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플레이어-116화 (116/150)

리턴 플레이어 116화

46장 조우(2)

경사가 급했고 기사단원들은 중심을 잡기 힘든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넘어지지 않았다.

6명의 레인저가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키엑!”

“적이다!”

남부 레인저 여단의 레인저들이었다면, 백발백중이었겠지만 북부 군단의 레인저들은 실력이 조금 떨어졌기 때문에 네 마리밖에 처리하지 못했다.

오크 전사 하나가 가래가 끓는 듯한 목소리로 적의 출현을 알렸다.

“집결하라! 전사들이여!”

오크 상급 전사가 소리쳤다.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던 오크 전사들이 상급 전사에게 집결했다.

그 수가 25마리 정도였다.

“상급 전사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급 전사를 홀로 상대하겠다는 하인즈 실버레인 경의 말에 부관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랑키아 숲의 오크 상급 전사는 고위 기사도 쉽게 죽이지 못하는 적이었다.

하인즈 실버레인 경의 검술 실력은 고위 기사급이었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마력검을 사용하지 못하는 평기사였다.

마력검이 깃든 무기에 단 한 번이라도 검을 부딪친다면 그 순간 무기를 잃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괜찮습니다.”

“마력검은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수로 밀어붙여야 합니다. 견습 기사 다섯 명을 제외하면 모두 기사이니, 오크 전사들을 모두 제압하고…….”

“그러는 동안 오크 상급 전사가 허수아비처럼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그리고 마력검은…… 피하면 됩니다.”

검을 막는 것은 쉬우나, 피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 않은 일이다.

하인즈 실버레인 경은 그답지 않게 조금은 무모한 발언을 내뱉으며 오크 상급 전사를 향해 달렸다.

오크 전사들과 북부 늑대 기사단원들도 전투를 시작했다.

전투는 유리하게 돌아갔다.

레인저들의 지원 사격 덕분에 기사단원들은 오크 전사들을 빠른 속도로, 피해 없이 줄여갈 수 있었다.

견습 기사 2명이 쓰러질 동안, 오크 전사 10마리가 쓰러졌다.

하인즈 실버레인 경의 상황은 다소 좋지 않았다.

그는 오크 상급 전사의 공격을 훌륭하게 회피하고 있었지만, 회피에 집중한 나머지 공격을 좀처럼 시도하지 못했다.

“인간! 피하기만 하는 것이냐!”

오크 상급 전사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순간 하인즈 실버레인 경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가 말을 하면서 생긴 아주 짧은 틈.

그 틈을 하인즈 실버레인 경은 놓치지 않았다.

마치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힌 그는 옆으로 몸을 굴려 마력검을 피해내고는 일어나면서 오크 상급 전사의 흉부를 노리고 대각선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쿠에에엑!”

오크 상급 전사는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붉은 피를 토해냈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며 축 늘어졌다.

하인즈 실버레인 경이 검을 뽑자 그는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일격에 심장이 파괴되어 목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부관.”

“네.”

하인즈 실버레인 경의 호출에 부관이 얼굴에 묻은 오크의 피를 닦으며 다가왔다.

이미 전투는 끝나 있었다.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이동합니다.”

말은 정찰대원들의 수만큼 있었다.

견습 기사 2명이 죽었지만, 마을 사람 전부를 태우긴 힘들었다.

하지만 하인즈 실버레인 경은 물자만 말에 실었고 정찰대도 도보로 이동하여 결국 중심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중심도시에서 계속 병사들을 훈련시키며 지내고 있던 테일러는 루시드와 살라다르 경을 만날 수 있었다.

국경 수비대와 함께 있던 그들은 국경 수비대가 전멸한 순간, 퇴각 명령을 받고 신속하게 남쪽으로 퇴각한 덕분에 큰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었다.

루시드는 테일러를 데리고 중심도시 내성에 있는 임시 주점으로 향했다.

대부분이 안전한 남쪽으로 피난을 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쟁 상인들이 운영하는 임시 주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상인들은 군대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하는 자들이었는데, 돈만 준다면 지옥으로도 뛰어들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진 자들이었다.

그랑키아 숲의 몬스터 군단이 남하 중이라는 소문이 퍼진 탓에 임시 주점에는 군인들밖에 없었다.

애초에 군인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임시 주점이었지만.

평소의 그답지 않게 루시드는 구석진 자리로 테일러를 인도했다.

구석에 자리 잡은 그들은 맥주 두 잔과 구운 생선 요리를 시켰다.

이윽고 요리와 맥주가 테이블에 올려지자 루시드가 입을 열었다.

“좀 어떤가?”

단순한 근황을 묻는 게 아니었다.

테일러가 부대를 훈련시키고 있다는 근황은 루시드도 듣는 귀가 있기 때문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국왕 폐하를 향한 제 충성심은 흔들리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루시드.”

테일러의 대답에 루시드는 고개를 저으며 작은 생선 하나를 가져가 뜯었다.

말없이 생선을 씹는 루시드.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본의 아니게 자네를 시험해버렸군. 용서하게.”

“괜찮습니다.”

테일러는 대답과 함께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나라도 그런 일을 당했으면 억울했을 것이야. 충성심도 조금 흔들렸겠지.”

루시드는 그렇게 말하며 뼈만 남은 생선을 뼈를 담는 접시에 무신경하게 던졌다.

사실 루시드는 국왕과 왕국을 향한 충성심이 그렇게 깊은 편은 아니었다.

그는 유리 사우스 국왕에게 광적으로 충성하는 국왕 기사단장 아시드 필리스터 자작의 아들이었지만, 충성심은 유전되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충성심이 있었다면 유적이나 탐사하고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면 기사에 서임되고 왕국군에 충성을 다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떠돌며 술이나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습니까?”

