 그냥 아첨성 발언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대공가의 영애라고 해도 쉽게 얻을 수 있는 호칭이 아니다.
오히 려 그 대공가의 영애 이 기 에, 좋은 말보다 안 좋은 말이 더 빠르게 퍼진 다.
만약 엘가의 외모에 약간의 흠결이라고 있었다면 바로 그와관련된 말이 나왔을 터.
그러니 더더욱 그 호칭들이 대단한 일이 었다.
아름다움으로는 항상 첫손에 꼽힌다는 뜻이니까!
‘이 런 여 자를, 상관을, 심 지 어 좀 꼬셔 달라고 들이 대는 소꿉친구를. 그냥 주군이라고 끝까지 모시려고 하는 놈이라니. 이게 로맨스 판타지냐. 아니면 고구마 양산 소설 이 냐.’
다시 한 번 레토 병신 고자 새끼, 라는 한 맺힌 찍먹 독자의 한을 내뱉으며.
카일은조심스레 제 앞에 있던 여인의 이름을 불렀다.
“엘가 공녀님. 저를 보고자 하신 이유가….”
“이 야기는 들었어요. 오늘 사고를 좀 쳤다고요.”
사고, 라는 말에 바로 억울함이 울컥 올라온다.
“그거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책상이 약해서 부러진 거라고요.”
“책상이 아무리 약해도 그걸 두쪽 내는 사람은 없던데.”
“부러지기 직전의 책상이었던 겁니다. 무조건 그런 겁니다.”
카일의 말에 엘가는 따로 더 말을 내뱉지 않았다.
제 앞에 선 남자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미 충분히 데인 모양.
이전에 있었던 존 나센 측 영애의 사고까지 있었으니 더더욱 스트레스였 을 것이다.
당장 자신 앞에서 지극히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카일인데.
지금은 굉장히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그 확실한 증거였다.
“혹시 이것 때문에 부르신 겁니까? 그사고 이야기 하시려고?”
“글쎄요? 당신이 보기에는 내가왜 부른 것 같나요?”
엘가의 말에 카일은 속으로 탄식을 흘렸다.
확실히 , 그리고 역시나 무서운 여자다.
저 한 마디의 질문으로 카일 본인의 감정을 확 잠재우지 않았는가.
동시에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 내 앞에서.’ 라는 부분까지 은근히 강 조하며.
이 대화의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잘 모르겠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음, 그러겠네요. 역시 당신은 모르겠네요.”
혼자 말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 이 던 엘 가가 몸을 돌린다.
그리고는 한 곳에 마련되 어 있는 검은 가죽 의자에 몸을 앉혔다.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예 ?”
“조금 전에 내려간 내 충성스러운 비서. 믿을 수 있는 친구. 유일하게 허락 해주려고 했던 이. 그런데 그 남자마저도, 여전히 모르겠다고 해요. 과연 내 가 리토리오의 대공이 될 수 있는지.”
“•••그저 성격 자체가 조심스러워서 그런 걸 수도 있을 텐데요.”
본인이 말해놓고도 어이가 없는 말이긴 하다.
조심스러 운 것과 소심 한 것, 그 둘에는 결정 적 인 차이 가 존재 한다.
후자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를,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
•
그리고 레토는, 전자라기보다는 명백한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 었다.
“정말그랬다면 좋겠네요. 아, 이제는 크게 상관없으려나.”
상관이 없다. 그 말에 카일의 마음에 문득 불길함이 고개를 드는 찰나였다 •
“아까 전에, 그 티샤라는 여자를 따라서 발코니로 가던 것 같은데.”
“•••어찌 아셨습니까?”
“그냥 눈에 보였어요.”
거짓말이다. 이 연회장에 사람이 몇인데,그냥 알수가 있단말인가.
정확하게 자신에게 온 신경을 다 쏟고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친해보이더군요. 그여자랑.”
“친합니다. 변경백령에서 같이 온 사이니까요.”
“그 말은, ‘친한 이유가그저 같이 와서 그렇다.’ 라고 들리는데. 맞나요?”
엘가의 질문에 카일은 아무 대답도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그런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대답하지 않겠다, 이건가요.”
또 한 번 침묵함으로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무슨 대답을 하던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그에 엘가는 표정을 살짝 찌푸리더니 천천히 턱을 괸다.
“카일 존 나센.”
우아한 자태로 다리를 꼰 채, 붉은 드레스를 입은 절세미 녀가.
상당히 불만스러운 듯 턱을 괴고서, 눈에는 희미한 질투를 머금고 입을 연 다.
“그여자랑, 무슨 관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