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81화
32장 대공이 잠든 곳(1)
북부 늑대 기사단과 겨울바람 기사단으로부터 기사단원을 충원받은 제이드 기사단은 823년 10월의 시작과 함께 그랑키아 숲으로 향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면서 조금 차가워진 바람이 여정을 재개하는 제이드 기사단을 반겼다.
북부라서 그런지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추웠다.
“시작이 좋군요.”
테일러의 옆에서 말을 모는 알버트의 말이었다.
북부 군단 사령부 실버레인 후작령에서 보급을 충분하게 받은 덕분에 기사단의 사기도 좋았고 하늘은 맑았으며 바람도 시원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알버트. 크게 승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테일러도 한 마디 했다.
“테일러. 알버트. 저는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어요.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요.”
테일러와 알버트와 다르게 일리아는 불안한 기분이 드는 듯했다.
그녀는 소름이 돋았는지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팔이 훤히 드러난 옷을 입은 그녀는 드러난 팔을 쓱쓱 문질렀다.
일리아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냥 순탄하게 이어질 것처럼 시작되었던 원정이 어느 순간부터 좋지 않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제이드 기사단은 충실하게 테일러를 따랐다.
하지만 뒤늦게 합류한 겨울바람 기사단과 북부 늑대 기사단의 기사단원들이 테일러의 명령에 조금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인즈 실버레인 경이 지휘하는 북부 늑대 기사단 10여 명은 수도 적고 하인즈 실버레인 경이 테일러에게 상당히 호의적인 덕분에 분쟁을 일으키거나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상당히 덜했지만, 겨울바람 기사단의 부단장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이 지휘하는 50명의 겨울바람 기사단원들은 테일러에게 상당히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테일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제이드 기사단원들과 크고 작은 싸움을 자주 터뜨리기도 했다.
양측의 악감정은 점점 쌓이고 쌓여 결국에는 폭발하고 말았다.
“그만 두십시오! 르담 폴슨 경!”
케이트 경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어두운 밤 야영지에 울려 퍼졌다.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두 명의 기사가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한 명은 제이드 기사단의 르담 폴슨 경이었고, 그를 향해 마찬가지로 검을 겨누고 있는 기사는 겨울바람 기사단의 라돌프 경이었다.
두 기사는 적의 어린 시선을 주고받으며 검을 겨눈 채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뒤늦게 그들을 발견한 케이트 경과 겨울바람 기사단의 기사 한 명이 뛰어들어와 서로의 사이를 막아섰다.
“케이트 경. 비켜서주십시오. 당장 저놈의 목을 베야겠습니다.”
“물러설 수 없습니다. 폴슨 경. 도대체 왜 이러는 것입니까?”
“라돌프 경은 기사단장을 모욕했습니다. 기사 된 자로서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르담 폴슨 경의 무리와 라돌프 경의 무리가 지나가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때 라돌프 경의 무리가 제이드 기사단의 기사단장 테일러에 대한 악담을 흘린 것을 르담 폴슨 경이 듣고 라돌프 경에게 정정을 요구했던 것이었다.
르담 폴슨 경은 정정을 요구했지만 라돌프 경은 자신이 뱉은 말을 주워담지 않았고, 결국 분노한 폴슨 경은 검을 뽑으며 결투를 신청한 것이었다.
처음 제이드 기사단에 테일러가 기사단장으로 부임했을 때만 하더라도 고위 기사가 아닌 평기사가 기사단장을 맡는다는 사실에, 많은 기사단원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고, 폴슨 경도 그중 한 명이었으나, 같이 사선을 넘나들면서 서로의 유대는 끈끈해졌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제이드 기사단의 기사단원 대부분이 테일러를 존경하고 따르고 있었다.
르담 폴슨 경 또한 왕국을 위해 몸바쳐 일하고 제이드 기사단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기사단장의 모습에 깊은 존경을 표하며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다.
그래서 라돌프 경이 기사단장에 대한 심한 악담을 퍼붓고 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경을 막지 않겠습니다.”
르담 폴슨 경의 설명에 케이트 경은 더 이상 폴슨 경을 막지 않고 옆으로 비켜섰다.
