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드리고 사가-88화 (88/200)

00088  손수건  =========================================================================

“어디다 버리셨어요?”

낸시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하지만 로드리고가 건네준 손수건은 침대 모서리에 그대로 놔둔 채다.

그것을 보고 그는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대답도 삐딱해진다.

“그건 왜 물어 보는데?”

“찾아야지요!”

낸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찾긴 뭘 찾아? 그 더러운 헝겊조각을 찾는단 말이야?”

“더럽지 않아요!”

낸시가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자 로드리고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고집 좀 그만 부리고, 그냥 내가 사준 거 써. 그거...나름 신경 써서 산거니까...그리고 더럽지 않긴 뭐가 더럽지 않아? 나는 그거 안본 줄 아냐? 게다가 제이미 경 땀 냄새까지 나서 더 형편없다고.”

“도련님이 뭐라 하시던 그건 꼭 찾아야 해요.”

“뭣하러?! 나는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는데? 더 좋은 게 있으면 그걸 쓰면 되는 거야. 그런 거 가지고 다니면 사람만 더 구질구질해 보인다고. 알아?”

“아무리 더 좋은 게 있어도 저는 싫어요. 그게 좋단 말이에요. 어떻게 보이든 신경 쓰지도 않고요.”

“그럼 알아서 찾아보던가?”

로드리고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 침대에 그대로 누운 채 등을 돌려 버렸다.

그는 섭섭하기도 하고, 또 억울하기도 했다.

뭐야? 저 계집애!

기껏 생각해서 사다줬더니 고맙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하고 오히려 성질을 내?

기대했던 반응과 너무 다르다.

“어디에 버렸는데요?”

낸시는 혼자서라도 나가서 찾으려는지 장소를 묻는다.

하지만 로드리고는 가르쳐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몰라. 기억 안나. 밖에 어딘 가였던 거 같은데 워낙 더럽고 하찮은 거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거든.”

“...그럼 어떻게 찾아요?!”

낸시의 목소리가 조금 울먹거린다.

“그럼 그냥 내가 사준 거 쓰던가?”

로드리고는 그렇게 말하고 여전히 침대 모서리에 놓여 있는 손수건을 가리킨다.

“정말!!!”

낸시는 결국 절뚝거리며 방문 쪽으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드리고는 결국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서 낸시의 팔목을 잡았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어딜 가?! 혼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좀 있어! 제발 좀 있으라고!!!”

“놔요.”

하지만 낸시는 고집을 부렸다.

그녀는 로드리고의 손을 밀어냈다.

하지만 쉽사리 놔줄 그가 아니다.

“이미 늦었어. 조금 있으면 해도 질 거야. 밖은 위험하다고.”

“그래도 찾아올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수건은 이미 있어. 네가 가졌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걸로 말이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난 도무지 네가 고집부리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건 소중한 거예요. 아가씨와 제 추억이란 말이에요. 더 비싸고 좋아 보인다고 꼭 소중한 건 아니란 말이에요.”

“헛소리 하지 마! 그건 거지들이나 하는 소리지! 멍청아!”

“됐어요. 제가 직접 찾을 테니까. 비켜요.”

다시 방을 나서려는 낸시를 막으며 로드리고가 말했다.

“허튼 소리 작작해! 멍청한 계집애야! 어디다 버렸는지도 모르는데 이 도시에서 어떻게 찾는 다는 말이야? 그것도 다리도 절뚝이는 병신 계집애가! 너 같은 계집애 혼자 다니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알기나 해?! 어린애들은 쫓아다니며 돌맹이나 던져대겠지. 개한테 던지듯이 너한테 던질 거라고! 개는 잽싸게 피하기라도 하겠지만 너는 어떻게 할 건데? 죄다 얻어맞으려고 그래? 누가 말려주기라도 할까봐? 어림없는 소리지! 어른들은 네 멀쩡한 다리도 분질러 놓을지 모른다고! 여기는 라몬 같은 새끼들 천지야! 알아?! 평생 앉은뱅이로 살고 싶냐고!?”

“...그렇게 나쁘게 말하지 마세요. 아무튼 저는 찾으러 갈 거니까.”

낸시의 목소리가 떨렸다.

로드리고는 지금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한 말을 해버렸다.

그럴 의도까지는 없었지만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셈이다.

“아! 정말! 그놈의 고집! 젠장! 찾아오면 되잖아?! 평생 구질구질한 거나 좋아하며 살아라! 멍청아!”

하지만 방을 나서려는 그를 잡으며 낸시가 말했다.

“저도 같이 가요.”

