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84화
33장 검은 밤의 지배자(2)
말을 재촉한 덕분에 제이드 기사단은 그림자 기사단의 예상보다 빨리 유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이드 기사단은 레드의 조언을 받으며, 은밀하게 유적을 기습하려고 했지만, 그림자 기사단이 누군가? 기습의 숙련자들이다.
은밀한 움직임에 익숙하지 않은 제이드 기사단은 기습을 시도하기 직전에 그림자 기사단에 발각되고 말았다.
“모든 것은 그림자 대공의 뜻대로!”
제이드 기사단과 조우한 그림자 기사단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들 중 절반 정도가 검은 마력검을 다루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가이우스의 강력한 고위 마법이 내리꽂혔다.
강력한 전격이 하늘에서 내려쳤고, 짧은 순간에 그림자 기사단원 8명이 끔찍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일반 병사 상대로 50명까지 살상할 수 있는 수준의 고위 마법이었지만 그림자 기사단원들은 숙련된 정예들이었고, 마법이 작렬하기 전에 신속하게 유효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에 성공했다.
“로펜 경. 지휘를 부탁한다.”
“맡겨두시오!”
로펜 경의 대답을 들은 테일러는 검을 뽑으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뱀파이어 대공 데네브의 봉인이 풀려는 그림자 기사단을 저지해야만 했다.
그는 소수의 제이드 기사단원들과 파티와 함께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다시 한번 가이우스의 전격 마법이 발휘되었다.
그의 스테프에서부터 시작된 마법의 전격이 푸른 빛을 발산하며 새벽의 하늘을 뚫고 구름에 닿았다.
그 구름은 수배로 커진 전격을 토해냈다.
다시 한번 일격에 그림자 기사단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위 마법사를 쳐라.”
제이드 기사단과 그림자 기사단과의 전투가 벌어졌고 후방에서 전투를 감상하듯 지켜보며 지휘를 하던 요크 벨라크루소 준남작은 치명적인 마법을 난발하는 가이우스를 먼저 죽일 것을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그림자 기사단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나가는 테일러의 앞을 그림자 기사 작위를 받은 그림자 기사단원 2명과 검은 마력검을 다루는 그림자 기사단원 5명이 막아섰고, 그 주변을 그림자 기사단원들이 검을 들어 올린 채 거리를 좁혔다.
“이런 위험한 곳에 왜 저까지 데려오신 거예요!”
주변을 포위한 채 거리를 좁히는 그림자 기사단의 모습에 성녀 실비아가 투덜거렸다.
테일러와 함께하면서 몇 번 전장을 경험했지만 모두 안전한 곳에서 보호만 받아온 그녀였다.
이렇게 위험한 최전선에서 함께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상당히 긴장해 있었다.
평소처럼 안전한 후방에서 함께하면 되는데, 왜 자신을 최전방으로 끌고 나온 것인지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그림자 기사의 검을 받아내며 테일러가 입을 열었다.
“뱀파이어 대공 데네브의 봉인이 풀린다면 성녀인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실비아!”
뱀파이어 대공 데네브의 봉인이 풀린다면 성녀인 실비아의 힘이 필요했다.
데네브의 봉인이 완전히 풀린다면 그녀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인간 앞의 개미처럼 순식간에 끔찍하게 살해당할 게 분명했지만 말이다.
“우습군. 데네브가 우리와 함께한다면, 너희는 끝이다. 그가 깨어나면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어.”
테일러의 검을 받아내며 그림자 기사가 혼잣말에 가까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테일러는 그의 검을 비스듬히 흘리며 파마의 검으로 마력을 깎아냈다.
마력검이 눈에 띄게 약해지자 면갑에 난 틈으로 보이는 그림자 기사의 두 눈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요크 벨라크루소 준남작이 출발 전에, 직접 맞붙게 될지도 모르는 테일러가 사용하는 파마의 검에 대해 전달한 상황이었지만 직접 마력검이 깎여나가는 모습을 보고 겪어보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잠을 이어가게 하면 되겠군!”
그림자 기사의 검을 비스듬히 흘려낸 테일러는 빠른 속도로 검을 회수한 다음 그림자 기사의 심장을 노리고 검을 내찔렀다.
굳이 검을 공격하여 파마의 검으로 마력검을 깎아낼 필요도 없었다.
S급 검술 스킬을 획득한 상태에서 펼치는 그의 검술은 상당히 빨랐으며, 날카롭고 정확했다.
“이익!”
알버트와 상대하던 그림자 기사가 알버트가 상처를 입은 틈을 타, 개입하여 테일러의 검의 경로를 살짝 틀어지게 만들었다.
그 탓에 검의 속도가 느려지자 그림자 기사는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검을 휘둘러 테일러의 검을 쳐내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검을 휘두른 탓에 검의 회수와 자세 회복이 늦어졌고 어느새 검을 회수한 테일러가 그림자 기사의 복부를 깊게 베었다.
