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45화
57장 윈터레일 산맥 전투(2)
시간은 2월의 끝을 향해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북부를 벗어난 탓인지, 아니면 겨울이 끝을 보이고 있는 탓인지 마냥 차갑게 느껴졌던 바람도 조금 따뜻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고, 여유를 모르고 전진하던 아이반 왕자의 군대도 조금은 따뜻해진 바람을 맞으며, 강행군을 멈추고 적당히 휴식을 취하며 이동 중이었다.
얼마 뒤, 그들은 그림자 대공의 추격대보다 훨씬 먼저 윈터레일 중심도시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윈터레일 중심도시입니다!”
선발대는 윈터레일 중심도시를 발견했다.
그리고 아이반 왕자가 있는 중앙으로 전령을 보내 윈터레일 중심도시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선두로 이동하겠다.”
아이반 왕자는 안전한 진형의 중앙에서 선두로 이동할 것을 선언했다.
위험한 적진도 아니었기 때문에 선두로 이동한다고 해서 위험해질 염려는 없었다.
그래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지휘관은 없었다.
지휘부가 선두로 이동하고, 어느새 군은 윈터레일 중심도시 북문 앞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들은 성벽로를 지키고 있는 낯선 군대를 보게 되었다.
“엘프?”
아이반 왕자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인간과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 엘프 군대가 성벽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우스 왕국군 소속이 분명한 기사와 병사들도 성벽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주군.”
알버트가 곁에 다가왔다.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갑옷은 위그드라실의 엘프 군대가 확실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위그드라실의 엘프들은 인간과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테일러가 위그드라실 안으로 들어갔던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확실히 위그드라실의 깃발이 맞는군.”
가이우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위그드라실에 방문한 적이 없었지만 관력 책을 읽은 덕분에 위그드라실의 문장을 알고 있었다.
사우스 왕국의 깃발이 걸려 있는 깃대의 옆에 선 엘프가 들고 있는 깃발에 그려진 문장은 확실한 위그드라실의 문장이었다.
“지휘관은 모습을 드러내라! 아이반 왕자 전하시다!”
테일러는 북문 앞으로 말을 몰고 나가 아이반 왕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지휘관이 모습을 보일 것을 요구했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다들 지쳐 있었기 때문에 우선은 안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이윽고 성문 바로 위의 성벽로에 찬란하게 빛나는 금색 포니 테일에 녹색 눈동자를 가진 엘프 지휘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가벼워 보이지만 조금 특이한 갑옷차림이었고 투구는 쓰지 않았다.
손에는 긴 창을 들고 있었다.
“달빛 칼날?”
“달빛 칼날이 뭡니까?”
순찰대장 엘리아의 혼잣말을 들은 알폰스 그레이가 질문했다.
엘리아를 대신하여 일리아가 설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위그드라실의 왕 직속 특수부대예요.”
달빛 칼날은 위그다라실의 왕 직속 특수부대로 수는 500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원이 창과 활 그리고 검 등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대가 지휘관입니까?”
테일러의 물음에 달빛 칼날의 갑옷을 입은 엘프는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달빛 칼날의 지휘관 세리아 필리드입니다. 현재 에이렌 전하의 명을 받아 윈터레일 중심도시 북문의 수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성문을 열어주길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세리아 필리드는 흔쾌히 대답했다.
사실 이미 사전에 상호 간의 통신 마법을 통해 확인 작업은 끝마친 상태였다.
잠시 후, 거대한 성문이 천천히 열렸고 아이반 왕자의 군대는 윈터레일 중심도시로 진입했다.
윈터레일 중심도시에 진입하기 무섭게 아이반 왕자는 지휘관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루시드와 소수의 왕실 근위기사단원들과 함께 영주성으로 향했다.
아이반 왕자가 자리를 비우는 것으로 인해 지휘를 맡게 된 하츠 실버레인 후작은 윈터레일 중심도시의 상급 장교를 호출하여 병력 배치를 안내받았다.
상급 장교의 안내를 받아 하츠 실버레인 후작은 병력을 내성 전역에 나누어 배치했다.
유리 사우스 국왕을 만나고 완전히 제정신을 되찾은 아이반 왕자는 그동안 고생한 모두에게 하루의 휴식을 부여했다.
테일러도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로이츠를 만나기 위해 영주성으로 향했다.
내성까지는 아무런 방해 없이 출입할 수 있었지만 영주성의 성문에서는 국왕 기사단 소속의 고위 기사와 기사들이 앞을 막았다.
“소속과 용건을 밝혀주시겠습니까.”
테일러의 고위 기사 브로치를 확인한 국왕 기사단의 고위 기사는 정중하게 물었다.
“사우스 왕국군 소속 고위 기사 테일러입니다. 하이 엘프 왕 친위대장 로이츠 펠베런을 만나기 위해서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확인을 거친 뒤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보통 하이 엘프와 인간은 서로 만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테일러의 말을 들은 고위 기사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한 얼굴로 테일러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수습 기사를 성문 안으로 들여보냈다.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흐르고 문이 살짝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방금 전에 고위 기사가 들여보냈던 수습 기사가 달려나왔다.
“하이 엘프 왕의 친위대장에게 확인을 마쳤습니다.”
수습 기사의 보고에 고위 기사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테일러는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입을 열었다.
