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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플레이어-114화 (114/150)

리턴 플레이어 114화

45장 몬스터 군단의 남하(2)

테일러 파티가 출발하고 그 모습이 희미해지고 나서야 루시드는 천막으로 돌아갔다.

긴장감이 맴도는 북부의 국경과는 달리 수도로 향하는 길은 평화로웠다.

주로 잘 닦여 있는 길로 다녔기 때문에 몬스터와 조우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도로는 왕국군이 주변에 주둔하며 정기적으로 몬스터를 토벌하고 순찰하기 때문에 몬스터의 출현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게 도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사우스펠의 경계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몬스터와의 조우는 2번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수도로 빨리 가기 위해 도로가 아닌 숲을 가로지를 때 만난 것이었다.

1번은 뱀파이어였고, 1번은 오크였다.

뱀파이어는 수십 규모의 정찰대였고 오크의 경우 수는 제법 많았지만 레드의 인도로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사우스펠 도시가 보입니다.”

알폰스의 말대로 전방 멀지 않은 곳에 대도시 사우스펠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우스펠의 중심에선 아침 안개에 가려져 희미한 왕성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속도를 높이도록 합시다.”

테일러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삐를 살짝 치자 말이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속도를 올렸다.

824년 9월의 마지막 날.

테일러 파티는 수도 사우스펠에 도착했다.

* * *

“대족장을 위하여!”

오크의 거친 목소리가 그랑키아 숲을 뒤흔들었다.

황금 군단과 그림자 기사단으로 철벽같은 방어 태세를 갖춘 북부로 진격하는 것을 포기한 몬스터 군단은 즉각 남하를 시작했다.

하츠 실버레인 후작은 몬스터 군단이 국경을 넘는 것을 어떻게든 늦춰보고자 북부 군단의 유능한 지휘관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과 루프란 부대를 투입해 그랑키아 숲으로 북진시켰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이 지휘하는 루프란 부대 2천 명으로 시간을 끌기엔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대족장을 위하여!”

다시 한번 오크의 거친 목소리가 그랑키아 숲을 뒤흔들었다.

창을 쥔 병사들의 손이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오, 제기랄. 적어도 1만은 넘는 것 같군. 우린 다 죽었다.”

“쉿! 병사들이 듣고 있네. 목소리를 낮추게나.”

고개를 저으며 절망하는 상급 장교를 보며 한 고위 기사가 주의를 주었다.

전투를 앞둔 병사들은 예민했다.

작은 자극으로도 전의를 상실할 수도 있었다.

“기병대는 말을 버려라. 말을 방패로 삼는다.”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이 굳게 닫힌 입을 열고 명령을 내렸다.

기병대 3백은 즉시 말을 버리고 말을 방패로 삼았다.

적의 수는 1만이 넘었지만, 루프란 부대의 수는 2천에 불과했다.

왕국 정보부의 훌륭한 정찰 덕분에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은 적의 수가 얼마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적의 수를 알고 난 뒤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이 느낀 감정은 후회였다.

차라리 몰랐다면 죽을 각오로 싸울 수 있었겠지만, 알고 나니 도저히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하츠 실버레인 후작의 명령대로 시간을 끌어야 했기 때문에 지금 당장 후퇴할 수는 없었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번의 공격은 받아내고 후퇴해야만 했다.

“자작! 도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기병대에게 말을 버리라니요!”

상급 장교 한 명이 뒤늦게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했다.

말이 없는 기병은 기병이 아니었다.

애초에 기병은 말 위에서 최대의 전력을 발휘하는 병과였고 그런 훈련을 받아온 병과였다.

그들에게 말을 버리라고 하는 것은 상급 장교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적의 수는 1만을 가볍게 넘고 늑대 기수의 수만 해도 4천이다. 기병전에서 순식간에 소멸하는 것보단 보병으로 전환해 방진에 합류하는 게 훨씬 낫다.”

