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03화
41장 긴급 전언(1)
아군 정찰대가 오크 정찰대와 조우하여 패배했다는 사실은 지휘부에 바로 전달되었다.
“위험합니다. 쉬바스 백작. 오크 정찰대가 생존하여 주둔지로 돌아갔으니, 곧 선봉대 또는 본대가 움직일 겁니다.”
로딘 로펜 남작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오크 정찰대는 당연히 인간 정찰대와 조우했다는 사실을 보고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토에 적이 침입하는 것에 대해 예민한 하이 오크는 즉시 전사들을 소집해 원정대를 공격할 것이다.
하이 오크가 정찰대를 다수 동원하면 원정대의 위치가 노출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위치가 노출되면 즉시 전투가 벌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많은 이가 죽게 될 것이다.
로펜 남작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일 쉬바스 백작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불안한 듯 떨리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을 뿐이었다.
묵묵히 입을 닫고 있던 테일러가 보다 못해 입을 열었다.
“신속하게 후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정대는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경은 지금 원정대가 패배할 것을 당연한 사실로 여기고 있는 것인가?”
테일러의 말에 나일 쉬바스 백작은 심각한 과민반응을 보였다.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나일 쉬바스 백작의 그런 반응에 테일러는 조금 당황했다.
“백작. 저는 원정대가 패배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전투로 인해 입을 피해가 심각할 것이라고만 말했습니다.”
테일러는 억울하다는 말투로 호소했지만, 나일 쉬바스 백작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테일러를 쏘아 보았다.
그리고 테일러를 비웃듯 입꼬리를 씰룩이며 입을 열었다.
“경은 오크가 무서운가 보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리가 없다.”
“저는 오크가 두렵지 않습니다.”
테일러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오크가 두렵지 않았다.
나일 쉬바스 백작이 영지에서 호의호식하며 생활하고 있을 때 테일러는 최전방에서 싸워왔다.
비록 그랑키아 숲의 오크지만 두려울 리 없었다.
그래서 나일 쉬바스 백작의 말에 그는 상처를 받았다.
테일러의 대답을 들은 나일 쉬바스 백작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증명하면 되겠군. 경은 부대를 이끌고 하이 오크의 선봉대를 격파하라. 경이 선봉대를 상대하는 사이, 본대는 하이 오크의 영토를 벗어나겠다.”
* * *
말이 안 되는 명령이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테일러에게 호의적인 두 지휘관, 로펜 남작과 루시드 필리스터가 강경하게 반대했지만, 나일 쉬바스 백작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겁은 많았으나 고집은 강철과도 같았다.
결국 테일러는 오크 선봉대가 출격했다는 소식을 정찰대로부터 전달받은 그날 오크 선봉대를 상대하기 위해 고작 300명을 조금 넘는 수의 병력을 데리고 출격해야만 했다.
“제가 사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틀리지 않다면 선봉대는 적어도 500마리 이상의 오크 전사들로 편성되어 있을 겁니다. 지휘관님.”
“500마리라.”
테일러는 고개를 저었다.
아군의 수는 병사 300명에 20명이 조금 안 되는 수의 기사들.
상대가 반도의 오크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승리할 수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곳은 그랑키아숲이었고 적들은 그랑키아 숲의 오크들이었다.
비슷한 수로도 전투가 벌어지면 장담할 수 없을 정돈데, 수가 월등히 부족하다면 사실상 패배라는 섬을 향해 직선으로 항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성녀의 존재였다.
성녀 실비아 그레이.
그녀는 신성교의 성녀로 강력한 신성 기도문의 행사가 가능했다.
그녀가 파티에 있는 덕분에 그동안 죽음에 이르렀던 많은 아군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만 믿고 싸울 수는 없었다.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그녀가 목숨을 살려놓은 수많은 이들이 오크 전사들에게 목숨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목책을 세우고 수비를 한다. 그 방법밖에 없겠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테일러는 간단한 목책을 세우고 적을 유인하여 전투를 진행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우선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리드페이라가 보고했다.
테일러도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
“정찰을 부탁한다는 말이지?”
테일러는 남부 레인저 여단 에이스 레인저 출신인 레드를 불렀다.
레드는 자신이 맡게 될 임무를 예상하고 있는 눈치였다.
