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00화
39장 여왕의 눈물(3)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듣고 있던 실비아가 갑자기 나섰다.
테일러는 실비아가 갑자기 나서는 이유를 추측할 수 없었지만, 굳이 실비아 때문이 아니라도, 고위 기사 시험을 치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좋습니다. 고위 기사 시험을 치르겠습니다.”
테일러가 대답했다.
어차피 고위 기사 시험은 치를 생각이었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치르지 못했던 것이었다.
기사단장 업무를 인계해줘야 할 로펜 경이 제이드 기사단과 함께 그랑키아 숲에 있으니 시간도 있겠다, 고위 기사 시험을 치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루시드의 얼굴이 밝아졌다.
“즉시 담당 귀족에게 연락하겠네.”
그렇게 말한 루시드 필리스터는 경호원들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며칠 뒤 루시드 필리스터가 다시 찾아왔다.
일리아와 함께 방에서 다과를 즐기며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테일러는 루시드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테일러의 인사를 받으며 소파에 앉는 루시드의 얼굴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두웠다.
아니, 어둡다기보다는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차를 건네며 질문하는 테일러.
루시드는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 차를 한 모금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이런 얼굴을 보여서 미안하네. 일이 조금 안 풀려서 말이네.”
그가 말하는 일이라는 것은 테일러의 고위 기사 시험과 관련된 것이었다.
“설마 테일러가 고위 기사 시험을 못 보게 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일리아가 질문했다.
“그런 것은 아니네만. 조금 곤란하게 되었다네.”
루시드는 고개를 저었다.
고위 기사 시험은 고위 기사 몇 명의 추천이 있다면 치를 수 있었다.
테일러 같은 경우엔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고위 기사 3명과 고위 기사인 아시드 필리스터 자작, 그리고 라크 듀렌달 자작이 추천했다.
그리고 고위 기사 시험 내용은 고위 기사 시험을 담당하는 고위 기사들이 공정하게 논의한 끝에 결정된다.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위 기사 시험을 담당하는 고위 기사들이 우연히(?) 나일 쉬바스 백작의 휘하 고위 기사들로 정해졌다네. 나일 쉬바스 백작이 자네를 싫어하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고위 기사 시험 내용을 고위 기사와의 대련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네.”
테일러의 말에 루시드 필리스터가 설명했다.
“하아.”
테일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절망적이지 않았다.
고위 기사 한 명 정도는 대련으로 이길 수 있었다.
작위가 있는 실력자라면 조금 힘들겠지만, 준남작이나 남작 정도의 실력자라면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상대는 누굽니까?”
“쉬바스 백작 가문의 고위 기사 윌드 데코드 경이라네. 그의 실력은 쉬바스 백작 가문에서 작위가 없는 고위 기사 중 최강이라네. 게다가 조만간에 준남작 작위를 받을 예정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루시드 필리스터의 설명에 일리아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테일러에게 보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저는 승리할 것입니다.”
걱정하는 일리아와 달리 테일러는 자신감이 넘쳤다.
* * *
시간이 흐르고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힘내세요.”
“힘내십시오. 주군.”
“힘내라.”
“힘내게나.”
가죽 갑옷과 검으로 무장한 윌드 데코드 경이 기다리는 시험장으로 향하려는 테일러를 일리아와 알버트, 레드, 가이우스가 응원했다.
그들의 응원과 함께 테일러는 시험장으로 걸음을 옮겼고 파티원들은 관전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험장에는 감독관역을 맡은 고위 기사 3명이 관전석 중앙에 있었고, 시험장은 사각형 모양의 공터였다.
그리고 관전석이 시험장의 네 면의 붙어 있었다.
시험장에 도착하자 수습 기사 한 명이 테일러에게 검을 건넸다.
검을 받아든 테일러는 그것을 허공에 가볍게 몇 번 휘두른 뒤 윌드 데코드 경의 앞에 섰다.
“상호 간의 예의.”
진행을 맡은 고위 기사가 말했다.