적의 수는 1만이었고, 그중에서도 오크계의 기병이라고 할 수 있는 늑대 기수의 수만 해도 4천이 넘었다.

3백과 4천의 전투.

3백이 순식간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은 그렇게 어이없게 기병 전력을 잃는 것보단 말을 버리고 보병이 되어 방진에 합류해서 생존률을 높이는 것이 전술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해했습니다.”

상급 장교도 납득하고 물러났다.

“늑대 기수가 몰려옵니다. 4천, 아니, 4천 5백은 넘는 것 같습니다!”

마법을 이용한 색적임무를 부여 받은 마법사가 두려움으로 인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은 최대한 유리하게 전투를 이끌기 위해 방어에 유리한 넓은 언덕에 부대를 배치하고 임시로 목책을 세웠다.

지휘부는 그중에서도 특히 높은 위치였기 때문에 아군을 향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오는 늑대 기수 4천 5백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포악한 늑대 위에 탑승한 4천 5백의 오크 전사들.

그들이 내뿜는 위용은 절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마법사단!”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이 마법사단을 호출했다.

마법사단의 지휘를 맡은 고위 마법사는 대답 대신 강력한 고위 마법을 캐스팅했다.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늑대 기수 수십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공격하라!”

또 다른 고위 마법사가 불기둥을 일으키며 소리치자 마법사단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캐스팅했다.

불덩이가 비처럼 쏟아지고 바람의 칼날 폭풍이 늑대 기수들을 덮쳤으나, 그들의 수를 고작 3백 정도를 없애는 데 그쳤다.

“궁병대! 사격!”

궁병대 지휘를 맡은 하급 장교가 검을 휘두르자 목책 위를 가득 채운 궁병들이 일제히 시위를 놓았다.

화살비가 쏟아졌지만, 늑대 기수들은 화살을 맞아가며 전진했다.

“상급 전사가 있습니다!”

망루의 기사가 보고했다.

늑대 기수 중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마력검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상급 전사, 상급 전사를 먼저 죽여라!”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은 다급해졌다.

상급 전사의 마력검이면 목책의 문이 허무하게 무너진다.

최대한 버티기 위해선 목책의 문이 오랫동안 건재할 필요가 있었다.

“궁병대! 상급 전사를 최우선 목표로!”

“마법사단! 상급 전사를 먼저 타격하라!”

궁병대와 마법사단의 집중 공격으로 문을 향해 진격하던 오크 상급 전사는 비명을 지르며 늑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상급 전사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한숨 돌리나 싶었지만, 망루의 기사가 또 다른 상급 전사의 출현을 알렸다.

“마법사단!”

“캐스팅 중입니다!”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은 다급하게 마법사단을 찾았으나, 마법사단은 모두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궁병대가 집중 사격을 전개했지만 마력검의 경지에 오른 상급 전사를 화살만으로 저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대족장 만세!”

목책의 문에 접근한 상급 전사가 거친 목소리로 외치며 검을 휘둘렀다.

나무로 만들어진 두꺼운 문이 종이처럼 잘려나갔다.

“방어 태세! 충격에 대비하라! 궁병대는 즉시 방진에 합류하라!”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은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고 궁병대가 방진에 합류하기 무섭게 늑대 기수들이 진입했다.

“충격에 대비하라!”

상급 장교 한 명이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늑대 기수들과 방진이 충돌하는 것으로 인해 생긴 소음에 묻혀 버렸다.

“크아악!”

“으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평범한 기병과 달리 늑대 기수가 탄 동물은 말이 아닌 늑대였다.

늑대는 호전적인 짐승이었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오크 전사와 검을 주고받는다고 늑대에게 소홀히하면 늑대가 바로 목을 노렸다.

그렇게 늑대에게 목이나 팔을 물어뜯긴 병사들은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고 고통스러워 했다.

“밀어붙여라! 멍청이들아!”