“싫어. 가뜩이나 늦었는데 뭘 따라와? 내가 또 너를 안고 여기를 돌아다녀야겠냐? 귀찮아! 엄청 귀찮다고! 너도 따라온다고 하면 찾으러 안 갈 거야.”

로드리고의 말에 낸시의 눈빛이 심하게 떨렸다.

그의 소매를 붙잡았던 그녀의 손도 힘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입가도 미세하지만 아주 꾸준하게 흔들린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그럼...꼭...찾아와야 해요.”

하지만 로드리고는 고개를 흔들며 거친 목소리로 말했을 뿐이다.

“비켜!”

로드리고는 낸시를 옆으로 밀치며 방을 나섰다.

하지만 그가 밀친 바람에 낸시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꽤 묵직한 쾅 소리가 났다.

그녀가 통증으로 눈살을 찌푸리는 걸 보고 로드리고는 잠시 멈칫했지만 결국 이를 악물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로드리고가 상점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이미 완전히 깜깜해진 후였다.

물건을 정리하며 끝마무리를 하고 있는 걸 보고는 로드리고가 얼른 다가갔다.

다행히도 아직 자신에게 물건을 판 여자가 남아 있었다.

“저기...아까 제가 버려달라고 했던 손수건 어디 있죠?”

여자는 다짜고짜 자신에게 다가와 그렇게 묻는 소년을 바라보고는 처음엔 당황한 것 같았지만 곧 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거요. 저기 뒀었는데...”

여자는 걸음을 옮기며 로드리고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다행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자 로드리고는 안도했다.

하지만 막상 여자가 가리킨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잠시만요. 샘! 혹시 여기 있던 것 어디에 뒀는지 알아?”

로드리고보다 대여섯 살 많아 보이는 사내가 반대편에서 다가오며 말했다.

“아! 쪼가리 천이요. 그거 빈민가 아이들이 가져갔어요. 옷 기워 입을 때 쓴다고.”

대화를 듣던 로드리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보고 여자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빈민가에서 가져갔으면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할거예요.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집집마다 들려서 확인해 보더라도 한두 집도 아니고...또...혼자서 그런 곳을 걷는 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요.”

로드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빈민가가 어디 있는지 묻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상점의 벽에 기대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미 큼지막한 달이 하나 하늘 높이 떠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이대로 여관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빈민가를 돌아야 할까?

위험하다고 하지만 솔직히 겁이 나진 않았다.

이미 제이미 경과 한 번 붙어서 그럭저럭 자신감도 생겼다.

더구나 여관에 들어가서 낸시가 다시 손수건 어디 있냐고 물었을 때, 모른다고 말하기도 싫었다.

“뭐...어쩔 수 없지. 젠장...대체 그딴 게 뭐라고...”

그러고 보면 낸시는 예전에도 물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사줬던 삽도 그랬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쓸모없어진 물건들도 하나하나 소중히 보관하곤 했다.

물론, 그런 물건들이 필요한 사람들이 생기면 아낌없이 나눠주곤 했지만 그럼에도 삽만큼은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했다.

손수건도 그런 것 중 하나겠지.

추억?

뭐...그런 말도 했었지.

그래도 나쁜 계집애...선물 사다줬으면 고맙다고 라도 한마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딱히 그런 것에 집착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예의니까.

아! 됐다! 됐어.

젠장...

그런데 그 계집애, 아까 넘어졌는데 괜찮은 건가?

그렇게까지 밀건 없었는데...

일으켜주고 나왔어야 했는데 말이야.

하아~! 진짜...미치겠다.

로드리고는 자기 머리를 마구 비벼대며 짜증을 냈다.

하여간 성질을 긁지만 않으면 나도 그렇겐 하지 않는데...

따지고 보면 그 계집애도 잘한 건 하나도 없다니까.

그래도 아팠을 텐데...

병신계집애라느니 하는 말도 하는 게 아니었어.

또 혼자서 질질 짜고 있는 건 아닐까?

로드리고는 가슴이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오늘 그냥 방을 나서지 말고, 낸시랑 이야기나 할 걸 그랬어.

그랬더라면 이렇게 손수건이나 찾으러 돌아다니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런데 그거...찾을 수 있을까?

그는 빈민가 골목으로 들어서며 그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다닥다닥 붙어서 만들어진 볼품없는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곳과는 다르게 불빛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아직 여기저기 깔깔대며 뛰어다니는 어린애들이 있다.

쟤들은 뭐가 좋다고 저러는 거야?

이런데서 살면서...

하지만 에르줌과는 빈민가 사정이 확실히 다른 것 같았다.

그곳은 삭막하고 사막과 같았다.

하지만 여기는 뭔가 생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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