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2 새벽이 오면 어둠은 물러간다 =========================================================================
“다만 뭐죠?”
로드리고가 뜸 들이는 기사를 재촉했다.
“그 힘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 부작용이 있다네. 방금 전 자네의 몸을 내가 치료해 주지 않았나? 그때 살펴보니 자네가 말했던 사내와 대결하며 마나를 무리하게 운용했더군. 기존에 정해진 행로를 벗어나면 아무래도 상처를 입게 마련이지. 하지만 그 대가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덕분에 순간적으로 빠르고 강한 힘을 낼 수 있어. 상대방도 조금은 당황하게 되고 말이야. 그렇지만 자네도 이미 배웠겠지만...”
“완전히 엉망이 됐죠. 별로 오래 버티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고수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황혼의 기사는 로드리고의 대답이 재미있는지 웃었다.
“그렇지. 아주 제대로 배웠군. 뭐, 직접 몸으로 배우는 것보다 더 훌륭한 선생은 없는 법이니까.”
“제 선생은 기사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데요?”
로드리고는 기사가 웃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딴죽을 걸었다.
“기본적으로는 그렇지만 내가 모든 것을 가르칠 수는 없지 않겠나?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게.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대충 그 부작용이 뭔지 짐작할 수 있겠지?”
“설마?”
로드리고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황혼의 기사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자네가 생각한 것이 맞아. 여러 개로 만든 마나 핵을 폭발시키는 걸세. 단순히 마나의 운용을 무리하게 하는 수준이 아니야. 말 그대로 마나의 소용돌이라 할 수 있지. 그렇게 되면 잠시 동안 기존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에너지를 생성해 낼 수 있지. 딱히 마나를 운용할 필요도 없어. 몸 전체에 마나가 가득 넘쳐날 테니까. 자네의 마나로드 어디에나 마나가 가득한 상태가 된다는 말일세. 뭐, 지속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말이야.”
로드리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겁니까? 폐인이 되고도 남을 것 같은데요? 단 한번 사용하고 평생 침대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럴 일은 없네. 내가 보증하지. 다만...”
“젠장! 또 다만입니까?!”
로드리고가 버럭 고함을 지른다.
황혼의 기사는 일부러 겁에 질린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눈이 웃고 있다.
“아프다네. 상당한 고통이지. 수십 개의 검이 자네의 몸에 꽂힌다고 생각해 보게. 딱 그 정도 고통이야.”
“......”
로드리고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미친 거 아닐까?
그런 고통을 인간이 버텨낼 수 있을 리 없다.
지금 이런 걸 한 가지 방편이라고 내게 알려주고 있는 거냐?!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마 계집애처럼 비명을 지르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잃을 테지.
“나도 이 방법은 그다지 추천해 주고 싶지 않아. 그래서 자네에게 일단 설명을 들어보라고 한 것일세. 그럼에도 효과는 대단하지. 자네 수준의 한계를 벗어나는 걸세. 잠시 동안이지만. 하수가 고수를 상대하고 혹 이길 가능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밖에는 없다네.”
“아무래도 다른 방법으로...”
“하하! 뭐, 지금 시점에서는 다른 방법도 마찬가지야. 이쯤에서 자네 몸에 다수의 마나 핵을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그런 건 싫습니다!”
로드리고는 맨 정신으로 그런 걸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사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격발하지만 않으면 되네. 그럼 고통은 없어. 오히려 장점만 있지.”
“?”
“온 몸을 마나 핵으로 만드는 기초 단계라고 생각하게. 다수의 마나 핵은 알아서 자네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줄 걸세. 서로의 유기적인 관계가 끊임없이 반복되어 잠을 자도, 걸어 다녀도 항상 마나 로드를 운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어. 게다가 몸의 치유 능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하지.”
“그렇지만 위험한 거 아닙니까?”
미심쩍은 표정으로 로드리고가 묻는다.
“격발하지만 않으면 안전하다니까.”
“격발이 쉽게 되는 건 아니고요?”
“이것 참...이렇게 겁쟁이일 줄이야. 격발은 내가 가르쳐 주는 특별한 운용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이루어지지 않네.”
“절대로요?”