늑대 기수들의 지휘를 맡은 상급 전사는 아군의 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적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하자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는 거친 목소리로 부하들을 타박했으나,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루프란 부대는 북부 군단에서도 이름 있는 정예 부대였고, 고위 기사와 고위 마법사도 꽤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지독한 훈련으로 단련된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결국 늑대 기수 지휘관은 후퇴를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늑대 기수들이 물러나자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도 신속하게 후퇴를 명령했다.

루프란 부대는 신속하게 전선에서 물러나 국경으로 남하했다.

하츠 실버레인 후작의 명령대로 시간은 충분히 끌었기도 하였고, 오크 주술사 전력이 포함된 본대와 전투를 벌이게 되면 전멸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다.

사이자크 루프란 자작이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북부 군단 소속 국경 수비대는 병력을 징집하고 무장시키는 등의 전투를 위한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완벽하게 준비를 끝마친 북부 군단 소속 국경 수비대와 몬스터 군단 선봉의 깃발을 든 오우거 루우거드의 군대가 그랑키아 숲과 사우스 왕국의 국경에서 맞붙었다.

* * *

미리 전달받은 대로 테일러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모든 지휘권을 박탈당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제이드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전시고, 공을 세워 오명을 벗을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유리 사우스 국왕은 테일러에게 100명 정도되는 규모의 소규모 부대를 지휘할 수 있는 지휘권을 부여했다.

테일러는 이 사실을 파티에 전달했다.

파티원들은 테일러를 위로해주기 위해 수도 내성에 있는 고급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랑키아 숲의 몬스터 군단이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백성들에게 전파되지 않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주점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랑키아 숲의 몬스터 군단을 상대로 100명 규모의 독립 부대라, 그것도 정예 부대도 아닌, 징집병. 이건 뭐, 죽으라는 소리지.”

테일러의 말을 들은 레드가 술잔을 기울이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실 유리 사우스 국왕은 테일러에게 고급 부대의 지휘를 맡기려 했지만, 테일러가 벼락출세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원수보듯이 하는 나일 쉬바스 백작과 그의 편에 선 귀족들의 반대로 인해 징집병 부대의 지휘권을 부여하는 게 최대였다.

비록 희생양이긴 하나 패전의 책임이 전가된 게 있었기 때문에 아이반 왕자가 큰 목소리를 내서 그를 변호할 수도 없었다.

“그랑키아 숲 몬스터 군단을 상대로 저희 홀로 싸우는 게 아닙니다. 왕국의 군대가 함께 할 것입니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레드를 향해 테일러가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레드는 안주로 나온 닭고기를 포크로 분해해 입에 넣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상 독립 부대는 홀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야. 레인저 중대라도 이번에는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못할 텐데, 어휴. 징집병 100명으로 구성된 독립 부대라니. 다 죽었다.”

그는 말을 마치며 목이 마른 지 술잔을 기울였다.

“레드! 주군께 말씀이 지나칩니다!”

알버트가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드의 언행이 심히 불쾌했던 모양이었다.

“하, 그래. 말이 심했군. 다 죽진 않을 거야. 나만 죽겠지.”

“자네, 취한 것 같군.”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레드를 보며 가이우스는 술에 취한 것 같다고 말하며 그의 옆에 놓인 술병을 치우려했지만 레드는 그 술병을 잡아채서 빈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 가득 채운 술잔을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만 가겠어. 도망치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 말과 함께 레드는 주점을 나섰다.

테일러를 위로해주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위로는 전혀 되지 않고 씁쓸한 감정만을 남긴 채 정리되었다.

주점에서 나온 테일러는 일리아와 함께 산책을 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제이드 기사단 지휘권을 박탈당하면서 더 이상 왕성에 머물 이유가 사라졌지만 아이반 왕자의 배려로 테일러와 파티원들은 왕성의 숙소에 계속 머물 수 있었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테일러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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