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09화
43장 하이 오크의 보물(3)
벨폰 하스 준남작이 지휘하는 그림자 기사단의 분견대는 얼마 전 사우스 왕국의 남부 레인저 여단 소속 레인저 중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뒤 재정비를 위해 한 자리에서 목책을 세우고 머물고 있었다.
재정비는 끝났지만, 그림자 대공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움직이진 않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에게 재앙이었다.
늦은 밤 야영지 중앙을 홀로 순찰하고 있던 그림자 기사단원 리드슨은 땅에서 뭔가 영롱한 빛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레드가 홀린 것처럼 뭔가에 홀린 듯 그곳으로 다가간 리드슨은 망설임 없이 귀해 보이는 목걸이를 요대에 고정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것이 재앙의 시작이었다.
* * *
“라쉬. 다시 한번 추적 주술을 시전하도록.”
하이 오크 엘리되니츠가 분노로 두 눈을 붉게 물들이며, 부족의 제사장 라쉬에게 다시 한번 추적 주술을 시전할 것을 명령했다.
현재 엘리되니츠의 군대는 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혔던 곳에 잠시 멈춘 상태였다.
“알겠습니다.”
하이 오크 엘리되니츠의 명령에 오크 제사장 라쉬는 주술을 발동했다.
라쉬의 눈에서 잠시 빛이 반짝였다.
빛이 사라지고 라쉬는 입을 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위대한 하이 오크이시어.”
“바로 이동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목걸이를 탈환해야 한다.”
라쉬의 보고에 엘리되니츠는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 목걸이는 엘리되니츠가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있는 하이 오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 하이 오크를 죽이고 손에 넣은 귀중한 마도구였다.
목걸이에 걸려 있는 주술을 풀기 위한 주술이 다 끝나가는 시점이었는데, 레드가 훔쳐갔기 때문에 지금 엘리되니츠는 매우 화가 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현재 자신의 영토의 다른 마을에 주둔한 군대까지 조금 불러 800이 넘는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고 있었다.
엘리되니츠도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영토 수비를 위한 군대는 각 마을에 남겨두었다.
800이면 영토 수비 병력을 제외한 전 병력이었다.
원래는 더 많았지만 사우스 왕국의 원정대와의 전투에서 그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봤기 때문에 이 정도였다.
수비 병력을 제외한 전 병력을 동원했다는 부분에서 엘리되니츠의 분노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군대가 이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그림자 기사단의 야영지에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곳입니다. 위대한 하이 오크시어.”
라쉬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인간! 인간들이었나?”
엘리되니츠는 분노했다.
대검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인간들을 절단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엘리되니츠가 분노를 표출하고 있을 때, 목책의 문이 열리고 그림자 기사단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말에 타고 있지 않았지만, 말에 탄 것처럼 빠른 속도였다.
일종의 정찰대였다.
벨폰 하스 준남작이 지휘하는 분견대엔 고위 마법사가 없었기 때문에 마법사가 주변 탐색 마법을 가동하고 있었는데, 그 마법사의 수준으로는 주변에 적이 있는 것은 파악할 수 있지만, 자세한 숫자는 파악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벨폰 하스 준남작은 100명의 탐색전을 벌이기 위해 그림자 기사단원 100명을 먼저 내보냈다.
다수가 마력검을 다루고 있었다.
그림자 기사단의 기사단원들은 고위 기사급 실력자가 아니라도 그림자의 권능을 허락받아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자라면 마력검의 사용이 가능했다.
“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크 상급 전사 하나가 걸걸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수는 100여 명 정도입니다만, 모두 정예로 보입니다.”
또 다른 오크 상급 전사 하나가 보고했다.
엘리되니츠는 대검을 들어 올렸다.
“모두 검을 들어라! 늑대 기수는 돌진하라!”
엘리되니츠의 명령에 늑대 기수 50기가 집결했다.
날카로운 창과 검을 든 늑대 기수 50기가 그들이 모시는 하이 오크 엘리되니츠의 명령을 받들어 적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칼날 파도!”
맨 앞에서 움직이던 그림자 기사 작위를 보유한 그림자 기사단원이 그림자의 권능을 사용하였다.
날카로운 그림자 칼날로 이루어진 파도의 물결이 늑대 기수들을 덮쳤다.
“키에엑!”
“키엑!”
순식간에 늑대 기수 5기가 그림자 칼날에 전신을 난도질당해 끔찍한 몰골로 죽었다.
“겁먹지 마라! 부족을 위해 돌격!”
늑대 기수 지휘관이 목숨을 잃었지만, 부관이 지휘권을 행사했다.
