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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플레이어-75화 (75/150)

리턴 플레이어 75화

29장 데네브 계획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의 심복이며 검은 밤의 기사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그림자 기사단의 그림자 기사 로드 빌런테일 자작은 클라크 위스펠 남작의 임무 성공 사실을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에게 신속하게 전달했다.

프랑츠 제국 내에서의 위치가 조금 흔들리고 있던 그림자 대공에게 있어서 클라크 위스펠 남작의 승전은 큰 힘이 되어주었다.

덕분에 고위 귀족 회의에서 발언권이 조금 더 세진 그림자 대공은 자신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하려 전부터 준비했던 어떤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계획의 실행을 위해 로드 빌런테일 자작을 그림자 궁전으로 불러들였다.

그림자 궁전.

그 이름에 걸맞게 궁전 내부는 검은 돌로 이루어져 있었고, 희미한 빛을 내뿜어내는 마법등이 간신히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그 어둠을 가로질러 검은 전신 판금 갑옷을 입은 로드 빌런테일 자작이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의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 앞에 도착하자 미리 지시를 받은 그림자 기사 두 명이 양옆에서 집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로드 빌런테일 자작은 그림자 대공의 집무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는 검은 돌로 만들어진 불편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있는 그림자 대공의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가슴에 오른팔을 올렸다.

“주군! 부르셨습니까?”

“잘 왔다. 빌런테일 자작. 일어서도 좋다.”

로드 빌런테일 자작이 몸을 일으키자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는 보고서를 천천히 읽어내려가며 입을 열었다.

“최근 긍정적인 소식이 이어서 보고되고 있군. 빌런테일 자작. 남부 하이크 왕국의 일을 잘 해결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로드 빌런테일 자작은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는 알 하이자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테일러라는 별난 놈 하나 때문에 짜증이 폭발했던 얼마 전과는 다르게, 지금 알 하이자르는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로드 빌런테일 자작과 하야드 나이트쉐도우 후작이 반란을 일으킨 남부 하이크 왕국의 일을 잘 해결해나가고 있었고, 사우스 왕국에 보낸 클라크 위스펠 남작 역시도 오랜만에 승전보를 울렸다.

남부 하이크 왕국의 반란을 훌륭하게 진압하고 사우스 왕국에서 승전보를 울린 덕분에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는 고위 귀족 회의에서 제법 큰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베르헨 공작에게 줄을 대려고 했던 그림자 대공 휘하의 귀족들도 다수 돌아오게 되었다.

박쥐 같은 녀석들에게 충성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중요한 일에 쓸 수는 없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더 나았다.

버리는 말로 쓸 수도 있고 도움이 영 안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긍정적인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니 그의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빌런테일 자작이 활약해 준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었어.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최근 그림자 기사단의 활약으로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에게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아직 부족했다.

여유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베르헨 공작이 다시 그를 공격할 것이었다.

공격 당하기 전에 공격을 해서 베르헨 공작의 세력을 최대한 줄여야만 했다.

그래야 프랑츠 제국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헨 공작이 언제 다시 공격할지 모른다. 공격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해서 그의 세력을 줄여야 해.”

베르헨 공작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세력이 더 필요했다.

베르헨 공작은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 또한 만만치 않은 세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베르헨 공작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 수준이었다.

지금의 세력으로는 정치적으로는 물론이고 군사적으로도 베르헨 공작을 압박할 수 없었다.

세력을 늘려야만 했고 그림자 대공은 세력을 늘리기 위해 준비해온 계획을 일찍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하면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주군!”

로드 빌런테일 자작은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알 하이자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뱀파이어 대공 데네브를 알고 있나?”

“예. 물론 알고 있습니다. 1차 사우스 왕국 원정 때 봉인된 뱀파이어 대공 아닙니까?”

알 하이자르의 입에서 뱀파이어 대공의 이름이 나왔다.

그 이름은 로드 빌런테일 자작에게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프랑츠 제국은 약 100년 전 720년에 앤타빌 프랑츠 황제가 직접 15만 대군을 이끌고 그랑키아 숲을 넘어 사우스 왕국을 공격하려고 시도했었다.

그랑키아 숲 몬스터 군단과 전면전이 터지는 바람에 3만의 병력일 잃고 회군하게 되었지만 이 전쟁에서 몬스터 군단의 간부 중 한 명인 뱀파이어 대공 데네브가 봉인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 뱀파이어 대공 데네브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열쇠를 알 하이자르가 가지고 있었다.

