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04화
41장 긴급 전언(2)
[아군의 30%가 전사했습니다. 결사의 의지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성녀가 함께하기 있고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병력의 30%가 전사했다는 것을 알리는 알림음이 테일러의 귓가를 때렸다.
그와 동시에 결사의 항전 스킬의 효과가 발동되어 전신에 힘이 넘쳐흐르는 게 느껴졌다.
“리드페이라. 지휘를 맡기겠다.”
“어디에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지휘관은 안전한 곳에서 군을 지휘해야 합니다!”
검집에서 날카로운 검을 뽑아들고 알버트와 함께 전방으로 이동하기 위해 움직이는 테일러를 향해 리드페이라가 말했다.
알버트와 함께 전방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춘 테일러는 고개를 돌려 리드페이라를 바라보았다.
“상급 장교 리드페이라. 귀관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지만 지금은 고위 기사인 나와 알버트의 힘이 필요하다.”
무장 상태도 좋고 개인의 무력도 뛰어난 그랑키아 숲의 오크 전사들을 상대로 테일러 부대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훌륭하게 싸워주고 있었지만, 점차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조금 전에 오크 주술사들의 집중 공격으로 일리아가 소환한 바람의 정령 군주가 역소환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선두의 방패병 전열이 오크 전사들의 강공에 무너지고 오크 전사들이 무너진 전열의 틈으로 파고들어 진형을 와해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적장인 상급 전사 로돌로키쉬는 최전방에서 부지런히 마력검이 선명하게 빛나는 검을 휘두르며 아군을 학살하고 있었다.
아군이 승리를 쟁취하거나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선 로돌로키쉬의 멱을 따야만 했는데, 알버트 혼자 보내기엔 불안했다.
테일러의 목적은 암살당할 운명이었던 영웅들을 구하는 것이었다.
기껏 구했는데, 이곳에서 죽는다면 헛수고였다.
“절대 전사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 상황에서 사기마저 바닥을 친다면 희망은 나락으로 침몰합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지금 나는 최고의 상태니까.”
리드페이라의 말에 테일러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상태로 대답했다.
적지 않은 수의 아군이 전사하는 것으로 인해 효과가 극대화된 결사의 의지 스킬로 인해 지금 테일러는 거의 자작급의 고위 기사와 비슷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상급 전사 로돌로키쉬의 자세한 실력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거기다 고위 기사 알버트 후안까지 함께하고 있으니, 걱정은 없었다.
“테일러! 부탁한다! 궁병대가 검을 뽑아들었다고! 이제 물러날 곳은 없다는 말이다!”
로돌로키쉬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뒤에서 레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드가 지휘하는 궁병대 100여 명은 보병대의 상황이 크게 나빠지자 검을 뽑아들고 보병대에 합류했다.
테일러는 대답 대신 손을 들고 엄지를 들어 올렸다.
“주군. 목표가 보입니다.”
상급 전사 로돌로키쉬의 근처에 도착하자 죽음의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알버트는 앞을 막아선 기사의 목을 손으로 뽑아버리는 로돌로키쉬를 검 끝으로 가리켰다.
환한 푸른빛의 마력검이 검에 깃들어 춤을 추고 있었다.
“제가 선공으로 녀석의 시선을 돌리겠습니다. 그 틈을 노리고 빈틈을 공략해주세요.”
“맡겨만 주세요. 주군.”
알버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잡았다.
[성녀의 가호가 함께합니다.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성녀 실비아 그레이의 가호가 깃들었다.
테일러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오크 전사 두 마리의 목을 순식간에 날려 버리고는 번개와 같은 날렵한 움직임으로 로돌로키쉬를 향해 몸을 던졌다.
“덤벼라! 고위 기사여!”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지만 로돌로키쉬는 호기롭게 외치며 검을 휘둘렀다.
테일러의 검과 로돌로키쉬의 검을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음을 자아냈다.
테일러의 검은 파마의 검 효과가 상시 발동 중이었기 때문에 그의 검과 충돌한 로돌로키쉬의 마력검은 아주 조금 희미하게 변해 약해졌고 로돌로키쉬도 그 사실을 눈치채고 다소 놀란 얼굴이었다.
