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플레이어-143화 (143/150)

리턴 플레이어 143화

56장 수도 공격(3)

왕성을 벗어난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은 왕성 밖에서 대기 중이던 부관과 부하들과 합류하여 말을 타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외성의 지휘부로 향했다.

지휘부에는 귀족과 장교들이 군사 지도를 펼쳐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사령관께서 오셨습니다!”

지휘부 건물, 지휘관들이 모여 있는 방문을 지키는 기사가 문을 살짝 열고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의 출현을 알렸다.

“차렷!”

중앙 수비군 소속에 남작 작위를 가지고 있는 귀족 지휘관이 명령을 내리자 방에 모여 있는 지휘관들이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문이 완전히 열리고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이 그의 부관, 그리고 부하들과 함께 나타났다.

“현 상황을 보고하도록.”

중앙 수비군 사령관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은 현 상황을 자세하게 보고할 것을 명령했다.

군사 지도 왼편에 서 있던 고위 기사가 입을 열었다.

“아주 좋지 않습니다. 탑 1개가 완전히 적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고위 기사의 보고에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작해야 탑 하나가 넘어갔는데, 너무 과민반응하는 게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전투 시작 후 얼마나 지났느냐다.

지금은 전투가 시작되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탑 하나가 적의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제 그 탑을 기점으로 해서 전염병처럼 적의 군대가 퍼져 나갈 것이다.

“전투 시작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탑 하나가 넘어갔다는 말이야? 너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지휘는 제대로 한 게 맞아?”

중앙 수비군 사령관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은 분노하여 칼날처럼 날카로운 말을 기관총 쏘듯이 토해냈다.

모인 지휘관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남작 작위의 귀족 지휘관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열었다.

“그림자 기사들이 너무 강력하여 쉽게 저지할 수 없었습니다.”

성벽로와 탑은 평원과는 다르게 공간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예병들이 쉽게 활약할 수 있는 구조였다.

특히 그림자 기사단은 최정예로 이름난 전투 집단이다.

좁은 성벽로에서 그들을 제압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다.

“부관!”

“말씀하십시오.”

“지금 즉시, 통신실로 이동해서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에게 통신을 보내서 현재 수도에 있고 전투가 가능한 왕국 정보부 요원들을 전원 외성의 성벽으로 보내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부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방을 나섰다.

통신실은 지휘부 건물 1층에 있었고 부관은 그곳으로 즉시 이동했다.

왕국 정보부 요원, 특히 특수 요원들은 전투 훈련도 받는다.

그들의 무기 다루는 솜씨는 훌륭했고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중앙 수비군 사령관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은 생각했다.

“준남작.”

“예.”

그는 옆에 서 있는 귀족 지휘관을 불렀다.

귀족 지휘관이 대답하자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은 입을 열었다.

“놈들이 점거한 탑을 마법사 전력으로 날려 버려!”

탑을 날려버리는 것은 과감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준남작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뒤 지휘부 건물을 이탈하여 마법사 전력을 소집했다.

그림자 기사들은 최정예 중에서도 최정예였다.

그들이 그림자 기사단원들과 함께 움직여 장악한 탑을 탈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고위 기사들을 많이 보내면 탈환은 가능하겠지만 그만큼 많은 고위 기사들을 잃을 게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피해도 작고 확실하게 적을 소탕할 수 있는 방법은 강력한 마법의 연쇄 공격으로 탑을 박살 내는 것이다.

그림자 기사라고 해도 무너지는 탑에서 생존하는 것은 힘들었다.

이윽고 집결한 마법사 전력이 그림자 기사단이 점령한 탑에 마법을 퍼부었다.

탑이 무너지고 탑을 장악하고 있던 그림자 기사단원 3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탑이 무너지는 것으로 인해 그 주변의 방어가 약해졌지만 장악되어 적의 전진 기지로 활용되는 경우보다는 나았다.

“목숨을 걸고 사수하라! 그대들의 뒤엔, 그대들의 가족이 있다! 왕국을 위해, 그리고 그대들의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성벽을 사수하라!”

가벼운 갑옷을 입은 상급 장교가 탑 위에서 마법사의 도움으로 커진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외침이 전장에 울려 퍼지고 병사들은 창을 고쳐 쥐고 전의를 불태웠다.

“국왕 폐하 만세!”

“사우스 왕국 만세!”

사다리를 타고, 그리고 공성탑을 통해 성벽을 넘어오는 적들을 보며, 사우스 왕국의 기사와 병사들은 국왕과 왕국을 연호하며 침입자들을 향해 정의로운 일격을 가했다.

“비켜라! 전령이다!”

북문에서 피에 젖은 갑옷을 입은 전령이 다급하게 말을 타고 지휘부에 도착했다.

전령은 자신을 막아서는 병사들을 밀쳐내며 지휘부 건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건물 입구를 지키고 있는 기사 3명은 전령 휘장을 확인하고는 옆으로 물러섰고 전령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지휘관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고하라.”

왕립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고속 진급의 길을 걸어온 것인지, 다른 이들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상급 장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상급 장교는 전령의 몰골을 보고, 전령의 입에서 좋지 않은 소식이 나올 것 같다는 것을 예상했다.

“긴급 요청입니다! 북문이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북문 지휘관께서 신속한 지원군 투입을 요청하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전령의 입에서 나온 소식은 심각한 내용이었다.

“북문이 밀리고 있다는 말이냐?”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이 되물었다.

전령은 이마에서 시작해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북문 지휘관께서 신속한 지원군 투입을 요청하셨습니다.”