그가 이 열쇠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앤타빌 프랑츠 황제의 명령을 받아 데네브를 봉인했던 부대가 그림자 기사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림자 기사단은 황제의 충실한 친위대였고 그들은 황제의 명령을 따라 엄청난 피해를 보면서도 끝내 뱀파이어 대공 데네브를 봉인했다.

“데네브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열쇠가 내게 있다. 그리고 몬스터를 노예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을 아는 고위 마법사가 내 휘하에 있지.”

“하지만 주군. 저는 마법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거의 없지만, 대공이나 되는 뱀파이어를 노예로 부릴 수 있는 마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로드 빌런테일 자작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몬스터를 노예로 부리는 마법은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많은 마법사가 이 마법을 이용해 몬스터를 노예로 부렸지만, 이 마법이 통하는 몬스터는 약한 몬스터로 제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방법이 있지.”

알 하이자르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이라면?”

“봉인을 아주 약간만 푼 상태에서 마법을 시전하면 된다. 노예 각인은 한 번 발동되면 영원하니 각인이 완성되면 봉인을 완전히 해제하면 되는 것이지.”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로드 빌런테일 자작은 감탄했고 그런 그를 바라보며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는 조용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 * *

“내일 하루만 제 호위 기사가 되어주세요.”

왕성에 마련된 테일러의 작은 집무실에 찾아온 실비아가 대뜸 내뱉은 말이었다.

갑작스러운 실비아의 습격에 집무실의 책상에 앉아 새로 합류한 신입 기사단원들의 신상을 살펴보고 있던 테일러는 조금 당황했다.

그는 방패를 옆에 놓고 집무실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알폰스를 향해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마구 보냈다.

그의 부담스러운 시선 공격에 알폰스는 두통이 느껴지는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만, 테일러. 제가 내일 신성교의 일로 시리스 남작령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폰스가 내일 신성교의 일로 시리스 남작령으로 잠깐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과 호위 기사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테일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실은, 실비아가 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쇼핑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한데, 그녀를 혼자 보내기엔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

두통이라는 이름의 군대가 테일러를 습격했다.

알폰스의 설명을 들어보니 대충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알폰스. 그리고 실비아. 정말 죄송합니다만, 호위 기사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에?”

실비아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열고 괴상한 소리를 만들어냈고 알폰스는 이런 상황을 예상한 것인지 비교적 평온한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다른 기사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저는 정말 바빠서 힘들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실비아를 호위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광산 마을에서 벌어진 전투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엘런데일스 후작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다시 써오라고 했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광산 마을 전투에서 전사한 기사단원들을 대신할 신입들의 신상도 검토해봐야 했다.

“다른 기사는 안 돼요.”

“어째서입니까?”

테일러의 물음에 실비아는 얼굴을 살짝 붉힌 채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렸다.

“다, 당신이 아니면 안 되니까.”

“하?”

실비아의 말에 테일러의 정신은 아득히 멀고 복잡한 미로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렸다.

대체 의미를 알 수가 없는 말이었다.

그런 테일러의 반응에 실비아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차, 착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당신만큼 강한 기사가 없어서 그런 거예요!”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테일러와 비슷하거나 더 강한 기사라면 로펜 경도 있었고 살라다르 경도 있었다.

쟈크 경도 테일러 못지 않게 강했다.

“실비아가 사실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근접 호위는 싫다고 합니다.”

알폰스가 보충 설명을 해주었고, 덕분에 테일러는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쇼핑을 조금 미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수도는 안전하니까 혼자 쇼핑하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수도에서 공격당한 게 몇 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비아는 그림자 기사단의 암살 목록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한 번 암살을 막았다고 해서 방심할 수 없었다.

“그럼 알버트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후안 경도 싫어요!”

실비아는 고함을 빽 지른 뒤 뛰어나가며 집무실 문을 쾅 닫았고 알폰스는 테일러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뒤 실비아를 따라 집무실을 떠났다.

두 사람이 집무실을 떠나고 테일러는 케이트 경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기사단장.”

“케이트 경. 바쁜 와중에 정말 미안한데, 실비아 그레이의 숙소 근처에 수습 기사든, 평기사든 아무나 2명만 배치해주겠어?”

실비아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테일러는 실비아의 성격을 대충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십중팔구 혼자서라도 수도를 돌아다닐 확률이 높았다.

그것을 막기 위해선 기사단원을 배치하는 수밖에 없다고 테일러는 생각했다.