테일러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시선은 구운 생선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훈련을 감독하느라 저녁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배가 제법 고팠다.

그는 구운 생선을 하나 집어 들고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향신료가 입 안에 가득 퍼졌다.

비린내도 전혀 나지 않았고 훌륭한 솜씨였다.

자리를 잡고 주점을 해도 될 정도였다.

“징집병들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들었네. 많이 힘들지 않은가?”

예비군으로 이름을 올린 백성들은 세금을 감면받는 대신에 정기적으로 소집되어 훈련을 받는다.

루시드 또한 왕국군의 기사 자격으로 징집병들을 훈련시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얼마나 비협조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테일러가 징집병들을 훈련시키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많이 걱정했었다.

징집병들은 충성심은 찾아볼 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힘든 훈련을 극도로 기피하기 때문에 훈련시키는 게 쉽지 않았다.

“적당히 채찍과 당근을 섞어주니 잘 따르고 있습니다. 물자는 실버레인 후작께서 넉넉하게 지원해주시고 계십니다.”

사실 당근은 거의 주지 않고 채찍 위주로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그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했다.

루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일러는 모르고 있었지만 하츠 실버레인 후작이 테일러에게 넉넉한 물자를 지원해주는 이유는 실버레인 후작 개인이 테일러에게 가지고 있는 호감에 의한 이유도 있었지만 아이반 왕자의 부탁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반 왕자는 테일러가 희생양이 되어 지휘권을 박탈당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요 지휘관들에게 테일러의 사정을 봐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이다.

테일러는 몰랐지만 루시드는 아이반 왕자로부터 통신을 통해 전달받았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루시드는 굳이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루시드. 말단이라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테일러는 지휘권을 박탈당하면서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휘하에서 나오게 되었고, 직위도 말단이 되었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과 개인적인 통신을 할 수도 없고 말단이라 작전 회의에 참석할 수도 없으니 전쟁의 정보를 입수하기가 힘들었다.

“조만간 검을 뽑아야 할 것이네. 몬스터 군단이 실버레인 중심도시로 진군하고 있다네. 사일드 윈스터크 자작이 5천 병력을 모아 길목을 막았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야.”

북부 군단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북부의 전력은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집결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몬스터 군단의 진군 속도는 예상보다 빨라서 가만히 있으면 북부의 전력이 집결하기 전에 실버레인 중심도시가 공격당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하츠 실버레인 후작은 북부의 전력이 집결하기 전에 실버레인 중심도시가 점령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사일드 윈스터크 자작과 5천 병력을 보낸 것이었다.

한 마디로 사일드 윈스터크 자작의 역할은 시간 벌기였다.

“저희는 언제든지 출진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하하하. 자네가 출진할 일은 없을 걸세. 이제 자네는 푹 쉬면 되는 것이야. 곧 북부의 전력이 집결할 테니.”

북부의 전력이 곧 집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몬스터 군단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 루시드는 예상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흩어져 있는 북부 군단의 군대가 그랑키아 숲의 다른 군대와 전투를 벌이느라, 예정된 시간에 실버레인 중심도시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사일드 윈스터크 자작의 5천 병력은 루우거드의 군대와 전투를 벌인 끝에 2천의 병력을 잃고 실버레인 중심도시 근처로 패주했다.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면 3일밖에 걸리지 않는 상당히 가까운 거리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하츠 실버레인 후작은 급하게 다수의 부대를 소집해 2천의 군대를 편성하여 사일드 윈스터크 자작을 돕기 위해 보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테일러와 테일러 부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1천 3백의 기병 전력은 먼저 출발했고, 테일러를 포함한 보병 전력은 조금 늦게 움직였다.

보병 전력을 지휘하는 지휘관은 상급 장교 루우 필터였다.

왕립 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상급 장교가 된 엘리트였다.

상급 장교 루우 필터의 지휘에 맞춰 보병 부대들은 며칠의 시간이 지난 후 집결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럴 수가.”

루우 필터는 경악했다.

집결 장소에서 그들이 본 것은 전투가 끝난 뒤의 처참한 모습이 새겨진 대지였다.

시체가 산을 이뤘고, 붉은 피가 강이 되어 한편에 흐르고 있었다.

“몰살당한 것 같습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몬스터 군단과 마주치지 않은 게 다행이군요.”

“나도 알아! 젠장!”

테일러의 말에 상급 장교 루우 필터는 욕설을 내뱉었다.

테일러는 고개를 저으며 옆으로 물러났다.

루우 필터는 예민한 상태였다.

괜히 건드려서 좋을 건 없었다.

“루우 필터,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상급 장교가 질문을 던졌다.

상급 장교 루우 필터는 잠시 고민하더니, 옆에 있는 고위 마법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 당장, 북부 군단 사령부로 통신을 연결해주시겠습니까?”

“할 수는 있습니다만, 마력 파장을 적이 탐지할 경우 위치가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통신 마법은 쉬워 보이지만 엄연히 고위 마법이었기 때문에 적에게 수준 높은 마법사 또는 주술사가 있을 경우 마력 파장을 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탐지된 마력 파장을 바탕으로 추적 마법을 전개할 경우 위치가 노출될 수도 있었다.

고위 마법사는 그 점을 우려하고 있었지만 상급 장교 루우 필터는 상관없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상관없습니다. 명령이 없으면 우린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는 어떤 경우라도 상부의 명령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융통성 없는 장교였다.

만약의 경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였고 왕립 사관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적인 내용을 따르는 것이었지만 실제 전장에선 터무니없이 위험한 버릇이었다.

“그럼 통신을 연결하겠습니다.”

고위 마법사는 내키지 않아 했지만 상관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북부 군단 사령부로 통신을 연결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