“크악!”
면갑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튀어 나오고 갈라진 판금 갑옷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과다 출혈로 인해 비틀거리면서도 굳은 의지로 검을 부여잡고 테일러에게 맞섰다.
“주군. 죄송합니다. 다시 합류했습니다.”
실비아의 신성 기도문으로 상처를 어느 정도 회복한 알버트가 다시 합류했다.
“알버트. 상처 입은 그림자 기사를 맡으세요. 제가 다른 한쪽을 맡겠습니다.”
“하지만 주군!”
알버트가 소리를 질렀다.
자존심이 조금 상한 모양이었지만 테일러는 단호했다.
“일단은 제 말을 따르세요. 체력을 아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결국 알버트는 테일러의 뜻에 따라 심각한 상처를 입은 그림자 기사를 상대했고, 테일러는 멀쩡한 그림자 기사를 상대했다.
“크악!”
테일러가 상처를 입지 않은 그림자 기사를 상대하기 시작한 지 1분도 되지 않아서 옆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검술 실력이 아주 뛰어난 적과 검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 자세한 상황을 살필 수는 없었지만 알버트의 목소리가 아닌 것으로 보아 그림자 기사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거나 쓰러진 것으로 보였다.
테일러의 예상대로 알버트는 아주 훌륭한 검술 실력을 자랑하며 상처를 입은 그림자 기사를 격퇴하였다.
그는 곧바로 테일러를 지원하기 위해 합류하려 했지만, 그림자 기사단원 2명이 그에게 붙는 바람에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대신 주변을 어느 정도 정리한 덕분에 여유가 생긴 가이우스의 마법과 레드의 화살이 테일러를 지원했다.
궁술의 신이 강림한 것 같은 빠른 속도의 사격에 그림자 기사는 쉽게 테일러를 공격하지 못했다.
그림자 기사가 들고 있는 검의 마력검 또한 테일러의 검과 제법 많이 부딪치는 바람에 상당량의 마력을 잃은 상태였다.
그리고 가이우스의 마법이 연이어 그를 노렸다.
바로 옆에 테일러가 있는 탓에 파괴력이 강력한 고위 마법을 난사하지는 못했지만 제법 성가신 마법들이 그림자 기사를 노렸다.
“테일러! 몸을 고정하게!”
그림자 기사가 쉽게 쓰러지지 않자 가이우스는 특단의 방법을 생각해내고 테일러에게 몸을 고정할 것을 요청했다.
테일러는 가이우스를 믿고 망설임 없이 검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그 행동으로 인해서 공격과 수비가 불가능해졌다.
가이우스를 향한 깊은 신뢰가 없었다면 그가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믿어주어서 고맙네!”
레드의 화살이 가이우스가 마지막으로 마법을 마무리하는 동안 그림자 기사가 테일러를 공격하지 못하게 견제했다.
그리고 가이우스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어어?”
마법이 완성되고 그림자 기사 주변의 땅이 미끄럽게 변했다.
땅에 검을 고정한 테일러는 미끄러지지 않았지만, 그림자 기사는 그러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는 무거운 전신 판금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끄러운 바닥에서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금세 넘어졌다.
쿵! 하는 큰 소리와 함께 거구가 넘어졌다.
“마법을 중지했네! 끝내버리게나!”
마법을 중지하며 가이우스가 소리쳤다.
테일러가 재빨리 땅에 박힌 검을 뽑아 쓰러진 그림자 기사의 목을 찌르려는 순간이었다.
“우어어어!”
그림자 기사가 괴력을 발휘하며 일어섰다.
전신 판금 갑옷을 입은 상태에서 일어선 것이었다.
테일러는 놀라움을 쉽게 감추지 못한 채 그림자 기사의 공격을 방어했다.
일어선 것은 좋았지만, 그의 공격과 함께 마력검이 깨지고 말았다.
“이런 제기랄!”
그림자 기사는 욕설을 내뱉으며 검을 회수했다.
테일러가 휘두르는 검을 막기 위해 검을 들어 올렸지만, 테일러의 푸른 마력검은 철로 만든 검을 깨끗하게 자르고 그림자 기사의 몸까지 이등분했다.
두꺼운 전신 판금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마력검 앞에서는 벗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리아.”
그림자 기사를 죽인 테일러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그림자 기사단원 한 명의 목을 잘라내며 뒤로 이동해 일리아를 찾았다.
바람의 정령 군주를 소환하여 싸우고 있던 그녀의 시선이 테일러에게 향했다.
“네.”
“물의 정령 소환이 가능합니까?”
테일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보통의 정령사의 경우 정령 군주라는 엄청난 존재를 소환하면 다른 정령의 소환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아니, 다른 정령의 소환은 가능하지만, 계열이 다른 정령의 소환은 힘들었다.
