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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플레이어-98화 (98/150)

리턴 플레이어 98화

39장 여왕의 눈물(1)

“테일러와 레드가 잡혔다.”

신전 밖으로 힘없이 걸어 나온 알폰스 그레이가 실비아 그레이와 일리아 웨스트테일을 발견하고 힘없이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리아와 실비아는 경악했다.

“오빠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실비아가 알폰스에게 달려들어 그의 몸을 두들겼다.

하지만 전신 판금 갑옷의 단단함에 인상을 찌푸린 채 뒤로 물러났다.

알폰스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럼 신성교의 성기사인 내가 거기서 검을 뽑고 신성교의 성기사들과 결투를 벌일 수는 없지 않겠니?”

알폰스의 말은 옳았다.

그가 거기서 테일러를 돕는답시고 생각 없이 검을 뽑아들고 나섰다면 일이 더 커졌을 것이다.

“아! 정말 미치겠어!”

“두 분은 무사하신가요?”

실비아가 머리를 쥐어뜯는 사이, 일리아가 비교적 침착한 모습으로 테일러와 레드의 상태를 물었다.

알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합니다. 일단은요. 신성교는 쉽게 고문을 하지 않으니,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신성교는 고문을 지양하는 편이었지만 중요시하는 마병기 슈발리에를 도난당할 뻔했기 때문에, 배후를 캐묻기 위해 고문을 시작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알폰스는 굳이 그것을 입에 담지 않았다.

“알폰스. 그러면 실비아와 당신에 개입된 사실도 들통 난 건가요?”

“들켰지만 그 부분은 제가 적당히 둘러댔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알폰스의 대답을 들은 일리아는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을 꺼낼 방법이 없을까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실비아가 짜증을 냈다.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고 테일러와 레드가 잡혀버린 탓에 그녀의 짜증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실비아의 그런 태도에 대해 일리아는 한 마디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지금 싸우면 테일러와 레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알폰스 그레이가 입을 열었다.

“일리아. 테일러 말입니다. 돈 많습니까?”

알폰스의 말에 테일러는 과거의 기억 조각을 더듬었다.

돈이 모일 때마다 기부를 해오던 그였으나, 최근에는 기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 연이은 공로로 인해 포상금을 제법 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일리아 역시 적지 않은 금액의 포상금을 받았으니까.

“아마 꽤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시죠?”

“신성교는 돈을 아주 좋아합니다. 슈발리에 훔치기가 미수에 그쳤으니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상당한 양의 금화를 기부하는 것으로 사면될 수도 있습니다.”

알폰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신성교는 돈을 상당히 밝혔다.

슈발리에를 훔치는 것이 미수에 그쳤으니, 알폰스의 말대로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금화를 기부하는 것으로 풀려날 수도 있었다.

“즉시 행동에 옮기는 게 좋겠어요.”

일리아의 두 눈이 빛났다.

* * *

“정말 죄송했습니다. 부디 저희의 사죄가 로렌시아 님께 닿기를.”

테일러는 거대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금화 자루를 비열한 웃음을 애써 감추고 있는 사제에게 전달했다.

금화 자루는 상당히 무거웠기 때문에 사제는 그 금액을 대충 가늠해 본 뒤 뒤에 서 있는 성기사에게 넘겼다.

“분명 로렌시아 님께서도 알아주실 겁니다.”

금화에 환장하는 사제 옆의 여사제는 동료의 모습에 몰래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한 번뿐입니다. 명심하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사제의 말에 테일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돈을 밝히는 신성교라고는 하지만, 기부로 중대한 죄를 사면해주는 것은 자주 있는 일도 아니었고, 두 번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성녀 실비아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없었다면 이 사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부금 전달이 끝나고, 왕성의 숙소로 돌아온 테일러는 슬라임이 된 것처럼 축 늘어졌다.

사면 목적의 기부라서 그런지 스킬 슬롯 확장을 위한 공헌도는 조금도 늘어나지 않았고 슈발리에 또한 훔치지 못했다.

여러 가지로 최악이었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늘어져 있는 테일러의 옆자리에 일리아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앉았다.

그러고는 테일러의 어깨에 부드럽고 고운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힘내세요.”

아름다운 하이 엘프의 목소리는 혼란스러운 정신을 조금이지만 안정되게 해주었다.

“그건 그렇고, 테일러. 당신! 제게 꽤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는 거, 잘 알고 계시죠?”

실비아가 날카롭게 쏘아붙였지만 테일러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녀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출 기분이 아니었다.

테일러가 대답이 없자 실비아는 볼을 부풀려 무언의 시위를 시작했지만, 그것마저도 테일러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자 몸을 부르르 떨다가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테일러의 방을 나갔다.

늘 실비아의 곁을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알폰스는 실비아의 뒤를 쫓아 나가기 전에 테일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사면을 위해서 실비아는 제법 노력했습니다. 나중에 만나면 따뜻한 말 한마디 부탁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방문을 나서려는 알폰스를 향해 테일러가 입을 열었다.

“알폰스.”

방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멈췄다.

알폰스의 시선이 테일러에게 향했다.

“왜 그러시죠?”

“슈발리에를 다시 훔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죠?”

“경비가 2배로 강화되었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알폰스는 대답과 함께 방을 나갔다.

알폰스가 나가고 레드가 달려 들어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레드?”

“알아보았는데, 다행히 우리 신분이 노출되지는 않을 것 같아.”

레드는 테일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성교에 붙잡힌 뒤 신분이 노출되었을 수도 있다며 그것을 확인하고 오는 길이었다.

