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06화
42장 빼앗긴 마력 심장(2)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그랑키아 숲.
어둠에 물든 숲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이십여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장궁을 들고 빠른 속도로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던 붉은 단발머리의 여성이 푸른 눈을 빛내며 전방을 주시했다.
기척을 느낀 것인지 그녀는 집중해서 전방을 살피더니 마침내 손을 들어 올려 천천히 따라오라는 수신호를 뒤따르는 이들에게 보냈다.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레드가 굳은 얼굴로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전방을 주시했다.
“오크 정찰대인가.”
그는 바로 옆에서 들어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화살통에서 화살을 하나 뽑아 시위에 살짝 걸었다.
화살을 시위에 살짝 건 레드는 손가락으로 추적대의 대장인 페일리아의 어깨를 살짝 찔렀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페일리아는 까칠한 얼굴로 몸을 돌려 레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레드가 수신호로 ‘지금 공격하는 겁니까?’라고 묻자 페일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뒤를 밟아서 본거지의 위치를 알아낸다.’
페일리아가 수신호를 보냈지만 레드는 화살을 화살통에 넣지 않았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는 듯했다.
이윽고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있던 오크 정찰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페일리아의 추적대도 뒤따라 움직였다.
20마리의 오크로 구성된 오크 정찰대는 한참을 이동하다가, 갑작스럽게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대장?”
“인간이 따라오는 것 같다.”
오크 지휘관과 오크 전사가 오크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오크 지휘관은 날카로운 눈으로 페일리아의 추적대가 숨어 있는 곳 근처를 살폈다.
그는 상급 전사로의 진급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오크였다.
비록 페일리아의 추적대가 상당히 근접해 있다고는 하지만 레인저들의 추적을 눈치챈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었다.
“제길. 너무 붙었나?”
오크 정찰대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자 페일리아는 갑작스럽게 속도를 높인 오크 정찰대의 뒤를 쫓기 위해 바짝 붙도록 명령을 내린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전투는 못 피할 것 같다. 페일리아 대장. 선제공격이 답이야.”
레드는 페일리아의 명령도 기다리지 않고 시위를 당겼다.
거리는 상당히 멀었지만, 나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명중시킬 자신이 있었다.
“어서 결정을 내려.”
레드가 재촉했지만 페일리아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 사이 오크 정찰대는 검을 뽑아들고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방패를 든 다섯 마리의 오크가 선두에서 오크 전사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대장. 즉시 움직여야 합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또 다른 에이스 레인저가 페일리아를 재촉했다.
“선제공격한다.”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페일리아는 공격 명령을 내렸고 레드는 망설임 없이 시위를 놓았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은 오크 지휘관의 목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키에엑!”
화살이 목에 꽂힌 오크 지휘관은 괴상망측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고, 공격?”
“어디냐!”
“저쪽인 것 같다!”
오크 지휘관이 일격에 목숨을 잃자 오크 전사들은 순간 당황하여 우왕좌왕했지만, 곧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파악하고 다시 움직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레인저들이 쏜 화살이 쏟아졌다.
“키에엑!”
“크엑!”
남부 레인저 여단의 레인저들이 쏜 화살은 백발백중이었다.
그들이 쏜 화살은 빗나가는 일 없이 오크의 몸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심지어 방패를 든 오크들도 드러난 이마에 화살이 꽂혀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오크 전사들이 전원 목숨을 잃는 데 걸린 시간은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전멸. 전멸을 확인했습니다.”
레인저 한 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전방을 살핀 뒤 보고했다.
레드도 전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전멸이 확실했다.
“적의 전멸을 확인했으니, 그들의 흔적을 역추적하여, 마을의 위치를 알아낸다.”
“알겠습니다.”
페일리아의 명령으로 추적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흔적을 추적한 끝에 페일리아와 레드, 그리고 추적대는 오크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는 정확하게 특정할 수 없지만 대략 1천 정도로 보이는군.”
레드는 붉은 눈동자에 마을을 담았다.
모든 오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특정할 수는 없었지만 마을의 규모로 대충 수를 추정하는 것은 가능했다.
