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48화
58장 지원은 없다(2)
“제기랄!”
레드가 욕설을 내뱉었고 바람의 정령 군주가 바람의 칼날을 쏟아냈다.
그림자 대공은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바람의 칼날을 모두 피해냈다.
테일러는 그림자 대공이 바람의 칼날을 피하면서 자세가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바로 파고들려고 했지만, 그림자 대공은 회피하면서도 조금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큭!”
틈은 보이지 않았지만, 테일러는 이를 악물고 그림자 대공에게 달려들었다.
그림자 대공의 붉은 눈동자가 일리아가 있는 곳을 향했기 때문이었다.
귀찮은 정령 군주 소환자를 처리하려고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테일러가 달려들어서 그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다.
“파도!”
그림자 대공이 손을 뻗자 검은 마력의 파도가 테일러를 덮쳤다.
“죽었나?”
그림자 대공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실제로는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둠 무희를 고쳐 잡았다.
“허억. 허억.”
검은 파도의 공격이 끝나고, 테일러는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전쟁의 나팔을 빠르게 휘두르는 것으로 파마의 검 스킬을 이용해 검은 마력의 파도를 최대한 분쇄했지만 다른 그림자 기사들이 시전한 ‘파도’보다 월등히 강력한 그림자 대공의 ‘파도’를 완전히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의 전신은 상처로 가득했고 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나마 결사의 의지 스킬 효과가 극대화되어 공격력과 방어력이 증가해서 이 정도였다.
효과가 극대화되지 않았다면 이 공격에 죽었을 것이다.
“테일러!”
실비아가 신성 기도문을 외웠다.
테일러의 상처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버트가 테일러의 곁에 다가왔다.
“방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실비아의 신성 기도문으로 부상을 거의 회복한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그림자 대공은 피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령 군주 소환이 가능한 정령사에 성녀라. 귀찮은 조합이군.”
그림자 대공의 모습이 또 한 번 사라졌다.
테일러는 두 눈으로 쫓으려 노력했지만 도저히 좇는 게 불가능했다.
그림자 대공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람의 정령 군주의 머리 위였다.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 대공은 어둠 무희를 휘둘러 그림자 검 수십 개를 만들어 바람의 정령 군주에게 쏘아 보냈다.
그림자 검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얼핏 보면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바람의 정령 군주의 회피 경로까지 예상한 공격이었다.
바람의 정령 군주는 절규 비슷한 소리를 내뱉으며 그림자 검을 쳐냈으나, 모두 쳐내는 것은 불가능했고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날카로운 그림자 검이 바람의 정령 군주를 처참하게 찢었다.
그림자 검 십여 개에 의해 처참하게 찢겼으나, 바람의 정령 군주는 역소환되지 않았다.
희미하지만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제기랄!”
바람의 정령 군주가 역소환되면 근처에 있는 자신이 목표가 된다는 것을 잘 아는 레드는 욕설과 함께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테일러와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알버트가 달려오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시간을 버는 게 중요했다.
레드가 화살을 건 시위를 놓는 순간, 그림자 대공은 땅을 향해 추락하듯 빠른 속도로 낙하하며 검게 물든 마력을 머금은 어둠 무희로 바람의 정령 군주의 측면을 베며 내려와 착지했다.
“아흑.”
바람의 정령 군주가 역소환되고 충격을 받은 일리아가 짧은 비명을 토해내며 비틀거렸다.
레드가 쏜 화살을 그림자 대공은 아주 쉽게 피했다.
그림자 대공의 붉은 눈동자가 일리아와 실비아를 번갈아 보았다.
“정령사, 그리고 성녀.”
어둠 무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빠르지만, 눈으로 어떻게든 쫓을 수 있는 속도로 일리아를 향해 쇄도했다.
일리아와의 거리를 좁히고 어둠 무희를 휘두르려는 순간, 그의 앞을 순백의 빛을 머금은 방패가 막아섰다.
“지나갈 수 없다.”
알폰스 그레이였다.
그는 방패를 힘껏 휘둘러 그림자 대공을 쫓아냈다.
“좋습니다! 알폰스!”
테일러가 소리쳤다.
테일러와 알버트는 알폰스가 아주 짧은 시간을 버는 틈에 그림자 대공을 포위할 수 있었다.
2명의 고위 기사와 1명의 신성교 성기사가 삼각형 모양으로 그림자 대공을 포위했다.
그리고 레드와 가이우스가 원거리에서 엄호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그림자 대공은 짧은 시간 동안 붉은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여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이윽고 상황 파악을 끝낸 그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한 바퀴 몸을 회전했다.
그러면서 어둠 무희를 몇 번 휘둘러 그림자 검을 날려 보냈다.
무수히 많은 그림자 검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강한 바람에 흩뿌려지는 낙엽처럼 무분별하게 사방에 흩뿌려지는 그림자 검.
파티원들은 저마다의 방어 수단을 동원해 방어해냈다.
“기본은 갖춘 녀석들이군.”
그림자 대공은 살짝 감탄했다.
평범한 기사였다면 방금 그 공격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을 것이다.
그림자 검은 날아가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고 무분별하게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결코 막아내기 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장난도 여기까지다.”
그림자 대공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알버트의 앞에 나타났다.
“두 번 당하진 않는다!”
알버트는 용케 그림자 대공의 움직임을 미리 읽고 검을 들어 올려 첫 번째 공격을 막아냈으나 자신의 허리를 겨눈 그림자 대공의 왼손을 간과하고 말았다.
“가이우스! 마법을……!”
그것을 본 테일러는 다급하게 외쳤으나 가이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네! 알버트도 휘말릴 것이야!”
“파도.”
