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37화
54장 추격(2)
나일 쉬바스 백작이 전사한 지금, 테일러가 지휘를 맡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간 큰 지휘관은 없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왕자 전하.”
“기대하겠네.”
테일러의 대답에 아이반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실 근위기사단의 임시 지휘관 문제가 해결되자 지휘관 회의에선 기병대를 재편성해서 수십 개의 분견대를 만들었다.
재편성된 분견대들은 황금 군단의 분견대 사냥을 위해 투입될 예정이었다.
분견대 지휘관 배정이 시작되었다.
분견대에 배정된 지휘관에는 테일러 또한 있었다.
지휘관 배정이 끝나자 각 분견대가 이동해야 할 대략의 경로가 설정되었다.
왕국 정보부에서 제공한 황금 군단 분견대 예상 이동 경로가 이 과정에서 참고되었다.
왕국 정보부에서 제공한 예상 이동 경로대로 황금 군단의 분견대들이 이동할 확률은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비슷한 경로로 이동할 확률은 매우 높다는 게 왕국 정보부의 판단이었다.
아군의 분견대는 기병 최소 230기 이상, 고위 마법사 2명 이상, 에이스 레인저 3명 이상으로 구성되었다.
테일러의 분견대에도 고위 마법사 1명과 에이스 레인저 2명이 추가로 합류하게 되었다.
“가서 반드시 승리하라!”
아이반 왕자의 말을 끝으로 지휘관 회의는 끝났다.
테일러는 루시드로부터 기병대 병력의 지휘권을 인계받고 파티원들과 함께 기병대 주둔지로 향했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테일러는 현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파티원들에게 전달했다.
일리아는 또 전투가 시작될 것이라는 말에 조금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아 보였지만 크게 내색하진 않았다.
실비아도 조금 지친 듯 보였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레드는 욕설을 내뱉으며 대놓고 항의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하급 장교 하드슨과 아쉬운 이별을 끝내고, 테일러는 지휘권을 인계받은 기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테일러를 맞이하기 위해 나온 상급 장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전원 무장하고 집결한다. 신속하게 분견대를 토벌하기 위해 움직인다.”
테일러의 말에 상급 장교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경. 하지만 작전 시작은 내일이라고 전달받았습니다만.”
상급 장교의 말에 테일러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테일러는 상급 장교를 노려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마을은 황금 군단 분견대의 말발굽에, 군홧발에 유린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체할수록 놈들은 더 멀리 이동할 것이며 더 큰 피해를 야기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신속하게 준비를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테일러의 말은 틀린 게 없었고 상급 장교는 기병들을 준비시켰다.
중무장하고 말에 올라탄 기병대가 집결했다.
테일러와 파티원들 또한 말에 올랐다.
그들이 성문으로 이동하자 성문을 지키고 있던 기사는 병사들을 시켜 성문을 열어주었다.
성문이 열리고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말을 몰아 중심도시에서 점점 벗어났다.
* * *
“마력의 잔재가 아주 조금이지만 남아 있습니다. 마법으로 이동 흔적을 지운 것 같습니다.”
테일러의 지휘 아래에 들어온 새로운 고위 마법사 크리스가 주변을 면밀히 조사한 뒤 보고했다.
흩어진 황금 군단의 분견대 토벌을 위해 말을 타고 중심도시를 벗어난 지 2일째 되는 날, 아침.
남부 레인저 여단 에이스 레인저 출신의 레드와 다른 에이스 레인저 1명이 뭔가 수상한 흔적을 발견했었다.
테일러는 즉시 기병대를 정지시키고 크리스와 가이우스에게 마법으로 주변을 조사할 것을 명령했고 지금 이렇게 크리스는 훌륭한 결과를 보고하게 된 것이다.
“적의 수는 어느 정도로 추정되나?”
“흠. 마법으로 흔적을 지운 탓에 수는 특정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테일러의 질문에 크리스는 곤란한 얼굴로 대답했다.