“정찰대를 지휘하여, 적의 위치를 파악해주세요. 15명을 뽑아가시면 됩니다.”
“맡겨 둬.”
레드는 15명의 정찰대원을 뽑아 이동했고 한참이 지난 뒤에서야 돌아왔다.
전투가 있었는지 3명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고 살아남은 12명 또한 상처를 입거나 갑옷에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상황을 보고해주시겠습니까?”
리드페이라가 조금 피곤한 표정의 레드에게 다가가 물었다.
레드는 물에 젖은 손수건으로 얼굴에 말라붙은 피를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오크 정찰대 20마리와 마주쳐서 전투를 벌였지만 패주 시켰고, 뒤를 밟아서 적 선봉대의 위치를 알아냈다.”
대단한 성과였다.
레드가 없었다면 전투에서 적지 않은 수의 전사자가 나왔을 것은 분명하고 뒤를 밟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레드는 품속에서 지도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그리고 단검을 뽑아 지도 한곳에 꽂았다.
“하루 정도 거리이군요. 상당히 가깝습니다.”
상급 장교 리드페이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레드가 단검을 꽂은 곳은 현재 테일러 부대의 위치와 상당히 가까웠다.
서두른다면 하루 만에 닿을 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에 옆에서 지도를 내려다보고 있던 테일러의 얼굴이 굳었다.
정찰대끼리 전투를 벌인 이상, 소수지만 살아남은 적의 정찰대 오크 전사들은 지휘관에게 보고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군의 대략적인 위치가 노출되게 된다.
아군의 위치를 탐색하는데 반나절이 걸린다고 해도 하루하고도 반나절의 시간밖에 없다.
“시간이 조금 부족하군.”
지도를 보며 테일러가 말했다.
목책을 세우고 함정을 설치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테일러는 부대원들을 시켜 낮지만 튼튼한 목책을 세우게 했다.
레드는 테일러에게 30명의 병사들을 지원받아 근처에 치명적인 함정을 설치했다.
남부 레인저 여단 출신의 에이스 레인저의 치명적이고 신속한 함정 설치 기술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자 섬세함은 조금 떨어졌지만, 속도는 빨라져 금세 설치를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이우스가 목책의 입구에 마법 함정을 설치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하이 오크가 보낸 상급 전사 로돌로키쉬가 이끄는 500의 선봉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궁병대! 조준!”
궁병대 지휘를 맡은 레드가 로돌로키쉬가 이끄는 오크 선봉대를 발견하고 손을 들어 올렸다.
궁병대의 수는 50명이었지만 병사 중에서 활을 쏴본 경험이 있는 50명을 별도로 뽑아 예비 활과 화살을 지급해 궁병대로 임시 편성했다.
그래서 현재 궁병대의 수는 100명.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레드가 손을 들어 올리자 궁병들이 일제히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잡아당겼다.
상급 전사 로돌로키쉬는 테일러 부대의 주둔지를 발견하기 무섭게 대책 없이 오크 전사들을 돌진시켰다.
오크다운 선택이었다.
“적이 돌진해옵니다!”
엉성하게 지어진 망루에서 망을 보고 있던 병사가 적의 움직임을 보고했다.
그의 목소리는 주둔지의 중앙의 지휘부까지 전달되었다.
지휘부에 있는 테일러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조금 있으면 함정이 다수 설치된 지점을 지나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통의 노래와 죽음의 행진이 시작될 것이다.
“키에에에엑!”
“크아아!”
함정이 집중적으로 설치된 곳에 들어서기 무섭게 비명이 터져 나오고 고통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땅이 꺼지고 하늘에서 날카로운 나무 말뚝이 박힌 통나무가 떨어졌다.
에이스 레인저 레드가 지휘했다고는 하지만 다급하게 설치한 탓에 위장은 형편없었다.
만약 상급 전사 로돌로키쉬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함정을 눈치채고 우회했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면 함정 대신 궁병대의 화살 공격에 노출되었겠지만.
“전진하라! 전진!”
상급 전사 로돌로키쉬는 터프하게도 함정조차 무시하고 오크 전사들을 밀어붙였다.
오크 전사들은 터프한 로돌로키쉬의 명령에 맞춰 무려 함정을 무시하고 전진했다.