“돌아가서 보고해야 합니다.”
레인저 한 명이 의견을 냈고 페일리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침착하게 수신호로 귀환할 것을 모두에게 알렸다.
원정대 본대로 귀환한 추적대.
페일리아와 레드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곧바로 지휘부 천막으로 향했다.
추적대가 귀환했다는 소식을 들은 주요 지휘관들이 지휘부 천막에 모여 있었다.
페일리아와 레드는 보고를 위해 천막에 들어가 중앙에 섰다.
‘ㄷ’모양의 테이블 중앙에 선 페일리아와 레드를 바라보며 루시드가 입을 열었다.
“위치를 파악했나?”
“예. 파악했습니다. 적 마을의 위치는 이곳입니다.”
페일리아가 대답과 함께 테이블 위에 고정된 군사 지도의 어느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군요.”
테일러가 말했다.
페일리아가 지목한 곳은 현재 원정대가 주둔 중인 곳과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었다.
소수로 움직였던 정찰대는 금방 왕복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움직여야 하는 인원이 많은 원정대 같은 경우엔 조금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수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레드.”
다시 한번 테일러가 물었다.
질문을 받은 레드가 입을 열었다.
“마을의 규모는 컸지만, 정찰대 운용 빈도와 경계 중인 병력의 수로 보았을 때 적어도 1천 정도다.”
“흠.”
그랑키아 숲의 오크 1천이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반도의 오크 1천이면 레인저 중대까지 합해 1천 2백인 원정대가 승리할 확률이 매우 높았지만 여기는 그랑키아 숲이었다.
몬스터들의 강함은 반도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전투는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루시드.”
잠시 고민한 끝에 테일러가 의견을 내놓았고, 루시드는 동의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지휘관들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테일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본대가 주의를 끄는 사이에 소수의 침투조를 투입해, 마력 심장을 탈환하는 게 가장 좋을 듯합니다.”
테일러의 작전은 간단했다.
원정대 본대 또는 레인저 중대를 움직여 마을 근처에서 도발 행동을 취해 적들의 주의를 끈다.
적의 시선이 집중되면 소수의 침투조를 침투시켜 조용히 마력 심장을 빼 오는 것이었다.
간단하지만 실행은 결코 쉽지 않은 작전이었다.
“침투조는 어떻게 편성할 생각인가?”
루시드가 물었다.
“제게 전권을 위임해주시면 반드시 작전을 성공 시킬 수 있는 침투조를 짜보겠습니다.”
“모두 맡기겠네. 테일러 경.
자신 있게 대답하는 테일러에게 루시드는 침투조 편성을 그에게 맡겼다.
급하게 모인 지휘관 회의가 끝났다.
테일러는 가이우스를 찾아갔다.
침투조를 편성하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였다.
테일러의 파티원 중에서 침투조에 넣을만한 인물은 테일러를 포함해 가이우스와 알버트, 레드가 전부였다.
실비아와 일리아는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에 적합하지 않았고, 알폰스는 언제나 실비아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가이우스. 인식장애 마법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용이 가능하십니까?”
가이우스를 찾아간 테일러가 질문했다.
인식장애 마법은 주위 적들의 인식에 장애를 일으켜 아군에 대한 인식이 힘들도록 만드는 고난이도 마법이었다.
단일 대상 인식장애 마법은 그나마 난이도가 낮은 편이었지만 범위형 인식장애 마법은 상당히 고난이도였다.
이 마법의 사용 가능 유무가 이번 침투 작전의 성공 여부를 가리게 될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중요했다.
사온 과자가 떨어졌는지 군대에서 지급하는 퍽퍽한 비스킷을 씹고 있던 가이우스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나를 누구로 보는가? 그 정도는 가능하네만.”
가이우스는 나이는 어렸지만 천재였다.
사우스펠 마탑 최연소 고위 마법사였으며, 회복 마법에 조금 소홀히 한 경향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은 마법을 많이 익히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즉시 침투조를 편성하겠습니다.”
테일러는 토드 빌란톨 남작을 찾아가 에이스 레인저 페일리아를 포함한 에이스 레인저 3명을 빌렸다.
