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87화
34장 대마법 뇌신의 창(3)
가이우스가 침착한 목소리로 마법을 완성하자 엄청난 양의 마력이 응집해 있는 뇌신의 창이 완성되었다.
뱀파이어 대공 데네브는 뒤늦게 몸을 빼려 했지만 늦었다.
가이우스가 뇌신의 창을 들어 올려 던진 순간 이미 데네브는 그것에 찔려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뇌신의 창에 관통당한 뱀파이어 대공 데네브는 강력한 대마법의 전격에 노출되었다.
“크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데네브의 모든 것이 타버렸다.
그는 한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봉인이 완전히 풀린 몸이었다면 치명상에서 끝났겠지만, 봉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대마법 한 방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끝났군.”
모든 것이 끝나고, 안도한 가이우스는 힘없이 쓰러졌다.
가까스로 정신줄을 잡고 있던 테일러의 귓가로 전투의 끝을 알리는 알림음이 들려온다.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경험치를 대량 획득하였습니다.]
[2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5스킬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 * *
“크악!”
살라다르 경의 치명적인 쌍검술과 실버레인 경의 침착한 보조에 끝까지 버티고 있던 그림자 기사의 목이 날카로운 검에 꿰뚫렸다.
그는 비명을 질렀고 살라다르 경이 검을 뽑아내자 붉은 선혈을 분수처럼 뿜어내며 쓰러졌다.
두 개의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살라다르 경은 날카로운 눈동자로 주변을 살폈다.
이미 제이드 기사단은 유적 내부로 돌입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로펜 경!”
살라다르 경은 테일러에게서 지휘권을 임시로 양도받은 로펜 경을 찾았다.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이 전사했소.”
로펜 경은 살라다르 경과 하인즈 실버레인 경에게 겨울바람 기사단의 부단장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이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렸으나, 살라다르 경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유적으로 진입하지 않으십니까?”
“재촉하지 않아도 지금 진입하려고 하고 있소.”
살라다르 경의 재촉에 로펜 경은 제이드 기사단에 지시를 하달했다.
겨울바람 기사단과 실버레인 경의 북부 늑대 기사단이 지상의 방어를 맡고 제이드 기사단이 유적 내부로 진입하기로 계획을 끝낸 상태였다.
“돌입!”
살라다르 경과 쟈크 경이 검을 뽑아들고 유적 내부로 진입했고 제이드 기사단원들이 뒤따랐다.
유적은 어둠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하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불을 밝혀라!”
르담 폴슨 경이 지시를 내리자 기사단원들은 즉시 횃불에 불을 붙였다.
불꽃이 어둠을 몰아내면서 유적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맙소사.”
유적의 내부를 살핀 살라다르 경은 경악했다.
중앙에선 일리아가 눈물을 흘리며 피투성이가 된 테일러를 끌어안고 있었고, 실비아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꾸준히 신성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리고 파티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기사단장!”
살라다르 경은 검집에 검을 집어넣고는 테일러를 향해 달려갔다.
테일러는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피에 흠뻑 젖어 미동도 않는 그 모습은 시체로 보일 정도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뱀파이어 대공이 깨어났었어요. 비록 봉인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지만, 그는 강력했어요.”
일리아는 간단한 설명을 끝내고 입을 다물었다.
“뭣들 하나! 부상자의 상태를 살펴!”
의료 교육을 받아 의무병 역할을 수행하는 소수 기사단원들이 의료함을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미 실비아의 신성 기도문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상자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래도 실비아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신성 기도문을 부지런히 외운 덕분에 파티원 그 누구도 죽지 않고 질긴 목숨줄을 붙들고 있을 수 있었다.
의료함을 든 기사단원들이 파티원들에게 붙었으나,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없었다.
그저 상태를 살피기 위해 호흡을 체크하고 몸 상태를 살필 뿐이었다.
“크윽.”
“테일러!”
“기사단장!”
심각한 분위기.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은 가운데, 신음성과 함께 테일러가 힘겹게 눈을 떴다.
테일러만을 지켜보고 있던 일리아는 피 묻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테일러의 이름을 불렀고 살라다르 경 또한 테일러의 곁으로 더욱 가까이 접근했다.
“일리아…… 파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테일러는 파티의 상태를 먼저 질문했다.
일리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도 테일러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파티원들의 상태를 몰랐다.
“모두 무사합니다. 기사단장!”
살라다르 경이 재빨리 나섰다.
그는 기사단원들로부터 방금 전 보고를 받아서 파티의 상태를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가. 다행이군.”
파티원들이 무사하다는 보고를 듣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감의 끈이 느슨해졌고 자연스레 눈이 감겨 왔다.
누군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눈꺼풀이라고.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테일러는 몸으로 느끼며 저항 없이 눈을 감았다.
* * *
예정대로라면 전투가 끝나고 즉시 실버레인 후작령으로 이동하거나, 통신 마법을 통해서 왕국 정보부나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에게 보고한 후 즉시 다음 명령을 하달받아야 했지만, 당장 움직이기엔 부상병의 수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제이드 기사단은 이동을 보류하고 잠시 유적에 머물렀다.
보급품은 충분했고, 유적의 지형이 방어에 용이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무리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부상당해 제이드 기사단의 통솔이 불가능한 테일러를 대신해 제이드 기사단의 고위 기사 로펜 경은 적이 침입할 수 있는 공간마다 간단한 함정을 설치하고 기병 장애물을 설치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파티원들은 신성교의 성녀 실비아의 신성 기도문 덕분에 몰살당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고도 살아남았지만 아직 안정이 필요했다.