마법으로 흔적을 지운 탓에 마력의 잔재는 아주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마법으로 흔적을 지웠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지만, 흔적은 이미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분석하여 수를 특정하는 것은 힘들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테일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왕국 정보부의 보고에 의하면 대부분의 분견대 규모가 기병일 경우 100기를 넘기지 않고 보병일 경우에도 200명을 넘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기다 우린 실비아도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평소처럼 묵묵히 침묵을 지키던 알폰스 그레이가 입을 열고 말했다.
실비아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턱을 추어올렸다.
중요한 존재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웃게 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선은 거리를 좁혀 보겠습니다. 상급 장교, 근처에 마을이 있나?”
마을이 있다면 황금 군단 분견대는 그곳을 공격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보급을 위해서라도 약탈을 행해야만 했다.
상급 장교는 군사 지도로 시선을 옮겼다.
“하나 있습니다. 서두르면 5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시간이면 이미 적들이 공격을 시작했을 수도 있었다.
테일러는 다시 말에 오르며 입을 열었다.
“신속하게 이동한다!”
기병대가 신속하게 움직였다.
4시간 30분 정도를 이동하자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습격을 받았는지 검은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이동! 적을 급습한다!”
“예!”
테일러가 지휘하는 기병대는 속도를 올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다수의 말발굽 소리에 마을을 유린하고 있던 황금 군단 기병들은 행동을 멈추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순식간에 약탈 행위를 멈추고 집결한 그들은 진형을 갖추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테일러의 기병대를 향해 창을 앞으로 향한 채 말을 몰았다.
가이우스와 크리스의 고위 마법이 적을 덮쳤다.
방어마법이 몇 개 전개 되었지만 고위 마법사가 전개한 게 아닌 것인지 허무하게 박살 났고 돌진해오던 선두가 무너졌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고 충돌이 다가오고 있었다.
“황제 폐하 만세!”
“국왕 폐하를 위하여!”
충돌이 임박한 순간 고함이 터져 나왔지만, 이윽고 두 진영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소음에 묻혀 버렸다.
어느새 전쟁의 나팔을 뽑아든 테일러가 이리저리 전쟁의 나팔을 휘두르며 전장을 누볐다.
황금 군단 분견대는 밀리는 상황이 되자, 퇴각하여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뒤 돌진해왔지만, 불의 정령 군주가 소환되어 뜨거운 화염을 토해내자 불길을 뚫지 못하고 멈춰 서야만 했다.
그들이 멈춰 서는 것으로 인해 속도를 잃었을 때, 불길이 진압되고 테일러가 지휘하는 기병대가 그들을 덮쳤다.
속도가 붙은 기병대의 돌격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충돌과 함께 터져 나온 소음 속에 고통에 찬 비명이 섞여 들려 왔다.
전투는 당연히, 테일러가 지휘하는 기병대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테일러가 지휘하는 왕국군 기병대는 엄청난 속도로 돌격하여 멈춰 있는 황금 군단 기병대를 공격하는 것으로 전투 시작 초기에 많은 적지 않은 수의 적을 전투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고 병력의 숫자 역시 많았다.
황금 군단 기병대는 최정예였지만 성녀 실비아 그레이의 신성 기도문으로 회복력이 증가하고, 축복으로 인해 공격력과 방어력이 증가한 왕국군 기병대를 상대로 제대로 된 힘을 쓰지 못했다.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전쟁의 나팔로 황금 군단 기병대 소속 기사의 상체를 깊이 베며 테일러가 소리쳤다.
포로가 발생하면 그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본대에서 보낼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등 다소 귀찮은 일이 발생하게 되지만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추적에서 항복하지 않고 결사항전을 외치는 적들로 인해 다수의 병력을 잃고 예비 병력을 보충받기 위해 본대로 귀환하는 것보단 덜 귀찮았다.
“항복이란 없다!”
“황제 폐하께 영광을!”