다행히 레드가 확인해 본 결과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테일러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가이우스를 회복시킬 방법이 미궁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슈발리에를 훔치는 것이 실패로 돌아가고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테일러는 파티원들과 회의를 하기도 하고 도서관에 들러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지만 하이 엘프 왕이 흥미를 보일 만한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

“하이 엘프 왕이 흥미를 보일 만한 이야기가 있습니까?”

점심 시간.

일리아와 간단하게 식사를 하면서 테일러가 질문했다.

일리아는 한 입 베어먹으려고 했던 사과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어딘가에는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도서관에는 없을 거예요.”

일리아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은 테일러를 절망의 늪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테일러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탑의 대마법사까지 찾아가 조언을 구했지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테일러는 답답한 마음에 고위 마법사를 통해 로이츠와 통신을 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지구의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로이츠의 그 말 한마디에 테일러는 전신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로 몸이 부르르 떨려 오는 것을 느꼈다.

왜 몰랐을까?

이곳과는 전혀 다른 지구의 이야기라면 하이 엘프 왕도 흥미를 가질 것이다.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가능성은 있었다.

로이츠와 통신이 끝나고 테일러는 즉시 파티를 소집하여 위그드라실로 돌아갈 것을 통보했다.

“뭐야? 하이 엘프 왕이 흥미를 가질 만한 걸 찾은 거야?”

레드의 질문에 테일러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824년 4월.

긴 여행 끝에 위그드라실에 도착했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지배하는 위그드라실은 상당히 아름다웠지만, 테일러와 그의 파티는 긴 여행으로 쌓인 피로를 녹일 여유도 없이 하이 엘프 왕의 알현을 신청했다.

이미 테일러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하이 엘프 왕 에이렌은 로이츠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알현을 허가했다.

“그래. 내가 흥미를 가질 만한 것을 가져왔나?”

중앙 홀의 붉은 카펫을 밟고 왕의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자 하이 엘프 왕 에이렌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테일러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아주 흥미로워하실 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흐음. 나는 오래 살았고, 많은 것을 경험했다…… 과연 나에게 흥미를 줄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하이 엘프 왕 에이렌의 표정이 변했다.

호기심이 사라지고 실망이 깃들었다.

그는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많은 것을 경험했다.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많은 경험을 쌓았고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평범한 일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테일러가 물건이 아닌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고 하였을 때 실망한 기색을 쉽게 숨길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하이 엘프 왕 에이렌으 태도에도 테일러는 자신감이 넘쳤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릴 이야기는 이 세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테일러는 미소를 지었고, 왕의 옆을 지키고 선 위그드라실 왕실 친위대장 로이츠 펠베런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 * *

지구의 이야기.

하늘을 나는 강철 새와 군마 없이 지치지 않고 달리는 강철 전차 등 신비로운 게 가득한 지구의 이야기는 하이 엘프 왕 에이렌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 충분했고, 테일러가 들려준 지구의 이야기에 사로잡힌 하이 엘프 왕 에이렌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 눈물을 흘리며 하이 엘프 왕의 심장을 내어주었다.

하이 엘프 왕의 심장은 전해져 오는 이야기대로 투명한 빛을 띠는 작은 심장 모양의 결정이었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품속에 집어넣은 테일러는 로이츠와 이별을 고하고 알버트를 포함한 파티와 합류해 수도로 말을 달렸다.

그리고 824년 5월.

수도의 성문을 넘을 수 있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그들은 곧장 가이우스를 찾았다.

가이우스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잠에 푹 빠져 있었다.

테일러는 조심스럽게 그의 몸을 흔들었다.

“가이우스! 가이우스! 일어나세요!”

몇 번 흔들면서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가이우스가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그는 졸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늦은 밤 무슨 일인가?”

그렇게 불평을 늘어놓는 것처럼 무신경하게 말을 내뱉던 그는 모든 파티원들이 자신의 방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늦게 어떤 사실을 추측해냈다.

“설마.”

가이우스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내 예상이 맞는다고 말해주게. 부탁이네.”

가이우스가 울먹였다.

그의 말에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마력 탈진을 회복시킬 겁니다.”

가이우스는 격한 기쁨에 휩싸여 쉽게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를 바라보며 테일러는 말없이 하이 엘프 왕의 심장을 꺼냈다.

이미 출발하기 전에 위그드라실에서 엘프 고위 마법사의 힘을 빌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과 통신하여 마력 탈진 회복을 위한 방법을 전달받았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실비아. 축복을 부탁합니다.”

실비아는 말없이 하이 엘프 왕의 심장에 로렌시아의 축복을 부여했다.

투명한 빛을 뿜어내고 있던 하이 엘프 왕의 심장이 순백의 빛을 받아들여 순백색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어두운 방 안이 순백의 물결에 점령당했다.

“와.”

레드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레드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 신비스러운 광경을 눈에 담으며 감탄했다.

“가이우스. 조금 아플 수도 있습니다.”

테일러의 말에 가이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고통 따위 참을 수 있다네.”

그 말에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로렌시아의 축복을 부여받은 하이 엘프 왕의 심장을 가이우스의 가슴에 밀어 넣었다.

하이 엘프 왕의 심장은 가이우스의 몸 안으로 녹아내리듯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큭!”

하이 엘프 왕의 심장이 모두 흡수되었을 때 가이우스가 고통에 찬 신음성을 내뱉으며 이불을 부여잡았다.

어찌나 세게 잡았던지 손등에 힘줄이 보일 정도였다.

하이 엘프 왕의 심장이 마력 탈진에 빠진 몸을 깨우는 과정에서 작은 고통이 뒤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고통에 익숙하지 않은 가이우스였지만 마법을 되찾고 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으로 고통을 이겨냈다.

고통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잠깐의 고통이 끝나자 가이우스는 몸에 마력이 돌아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 돌아온 것 같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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