오히려 제이드 기사단원들의 부상은 대부분 3일 만에 움직일 수 있는 수준으로 회복되었지만, 테일러와 파티원들은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지만 모두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력 폭주의 후유증으로 마력 탈진 상태가 되었던 가이우스만이 간신히 의식을 차리고 초췌한 얼굴로 유적을 돌아다닐 뿐이었다.
마력 탈진으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모든 마력을 잃은 가이우스는 초췌하고 모든 것을 잃은 얼굴로 유적을 돌아다녔는데, 그 모습이 마치 유령 같다고 제이드 기사단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한 명 두 명씩 눈을 떴다.
첫 번째로 알버트가 눈을 떴고, 그다음으로 알폰스가 눈을 떴다.
그리고 레드가 눈을 떴으며, 마지막으로 테일러가 눈을 떴다.
의식은 되찾았지만 모두 부상의 정도가 심하여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테일러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하이 엘프 일리아는 기사단에서 딱히 맡은 일도 없었기 때문에 매일 같이 의료 막사에 출근 도장을 찍고 테일러를 찾았다.
오늘도 평소처럼 테일러가 있는 의료 천막을 찾았을 때였다.
일리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하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는 테일러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실비아의 모습을 보고 만 것이었다.
그 모습에 일리아는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실비아의 시선은 곧 테일러에게서 멀어졌지만, 그녀의 그런 모습은 일리아가 확실히 보고 말았다.
“오셨어요?”
실비아는 조금 쌀쌀맞은 태도로 일리아를 맞이했다.
“네. 고생이 많으시네요.”
일리아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면서 테일러의 옆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보란 듯이 테일러와 실비아 사이에 앉아 그녀의 시선을 차단했다.
고생이 많다는 일리아의 말에 실비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마세요. 다들 의식을 차리기 전에는 24시간 신성 기도문을 유지하느라 피곤했어요.”
파티원들이 의식을 차리기 전에는 빠른 회복을 위해 자연 회복을 촉진하는 간단한 신성 기도문을 24시간 유지시키고 있던 실비아 그레이였다.
그것은 신성력의 소모는 크지 않지만 24시간 유지를 해야 하다 보니 신경이 적잖게 쓰이는 일이었다.
실비아의 불평에 일리아는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투정은 일리아에게 있어서 어린아이의 투정으로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실비아. 감사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간의 대화가 오고 가는 가운데, 테일러가 눈을 뜨며 말했다.
바다를 품은 듯한 푸른 눈동자가 실비아에게 향하자 그녀는 볼을 살짝 붉히며, 시선을 회피하며 입을 열었다.
“따, 딱히 당신을 위해서 고생한 건 아니니까. 오빠도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그럼 됐네요!”
실비아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의료 막사를 벗어났고 그녀의 뒷모습을 쫓는 일리아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 * *
파티원 모두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테일러는 파티와 고위 기사들을 소집했다.
“로펜 경. 엘런데일스 후작의 다음 명령은 어떻게 되지?”
“그, 그것이…….”
테일러의 물음에 로펜 경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유일한 고위 마법사인 가이우스가 마력 탈진으로 인해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되어 버리는 바람에, 고위 마법사가 쓸 수 있는 통신 마법도 사용할 수 없어졌고 전투로 인해 전서구도 모두 소실되어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왕국 정보부로부터 다음 명령을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로펜 경은 현 상황과 가이우스의 몸 상태에 대해 테일러와 파티원들에게 대충 설명을 했고, 로펜 경의 설명을 들은 테일러와 파티원들의 복잡한 시선이 가이우스에게 집중되었다.
“나는 괜찮네. 너무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말게나.”
가이우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밝게 웃어보려고 했지만 힘들었다.
가이우스는 모든 것을 잃었다.
마력 폭주의 부작용 마력 탈진으로 인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마력을 잃었다.
마력 탈진을 회복하지 않는 이상, 다시는 마법사로서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오직 마법의 길만 걸어온 가이우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그것을 파티원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실비아. 로렌시아의 축복으로 마력 탈진을 치료할 수는 없는 것입니까?”
테일러를 제외하면 가이우스와 지낸 시간이 가장 많은 알버트 후안이 실비아 그레이에게 질문했다.
모든 질병과 저주를 치료한다는 로렌시아의 축복이라면 마력 탈진이라는 것에서 가이우스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비아가 고개를 젓는 것으로 알버트의 기대는 곧 산산이 부서졌다.
“불가능해요. 마력 탈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대충은 알고 있어요. 마력 탈진은 질병이나 저주가 아니어서 로렌시아의 축복으로는 회복이 안 될 거예요. 적어도 제가 아는 범위에선 방법이 없네요.”
실비아는 그렇게 말하며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한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가이우스가 자신을 희생해 뱀파이어 대공 데네브를 해치운 것으로 인해 실비아 또한 그에게 목숨을 구해졌기 때문이었다.
“마력 탈진. 들어본 적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들은 것 같습니다.”
“정말입니까?”
알폰스의 말에 테일러가 반응했다.
격한 반응에 알폰스는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방법은 저도 잘 모릅니다.”
잠깐이나마 밝아졌던 분위기가 다시 어둠 속을 걷는 것처럼 캄캄해졌다.
침묵이 계속되는 가운데, 테일러가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방법은 있다는 것 아닙니까?”
알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테일러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에게 물어보면 될 겁니다.”
“그분은 모르는 게 없지요. 방법을 알고 계실 겁니다.”
테일러의 말에 쟈크 경이 긍정했다.
왕국 정보부의 수장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사우스 왕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사우스 왕국의 모든 정보는 결국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에게 향한다는 말이 과장된 것은 아니었다.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