폴슨 경은 검을 들어 올렸고 라돌프 경 또한 자신을 막아서는 기사를 떨쳐내고 검을 들어 올렸다.
잠깐의 시선 교환이 끝나고 둘은 서로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치열한 검투가 오간 끝에 라돌프 경의 팔이 열리고 몸이 드러났다.
그 순간 폴슨 경의 눈이 빛나고 검이 찔러 들어가려는 순간, 라돌프 경을 찌르는 검을 날렵하게 난입하여 쳐내는 그림자가 있었다.
“라스트 준남작?”
폴슨 경은 경악했다.
끼어든 기사는 고위 기사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이었다.
그는 고위 기사이며 겨울바람 기사단의 부단장이었다.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은 아무런 설명 없이 폴슨 경에게 검을 휘둘렀다.
폴슨 경이 막기 위해 검을 들어 올렸으나, 그 움직임은 변칙적이고 치명적이었다.
그런데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경로로 쇄도하는 검을 쳐내는 검이 있었다.
철끼리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의 검이 폴슨 경의 옆을 스쳤다.
“알버트 후안 경?”
“주군의 명예를 위해, 나도 참전하겠다.”
케이트 경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알버트는 서슬 퍼런 살기를 흘리며 검을 세게 쥐었다.
“호오라. 꽤 쓸만한 눈동자를 하고 있군.”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은 조소하며 알버트를 향해 검을 겨누며 다른 손을 단검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단검을 언제든지 던질 수 있도록 살짝 뽑았다.
케이트 경은 물론이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던 제이드 기사단원들과 겨울바람 기사단원들도 검을 뽑거나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두 사람이 천천히 거리를 좁히려는 순간, 날카로운 외침이 모여 있는 모두의 귓전을 때렸다.
“모두 동작 그만!”
가이우스의 마법을 빌려 강화된 테일러의 목소리였다.
우렁찬 목소리의 외침과 함께 등장한 테일러는 모두에게 검을 집어넣을 것을 명령했다.
알버트와 케이트 경, 그리고 르담 폴슨 경을 포함한 제이드 기사단은 즉시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지만,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과 겨울바람 기사단은 테일러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어째서 명령을 따르지 않는 거지?”
검을 집어넣지 않는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을 매섭게 노려보며 테일러가 말했으나,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은 여전히 검을 검집에 집어넣지 않았다.
그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겨울바람 기사단은 고위 기사도 아니고, 사관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통솔의 ‘통’자도 알지 못하는 평기사의 명령은 듣지 않는다.”
라스트 준남작의 말에 테일러는 물론이고, 테일러의 옆에 함께하고 있는 실버레인 경 또한 눈살을 찌푸렸다.
엄연히 테일러는 북부 군단을 통해 정식으로 보충받은 겨울바람 기사단과 북부 늑대 기사단의 기사단원들의 지휘권을 양도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저런 떼를 쓴다는 것은 엄연히 말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으며 기사도에도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다.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에는 이유가 나름 있었다.
테일러의 급진적인 출세에는 존경하는 세력과 불만을 품고 시기하는 세력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했다.
“나는 사관학교를 졸업하지는 않았지만, 중앙에서 파견된 상급 장교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믿지 못하겠다면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겠다.”
테일러의 말에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은 물론이고 라돌프 경과 겨울바람 기사단원들이 대놓고 비웃음을 흘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알버트 후안은 이를 악물며 검을 뽑으려 했다.
그런 그를 테일러는 손을 살짝 들어 올리는 것으로 저지했다.
알버트는 분노했지만 존경하는 테일러의 지시에 저항하지 않고 조금 뽑힌 검을 조용히 검집에 다시 집어넣었다.
“어떻게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지?”
“모의전이다. 이 앞에 평원이 있다. 그곳에서 모의전을 하도록 하지.”
“병과는?”
“보병.”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의 물음에 테일러는 보병이라고 대답했다.
기병으로 모의전을 벌일 경우, 보병으로 모의전을 벌일 경우보다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았다.
자칫 말발굽에 짓밟히기라도 하면 치명적이었다.
“좋다. 받아들이지. 그대가 이긴다면 내 그대를 지휘관으로 받들어주겠다.”