“들어가도 됩니까?”
“예. 들어가도 좋습니다.”
고위 기사는 테일러의 말에 대답하며 옆으로 물러섰다.
앞을 막아선 기사들도 옆으로 물러섰고 테일러가 성문 앞으로 다가가자 성문에 붙어 있는 쪽문이 열렸다.
한 사람을 위해서 무거운 성문을 여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기 때문에 소수의 인원이 출입할 때에는 주로 쪽문을 사용하게 했다.
쪽문을 통해 영주성 안으로 들어가자 외성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엘프를 볼 수 있었다.
하이 엘프 왕과 사우스 왕국의 국왕이 머물고 있는 탓에 영주성의 경비는 무척 삼엄했다.
특히 주변을 순찰하는 엘프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테일러가 하이 엘프 왕이 머무는 저택 쪽으로 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따라붙었다.
“거기 인간. 거긴 전하께서 머무시는 공간이다.”
10명 정도 되는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지휘관이 테일러를 멈춰 세웠다.
“친위대장 로이츠를 만나러 왔습니다.”
로이츠의 이름이 나오자 엘프 지휘관의 표정이 변했다.
로이츠의 이름을 아는 인간의 수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로이츠와 친한 사이로 알고 있었다.
엘프 지휘관은 두말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테일러는 고개를 저으며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은 친위대가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50명 정도 되는 수의 친위대가 저택 주변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고, 입구를 통해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마당에도 적지 않은 수의 친위대원들이 순찰을 하고 있었다.
테일러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친위대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보는 인간이 무장한 채 다가오자 친위대원들은 긴장한 얼굴로 테일러를 주목했다.
테일러의 발걸음이 멈췄다.
“무슨 일이지?”
친위대원이 질문했다.
“친위대장 로이츠를 불러주시겠습니까? 테일러가 찾는다고 하면 나올 겁니다.”
“일단 말해는 보겠다.”
친위대원이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친위대장 로이츠와 함께 나타났다.
“테일러. 오랜만에 뵙습니다.”
테일러의 얼굴을 확인한 로이츠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테일러도 반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설마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로이츠.”
“의외라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네. 설마 군대를 이끌고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인간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시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겁니까?”
하이 엘프 왕 에이렌, 그리고 로이츠 펠베런은 테일러에게는 우호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인간 전체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 않았다.
엘프 연방의 엘프들은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인간을 적대하는 자들과 인간에게 우호적인 자들, 그리고 철저한 중립을 유지하는 자들.
인간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엘프들의 수는 상당히 적었고 대부분이 중립 또는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자들이었다.
로이츠 역시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중립을 유지하는 부류였다.
“우선은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시겠습니까?”
로이츠는 안에 들어갈 것을 제안했고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저택의 정원에 마련된 누각 비슷한 구조물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로이츠는 먼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저는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철저한 중립을 취하고 있지요.”
로이츠의 시선이 테일러에게 향했다.
“하지만 말입니다. 사우스 왕국이 전멸하면 위그드라실 또한 전멸한다는 것을 회귀 전에 알게 되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로이츠가 말했다.
회귀 전의 로이츠는 보았다.
사우스 왕국의 멸망을 외면했을 때 벌어지게 되는 참극을.
그 잔혹한 학살의 축제를 보았고, 그것을 되풀이할 수는 없었기에 사우스 왕국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행동한 것이다.
“당신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피로 얼룩진 과거를.”
로이츠의 말에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일러 또한 회귀하여 돌아왔기 때문에 당연히 알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었다.
회귀 전에 목격했던 그 끔찍한 살육의 축제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은 회귀 후에도 깊이 파고든 화살촉처럼 뇌리에 박혀 빠져나오지 않았다.
“과거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이미 역사는 바뀌었지만, 반도를 향한 프랑츠 제국의 야욕은 그대로입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 함께 최선을 다합시다.”
로이츠는 미소를 지었다.
“위그드라실을 위해.”
“사우스 왕국을 위해.”
서로가 모시는 국가는 달랐지만 ,뜻은 같았다.
두 남자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 * *
엘프 왕국 위그드라실의 합류와, 남부 군단, 그리고 북부 군단을 비롯한 다수의 군대가 집결하면서 사우스 왕국군은 20만에 육박하게 되었다.
추격대의 수는 8만 정도
사우스 왕국 총사령관 아이반 왕자는 그림자 대공의 추격대를 공격하자는 의견을 내놓았고 북부 군단의 사령관 하츠 실버레인 후작과 남부 군단의 사령관 엘라스티에 윈터레일 백작을 포함한 주요 지휘관들도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그림자 대공의 추격대가 수도에 틀어박힌다면 탈환이 상당히 곤란해지기 때문에 신속하게 공격하여 전멸시키거나 못해도 수를 줄여둘 필요가 있었다.
수도의 방어는 상당히 튼튼해 공성전이 벌어지면 아군의 피해가 극심해질 게 분명했다.
아이반 왕자의 지휘하에 사우스 왕국군은 그림자 대공의 군대와 거리를 하루 정도로 좁히는 것에 성공했다.
그림자 대공도 평원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보다 수도에서 수성전을 벌이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면전을 벌이는 대신, 소수의 병력을 운용하여 야간에 야영지를 기습하여 아군의 피로를 누적시키고 이동 속도를 저하시키는 데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