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시작부터 꼬이는 게 국를
아카데미 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기숙사 거주 조건을 충족했다는 뜻이기 도하다.
즉 카일과 이 안은 남자 기숙사로, 티샤는 여자 기숙사로 가야만 했다.
“오늘 하루 종일 끌고 다녀서 미안해요, 카일.”
“아뇨? 오히려 저도 즐거웠는데요.”
조금은 과장스러운 모습으로 손사래를 치는 카일을 바라보며.
티샤는 저도 모르게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존 나센 남작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다.
오로지 전투 부분만 생 각하는 설명이 불가능한 사람들.
제국 전체가 달려든다고 해도 웃으면서 맞이할 자들이라고 했던가.
‘예전에는 무슨 오크 같은 사람들만 사는 걸까 생각했었는데 ….’
존 나센 남작가의 카일을 만나고 나서부터, 그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 다.
전투종족,오로지 힘만이 전부인 자들, 이라고치기에는.
카일이 보여준모습들이 굉장히 부드러웠던 것이다.
가장 큰 호감을 느꼈던 부분은 그가 보여준 배 려와 사려 깊은 마음.
세간의 소문처럼 무식하게 힘만 중요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름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이안보다 훨씬 더 나았다.
‘말도 굉장히 부드럽게 잘 하고. 저 무뢰한 따위보다야 훨씬 나아.’
거기에 결정적으로, 검사와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몸이 무척 인상적이었 다.
분명히 걸칠 거 다 걸치고 있는데 그 위로 드러나는 근육이 참….
아무튼, 정리하자면 카일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아카데미로 오는 길 내내, 그리고 아카데미에 와서도.
저 이안이라는 남자와 다녔다면 분명히 크게 싸웠을 테니까.
‘카일에 비하자면 이 안, 그 사람은•••으. 완전 최 악이 야.’
생긴 것만 정상일 뿐이지, 다른 건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 작부터 생각도 없이 말을 내뱉어 얼굴 붉히게 만든 것부터.
사과조차 안하다가 카일이 하라고 말해서 마지못해 미 안하다 하고.
이후로도 제멋대로 구는 경향이 너무나 강했다.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조심성도 없는 사람.
완전히 성격이 악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닌 사람.
티샤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 중 하나였다.
아카데 미 의 학기 는 다음 주부터 정 식 으로 시 작된 다.
그전까지는 학생들의 자유가보장되며, 아카데미 안에서 무엇이든 할수 있다.
‘계속 카일이랑 같이 다니면서 주술 이야기도 하고, 도서관도 같이 가야지. 아카데미에 와서 계속 혼자 지낼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다.’
아마 이 속내를 카일이 들었다면 펄쩍 뛰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술에 관심도 없고 더 알고싶지도 않다고,그리 외쳤을… 리는물론 없고 •
속으로 게거품을 물며 ‘헬스 지옥에서 주술 지옥이냐!’ 라고 비명을 질렀 을 것이다.
기 숙사에 다다른 티 샤가 막 燚층으로 올라가려 하는데 .
1층 정문 쪽에서 두 남녀의 목소리가들려왔다.
그리고그중여인의 목소리는, 분명히 아까 들었던 그엘가공녀의 것이었 다.
“오늘 하루 고생했어요. 레토.”
“아닙 니 다, 공녀 … 죄 , 죄 송합니 다. 엘 가님 . 편히 쉬 시 길.”
레토가 허리를 숙이며 공손히 인사를 올리자 엘가가 한숨을 쉰다.
가면 갈수록 더 답답해지는 제 소꿉친구에 대한 한탄이 었지만.
사정을 모르는 티샤가 보기 에는 사람을 부리는 자의 오만으로 보일 뿐이 었다.
“이래서 귀족들이란….”
티 샤가 보는 귀족이 란, 본인 잘난 맛에 사는 인간들.
능력도 없고 재능도 없고, 심지어 노력할 생각조차 없는 덜떨어진 자들.
그알량한 혈통 하나 덕분에 모든이들의 위에 서있는 한량들이었다.