항복 권유에 들려온 대답이었다.
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금 군단의 사기는 꺾일 줄 몰랐다.
결국 그들은 최후의 1인까지 용감하게 싸우고 패배했다.
적의 거센 저항 때문에 아군의 피해 역시 그렇게 적다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테일러의 표정은 얼음처럼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테일러 경, 다음 명령을 내려주시겠습니까?
전투가 끝나고 빠질 수 없는 뒷정리가 대충 끝나자 상급 장교가 테일러의 앞에 다가와 다음 명령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테일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뒷정리는 끝이 났고, 혹시나 잔당이 남아 있을까 싶어 마을로 보냈던 기병 20기도 돌아오고 있었다.
“30분 정도 휴식하고 다시 다른 분견대를 쫓는다.”
“알겠습니다.”
30분의 휴식이 끝나고 테일러는 기병대와 함께 황금 군단의 다른 분견대를 쫓기 위한 이동을 위해 하나둘씩 말에 올랐다.
움직이기 위해 말고삐를 쥔 순간, 마을 촌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마을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다가왔다.
테일러는 고위 기사였지만,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에서 산 적도 있었다.
말 위에서 나이 든 사람을 맞이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는 말에서 내려 촌장에게 다가갔다.
“고위 기사 테일러입니다.”
테일러는 정중하게 촌장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촌장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고위 기사님. 저는 헤일린 마을 촌장 하이론이라고 합니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촌장님.”
“다름이 아니라, 저희 목숨을 구해주신 분들에게 따뜻한 저녁이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만, 저희는 흩어진 적의 분견대를 토벌해야 합니다.”
테일러는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지금도 어떤 마을은 황금 군단의 분견대에게 공격당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자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테일러는 생각했다.
“주군, 다들 지쳐 있습니다. 잠시 휴식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알버트가 테일러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기병대의 상급 장교 또한 입을 열었다.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그동안의 강행군과 좀 전의 전투로 인해 부대의 피로도는 상당합니다. 휴식이 필요합니다.”
테일러는 쉽게 반대 의견을 내세우지 못했다.
두 사람의 말대로, 중심도시에서 나온 뒤 지금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테일러는 분견대를 토벌하기 위해 계속 기병대를 재촉하여 강행군을 해왔다.
그런 상태에서 전투까지 벌였으니, 기병대의 피로도는 아마도 하늘을 찌르고 있을 것이다.
성녀 실비아 그레이의 축복과 신성 기도문의 힘이 없었다면 쓰러진 자도 생겼을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군.”
고개를 돌려, 병사들의 피곤한 얼굴을 훑어 본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촌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깐이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위 기사님.”
촌장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런 촌장을 보며 테일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괜찮으십니까? 저희는 300명에 가까운 수입니다.”
테일러가 지휘하는 기병대는 300명을 훨씬 넘는 수였다.
방금 전의 전투에서 전사자가 제법 많이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성녀 실비아 그레이의 신성 기도문 덕분에 다른 부대가 비슷한 규모의 전투를 수행했을 때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수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그래서 현재 테일러가 지휘하는 기병대는 그 수가 다소 줄어 300명에 가까운 수가 되었다.
300명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300명의 병력이 먹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식량이 소모된다.
지금은 겨울.
그것도 춥기로 유명한 북부의 겨울이었다.
가을까지 농사와 사냥으로 식량을 축적하여 겨울을 보내는 대부분의 마을처럼 헤일린 마을 또한 그럴 것이다.
테일러와 기병대가 식량을 많이 소모하면 겨울을 지내기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테일러의 염려에 촌장 하이론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마을 사람들의 수가 줄어서, 식량은 많이 넘칩니다.”
말을 마치며 촌장은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테일러의 기병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황금 군단 분견대는 빠르게 약탈과 학살 행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검과 창에 너무나 많은 수의 마을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만약 테일러가 조금만 늦게 도착했다면 마을은 전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마을로 안내해주겠습니까?”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