그가 오크어로 외치자 늑대 기수들은 용기를 얻어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단검 수십 개가 날아왔다.
늑대 기수 절반이 또 목숨을 잃었다.
“멈추지 마라!”
남은 늑대 기수들이 그림자 기사단원들과 충돌했다.
“크아아악!”
“키엑!”
양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창에 꿰뚫린 그림자 기사단원이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쓰러지고 늑대의 목이 마력검에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그림자 기사단은 최정예였지만 그랑키아 숲의 늑대 기수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강력한 그랑키아 숲의 오크 중에서도 정예였다.
짧은 전투 끝에 늑대 기수들은 몰살당했지만, 그림자 기사단의 피해도 작지 않았다.
이 한 번의 전투로 40명의 그림자 기사단원을 잃었다.
“늑대 기수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입니다.”
오크 상급 전사가 보고했고 엘리되니츠는 이를 악물었다.
엘프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매력적인 얼굴이 일그러졌다.
“전군! 돌진한다! 라쉬! 엄호를 맡기마.”
“맡겨주시길.”
라쉬의 싸늘한 시선이 전방을 향했다.
오크 주술사 십여 마리가 일제히 공격 주술을 전개하자 푸른 전격과 날카로운 얼음 창이 그림자 기사단을 향해 쏟아졌다.
“방어 마법을 전개해라!”
날카로운 목소리로 누군가 명령하자 방어 마법이 전개되었다.
벨폰 하스 준남작이 보유한 고위 마법사 전력은 전무했지만, 마법사 전력은 다수 보유하고 있었고 정찰대 역할을 맡은 100여 명에게도 마법사는 소수 포함되어 있었다.
방어 마법이 전개되었지만 뛰어난 오크 주술사들의 공격 주술에 방어 마법은 금세 깨졌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던 그림자 기사단원 다섯이 공격 주술에 휩쓸려 목숨을 잃거나 전투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어느새 양측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그림자 대공의 이름으로! 앞을 막는 모든 적을 베어라!”
지휘를 맡은 그림자 기사가 마력검을 휘두르며 하이 오크 엘리되니츠에게 달려들었다.
고급스러운 갑옷을 입고 있는 엘리되니츠는 귀찮은 얼굴로 허공에 대고 대검을 그었다.
“헉!”
그림자 기사가 헛바람을 삼켰다.
차원이 찢어지고 그곳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방패!”
그림자 기사는 그림자의 권능으로 방패를 전개했지만, 차원의 틈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그림자의 방패는 순식간에 녹아내렸지만, 다행히 그림자 기사에게까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방패와 불꽃이 사라진 뒤 그림자 기사는 자신의 눈앞에서 대검을 휘두르는 엘리되니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대검이 자비 없이 그림자 기사의 몸을 절단했다.
“커헉!”
입가에서 피를 뱉어내며 그림자 기사의 잘린 몸들이 땅에 뒹굴었다.
붉은 피와 함께 내장이 쏟아졌다.
전투 능력이 매우 뛰어난 그림자 기사가 미처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엘리되니츠의 움직임은 빠르고 치명적이었다.
그림자 기사와 하이 오크 엘리되니츠의 교전을 시작으로, 두 집단 간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엘리되니츠는 대검을 휘두르거나 주술을 사용하여 오크 군대를 지원했다.
엘리되니츠의 활약으로 정찰대 역할을 맡고 출진한 그림자 기사단의 병력은 순식간에 몰살당했다.
“정찰대가 전멸했습니다!”
망루에서 전황을 살피던 그림자 기사단원이 다급하게 군의 몰살 소식을 알리며 경종을 울렸다.
목책 위에 올라간 그림자 기사단의 마법사들이 공격 마법을 퍼부었지만 분노한 오크 전사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튼튼한 문을 앞두고 잠시 오크 전사의 물결이 멈추긴 했지만 엘리되니츠가 마력검이 깃든 대검을 휘둘러 두꺼운 나무 문을 토막 내버리자 오크들은 다시 움직였다.
전투가 시작되고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림자 기사단은 프랑츠 제국의 정예였지만 그들은 얼마 전 사우스 왕국의 정예 레인저들로 구성된 남부 레인저 여단의 레인저 중대와 전투를 벌이면서 수가 줄고 피로도 누적된 상태였다.
거기다가 오크들의 수 또한 그림자 기사단보다 많으니, 밀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키에엑!”
상황이 유리하게 흘러간다 싶었는데, 라쉬의 비명이 들렸다.