아까도 공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카일에게 집적거리던 걸 봐라.
분명히 작위를 무기 삼아서 남작가의 차남에 불과한 카일을 압박했을 것 이다.
둘 사이에 흐르던 분위 기가 그러하지 않았던가.
“응?
어디선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것일까?
레토를 돌려보낸 엘가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정확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던 티샤와 또 눈이 마주하고 말았다.
카일의 옆에 있던 여자.’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기억이 날까, 말까한다.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던 엘가는 기어코 이름을 떠올리고 말았다.
‘티샤. 그래. 카일이 분명 그렇게 불렀어.’
티샤, 티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무언가는 없다.
허면 어디 한적한 곳의 귀족 가문 출신이 거나, 아니 면 평민이 거나, 둘 중 하 나.
출신을 따지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다만 피곤한 일이 생길까 걱정될 뿐이다.
귀족 가문의 영애가 마음에 드는 이를 점찍어두는 경우가종종 있다고 들 었다.
헌데 그걸 모르고 다른 이 가 관심을 보이 면, 바로 전쟁 이라나 뭐 라나.
심해지면 가문끼리의 대립으로도 번진다고, 유모에게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솔직히 잠깐 지나가는 첫사랑에 굳이 그런 짓을 해야 하나 싶다.
평생을 약속한 사이라면 또 모르겠지 만, 젊을 적의 열병은 한순간이 라지 않는가.
다만, 전력을 다해 제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바는 좋아 보였다.
‘그런데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거야? 불쾌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티샤더 러 마치 보라는 듯.
엘가는 우아한 걸음걸이로 제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대공가의 영애라서 그런지, 기품이 느껴지긴 했다.
‘얼씨구. 별해괴한 짓을 다하네.’
물론 귀족에 대해서는 비판적 인 시각을 지닌 티샤였다.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후, 그녀 또한 제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각각 서로의 방 문고리를 잡으면서 두 여 인은 동시 에 생 각했다.
‘마음에 안들어.’
원래는 각각 이 안과 레토라는 사람에 더 집중했어 야 할 두 여 인이 다.
티 샤는 이 안과 함께 아카데 미 를 오며 다투기도 하지 만 또 조금 가까워 지 기도한다.
엘 가는 그냥 아무 일 없이 아카데 미를 산책 하며 레 토와 더 많은 대화를 나 눈다.
그렇게 해서 일의 흐름이 원래대로진행이 되어야했는데.
어느순간 모든것이 조금씩, 그러나확실하게 어그러지고 있었다.
“와.미친…. 방존나좋네.”
그리고 그모든 일의 원흉은, 그게 전부 자신이 아카데미에 와서 그러함을 모른채.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쿠션감도 합격 !’ 이라고 개소리를 지껄이 고 있었다.
“아카데미야! 시발! 내가왔다! 이제 운동 안해! 안해도된다고! 으아아아 아아!!”
일 이 이 미 대 차게 꼬였음은 상상도 못 한 채 말이 다.
*
“카일.”
“일어나라, 카일.”
“어으어? 혀, 형님?”
“일어나라. 상체 할시간이다.”
“예? 아니, 그게 무슨… 잠깐만요. 왜형님이 여기 있습니까?”
“네 방이 무슨 들어 가지 못 할 곳이 라도 되는 거냐.”
“그게 아니라 언제 아카데미 까지 오셨냐는 말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그 말에 카일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분명히 침대 위에 있어야할제 몸이, 벤치 위에 누워있다!
“흐억?! 뭐, 뭡니까!?”
“벌써 톞분이나그러고 있었다. 얼른 시작하자. 오늘은 평소보다 敢세트 더 올릴 거다.”
카일은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 형도, 누나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가문 사람들모두가.
남작가에서 가장 거대하게 만들어진 체력 단련장에서 쇠질을 하고 있었 다.
“그리고 오늘은 무게도 더 올릴 거다.”
“잠시 만요, 형님 ! 잠시 만요!”
“너는존나센의 핏줄이다.이 정도는,쉽게 해낼 거다.”
