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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플레이어-80화 (80/150)

리턴 플레이어 80화

31장 하츠 실버레인 후작(3)

그때 테일러는 정말 심각한 부상을 입었었다.

그 부상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스킬을 통해 클라크 위스펠 남작에게도 전달되었는데, 그 부상을 전달받은 위스펠 남작의 마력 갑옷이 무너지고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질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그랬었죠.”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고 일리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실비아가 아니었다면 죽었을 거예요.”

일리아의 말에 테일러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일리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당시 전투에서 클라크 위스펠 남작에 의해 테일러가 입은 상처는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였다.

그랬기 때문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스킬로 같은 피해를 당한 클라크 위스펠 남작이 크게 동요했던 것이었다.

잘린 팔도 붙인다는 실비아의 신성 기도문이 아니었다면 클라크 위스펠 남작뿐만 아니라 테일러 또한 쓰러져 차갑게 식어갔을 것이다.

일리아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지금도 그때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찔했다.

끔찍하게 사랑하는 테일러가 치명적인 공격을 당했을 때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에게 달려가려 했었다.

레드가 막지 않았다면 정말 그렇게 하다가 지나가는 그림자 기사단원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우리 함께한 시간은 짧지 않지만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은 별로 없죠?”

“그렇습니다.”

일리아의 말에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일리아 말고도 바쁘게 살아오느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초기부터 함께 해 온 가이우스와 알버트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지만 말이다.

“테일러. 당신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건가요?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강하게 만들고 움직이게 하는 것인가요?”

“프랑츠 제국의 위협으로부터 사우스 왕국을 수호하기 위해 살아갈 뿐입니다. 더 이상 비극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교과서 같은 대답이네요.”

그렇게 말하며 일리아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있잖아요. 테일러.”

“말씀하십시오. 듣고 있습니다.”

일리아가 두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저는 가끔 꿈을 꿔요.”

“무슨 꿈을 말입니까?”

테일러의 눈이 빛났다.

하이 엘프는 신비한 존재였고 가끔 미래를 예지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꿈에서 말이죠. 테일러 당신은 아주 높은 기사님이 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큰 전투가 벌어지죠. 당신은 노력하지만 결국 포위되고 말아요. 하지만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테일러, 당신은 몸을 던지죠. 그리고 결국 쓰러지고 말아요.”

“의미 있는 죽음이군요.”

테일러는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를 위해 죽는다.

만약 죽는다면 그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리아의 생각은 달랐다.

“있잖아요. 테일러.”

일리아의 가늘고 하얀 손이 테일러의 손을 덮었다.

깜짝 놀란 테일러가 손을 빼려고 했지만 일리아의 힘을 하이 엘프답게 굉장했다.

하이 엘프지만 여자를 상대로 전력을 다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테일러는 손을 빼는 것을 포기했다.

“저는 당신이 죽는 게 싫어요.”

진심이 담긴 일리아의 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테일러는 망설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굳게 닫혀 있는 입을 떼려는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기척을 느낀 테일러와 일리아의 시선이 인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직 10대의 앳된 티를 벗지 못한 하인즈 실버레인 경이 가벼운 무장을 한 채 걸어오고 있었다.

“흠! 제가 방해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저희도 마침 이야기가 끝난 순간이었습니다.”

테일러는 미소를 그린 채 대답했고 일리아는 방해를 받은 것이 조금 분한 것인지 실버레인 경을 살짝 흘겨본 후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테일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한데, 무슨 일이십니까?”

하인즈 실버레인 경는 기사였지만, 북부 군단 사령관 하츠 실버레인 후작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테일러는 우선 말을 높였다.

“실은 대련을 하고 싶습니다.”

“대련 말입니까?”

테일러의 물음에 실버레인 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고위 기사와 한 번 순수한 검술을 겨뤄 보고 싶었습니다.”

“가문의 고위 기사가 많지 않습니까?”

테일러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실버레인 가문은 후작 가문이면서 북부 군단의 사령탑이니, 최소 30명 이상의 고위 기사를 거느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북부 군단 소속의 고위 기사들 역시 수시로 영주성에 출입했을 게 분명했다.

“가문이나 북부 군단의 고위 기사들은 저와 대련을 할 때 진지하게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때문일 겁니다. 쑥스럽지만 아버지는 저희 형제를 아끼는 편이라서 말입니다.”

하인즈 실버레인 경의 대답에 테일러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의 설명으로 상황을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사령관의 아들이 대련하자고 달려들면 제대로 상대하기가 곤란했을 것이다.

특히나 사령관이 아들을 아끼는 성격이라면 곤란할 것이다.

대련은 목검을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번질 수 있었고 그렇게 된다면 사령관은 대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해준다고 하더라도 소중한 아들을 다치게 한 고위 기사를 마냥 좋아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대련 상대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실버레인 경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하인즈 실버레인 경의 안내를 받아 훈련장의 구석으로 향한 테일러는 목검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수습 기사가 건넨 가죽 갑옷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입었다.

“치사하게 마력검을 쓰시면 안 됩니다.”