테일러는 말을 이어가기 위해 입을 열었다.

“기사단원들에게 실비아가 절대로 외출하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해.”

“알겠습니다.”

케이트 경이 고개를 숙인 뒤 집무실을 나섰고 테일러는 골치 아픈 표정으로 다시 서류를 들어 올렸다.

* * *

“죄송합니다.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다음날 테일러의 예상대로 실비아는 몰래 왕성을 벗어나기 위해 방을 나섰지만 케이트 경이 뽑아서 배치한 기사단원 2명이 그녀를 막아섰다.

길이 막혔지만, 실비아는 당황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5층.

5층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뛰어내리면서 그녀는 신성 기도문을 외워 낙하 속도를 늦췄고, 아주 느린 속도로 정원에 착륙(?)한 실비아는 주변을 살피며 왕성을 벗어났다.

왕성의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은 실비아에 대한 지시를 하달받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를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고 보내주었다.

“고작 기사 2명으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히히.”

실비아는 철없는 악동처럼 웃으며 상점가로 달렸다.

오랜만에 찾아온 수도를 만끽하며 쇼핑을 하는 실비아.

오빠 알폰스 그레이가 없어서 그런지 오늘은 평소보다 많은 남자들이 꼬였다.

그들과 적당히 놀아준 후 헤어져 오는 길.

그녀는 불량배들과 마주치고 말았다.

“어이. 아가씨. 혹시 길을 잃은 건가? 아까부터 자주 보이던데.”

얼굴에 문신을 한 불량배가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다.

불량배의 수는 3명이었는데, 모두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실비아는 마른 침을 삼켰다.

알폰스가 함께했을 때처럼 빨리 왕성으로 돌아간다고 지름길을 이용한 게 화근이었다.

평소에는 오빠인 알폰스 그레이가 완전 무장을 한 채 함께해서 불량배들과 마주칠 일이 없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 그녀는 혼자였고 불량배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으.”

불량배들은 실비아와의 거리를 점점 좁혀왔고 실비아는 이를 악물었다.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내성과 다르게, 외성의 상점가에는 불량배가 소수 존재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성기사가 배우는 신성 기도문과 사제가 배우는 신성 기도문을 그 용도가 달랐다.

성기사가 배우는 신성 기도문이 사악한 존재 이외의 존재에게도 해를 가할 수 있도록 특화되어 있지만 사제가 배우는 신성 기도문은 사악한 존재 외에는 어떠한 해도 가할 수 없었다.

오직 축복과 회복에 집중되어 있었다.

“얘들아. 오늘은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움직임을 멈추도록. 불응하면 목이 날아갈 것이다.”

불량배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더러운 손을 실비아에게 가져가려는 순간이었다.

잔뜩 날이 선 목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고, 실비아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상복 차림의 테일러를 볼 수 있었다.

근무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여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쉬고 있을 때 문득 실비아의 생각이 나서 그녀가 묵는 숙소를 찾아갔던 테일러는 그녀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혹여 무슨 일이 생겼을까 조마조마하며 서둘러 상점가로 달려온 것이었다.

“하! 새파랗게 어린 꼬맹이가 칼 하나 찼다고 아주 무서운 게 없는 모양이다?”

테일러의 옷차림을 본 불량배는 그를 마구 비웃었다.

테일러의 옷은 깔끔하긴 했지만 검을 제외하면 무장을 전혀 갖추지 않았다.

그래서 불량배들은 테일러가 단순히 검을 구입한 도시 청년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불량배들의 반응을 조용히 지켜본 테일러는 날카로운 눈동자로 불량배 3명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 경고다. 조용히 물러가지 않으면 실력을 보여주겠다.”

“그래! 어디 그 실력을 한 번 보여 보실까?”

불량배 두목이 검을 뽑아들었고, 그 순간이었다.

실비아가 눈을 한 번 깜빡할 사이에, 무서운 속도로 불량배 두목에게 파고든 테일러의 주먹이 불량배 두목의 복부를 강타했다.

“커헉!”

불량배 두목이 검을 떨어뜨리며 비틀거렸고 불량배 한 명은 깜짝 놀라 도주했고 다른 한 명은 두목을 향한 충성심이 깊은 것인지 검을 뽑아들고 테일러에게 대적했다.

테일러는 발을 걸어 불량배 두목을 넘어뜨린 뒤 가슴을 발로 밟아 갈비뼈를 박살 냈다.