이미 중량 원판이 미친 듯이 올라가는데도 카일의 형, 리어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마침 내 봉 전체 가 원판으로 가득 찼을 때 그가 활짝 미소를 짓는다.
“자, 카일. 시작하자.”
“이, 이걸 어떻게 합니까! 못해요! 못해! 으아아아악!!”
악몽이다, 이건 악몽이야! 끔찍한 악몽이다!
그런데 더 끔찍한 건, 그걸 기어코 들고 있는 자기 자신이었다!!
“크어어어억!!”
퍼덕거리던 카일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다급하게 주변을 돌아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 뱉는다.
역시나, 악몽 같았던 상황은 정말 꿈에 불과했다.
“•••뭔 이런 꿈을꾸고 있어, 염병할….”
얼굴을 감싸 쥔 채 한숨을 흘리 던 카일은 창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직 해조차뜨지 않은 이른 새벽이다. 남들은 여전히 단잠에 빠져있을 시 간이다.
부지런한 이들 정도는 되어야 이제 막 눈을 뜰 것이다.
하지 만 존 나센 남작가의 사람들에 게 는 하루 일과가 시 작되 는 때 이 다.
이맘때 일어나서 모두가 함께 가벼운 유산소를 하는 게 일상이었다.
‘물론 말만 ‘가벼운’ 이지. 어떤 인간들이 새벽부터 15km를주파하고 있냐 고.’
.
솔직히 15km보다더 긴 거리일수도있다.
빙의 전에 한 번 5km 달리기를 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 30분이 넘게 걸 렸다.
운동과는 거리가 멀던 몸이었으니 당연한 일.
존 나센 남작가에 빙의한 후, 어느 정도 운동이 라는 것에 적응을 했음에도
•
정말 이 악물고 뛰 었는데도 한 시간을 훨씬 넘게 달렸던 걸 생각해보면.
아무리 못 해도 15km, 혹 그 이상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이 카일의 계산이 었다.
아무튼 결론을 말하자면, 확실히 미친 인간들이었다.
“후우.
99
개꿈을 꾸는 바람에 잠도 다 달아났다.
멍하니 앉아있던 카일은 문득 ‘운동할까.’ 라고 생각하다가 스스로에게 놀랐다.
‘드디 어 미쳤나? 뭔 말 같지도 않은 걸 생 각하고 자빠졌어.’
새벽부터 운동이라니,절대 안된다.
그 지겨운패턴에서 탈출하기 위해 아카데미에 온 것이 아닌가.
이제부터는 매일 놀고, 먹고, 자고, 뒹굴고. 그렇게 마음대로 지낼 것이다!
‘•••시발.’
가장 무서운 건 습관이 라고 했던가.
결국 온 곳은 아카데미 실내 연무장. 카일 기준 ‘아카데미 헬스장’ 이었다.
절대 가고 싶지 않았는데, 몸에 들인 습관이 결국 그를 여기까지 이끈 것이 다.
너무나 이른 시간, 기숙사를 나올 때부터 보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건 헬스장도 마찬가지. 학생 한 명도 보이지 않는 텅 빈 상태였다.
존 나센 남작가였다면 지금쯤 남녀노소 죄 다 근육을 뽐내고 있었을 텐데.
‘•••그래. 이게 정상이지. 지금 이 시간에 온 내가비정상이고.’
그렇게 생각하며 카일은 가볍게 몸을 풀어주었다.
운동 전에 근육을 풀어주는 가벼운 스트레칭은 필수다.
이건 전투종족이라는 존 나센 사람들도 무조건 지키는 부분이었다.
‘자, 아카데미 오는 동안 못 했으니까. 그러면 가볍게 ….’
마침 아무도 없겠다, 기구순서 걱정할 일도 없다.
해서 여유롭게 팔부터 시작하려고 덤벨을 뒤적이는데.
‘•••뭐야. 이게 다야? 아니,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아무리 찾아봐도, 죄다 가벼운 것들밖에 없었다.
이 래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해서 카일이 이곳저곳을 뒤 적이 던 순간.
끼익-.
실내 연무장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