대련에 마력검을 쓰는 미친놈은 없겠지만 실버레인 경은 농담을 던지며 여유롭게 테일러를 향해 거리를 좁혔다.

명문가의 자제답게 훌륭한 보법이었다.

보법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는 목검을 휘둘러 테일러의 허리를 노렸다.

빠르지만 정직한 공격.

그래서 테일러는 쉽게 파악했다고 생각하고 목검을 들어 올려 막으려 했지만 그 순간 실버레인 경의 목검이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목검을 일부 회수하는 척했다가 다시 심장을 향해 내찌른 것이었다.

“허!”

테일러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재빨리 목검을 회수해 실버레인 경의 목검을 쳐냈다.

실버레인 경은 목검을 회수하여 앞으로 몸을 구르며 테일러에게 접근하여 아래에서 목검을 찔렀다.

테일러는 옆으로 몸을 빼내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하인즈 실버레인 경의 검술은 치명적이고 날카로웠다.

단순히 검술만 놓고 볼 때 하인즈 실버레인 경은 고위 기사 수준이었다.

마력검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하면 고위 기사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상당히 치명적이고 날카로운 검술을 구사하시는군요. 실버레인 경.”

실버레인 경의 머리를 내리고 목검을 내려치며 말하는 테일러.

그의 공격을 실버레인 경은 가뿐하게 막아내고 과감하게 테일러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테일러의 몸에 파고든 그는 목검을 부드럽게 빼내며 테일러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테일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뒤로 재빠르게 물러서면서 발로 실버레인 경을 걸어 넘어뜨렸다.

공격에 신경 쓰느라 테일러의 발을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그는 테일러의 발에 걸려 쉽게 넘어지고 말았다.

쓰러진 실버레인 경을 향해 테일러는 목검을 찔렀지만, 그는 뒤로 구르며 일어서 공격을 피해내고 테일러를 향해 목검을 찔렀다.

테일러는 자신의 목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목검을 쳐낸 뒤 다시 공격을 가했다.

치고 쳐내는 지루한 공방전이 3분 정도 이어진 끝에 테일러는 실버레인 경의 빈틈을 발견하고 복부를 목검으로 가격하는 것에 성공했다.

“크악!”

짧은 비명과 함께 실버레인 경이 목검을 놓치고 쓰러졌다.

대련이 격렬했던 탓에 힘 조절에 실패하여 제법 강한 힘이 실려 있었던 공격을 가죽 갑옷을 입었긴 하지만 복부로 받아낸 하인즈 실버레인 경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괜찮으십니까!”

호위로 보이는 기사가 달려갔고, 테일러도 달려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후우! 괜찮습니다. 소문대로 굉장한 실력이십니다.”

하인즈 실버레인 경은 테일러의 검술 실력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현재 테일러의 검술 스킬은 고위 기사 검술로 그 레벨이 14였으며, 테일러 자신의 레벨만 해도 59로 결코 낮지 않은 레벨이었다.

플레이어 최대 레벨이 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 테일러가 보여주는 강함이 그 레벨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소문대로? 사우스 왕국에 저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북부까지도 경의 명성이 상당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고위 기사 작위에 도전하여 작위를 받아낼 수 있지만 바빠서 그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테일러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사우스 왕국에서 테일러 파티에 대한 것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의심을 할 정도로 테일러와 그의 파티원들에 대한 정보와 소문은 많이 돌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루머도 상당히 많았지만, 사실인 것도 적지 않게 많았다.

그 소문 중에 대표적인 소문은 테일러가 이미 고위 기사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간이 없어서 고위 기사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테일러의 실력은 꽤 강한 고위 기사 수준이었고, 시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고위 기사 작위는 귀족이면 누구나 하사할 수 있는, 넘치고 넘치는 기사 작위와 달리 꼭 시험을 통과해야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국왕이라고 해도 테일러에게 고위 기사 작위를 시험 없이 하사할 수는 없었다.

“그렇군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테일러의 대답에 실버레인 경은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입을 열었다.

“저와 고전하신 것 때문에 마음이 조금 상하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저와 대련을 해서 이긴 고위 기사는 많이 없습니다.”

“하?”

조금 전과는 말이 달랐다.

테일러가 항의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자 실버레인 경은 머리를 긁적였다.

“저와 대련을 한 고위 기사들은 모두 북부 군단의 고위 기사거나, 저희 가문의 고위 기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무르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저를 아낀다고는 하지만 대련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십니다.”

사실 고위 기사 사냥꾼이라는 별명으로 하인즈 실버레인 경은 실버레인 후작령에서 아주 유명한 기사였다.

테일러가 몰랐을 뿐이었다.

둘은 훈련장의 벤치로 이동했다.

그곳에 힘없이 주저앉은 테일러를 바라보며 실버레인 경은 환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테일러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실버레인 경은 이제 테일러와 제이드 기사단이 병력을 충원받은 뒤 그랑키아 숲으로 향하면 다시 만날 확률이 적은 상대였다.

하지만 그것은 테일러의 착각이었다.

“저도 이번 원정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고위 기사 사냥꾼의 합류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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