전투에 집중하고 있던 엘리되니츠는 부하 상급 전사에게 지휘를 잠시 맡기고 뒤로 물러나 주술사들의 진영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윽고 그의 눈에 처참한 광경이 들어왔다.
수북이 쌓여 있는 오크 제사장과 주술사들의 시체들.
그리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검은 갑옷의 기사단.
벨폰 하스 준남작이 지휘하는 별동대 50명에 의해 제사장 라쉬와 오크 주술사들은 끔찍하게 도륙당한 것이었다.
벨폰 하스 준남작은 아주 뛰어난 그림자 기사였다.
근접한 상태에서 오크 제사장을 도륙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감히!”
충복을 잃었다는 사실에 엘리되니츠는 다시 분노했다.
자비가 없는 그의 마력검이 울부짖는 것처럼 요동쳤다.
주변의 공기가 바뀌었다.
벨폰 하스 준남작 또한 살기를 느끼고 몸을 돌렸다.
투구의 면갑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꽤 굳어 있을 게 분명했다.
“전사들이여! 집결하라!”
엘리되니츠의 외침에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100마리에 가까운 오크 전사들이 집결했다.
상급 전사도 다섯 마리 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쳐라!”
엘리되니츠는 명령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 앞을 막아선 그림자 기사 한 명의 목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방어 대형.”
벨폰 하스 준남작은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림자 기사단은 즉시 방어 대형을 갖추었다.
사각 방진을 구축한 그림자 기사단을 포위한 오크 전사들의 매서운 공격이 시작되었다.
“으아악!”
“키엑!”
양쪽 진영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끈질긴 줄다리기 끝에 벨폰 하스 준남작이 이끄는 별동대가 승기를 잡았다.
오크 전사 절반이 목숨을 잃었고, 그 틈을 타 벨폰 하스 준남작은 탈출을 시도했다.
“넌 못 지나간다!”
오크 상급 전사 하나가 오크 전사 다섯을 이끌고 앞을 막아섰다.
“방해다! 파도!”
벨폰 하스 준남작이 그림자의 권능을 사용했다.
검은 그림자의 파도를 오크 상급 전사는 마력검으로 파훼했으나, 이어진 벨폰 하스 준남작을 검을 피하지 못했다.
마력검이 이마를 쪼개자 뇌가 훤히 드러났다.
뇌수가 섞인 피가 솟구쳤다.
뒤따르는 그림자 기사단원 여섯이 오크 전사 다섯을 찔렀다.
“저 죽일 놈을 당장 잡아라!”
엘리되니츠의 분노한 목소리에 얼마 남지 않은 늑대 기수 소수가 움직였지만 벨폰 하스 준남작을 죽이지 못했다.
“위험했군.”
엘리되니츠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벨폰 하스 준남작은 투구를 벗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그는 차가운 물을 입에 쏟아 부었다.
그러곤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상황은?”
“분견대의 절반 이상이 전사하거나 전투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관이 부동자세로 보고했다.
벨폰 하스 준남작은 고개를 돌려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군의 수는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다.
물론 오크 전사들의 수도 상당히 줄어 있었다.
버티고 버티면 승리를 거머쥘 수는 있겠지만, 그 승리는 상처뿐인 승리가 될 확률이 높았다.
“즉시 퇴각 나팔을 불도록. 우선은 뒤로 물러나서 다른 분견대와 접촉한다.”
벨폰 하스 준남작은 피해가 막대한 상처뿐인 승리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확실한 승리를 원했고 그것을 위해 뒤로 물러나 대열을 정비한 뒤 다른 분견대와 합류할 계획을 세웠다.
마침 후방에 그와 가까운 사이의 그림자 기사가 지휘하는 분견대가 하나 있었다.
“알겠습니다.”
부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퇴각 나팔이 울렸다.
전투를 이어가던 그림자 기사단원들은 침착하게, 대열을 유지하며 야영지 밖으로 후퇴했다.
“추격할까요?”
야영지를 벗어나는 그림자 기사단의 모습을 보며 오크 상급 전사가 엘리되니츠에게 물었으나, 엘리되니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선은 놈들의 시체를 뒤져 마도구가 있는지 확인한다. 만약 없으면 병력을 충원하여 다시 추격한다.”
“알겠습니다.”
오크 군대의 피해도 상당히 심각했기 때문에 엘리되니츠는 감히 추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목걸이를 찾지 못한다면 다시 추격할 생각은 있었지만, 지금은 우선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시체를 수색하면서 다행히 엘리되니츠는 목걸이를 찾을 수 있었고, 그림자 기사단은 전투를 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