테일러는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었고 데코드 경은 간단하게 예를 갖추었다.
“대기.”
진행을 맡은 고위 기사가 말하자 데코드 경과 테일러는 일제히 검을 뽑아들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격검!”
고위 기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데코드 경의 몸이 빠른 속도로 테일러를 향해 쏘아졌다.
그러면서 검은 방어하기 힘든 부위를 노리고 찔렀으나, 테일러는 침착하게 옆으로 이동하며 데코드 경이 내찌른 검을 쳐냈다.
‘쉬운 상대가 아니군.’
‘헛소문은 아닌가 보군.’
일격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인지했다.
테일러는 부드러우면서도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데코드 경의 머리를 노렸다.
순간적으로 상대의 허를 찔러 머리를 노릴 수 있는 공격적이고 교과서적인 검술이었지만 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몸의 양쪽 측면과 정면이 무방비하게 노출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
당연한 이야기지만 데코드 경의 검은 테일러의 측면을 노리고 쇄도했다.
하지만 테일러도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공격적이고 무방비한 검술을 시도한 것이 아니었다.
데코드 경의 검이 몸의 측면을 노린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테일러의 검이 반 바퀴 돌며 몸의 측면을 방어했다.
데코드 경의 검이 옆으로 튕겨 나간 사이, 테일러의 발이 데코드 경의 다리를 향했다.
데코드 경은 서둘러 검을 회수하려 했지만 테일러의 발이 조금 더 빨랐다.
“큭!”
테일러의 발이 데코드 경의 다리를 걷어찼다.
고통에 찬 비명이 터졌지만, 그는 넘어지지 않고 굳건히 버텼다.
넘어지게 하려 행한 공격이었지만 그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레벨의 엄청난 힘이 실린 발길질을 받아낸 데코드 경의 왼 다리는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였다.
왼 다리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지만 데코드 경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테일러와의 거리를 벌려 다리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아릿한 통증이 전신을 덮쳤다.
하지만 고통만 참아낸다면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었다.
“제법이군.”
데코드 경의 날카로운 시선이 테일러에게 꽂혔다.
테일러는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 침을 삼키며 방어 자세를 굳혔다.
성벽과도 같은 철벽의 방어 자세였다.
“훌륭한 자세다. 틈이 보이지 않는군.”
데코드 경은 감탄하며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그 어떤 요새라도 아주 작은 균열은 있게 마련이다.”
데코드 경은 말을 끝내기 무섭게 빠른 속도로 이동하여 테일러의 뒤를 잡았다.
테일러가 취했던 방어 자세는 정면의 공격에는 훌륭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후방의 공격에는 취약했다.
사실 후방의 공격에도 취약하지 않은 방어 자세는 찾기 힘들었지만.
“큭!”
데코드 경이 검을 휘둘렀다.
몸을 돌려 자세를 잡고 대응하기엔 이미 늦었다고 판단한 테일러는 몸을 앞으로 날려 검을 피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두 번째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말았다.
테일러가 자세를 잡기도 전에 데코드 경의 두 번째 공격인 찌르기가 테일러의 복부를 노렸다.
“크윽!”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목검에 복부가 찔리지는 않았다.
이상한 자세로 찌르기를 쳐내느라 손목이 조금 꺾였다.
그로 인한 고통으로 인해 터져 나온 신음성이었다.
‘장기전은 무리겠군.’
3번에서 4번의 검격을 주고받은 뒤 거리를 벌린 테일러는 오른쪽 손목의 상태를 살피며 생각했다.
제대로 되지 않은 자세에서 강력한 찌르기를 쳐내는 바람에 손목에 충격이 그대로 전달되었고, 그로 인해 손목 관절이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당장 움직이는데 무리는 없었지만, 장기전으로 끌고 갈 경우 손목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신속하고 치명적인 공격으로 우위를 점한다.’
테일러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며 윌드 데코드 경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테일러의 맹렬한 기세에 데코드 경은 압도당해 감히 공격 행동을 취할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훌륭한 방어자세지만 허점이 있다.’