“조금 힘들지만 가능해요.”
“물의 정령을 소환해서, 실비아 대신 제이드 기사단의 지원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어요. 해볼게요.”
하이 엘프 일리아 웨스트우드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정신을 집중하여 정령계의 문을 열었다.
정령계의 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여성의 형상을 한 푸른빛을 띤 물의 정령이 걸어 나왔다.
일리아는 정령에게 제이드 기사단의 치료를 부탁하였다.
전투는 제이드 기사단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테일러가 직접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로펜 경의 지휘 역시 훌륭했고 겨울바람 기사단과 북부 늑대 기사단이 함께하는 제이드 기사단은 천천히 적을 줄여나갔다.
물론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국에서도 최정예로 평가받는 그림자 기사단이었기에 수적으로 조금 적은 상황에서 전투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수의 기사단원들을 죽였다.
두 집단이 격렬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사이, 테일러는 소수의 제이드 기사단원, 그리고 파티와 함께 유적의 내부로 진입하는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요크 벨라크루소 준남작은 그들을 막기 위해 부하들을 보내려 했지만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부하들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어둠이 지배하는 유적 내부로 들어갔다.
“적이 온다. 모두 준비해라.”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배치한 그림자 기사단원 5명을 제외하면 전투 인력은 고위 마법사 2명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모두 비전투 인력이었다.
그림자 기사단원 5명이 앞으로 나서고 고위 마법사 2명이 마법을 준비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마력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테일러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와 그림자 기사단원 2명의 목을 날렸다.
그 뒤를 이어 알버트가 한 명의 목을 날렸고, 레드가 쏜 2발의 화살이 1명의 심장과 머리에 박혔다.
가이우스의 마법이 마지막 남은 한 명을 정리했다.
비전투 인원들도 검을 뽑아들고 맞섰지만, 테일러가 지휘하는 제이드 기사단원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불타올라라!”
그림자 기사단 소속의 고위 마법사가 고위 마법은 아니지만, 충분히 위력적인 마법을 시전했다.
푸른 전격의 창은 테일러를 노리고 빛을 발산하며 어둠을 뚫고 날아갔지만, 테일러의 검에 닿기 무섭게 찌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이럴 수가!”
마법사는 경악했지만, 요크 벨라크루소 준남작은 비교적 침착했다.
그는 고위 마법사 2명이 테일러들과 전투를 버리는 사이 관으로 다가갔다.
테일러가 고위 마법사 한 명의 심장에 검을 쑤셔 넣고, 가이우스가 또 다른 고위 마법사를 마법으로 처치했을 때 요크 벨라크루소 남작은 고급스러운 관의 열쇠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고 있었다.
“가이우스! 레드! 그를 막으십시오!”
본능적으로 아득한 두려움을 느꼈다.
깨어나선 안 되는 자가 깨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테일러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가이우스와 레드에게 신속하게 놈을 막아 달라고 요청하며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요크 벨라크루소 준남작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미 늦었다.”
요크 벨라크루소 준남작이 열쇠를 돌리려는 순간, 가이우스의 마법이 그의 몸에 명중했다.
“큭!”
그는 열쇠를 놓쳤고 레드의 화살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벨라크루소 준남작의 머리를 꿰뚫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테일러가 열쇠를 뽑으려 했지만 열쇠는 뽑히지 않았다.
열쇠는 이미 옆으로 조금 돌아가 있었고 관의 틈새에서 어두운 마력이 쉼 없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테일러는 본능적으로 일이 잘못 풀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 전투 준비!”
그렇게 외치며 테일러는 관을 향해 검을 내려쳤다.
깨어나기 전에 최대한 피해를 주려는 생각에 행동한 것이었지만 무려 마력검으로 내려쳤음에도 불구하고 관은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뒤늦게 확인해보니,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데네브가 잠들어 있는 관은 조금의 손상도 없었다.
마치 어제 만든 것처럼 깨끗하고 검은빛을 잃지 않았다.
“알폰스. 이쪽으로 오세요. 당신이 필요합니다.”
“저는 실비아의 곁을 떠날 수 없습니다.”
“제기랄! 봉인에서 깨어난 순간을 노려야 합니다! 그 순간이 가장 약할 것이란 말입니다!”
알폰스는 평소처럼 실비아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테일러가 욕설까지 내뱉으며 설득하자 고개를 저으며 다가와 환하게 빛나는 방패를 들어 올렸다.
“저희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강력한 고위 마법 부탁합니다.”
“맡겨주게나!”
테일러의 말에 가이우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버트 후안도 말없이 다가와 검을 들어 올렸다.
세 명의 뛰어난 기사가 관을 노려보는 가운데, 관이 천천히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