“요상한 기술을 쓰는구나! 고위 기사!”
로돌로키쉬는 본능적으로 테일러의 검이 가진 효과를 눈치채고 소리쳤다.
보통 오크의 지능은 인간보다 부족했지만, 상급 전사쯤 되는 오크들은 인간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은 수준이었고 오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 오크의 지능은 엘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죽어라. 상급 전사.”
테일러는 차분하게 저주를 뱉으며 현란하게 검을 휘둘렀다.
결사의 의지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되면서 속도는 물론이고 검에 실린 힘까지 상당히 증가했다.
“크윽!”
테일러의 검을 차분하게 막아내던 상급 전사 로돌로키쉬가 고통에 찬 신음성을 내뱉었다.
그의 뒤로 알버트 후안이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간 옆구리에서는 갈라진 갑옷 틈으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상급 전사 로돌로키쉬가 테일러와 검을 주고받는 사이, 빈틈을 노리고 알버트가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것이었다.
상급 전사 로돌로키쉬는 상당히 두꺼운 철제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고위 기사의 마력검 앞에서 갑옷은 무의미했다.
“하찮은 인간놈이 감히!”
로돌로키쉬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그는 요대에 걸려 있는 작은 손도끼를 꺼내 알버트를 향해 던졌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손도끼를 알버트는 마력검으로 깨끗하게 이등분했다.
“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로돌로키쉬가 알버트에게 손도끼를 투척하기 위해서 몸을 돌린 덕분에 테일러는 로돌로키쉬에게 깊숙하게 파고들 수 있었다.
“이런!”
로돌로키쉬가 테일러의 접근을 눈치채고 검을 휘두르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린 순간, 테일러의 검은 이미 로돌로키쉬의 심장을 꿰뚫었다.
“크아악!”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붉은 피를 토해내는 로돌로키쉬.
테일러가 검을 뽑자 그는 비틀거리다가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적장을 죽였다!”
“적장이 죽었다!”
테일러가 상급 전사 로돌로키쉬가 자신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큰 소리로 선언하자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그 사실을 큰 소리로 전파했다.
상급 전사 둘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오크 선봉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다른 오크 전사가 지휘권을 행사하면서 혼란은 사라지는 듯했다.
테일러와 알버트는 지휘권을 행사하는 오크 전사를 죽이고 전투에 있어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는 오크 주술사들을 모조리 도륙했다.
호위대 역할의 오크 전사들이 앞을 막아섰지만, 결사의 의지 스킬 효과가 극대화된 테일러를 막기엔 부족했다.
그는 알버트와 함께 전신처럼 전장을 휩쓸었고 밀리고 있던 아군은 점차 오크 선봉대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오크 주술사들이 전멸하면서 가이우스가 지휘하는 마법사들의 마법 공격이 오크 선봉대를 집중적으로 타격했고 오크 전사들 중 장교들은 테일러에 의해 모조리 도륙당했다.
“후퇴! 후퇴하라! 키에엑!”
결국 최후까지 살아남은 오크 지휘관은 레드의 화살이 날아와 이마에 박히기 직전에 후퇴 명령을 내렸다.
* * *
“300명 중 200명이 전사하고 겨우 100명이 조금 안 되는 수가 남았다는 게 말이 되나? 테일러 경?”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테일러를 향해 나일 쉬바스 백작의 차가운 목소리가 창이 되어 꽂혔다.
“쉬바스 백작. 테일러 경은 힘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은 병사들이 살아 돌아오진 않는다. 필리스터 경.”
루시드 필리스터라는 이름의 방패가 테일러를 지키고자 했지만 나일 쉬바스 백작이라는 이름의 창은 그 방패를 꿰뚫고 테일러의 심장을 노렸다.
“면목없습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나일 쉬바스 백작이 대놓고 자신을 적대하고 있는 것은 테일러도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테일러의 대답을 들은 나일 쉬바스 백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비열함마저 느껴지는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변명하지 않는군. 그 점은 높이 평가한다.”
