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26화
50장 황금 군단(1)
824년 11월.
베르헨 공작 가문의 몰락과 함께 권력을 손에 넣은 그림자 대공은 황금 군단과 그림자 기사단 병력 5만을 이끌고 남하했다.
대규모 이동이었지만 그랑키아 숲 몬스터들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 오크 대족장 라우쉬의 병력이 사우스 왕국에서 막 귀환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전투 없이 사우스 왕국의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한편, 그림자 대공이 황금 군단, 그리고 그림자 기사단의 병력과 함께 사우스 왕국의 국경을 넘고 있을 때 사우스 왕국을 노리는 또 하나의 칼날이 있었다.
바로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의 해상 군단이었다.
해상 군단은 해상 군단 본부에서 해병대 8만 병력을 800척의 수송선에 태우고 출발했다.
호위를 맡은 48척의 전함이 포함된 838척의 대함대는 곧장 남하하였다.
중간에 사우스 왕국의 강력한 해군과 마주치는 바람에 100척 이상의 함선을 잃었지만 비교적 멀쩡한 모습의 함대가 사우스 왕국의 서쪽 해상, 사피드 자작령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대로 상륙을 진행할까요?”
해상 군단에 소속된 젊은 귀족이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에게 질문했다.
호화로운 망토를 두른 채, 멀리 떨어진 곳에 희미하게 보이는 사피드 중심도시의 모습을 망원경으로 살피고 있던 라이필트 린데일 후작은 귀족의 질문에 망원경을 내리고 몸을 돌렸다.
그는 바닷바람으로 엉망이 된 짧은 금발을 빗으로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나의 주군, 그림자 대공께선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라고 명하셨다. 나는 그에 따를 것이다.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법포로 해안을 무력화시키고 상륙을 진행한다.”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귀족은 장교들을 불러 모았다.
그가 린데일 후작의 명령을 전달하자 장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망루의 신호 장교가 깃발로 신호를 보내자 마법포가 탑재된 38척의 전함이 일제히 사피드 자작령을 향해 선수를 돌렸다.
마법포는 마법이 내장된 강력한 포탄을 쏘는 무시무시한 병기였지만 그 크기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야전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해상전에서나 사용했다.
해상전에서도 작은 크기의 범선엔 탑재하는 게 불가능했고 큰 전함이나 선수 갑판에 장착할 수 있었다.
사우스 왕국도 해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우스 왕국도 엄연히 해군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도 마법포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해상 군단이 침입을 시도한 서해에 있던 함대 대부분은 몬스터 군단의 해상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동해로 이동해 있었다.
왕국 정보부장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그림자 대공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사실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림자 대공의 주력 지지자 중 한 명인 린데일 후작, 본래대로라면 지방 영주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병력 이동이 쉽지 않은 그가 해상 군단을 움직여 서해를 공격할 것이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결국 서해에 남겨둔 최소한의 경계 병력은 해상 군단의 전력 앞에서 참혹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사피드 자작령 또한 소수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린데일 후작이 지휘하는 해상 군단의 압도적인 병력의 모습에 감히 출격시킬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2척의 전함과 8척의 소형 전함은 항구에서 침묵을 지켰다.
“전 포문, 발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젊은 귀족이 보고했다.
린데일 후작은 해안가에 모여들고 있는 자작령의 병사들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며 마치 개미를 관찰하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정말이지 어리석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분명 해전에서 생존한 자들의 보고로 마법포의 존재를 알 텐데! 저렇게 설탕물에 달려드는 개미처럼 모여드는 모습이란! 정말이지 인간들은 재밌어!”
“명령을 내려주시겠습니까?”
린데일 후작은 망원경을 다시 내렸다.
그리고 푸른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전 포문 일제 사격.”
죽음의 선고가 떨어졌다.
젊은 귀족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도열해 있는 하급 장교들에게 시선이 향했다.
“전 포문 일제 사격!”
하급 장교들이 흩어졌다.
망루의 신호 장교에게 린데일 후작의 명령이 전파되고 붉은 기가 흔들렸다.
마법포를 조준한 전함들의 갑판 위가 분주해졌다.
마지막으로 조준 확인 작업이 끝나고 신호 장교의 신호에 맞춰 일제 사격이 시작되었다.
천지를 뒤흔드는 포성과 함께 마법포는 오렌지색 포화를 뿜어냈다.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마법 포탄이 해안가를 두드렸다.
“크아아악!”
“으아악!”
해안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병사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폭발과 함께 찢긴 팔과 다리가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마법사들은 방어 마법을 전개했지만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마법 포탄은 방어 마법을 우습게 박살 냈다.
한 번의 일제 사격에 해안은 죽음의 기운이 가득 풍기는 무덤이 되었다.
온전한 모습의 시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압도적은 마법 포격의 위력 앞에 창백해진 얼굴로 흩어져 도망쳤다.
장교들이 자리를 지키라고 명령하면서 병사들을 진정시키려고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마법 포격의 압도적인 위력을 목격한 병사들은 통제 불능이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린데일 후작의 망원경에 담겼다.
“후작, 재장전이 완료될 때까지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2차 사격 후 상륙합니까?”
“아니, 상륙을 개시한다.”
린데일 후작이 말했다.
한 번의 마법포 일제 사격으로 인해 해안가의 방어 시설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대부분 병력도 죽거나 와해되었다.
상륙 과정에서 적의 저지가 없을 것이라고 린데일 후작은 판단했다.
“잠깐만, 부관.”
린데일 후작의 호출에 뒤쪽에 서 있던 상급 장교 한 명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린데일 후작의 옆으로 이동했다.