“...배우기 싫다면 억지로 가르쳐 줄 생각은 없네만?”
“아니요! 배워야지요! 저야 당연히 기사님을 믿으니까...”
황혼의 기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로드리고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아무튼 자리에 앉게.”
황혼의 기사는 로드리고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로드리고는 이것이 고통을 수반한 행위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황혼의 기사가 경고하지 않았고, 조금 전 치료할 때도 고통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은 찾아왔다.
예기치 못한 고통이었다.
그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막 입을 열려는 순간 황혼의 기사가 말했다.
“지금 입을 열면 자네는 바보가 되네. 그리고 그건 나도 못 고쳐.”
“!!!”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했으면 하지 않는다고 할 테니까 사소한 것 하나는 숨겼지.”
“!!!”
“그렇게 보지 말게. 다 자네를 위해서 하는 일이야.”
“!!!”
“조금 더 아플 걸세. 지금보다 수십 배 정도. 나는 자네에게 알려주고 싶을 뿐이네. 자네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참을성이 있다는 걸 말이야.”
기사는 선량한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
그리고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기절하고 싶었지만 기절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당장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바보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를 악물며 버티고 또 버텼다.
몸 안에 마나가 소용돌이친다.
처음은 양 어깨였다.
뾰족한 쇠붙이로 사정없이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다음은 팔꿈치, 손목, 그리고 무릎과 발목으로 통증이 느껴지는 장소는 점점 더 많아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에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 것 같은 통증이 시작되었다.
“으...으으.....”
자기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점점 눈이 풀렸다.
입에서는 침이 흘러 나왔다.
그래도 황혼의 기사는 멈추지 않았다.
로드리고의 상태와는 대조되게 기시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로드리고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럼에도 한동안 기사는 로드리고의 머리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존에 있던 2개와 새로 만들어진 11개의 마나 핵이 서로 공명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듯 그것들은 로드리고의 몸 안에 스스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걸 황혼의 기사는 자신의 마나로 생생히 느꼈다.
무표정 하던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한차례 고개를 끄덕이고는 로드리고의 머리에서 손을 떼었다.
로드리고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기사는 로드리고의 몸을 반듯하게 눕혀 주고는 곁에서 땀이 흥건한 그의 이마를 닦아 주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이걸로 아무도 네가 마나 핵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줄을 모르게 되겠지. 네 몸을 살펴보는 자들은 이것이 단 하나의 마나 핵처럼 느껴질 테니까. 이미 누군가 살펴봤어도 그들이 건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로드리고, 네가 내 경지에 도달하지 않는 이상 너는 이걸 다른 누구에게도 전수할 수 없다. 난 딱히 이걸 세상에 남기고 싶은 것이 아니니까. 네게 전수해준 이유는 내가 마왕을 완전히 물리치지 못했을 때, 나를 대신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마왕이 강해도 내가 그보다 못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 다만 마왕이 부활했을 때, 내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염려되는군.”
그냥 내버려 둬도 곧 정신을 차릴 테지만 기사는 다시 마나를 운용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부드럽게 로드리고의 몸으로 파고 든 마나는 곧 그의 의식을 되찾아 주었다.
로드리고는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허억...”
아직도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추스르고는 황혼의 기사를 노려보았다.
“대체 뭡니까?!”
“하하! 이미 설명은 충분히 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자네 입장에서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군.”
“웃음으로 넘기려 하지 마십시오! 경고하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저를 그런 식으로 대하지 마십시오!”
“나는 자네를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네만?”
“그건 기사님 생각일 뿐입니다!”
“내 장난이 지나쳤던 모양이군. 사과하지. 미안하네.”
“......”
“이건 필요한 일이었어. 절대로 자네에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었네.”
“결과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제게 좀 더 제대로 설명해 주셨어야 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당신을 여기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지금 저밖에 없다는 걸요!”
“...말이 심하군.”
황혼의 기사도 기분이 상했는지 얼굴에 자리 잡고 있던 웃음기가 사라지고 만다.
로드리고는 시선을 돌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번엔 제가 지나쳤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됐네. 자네도 그리고 나도 상대방의 기분을 한 번씩 상하게 했으니 이걸로 이번 일은 잊도록 하지.”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