“좋다. 기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라. 여기 있는 모두가 증인이 될 것이다.”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검 손잡이 위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기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라스트 준남작의 맹세에 테일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를 이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합의가 끝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기사단은 평원으로 전진했다.
공정성을 위해 모의전에 참여할 서로의 부대는 동일하게 구성되었다.
기사 30명과 수습 기사 20명으로 구성된 제이드 기사단과 마찬가지로 기사 30명과 수습 기사 20명으로 구성된 겨울바람 기사단 측은 서로를 노려보며 목검을 들어 올렸다.
제이드 기사단의 지휘관은 테일러였고, 겨울바람 기사단의 지휘관은 리시아 라스트 준남작이었다.
그리고 로펜 경과 실버레인 경이 기사의 명예를 걸고 공정한 심판을 보기로 맹세했다.
“모의전을 시작하겠네!”
가이우스가 시작을 알리는 마법의 불꽃을 쏘아 올리자 모의전에 참여한 양측이 일제히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1조, 2조 전진 3조, 4조는 측면을 노리고 5조는 대기.”
시작을 알리는 마법의 불꽃이 하늘을 가로지르기 무섭게 라스트 준남작은 과감한 공격 태세를 취했다.
모의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조건은 간단했다.
상대편의 병력을 모두 제압하거나, 적 지휘관을 제압하는 것.
그것이 승리 조건이었다.
라스트 준남작은 과감한 공격을 택했다.
겨울바람 기사단의 역량을 믿은 것인지 5조를 제외한 전군을 움직여 제이드 기사단의 목을 서서히 조여 들어갔다.
“각 조는 사각 방진을 구축하라. 4조, 5조는 우익을 무너뜨려라.”
테일러는 3개 조로 하여금 방진을 구축하게 하여 자신을 보호하게 하는 한편 가장 정예로 구성된 4조와 5조로 하여금 우익을 무너뜨리게 했다.
4조의 지휘는 케이트 경이 맡고 있었고, 5조의 지휘는 발이 빠르기로 유명한 필리드 경이 맡고 있었다.
“제이드 기사단 1조! 전멸 판정!”
실버레인 경이 두 눈을 빛내며 판정을 내렸다.
전투가 벌어지고 제이드 기사단의 르담 폴슨 경이 지휘하는 1조는 훌륭하게 버티나 싶었지만, 좌측과 정면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전멸 판정을 받았다.
“제기랄!”
폴슨 경은 욕설과 함께 목검을 내팽개치며 기사단원들과 함께 전장을 이탈했고 2조와 3조에게 공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버텨라! 우측이 무너질 때까지 버텨!”
[통솔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아군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5조, 전진!”
테일러의 외침과 함께 통솔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되어 방진이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우측이 위태롭게 흔들리자 라스트 준남작은 5조와 함께 전진했다.
“겨울바람 기사단 4조 전멸 판정.”
묵묵히 전장을 지켜보고 있던 로펜 경이 판정을 내렸다.
본진의 방어를 조금 소홀히 하는 대신에 2개의 조를 투입해 우측을 공격하도록 한 테일러.
그의 결정은 겨울바람 기사단의 4조를 무너뜨리게 했다.
겨울바람 기사단의 4조는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었지만 2개 조의 공격을 버텨내기엔 조금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4조 우회하여 적의 후방을 공격, 교란하라. 5조는 겨울바람 기사단 5조를 저지하라.”
“제이드 기사단 3조 전멸 판정.”
테일러는 즉시 명령을 내렸지만 유감스럽게도 힘겨운 전투를 이어가던 제이드 기사단 3조가 전멸 판정을 받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제이드 기사단의 5조가 겨울바람 기사단의 5조를 막는 사이, 제이드 기사단의 4조는 제이드 기사단의 2조와 함께 겨울바람 기사단의 1조와 2조를 전방과 후방에서 동시에 공격했다.
계속되는 공격에 결국 겨울바람 기사단의 1조와 2조가 연이어 전멸 판정을 받았고, 3조마저 전멸 판정을 받았다.
물론 제이드 기사단의 2조 역시도 전멸 판정을 받았다.
4조가 재빨리 테일러를 구조하지 않았다면 전투를 금지당한 지휘관이 제압당해 패배 판정을 받았을 것이다.
“제이드 기사단 5조. 전멸 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