“예. 부르셨습니까?”
“중심도시가 마법포의 사정권에 들어오나?”
린데일 후작의 질문에 부관은 요대에 걸려 있는 망원경을 꺼내 중심도시를 주목했다.
그리고 머리를 굴려 거리를 계산했다.
“해안가에 근접한다면 사정권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린데일 후작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중심도시를 노려보았다.
“포격으로 중심도시를 제압한다. 해병대는 깃발만 꽂으면 될 것이야.”
“명을 따릅니다!”
38척의 전함이 전진했다.
해안가에 근접한 전함들은 일제 포격을 개시했다.
사피드 중심도시의 두꺼운 성벽은 마법 포격에 무너지지 않았지만 성벽로의 병사들은 성벽만큼 튼튼하지 않았다.
마법 포격의 충격에 성벽 너머로 떨어지거나, 포격에 직격 당해 장렬히 산화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상륙 개시.”
전함이 뒤로 물러나고 상륙함이 전진했다.
차례대로 해안가에 거대한 몸집을 정박시켰다.
그리고 거대한 입을 벌려 무장한 해병대를 토해냈다.
해상 군단 해병대장 에드워드 디만 백작은 땅에 발을 내려놓기 무섭게 마병기 바다뱀을 뽑아들어 중심도시를 겨눴다.
“진형을 갖춰라! 속히 중심도시를 공격한다!”
해상 군단 소속 해병대의 훈련 상태는 상당히 좋은 것으로 유명했다.
엉망이 된 해안가에 상륙한 해병대는 곧 진형을 갖추었고 사피드 중심도시를 향해 전진했다.
“저, 적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창백한 얼굴로 보고하는 병사.
고위 기사 출신 귀족 유조드 사피드 자작은 병사의 보고에 성벽 너머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중심도시를 향해 전진하는 상당한 수의 적병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는 얼마나 되나?”
사피드 자작은 고위 마법사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고위 마법사는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7만 정도입니다. 수가 워낙 많아서 마법에 오차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절대로 6만 이하는 아닐 겁니다.”
고위 마법사의 보고에 사피드 자작은 이를 악물었다.
사피드 자작령은 해안가로 적이 침입할 경우, 수도로 향하는 길목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왕국군 병력이 2천, 영지군이 3천해서 총 5천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중심도시에만 3천 5백의 병력이 주둔 중이었지만 지금 적의 수는 너무나 많았다.
시민들을 무장시켜 5천의 병력을 확보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그 어떤 경우를 생각해봐도, 중심도시가 적의 공격을 버텨낼 경우는 예상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마법 포격으로 인해, 최소 1천 명의 병력이 전투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였다.
생각은 길어지고 있었지만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어느새 적들은 성문 앞에 도달했다.
마법전이 벌어졌지만, 고위 마법사 수가 압도적으로 적어 패배했다.
자작령의 고위 마법사가 결코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적은 규모 자체가 달랐다.
마법전에서 패배하자 강력한 고위 마법과 마법들이 병사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불의 비와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쏟아졌다.
마법 세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해병대는 성벽에 사다리를 걸쳤다.
그리고 사다리를 통해 성벽로로 진입했다.
사피드 자작은 필사의 각오로 항전했지만, 외성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내성과 영주성 또한 외성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심도시에 프랑츠 제국의 깃발이 꽂히는 데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황금 군단과 그림자 기사단의 남하 소식이 전파되고 아이반 왕자는 우선 지휘관들을 해산시켰다.
그들이 국경을 넘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식으로 지휘관 회의가 열릴 때까지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아직 시간은 조금 있었다.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지만 다급한 것도 아니었다.
해산 명령을 받고, 숙소로 돌아온 테일러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일리아를 만날 수 있었다.
곁에는 실비아도 있었다.
실비아가 있으니, 당연히 알폰스도 함께였다.
“테일러, 전쟁은 끝난 거죠? 그렇죠?”
일리아가 두 눈을 빛냈다.
그녀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테일러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무겁게 닫힌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무슨 일 있는 거예요?”
실비아가 말했다.
테일러가 침묵을 지키자 뭔가 불안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테일러는 일리아와 실비아, 그리고 알폰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금 군단과 그림자 군단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이제 프랑츠 제국과의 전쟁입니다.”
“아…….”
테일러의 말에 일리아는 상당한 충격을 받고 비틀거렸다.
실비아와 알폰스도 놀란 눈치였지만 일리아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그녀는 하이 오크 대족장 라우쉬의 몬스터 군단과의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이제 테일러와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기대하고 있었다.
벌써 자녀 계획까지 세운 상태였는데, 황금 군단과 그림자 기사단의 남하 소식으로 인해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다.
그랑키아 숲의 몬스터 군단도 위험하지만 프랑츠 제국은 더 위험했다.
프랑츠 제국이 전력을 다하면 사우스 왕국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일리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테일러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프랑츠 제국에는 테일러보다 더 강한 고위 기사들이 많았다.
“일리아.”
테일러는 비틀거리는 일리아의 팔을 잡고 그녀를 부축했다.
그 모습에 실비아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테일러는 실비아의 변화를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알폰스는 실비아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고 한숨을 내쉬었다.
“테일러.”
일리아는 테일러와 눈을 맞추었다.
테일러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말씀하세요. 일리아.”
“우리 도망쳐요. 이 전쟁은 승산이 없어요.”
배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면 윈우드 왕국이 있었다.
그곳으로 도망친다면 전쟁의 불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리아는 생각했다.
일리아는 테일러에게 도망칠 것을 제안했지만, 테일러의 얼굴이 굳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일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