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91화
36장 재회(1)
“하이 엘프 왕의 심장이라. 곤란하게 되었네요. 하이 엘프 왕의 심장은 심장을 말하는 게 아니예요. 그것은 하이 엘프 왕이 자신의 영혼의 일부를 쪼개 심장처럼 보이는 결정으로 만든 것이죠. 아주 귀한 거예요. 첫 번째 인류 문명의 멸망 이후 8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이 엘프 왕의 심장이 유출된 적은 2번에서 3번 정도밖에 없어요.”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으로부터 대충 설명을 듣고 온 테일러에게 하이 엘프 일리아 웨스트우드가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엘프 연방의 간부이며, 한 마을의 수장까지 맡았던 하이 엘프답게 하이 엘프 왕의 심장에 대해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보다 자세히 알고 있었다.
“하아.”
테일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 더미가 테일러의 숨결에 팔랑거렸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에게 대충 들어서 하이 엘프 왕의 심장을 얻는 것이 아주 힘들다는 것은 깨달았지만 일리아의 보충 설명을 들으니, 더더욱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힘을 내요. 테일러. 제가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힘없이 책상에 머리를 박고 한숨을 내뱉는 테일러의 어깨를 일리아의 손이 자연스럽게 감쌌다.
“말씀 감사합니다. 일리아.”
일리아는 하이 엘프였고, 엘프 연방의 간부였다.
위그드라실의 엘프 왕국 역시 반도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엘프 연방에 가입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엘프 연방의 간부인 일리아의 부탁이 어느 정도 통할 수도 있었다.
물론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더욱 많았지만, 테일러는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힘내세요.”
테일러가 힘든 틈을 타, 일리아는 그의 어깨를 감싸며 자연스럽게 몸을 붙였다.
그 순간이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실비아 그레이가 달려 들어왔다.
그러면서 그녀는 소리친다.
“들었어요! 제 도움이 필요하다고! 딱히 당신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지만 도와드릴…….”
로렌시아의 축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던 그녀는 테일러에게 딱 붙어 있는 일리아의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닫았다.
그러고는 잔뜩 화가 난 얼굴이 되어 다시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실비아. 어딜 가는…….”
“가자! 오빠!”
뒤늦게 알폰스 그레이가 얼굴을 비추었지만, 실비아의 단호한 외침에 테일러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만 한 채 다시 떠났다.
“뭔가 폭풍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테일러의 솔직한 말이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일리아도 테일러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는데,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 *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가이우스는 과자가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 벌써 떨어졌나.”
실버레인 중심도시에서 구입한 과자는 여행 도중에 대부분 소비하였다.
가이우스는 보통 도시에 들릴 때마다 과자를 보충하는 습성(?)이 있었으나, 최근 마력 탈진 상태로 인한 박탈감 탓에 과자 보충을 게을리하였고 결국 과자가 바닥나는 상황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보충해야겠군.”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으며,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돈주머니를 챙기고 로브를 입으려는 순간, 마탑의 소속을 상징하는 푸른 로브와 고위 마법사 브로치를 두고 가이우스의 손이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그는 곧 로브를 챙겨 입고 고위 마법사 브로치로 로브를 고정했다.
사우스펠 마탑의 로브와 고위 마법사를 상징하는 브로치는 그의 자존심이었다.
마탑에서 강제로 가져가기 전까지는 계속 착용하고 다닐 생각이었다.
마력 탈진을 빨리 회복하지 못한다면 고위 마법사의 상징을 빼앗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가이우스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과자나 사러 가야겠군.”
가이우스는 쓸쓸하게 웃으며 숙소를 나섰다.
제이드 기사단 주둔지는 왕성 내에 있었다.
주둔지를 벗어나 왕성문을 통과하자 내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성으로 가야겠군.”
가이우스가 중얼거렸다.
내성에도 제과점이 있었지만, 내성의 고객들이 대부분 귀족인 탓에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마력 탈진을 회복하지 못하게 된다면 제이드 기사단에도 남아 있을 수 없었고, 그렇게 된다면 당장 돈 나올 구멍도 막혀버리게 되기 때문에 가이우스는 남은 돈을 최대한 아끼기로 결심했다.
내성을 벗어나기 위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던 가이우스는 신전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그는 신전으로 들어가는 실비아와 알폰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실비아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겪었는지 얼굴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무시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군.”
가이우스는 마른 침을 삼키며 내성의 성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성을 벗어나자 내성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다른 도시에 비하면 상당히 부유하다고 할 수 있는 외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이우스는 신속하게 제과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 과자를 구매했다.
종이봉투에 과자를 가득 담고 제과점을 나오는 순간, 가이우스는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않은 얼굴을 만나게 되었다.
“이놈아. 과자 좋아하는 성격은 여전하구나.”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푸른 눈.
푸른 로브를 고정한 고위 마법사 브로치.
가이우스의 스승인 론도셀 아키자 남작이었다.
“스, 스승님? 여긴 어떻게?”
“과자 좋아하는 네 녀석 성격을 잘 아니까. 기다리고 있었다.”
마력 탈진으로 인해 가이우스의 마력이 제로가 되는 바람에, 마법으로 추적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제과점에서 잠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론도셀 아키자 남작도 도시에 들리면 제과점을 찾는 가이우스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 녀석아! 그건 그렇고 스테프는 어디에 버리고 다니는 것이냐!”
론도셀 아키자 남작은 스테프를 들고 있지 않은 가이우스를 호통쳤다.