데코드 경의 방어 자세는 훌륭했지만, 허점이 있었다.
바로 첫 번째 공격은 거의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지만, 우측 상단을 공격할 경우 자세가 흐트러져 두 번째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물론 검을 회수하는 속도가 데코드 경이 더 빠를 경우, 대응할 수 있었지만 테일러는 두 번째 공격을 검으로 할 생각이 없었다.
“하앗!”
기합과 함께 계획대로 우측 상단을 공격하는 테일러.
윌드 데코드 경은 검을 들어 올려 테일러의 검을 막아냈다.
두 검이 맞붙어 있는 사이, 테일러의 발이 데코드 경의 허리를 걷어찼다.
“크윽! 제기랄!”
데코드 경은 욕설을 내뱉으며 옆으로 쓰러졌다.
테일러의 검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곳을 미처 신경 쓰지 못해 피하거나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쓰러진 데코드 경의 목에 테일러의 검 끝이 살짝 닿았다.
“승패는 결정 났겠죠?”
감독관역을 맡은 고위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보며 테일러가 말했다.
중앙의 감독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테일러는 검을 거두었다.
데코드 경은 썩은 표정으로 일어나 검을 수습 기사에게 던져 주고는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주군께 혼나겠는걸.”
시험장을 벗어나며 그는 중얼거렸다.
시험이 끝나자 관전석에서 파티원들이 내려왔다.
“축하드립니다. 주군.”
알버트가 가장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넸다.
테일러는 대답 대신 미소로 답했다.
“이런 날은 보통 축하를 받는 사람이 한턱 크게 내는 법이지. 참고로 나는 술을 좋아해.”
“진정하세요. 레드. 가이우스가 또 술에 취할 게 뻔합니다.”
알폰스가 레드를 저지했다.
둘의 대화에 가이우스는 발끈했다.
“누, 누가 취한다고 그러는 것인가?”
“예전에 잔뜩 취해서 부축을 받아 겨우 숙소로 돌아갔지 않습니까?”
알폰스의 역공에 가이우스는 할 말을 잃었다.
“테일러. 정말 축하드려요.”
일리아가 테일러의 손을 붙잡고 고운 목소리로 축하했다.
테일러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감사합니다.”
그는 모두의 축하에 감사를 표했다.
실비아는 그런 그를 복잡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테일러에게 다가가서 일리아처럼 상냥하게 축하의 뜻을 전하고 싶었지만,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입도 쉽게 열리지 않았다.
“추, 축하해요.”
하지만 그녀는 결국 용기를 내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것에 성공했다.
그녀를 바라보며 테일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실비아.”
테일러의 미소에 실비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실비아는 테일러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알았으면 됐네요! 오빠, 가자!”
그러고는 자신의 그림자와 같은 알폰스와 함께 어딘가로 사라졌다.
* * *
붉은 카펫이 깔린 넓은 홀의 끝에 완전 무장한 라크 듀렌달 자작이 있었고 그 앞에 마찬가지로 철제 흉갑에, 완갑과 견갑까지 입은 테일러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양쪽 벽에는 10명 정도 되는 수의 기사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은 이제부터 왕국의 진정한 검이며, 진정한 방패다. 고위 기사로서 최전선에서 왕국의 검이 되고, 최후를 함께하는 방패가 되어라. 일어서도록.”
테일러가 천천히 일어섰다.
“국왕 폐하께 위임받은 권한으로 그대에게 고위 기사 작위를 수여한다.”
라크 듀렌달 자작은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가 망토를 고정하고 있는 브로치를 떼고 고위 기사 브로치로 다시 망토를 고정했다.
고위 기사 작위 수여는 원칙적으로 국왕이 하게 되어 있지만, 고위 기사의 수가 과거보다 늘어나게 되면서 국왕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왕의 권한을 위임받은 고위 기사가 대신 수여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었다.
“저는 왕국의 진정한 검이며, 방패입니다. 최전선에서 왕국의 검이 되며, 방패로서 최후를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다.”
테일러는 고위 기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