현재 원정대에서 에이스 레인저보다 침투에 특화된 자는 없었다.
에이스 레인저 3명을 확보한 그는 알버트와 레드, 그리고 가이우스를 침투조에 편성했다.
그리고 침투조의 조장은 자신이 맡는다고 루시드에게 보고했다.
루시드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긴 했지만, 테일러를 말리진 않았다.
며칠 뒤 레인저 중대와 침투조가 마을 근처로 이동했다.
오크 마을 근처는 다수의 오크 정찰대가 정찰 행동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정대 본대가 숨어 있을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원정대 본대는 우선 현 지점에 대기하고 신속한 움직임이 가능한 레인저 중대가 양 동을 맡기로 했다.
그들은 유연하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발각되더라도 빠른 이탈이 가능했다.
“준비는 끝났습니까? 테일러 경?”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오크 마을을 지그시 노려보며 토드 빌란톨 남작은 테일러에게 물었다.
그들이 서 있는 자리 주변에는 오크의 시체가 다수 보였다.
오크 정찰대와 전투가 벌어졌던 것이다.
발각되었으면 즉시 퇴각해야 하는 게 맞는데, 토드 빌란톨 남작의 얼굴에서 여유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오크 정찰대를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죽인 듯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공격이 시작되면 은밀하게 이동할 예정입니다.”
테일러의 대답에 토드 빌란톨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한다.”
토드 빌란톨 남작이 지시를 내렸다.
레인저 중대가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살을 건 시위를 놓자 낮은 돌벽 위에 배치된 오크 전사들을 향해 화살비가 쏟아졌다.
“키에엑!”
“키엑!”
“공격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오크 전사들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침착한 모습을 보이는 몇몇 오크 전사들이 경종을 울리고 화살을 꺼내 들었다.
정확한 위치는 특정하지 못했지만 레인저 중대의 근처로 화살이 쏟아졌다.
바로 옆에 화살이 쏟아졌지만, 레인저 중대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다음 화살 공격을 위해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 뿐이었다.
레인저 중대가 두 번째 공격을 끝내고 세 번째 공격마저 끝내자 돌벽 위에는 오크 전사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수비를 지휘하는 상급 전사는 돌벽 위로 오크 전사들을 올려보내는 대신에 돌벽의 문을 열고 늑대 기수들을 내보냈다.
“지금입니다!”
토드 빌란톨 남작이 소리쳤다.
테일러와 침투조는 즉시 움직였다.
인식장애 마법을 두른 침투조가 늑대 기수 부대를 지나쳐 서서히 닫히는 문 안으로 침투했다.
마을 안으로 들어오자 많은 수의 오크 전사들을 볼 수 있었다.
백여 마리의 오크 전사들이 활을 들고 돌벽 아래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십 마리의 오크 전사가 문 앞에서 대열을 갖춘 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
“테일러. 즉시 숨을 곳을 찾아야 하네. 인식장애 마법은 무적이 아니라네. 적이 주의 깊게 살핀다면 어색한 점을 눈치챌 가능성이 높다네.”
가이우스의 설명대로 인식장애 마법은 무적이 아니었고 투명 마법과도 조금 달랐다.
주변 적들이 아군을 인식하는 데 장애를 일으키긴 하지만 완벽하진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 주의 깊게 살핀다면 어색한 점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저쪽 골목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테일러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손가락 끝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모여 있는 작은 건물 사이로 보이는 골목을 가리켰다.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주군.”
알버트도 고개를 끄덕였고, 침투조는 골목으로 은밀하게 숨어들었다.
“쉿!”
가장 먼저 골목으로 숨어들었던 레드가 손을 들어 올렸다.
은밀하게 골목으로 숨어든 테일러는 골목에 숨어 있는 오크 세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장하지 않고 천 옷으로 몸만 가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사가 아닌 평범한 오크로 보였다.
안심하고 지나치려 하는 순간, 오크 하나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테일러와 침투조가 모여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건 너무 가깝네! 인식장애 마법의 효과가 크게 발휘되지 않을 정도네! 제압해야 하네.”
가이우스가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