가이우스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스승님. 사정이 있습니다.”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말이다. 아직 사우스펠 마탑에선 네 녀석의 고위 마법사 칭호를 거두려는 마음은 없다! 칭호가 사라지기 전까지 네 녀석은 마법사다! 마법사가 스테프를 두고 다녀서 되겠느냐, 이놈아!”
“마탑의 결정이 그렇다는 말입니까?”
가이우스의 두 눈이 반짝였다.
당장에라도 고위 마법사 칭호를 거두고 브로치를 뺏어갈 줄 알았다.
론도셀 아키자 남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테일러 경이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하니, 우선은 기다려보기로 한 것이야.”
마탑도 인재를 놓치는 것은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이우스는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려서 다리의 힘이 풀려 버린 것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론도셀 아키자 남작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탑도 협조할 생각이지만, 방법이 없다면 가차 없이 몰수에 들어갈게다. 그러니 마음의 준비는 해두는 게 좋을 것이야.”
“이미 마음의 준비는 끝냈습니다. 스승님.”
가이우스는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얼굴로 일어섰다.
* * *
“잘 부탁하네.”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소.”
로펜 경이 충성심 가득한 눈빛을 테일러에게 보내며 말했다.
제이드 기사단의 기사단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위그드라실로 향할 수는 없었다.
테일러는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에게 부탁하여, 자신이 위그드라실로 향할 수 있도록 제이드 기사단장 자리를 임시로 로펜 경이 맡겼다.
기사단장 자리를 임시로 로펜 경에게 맡긴 뒤 테일러는 본격적으로 위그드라실로 향할 준비를 서둘렀다.
기사단장 집무실도 로펜 경이 임시로 쓰게 되었다.
숙소에서 짐을 챙기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지고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테일러가 들어와도 좋다고 말하자 문이 열리고 루시드 필리스터가 오랜만에 얼굴을 드러냈다.
“아, 루시드.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에 테일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루시드는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테일러 경. 그동안 많이 바빴다고 들었네. 왕국을 위해 정말 훌륭한 일들을 해주었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루시드의 칭찬에 테일러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 그의 언행이 마음에 드는 것인지 루시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서로의 근황에 대한 대화를 짧게 나누고, 대화가 끝이 났을 때 루시드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임시지만 기사단장 자리를 로펜 경에게 넘겼다고 들었네. 가이우스 때문인가?”
루시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우스의 마력 탈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이 엘프 왕의 심장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위그드라실로 향해야만 하는데, 기사단장의 자리에 있으면 쉽게 움직이기 힘들어서 말입니다.”
테일러의 설명대로 기사단장의 자리에 있다면 하나의 기사단을 지휘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쉽게 개인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테일러는 잠시 동안 제이드 기사단의 기사단장 자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위그드라실은 엘프 연방 중에서도 특히 폐쇄적인 면을 보이는 엘프들의 왕국이라네. 그것은 잘 알고 있는 것인가?”
위그드라실은 하이 엘프 왕이 통치하는 엘프들의 왕국으로 루시드의 설명대로 엘프 연방 중에서도 특히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곳이었다.
하이 엘프인 일리아가 일행에 함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쉽게 성문을 열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대책은 있는가?”
루시드의 물음에 테일러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막연하게 위그드라실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을 뿐 실질적인 대책은 세우지 못한 것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테일러는 자신의 실수를 탓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를 보며 루시드 필리스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게 방법이 있네.”
테일러가 고개를 들었다.
루시드는 자신의 수행원을 시켜 무언가를 가져오도록 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젊은 기사가 깨끗한 천에 싸인 무엇인가를 가져왔다.
큰 테이블 위에 그 깨끗한 천을 펼쳤다.
“이것은…….”
사우스 왕국의 문장과 국왕의 그려진 청색 깃발이었다.
“국왕 폐하의 깃발이네. 국왕 폐하께 부탁해서 하나 받아냈지. 이것으로 자네는 사우스 왕국을 대표하고 국왕 폐하를 대신하여 공식 사절로서 위그드라실에 방문하는 게 되는 것이야.”
국왕의 깃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많았지만, 대표적으로 ‘사절’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테일러는 넘치는 고마움에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루시드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기대하지는 말게. 국왕 폐하의 깃발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위그드라실은 인간들에게 친절하지 않으니까.”
사우스 왕국의 사절 신분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위그드라실은 쉽게 성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테일러가 말했다.
뒤늦게 떠올렸지만, 테일러에겐 하이 엘프 일리아로부터 얻은 나뭇잎 피리가 있었다.
엘프 연방의 엘프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피리였다.
국왕의 깃발을 든 채 이것을 사용하면 위그드라실의 성문이 열릴지도 몰랐다.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하네만.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게나.”
“네. 정말 감사합니다. 루시드.”
“국왕 폐하와 왕국을 위해 헌신하는 자네에게 이 정도도 못 해줄까. 나는 이만 가보겠네.”
루시드는 호탕하게 웃으며 퇴장했다.
루시드가 숙소에서 나가고, 테일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상태창.”
[테일러.
고위 기사
Lv:61
스킬[14/15]
Lv1 춤추는 슈발리에[S] Lv5 불의 검[B] Lv8 마력검[B] Lv7 파마의 검[A] Lv8 암석거인의 가호[B] Lv10상급 방어 검술[C] Lv7 하급 아머 마스터리[E] Lv2 눈에는 눈 이에는 이[A] Lv6 마나연공법[C] Lv11 통솔[C] Lv5레인저의 직감[C] Lv2 결사의 의지[A] Lv1도주[E] Lv5벌목[E]
잔여 포인트:7]
데네브와의 전투로 스킬 레벨이 상당히 많이 상승해 있었다.
테일러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만약 성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무력을 사용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