잘못하면 생명의 불꽃이 꺼질 수도 있는 공격이었지만 실비아를 건드렸다는 사실에 분노한 테일러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으, 으아아아!”

불량배가 테일러를 향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지만, 그 움직임은 너무나 엉성했다.

레벨도 높고 스킬도 많은 테일러의 눈에는 어린아이의 움직임처럼 단순하게 느껴졌다.

테일러는 검을 살짝 피하면서 뒷목을 가격해 그를 기절시켰다.

“정리되었군.”

쓰러진 두 명의 불량배의 상태를 확인한 테일러는 실비아에게 다가갔다.

“저기 갈비뼈가 부러진 녀석에게 신성 기도문을 부탁합니다. 실비아. 죽으면 곤란하니까요.”

상황이 정리되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머리가 차갑게 식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갈비뼈가 장기를 찌르면 상당히 위험했기 때문에 응급처치가 필요했다.

테일러는 왕국군 신분이었기 때문에 불량배라고 해도 왕국의 국민을 죽이는 사태가 발생하면 곤란했다.

“시, 싫어요.”

실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성녀답지 않은 성격의 성녀.

자신에게 해를 가하려 했던 남자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지금 품고 있었다.

테일러는 한숨을 쉬며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제 얼굴을 봐서라도 한 번만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실비아를 빤히 바라보는 테일러.

실비아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아, 알았어요. 하지만 딱히 당신을 위한 것은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작은 소리로 불평을 늘어 놓으며 신성 기도문을 외워 갈비뼈가 부러진 불량배 두목의 부상을 치료했다.

“끝났어요.”

응급처치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졌고 실비아는 이것을 테일러에게 보고했다.

테일러는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입을 열었다.

“그럼 왕성으로 돌아갈까요? 레이디.”

“네…….”

* * *

얼마 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테일러를 급히 호출했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호출을 받은 테일러는 알버트와 함께 다급히 엘런데일스 후작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

집무실에 도착한 테일러와 알버트를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 퀭한 얼굴로 반겼다.

“괜찮으십니까?”

알버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엘런데일스 후작은 퀭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나는 괜찮네. 그보다 앉게나.”

엘런데일스 후작의 권유에 테일러와 알버트는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이 의자에 앉자 대기하고 있던 시녀가 차와 과자를 내어 왔다.

엘런데일스 후작은 마시고 있던 커피가 담긴 잔을 들고 두 사람 앞에 앉았다.

잔을 들고 있지 않은 다른 한 손에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서류가 하나 들려 있었다.

“흠. 깊은 피로는 커피 한 잔으로 쫓아내기는 무리인 것 같군.”

그렇게 말하며 엘런데일스 후작은 서류를 테일러에게 건넸다.

엘런데일스 후작으로부터 서류를 받아든 테일러는 천천히 서류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데네브 계획?”

데네브 계획이라는 생소한 계획에 대해 적혀 있었다.

테일러는 그것에 대해 자세히 읽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커피를 다 마신 후 시녀에게 잔을 채워 달라고 요청한 뒤 테일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이라네.”

엘런데일스 후작의 대답에 테일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데네브 계획.

봉인되어 잠들어 있는 뱀파이어 대공 데네브의 노예로 만든 뒤 봉인을 해제시킨다는 엄청난 계획.

“믿기 힘들지만, 그림자 기사단이 지금 그 계획을 행동에 옮기고 있지.”

“그림자 기사단은 남부 하이크 왕국의 일로 인원이 부족한 것 아니었습니까?”

테일러가 알기로 그림자 기사단은 남부 하이크 왕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대거 투입되어 쉽게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전 광산 마을에서 증원과 조우하여 전투를 벌였다.

어떤 정보를 믿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남부 하이크 왕국은 사실상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어. 그림자 기사단은 상당히 여유가 생겼다네.”

“그렇군요.”

“그에 비해 우리는 여유가 없는 상황이지. 광산 마을 전투 이후 2차 증원이 왕국에 침입했다는 북부 군단의 보고가 들어왔어. 남부 레인저 여단과 왕국군 기사단이 분발하고 있지만, 데네브 계획을 막을 여력이 없네.”

엘런데일스 후작은 어두운 얼굴로 시녀가 새로 따른 커피를 마셨다.

테일러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짐작한 것이다.

“데네브 계획을 막기 위한 병력은 저희 제이드 기사단밖에 없다는 것이군요.”

엘런데일스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테일러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그린 채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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