나일 쉬바스 백작의 차가운 목소리가 테일러의 가슴을 후벼 팠다.
테일러는 이를 악물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았다.
테일러가 희생한 덕분에 아군이 하이 오크의 영토를 통과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애초에 우회를 하거나 발각되었을 때 전군이 전투에 임했다면 피해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징계라도 받을 준비가 되어 있겠지?”
“물론입니다. 쉬바스 백작.”
“좋아.”
나일 쉬바스 백작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는 마음에 드는 징계 방법을 찾아낸 것인지 입꼬리를 끌어 올려 사악한 미소를 머금은 채 테일러를 바라 보았다.
“테일러 경. 지금 즉시 부대와 함께 수도로 귀환하라.”
* * *
수도 귀환 명령.
100명이 조금 안 되는 수의 병력을 보유한 부대에게 그랑키아 숲에서 수도로 귀환하라는 명령은 죽으라는 소리와 동일했다.
100명 정도 되는 규모의 소규모 부대는 다른 몬스터들에게 발각되는 즉시, 공격을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랑키아 숲 몬스터들의 수준을 고려해볼 때 100명 정도 되는 수의 병력을 가지고는 이렇다 할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멸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명령불복종은 군법의 심판을 받기 때문에 테일러는 알겠습니다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명령을 전달받고 천막을 나오는 테일러의 뒤를 루시드 필리스터가 쫓았다.
그는 테일러를 멈춰 세우고 입을 열었다.
“테일러. 원정대의 후방은 내가 지휘하는 영지군이 자리 잡고 있다네. 이대로 그랑키아 숲을 벗어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으니, 일단 거리를 두고 원정대를 따라오게나. 쉬바스 백작에겐 보고하지 않겠네.”
3천 명에 가까운 규모의 원정대 뒤를 따라간다면 몬스터들의 습격에서 비교적 안전해질 수 있었다.
루시드의 배려에 테일러는 감사를 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루시드.”
테일러의 감사 인사에 루시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네. 자네가 나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말이네.”
테일러는 루시드가 시키는 대로 약 3시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원정대의 뒤를 따랐다.
후방 경계를 맡은 루시드 필리스터의 영지군은 테일러의 부대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나일 쉬바스 백작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아무런 문제 없이 흘러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여름이지만, 북부 특유의 낮은 기온으로 인한 시원하고 습기가 느껴지는 바람이 실비아와 함께 잠시 천막 밖으로 나온 테일러의 뺨을 간지럽혔다.
“무슨 일입니까? 실비아.”
“하, 할 말이 있어서요.”
테일러의 물음에 실비아는 하얀 눈이 덮인 것처럼 새하얀 볼을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눈동자는 테일러의 눈과 마주치자 살짝 떨렸다.
무엇인가 중요한 말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마침내 결심을 하고 말을 하려는 순간, 다른 천막에서 가이우스가 뛰어나왔다.
“테일러! 큰일이라네!”
“실비아, 죄송합니다만 그 말은 나중에 듣겠습니다.”
“아니, 진짜 사람이…… 알았어요.”
가이우스는 다급하게 테일러를 불렀고 그의 부름에 테일러는 실비아에게 양해를 구한 뒤 가이우스에게 다가갔다.
그런 테일러를 보며 실비아는 차오르는 욕설을 참아내야만 했다.
“무슨 일입니까, 가이우스?”
얼마나 급했던 것인지 가이우스의 로브에는 과자 부스러기가 아직 붙어 있었다.
“원정대가 공격받고 있다네. 필리스터 영지군 고위 마법사가 급히 도움을 요청했네.”
가이우스가 말했다.
테일러는 고개를 돌려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가이우스와 테일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도 원정대가 공격받고 있다는 것을 들었는지 얼굴 가득 깃든 짜증이 눈 녹은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마, 말하세요. 테일러.”
실비아가 말했다.
테일러는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파티원들에게 전투 준비를 하라고 전해주세요.”
“그렇게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