수십의 피해가 있었지만, 선봉대는 함정 지대를 돌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궁병대가 그들을 조준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레드는 입꼬리를 끌어 올린 채 입을 열었다.
“환영한다! 궁병대! 일제 사격!”
레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궁병대가 잡고 있던 시위를 놓았다.
백여 발의 화살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방패! 들어!”
로돌로키쉬의 부관을 맡은 오크 상급 전사가 방패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방패를 가지고 있는 오크 전사들은 방패로 화살을 막았지만, 방패가 없는 오크 전사들은 화살비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몇 번의 사격이 이어지자 화살을 몸에 꽂은 오크 전사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날카로운 화살이 살갗을 파고들어 근육 깊은 곳에 박혔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크 전사들은 살기 어린 눈동자를 빛내며 고통을 참고 전진했다.
화살비를 뚫고 입구에 도착하자 로돌로키쉬의 부관인 상급 전사 폴리쉬가 거대한 도끼를 휘둘러 목책의 문을 박살 냈다.
급하게 만든 문이었기 때문에 상급 전사의 마력이 깃든 공격을 버텨낼 수 없었다.
“이동!”
문이 부서지가 궁병대는 적들에게 포위되기 전에 레드의 명령에 맞춰 신속하게 후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쫓으려고 상급 전사 폴리쉬가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밝은 빛이 땅에서 뿜어나오더니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폴리쉬! 피해라!”
로돌로키쉬가 경고했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뜨거운 화염이 폴리쉬와 오크 전사 20여 마리를 덮쳤다.
“키에에에엑!”
비명이 터져 나오고 살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냄새가 진동했다.
상급 전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폴리쉬는 불에 타오르면서도 살아남아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대부분의 오크 전사들은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역시 가이우스 님은 대단하십니다!”
기사 한 명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크 주술사들이 폴리쉬의 몸을 휘감은 불꽃을 소멸시키고 치유 주문을 부여했지만 폴리쉬는 쉽게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남아 있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도끼를 마구 휘두르며 전진했다.
“마법사들이여! 공격을 시작하게나!”
가이우스가 몇 안 되는 마법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테일러 부대에는 마법사가 5명 정도 있었다.
수준 높은 마법사들은 아니었지만, 마법사들이 있으면 전투에 큰 도움이 된다.
그들은 가이우스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가이우스의 명령에 마법사 5명이 일제히 마법을 캐스팅했다.
얼음 창과 화염구 등과 일리아가 소환한 바람의 정령 군주의 바람의 칼날이 폴리쉬를 노리고 날아갔다.
오크 주술사들이 공격 주문을 캐스팅하여 대부분의 공격 마법을 막아냈으나 바람의 군주가 날려보낸 칼날 바람까지 막아내진 못했다.
다섯 개의 칼날 바람이 폴리쉬의 몸에 깊은 참상을 새겼다.
붉은 피가 터져 나오고 폴리쉬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폴리쉬가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크 전사들은 쉽게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마법 함정이 더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함정을 견뎌내며 전진한 그들조차 마법 함정은 두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로돌로키쉬가 검을 뽑으며 입을 열었다.
“뭣들 하느냐! 당장 공격하란 말이다!”
그의 재촉에 오크 전사 몇 마리가 진입했다.
그들이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자 오크 전사들은 자신감을 얻고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전대로 진행하겠네. 테일러.”
“잘 부탁하겠습니다. 가이우스.”
가이우스는 미리 계획한 작전대로 마법을 사용해 오크 전사들이 밟고 있는 땅을 얼음판보다 더욱 미끄럽게 만들었다.
오크 전사들은 괴성을 지르며 미끄러졌고 그런 그들의 위로 화살과 마법 세례가 쏟아졌다.
“먹혔군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예요. 곧 오크 주술사들이 나설 거예요.”
알버트는 환호했지만 하이 엘프 일리아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오크 주술사들이 나서자 땅을 미끄럽게 하는 간단한 마법은 바로 효과가 사라졌다.
효과가 사라지자 오크 전사들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왔다.
함정과 마법 등으로 수를 줄인다고 줄였으나 350은 넘어 보였다.
적지 않은 수를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의 수는 많았고 불리한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