“예비대는?”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은 예비대의 행방을 물었다.

동문과 서문, 그리고 남문과 북문에는 각각 성벽에 배치된 병력 외에도 예비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 예비대는 긴급한 상황 발생 시 즉각 투입된다.

“이미 투입했습니다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습니다.”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은 중앙 수비군 소속의 고위 기사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을 호명했다.

두꺼운 철제 갑옷을 입고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간사해 보이는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사령관.”

차분한 목소리.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여유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늘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한 고위 기사였다.

그는 국왕보다는 왕국에 충성을 다하는 고위 기사였고, 그래서 왕실 근위기사단 소속이었을 당시 부단장 자리를 제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앙 수비군으로 소속을 옮겼다.

그의 검술 실력은 라크 듀렌달 자작과 비슷한 수준이며, 사관학교를 졸업하진 않았지만, 지휘 능력 또한 인정받은 엘리트였다.

“북문을 맡기겠다.”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은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이 북문의 위기를 타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신뢰가 느껴지는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의 목소리에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긴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적을 격퇴하겠습니다.”

“많은 병력은 줄 수 없다. 알고 있지?”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의 말에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수도의 수비를 사실상 총 책임지고 있는 중앙 수비군의 병력으론 4개 성문에 적에게 대응할 병력을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한계였다.

유사시 운용이 가능한 예비대의 수는 극히 적었다.

“자세한 상황은 모릅니다. 하지만 보병 3천이면 충분할 겁니다.”

보병 3천.

적은 수도 아니었지만 많은 수도 아니었다.

하지만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은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을 믿었다.

“보병 3천을 주겠다. 적을 섬멸하여, 북문을 지켜라.”

“명을 받듭니다. 모든 것은 사우스 왕국을 위하여.”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군례를 올린 뒤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다른 전령과 함께 지휘부 건물을 나섰다.

전령은 실버즈 윙그레이 백작의 명령을 대기하고 있던 3천의 보병대에게 전달했고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을 3천의 보병대와 함께 북문으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세상에, 심각하군.”

북문에 도착한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이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북문의 상황은 심각했다.

대부분의 탑이 넘어간 상태였고, 성벽은 검은 갑옷을 입은 그림자 기사단원들이 사실상 점령하고 있었다.

그리고 프랑츠 제국의 해상 군단 병력이 공성탑과 사다리를 통해 성벽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성벽로는 사실상 그림자 기사단원들이 점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해상 군단 병력은 아무런 방해 없이 성벽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미 북문의 수비 병력은 후퇴하고 있었다.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과 지원군이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지나쳐 도주하고 있었다.

“하아. 이러는 건 정말 싫은데.”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혼란, 그 자체인 주변 상황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조용히 검을 뽑아들었다.

“기사단! 검을 뽑아라!”

그리고 자신의 직속 기사단에게 검을 뽑을 것을 지시했다.

80명이 조금 안 되는 수의 기사단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자신의 옆을 지나쳐 도주하는 병사의 목을 살기가 띈 눈빛을 흘리며 베었다.

목이 잘린 병사는 힘없이 쓰러졌다.

“도주로를 차단해라.”

“알겠습니다.”

기사단이 움직였다.

도주로가 차단되었다.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잘린 병사의 목을 높이 들어 올렸다.

“도망치는 놈들에겐 죽음뿐이다! 왕국을 위해 싸워라!”

그의 목소리는 마법사의 마법으로 커져 전장에 널리 퍼졌고 도주하던 병사들은 정신을 다잡고 반전했다.

“각 병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기사나 장교의 지휘에 따라라!”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의 명령이 울려 퍼지고 병사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기사나 장교에게 합류하여 체계적인 명령을 전달받았다.

반격의 시간이 도래했다.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의 군대가 북문을 덮치고 있는 프랑츠 제국의 군대를 덮쳤다.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이미 기울기 시작한 전황을 뒤집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전황을 뒤집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가장 먼저 지휘관으로 보이는 그림자 기사의 목을 쳤다.

남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그림자 기사로, 마력 갑옷까지 사용 가능한 그림자 기사였지만,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 또한 마력 갑옷의 사용이 가능했고 검술 실력 또한 뛰어났기 때문에 그의 목을 어렵지 않게 칠 수 있었다.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적장의 목을 들고 적장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파하여 적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아군의 사기를 증가시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쉽게 전황을 뒤집을 수 없었다.

그의 지휘 능력은 뛰어났지만, 북문의 상황이 도착했을 때부터 너무 나빴던 것이다.

북문 지휘관의 지휘 능력은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적장의 지휘 능력이 너무 뛰어났고, 거기다 그림자 기사단의 전투 능력이 예상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사우스펠 마탑의 마탑주이자 대마법사인 카론 메피스트 후작이 고위 마법사 다수를 이끌고 북문으로 지원 왔고, 덕분에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전황을 뒤집을 수 있었다.

“성벽 청소를 끝냈습니다.”

게슈타인 기사단의 부단장이 보고했다.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얼굴이 잔뜩 튄 피를 대충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흠. 좋아. 이대로 수비를 굳힌다.”

“큰일 났습니다!”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은 한숨 돌렸다고 생각했지만, 기사단 소속의 고위 기사가 다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제임스 게슈타인 앞에 도착한 그는 거친 숨을 대충 고르고 입을 열었다.

“적이 예비대를 투입했습니다.”

제임스 게슈타인 자작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투는 이제부터 시작인가.”

그렇다.

전투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