그림자 대공은 입꼬리를 끌어 올린 채 그림자의 권능을 사용했다.
날카로운 칼날을 머금은 검은 마력의 파도가 알버트를 덮쳤다.
붉은 피가 솟구치고 피투성이가 된 알버트가 쓰러졌다.
실비아의 신성 기도문이 즉시 알버트를 치료하기 시작했으나, 생과 사를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큭!”
테일러는 이를 악물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그림자 대공에게 접근했다.
그림자 대공만큼 빠르진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는 잔상만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어이가 없군. 그딴 공격이 내게 통할 것 같나?”
그림자 대공은 테일러를 비웃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었지만 그림자 대공은 어둠 무희로 너무나 쉽게 막아냈다.
파마의 검 효과가 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둠 무희가 머금은 검은 마력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큭!”
테일러는 이를 악물고 자세를 정비하기 위해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그림자 대공은 보법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그림자 대공의 붉은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크악!”
어둠 무희가 테일러의 팔을 잘랐다.
전쟁의 나팔을 쥔 오른팔이 깔끔하게 잘렸다.
“테일러!”
일리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테일러는 고통을 참아냈다.
그리고 요대에 고정된 단검을 뽑아 찔렀으나 그림자 대공의 몸을 감싼 검은 마력 갑옷을 뚫지 못하고 부러지고 말았다.
“테일러! 조금 뜨거워도 참게나!”
그림자 대공이 마무리를 하려는 순간, 가이우스는 테일러가 마법에 말려드는 것을 감안하고 불의 창 마법을 시전했다.
마법진이 그려지고 불의 창이 그림자 대공을 노리고 날았다.
그림자 대공은 불의 창을 그대로 맞아주면서 가이우스의 뒤로 이동했다.
“이런!”
가이우스는 단거리 공간 이동 마법을 캐스팅하려고 했지만, 그림자 대공이 조금 더 빨랐다.
그림자 대공의 어둠 무희가 가이우스의 복부를 꿰뚫었다.
심장은 아니지만, 급소를 정확히 노린 공격이었다.
“이런 제기랄!”
순식간에 파티원 3명이 쓰러졌다.
그 모습에 레드는 욕설을 내뱉으며 활을 버리고 검을 뽑았다.
화살통에는 화살이 없었다.
“그냥 죽지는 않겠다!”
레드는 각오를 다지며 그림자 대공을 위협하듯 허공에 대고 검을 휘둘렀다.
그림자 대공은 입꼬리를 끌어 올려 레드를 비웃으며 그의 목숨을 걷어가기 위해 검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무수히 많은 화살이 그림자 대공의 급소를 노리고 쏟아졌다.
“방패.”
그림자 대공은 굳이 귀찮게 어둠 무희를 휘둘러 쳐내는 대신 그림자의 권능을 사용해 검은 방패를 만들어 화살 공격을 막아냈다.
한 차례의 화살 공격이 끝나고 그림자 대공의 붉은 눈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향했다.
“달빛 칼날. 조금 귀찮게 되었군.”
달빛 칼날은 위그드라실의 특수부대 중에서도 최정예로 유명했고 그림자 대공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일단은 물러나겠다.”
그림자가 그의 몸을 뒤덮었다.
이윽고 그림자 대공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아.”
그림자 대공이 사라지고 레드는 안도했다.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그는 주저앉으며 흐릿한 눈동자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림자 대공의 군대는 후퇴하고 있었다.
사우스 왕국과 위그드라실의 승리였다.
* * *
사우스 왕국군과 위그드라실군의 추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그림자 대공의 군대는 점령한 수도에 들어가 수성 준비를 서둘렀다.
사우스 왕국의 수도 사우스펠의 성벽은 높고 두꺼웠으며 방어 마법진까지 설치되어 있어, 수성을 할 경우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왕궁의 중앙 홀에 도착한 그림자 대공은 신경질적인 걸음걸이로 왕좌에 가서 앉았다.
그는 어둠 무희를 왕좌 옆에 놓은 뒤 날카로운 눈빛으로 중앙 홀에 모인 지휘관들을 훑었다.
살기가 가득한 그림자 대공의 눈빛을 받은 지휘관들은 시선을 애써 회피하며 몸을 떨었다.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
“예. 부르셨습니까?”
해상 군단의 군단장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대답했다.
그림자 대공의 붉은 눈동자가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에게 향했다.
“산 크루소 백작이 죽었고, 황금 군단은 사실상 전멸했다.”
산 크루소 백작은 죽었다.
이제 없다.
그가 지휘했던 황금 군단 역시 소수만 남기고 전멸했다.
살아남은 소수는 포로가 되어 북부의 차가운 감옥에 갇혔다.
이걸로 북부에서의 추가 지원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해상 군단에서 추가 지원은 불가능한 것인가?”
그림자 대공의 말에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은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미 해상 군단 전력이 상륙했습니다. 더 이상의 지원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림자 대공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은 이미 해상 군단의 전력을 동원했다.
더 이상은 병력을 끌어올 수 없었다.
“그렇군.”
그림자 대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를 부리고 싶었지만,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애써 냉정을 유지했다.
“한케일 폴른드 자작.”
“예. 주군.”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이 뒤로 물러나고 그림자 기사 한 명이 힘찬 대답과 함께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하야드 나이트쉐도우 후작으로부터 통신이 왔다고 들었다. 내용은?”
그림자 대공의 질문에 한케일 폴른드 자작은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통신 내용이 대답하기 상당히 곤란한 것 같았다.
“어서 말해.”
그림자 대공의 재촉에 한케일 폴른드 자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국의 그림자 기사단이 전멸하였습니다. 후작께서는 마지막 통신 도중 목숨을 잃으신 것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