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71화
27장 마병기 ‘전쟁의 나팔’(2)
테일러의 의견에 두 명의 고위 기사와 한 명의 고위 마법사가 동의했다.
가이우스의 늦은 저녁 식사가 끝나고 종업원이 빈 접시를 치우고 가자 로펜 경이 들어와 앉았고, 그 뒤 10분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르자 일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약속 시간 10분 정도 후에 알폰스와 실비아가 나타나 의자에 앉았다.
모두가 모이자 테일러는 요리와 술을 주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종업원이 요리가 담긴 접시를 식탁 위에 가득 올리고 술잔과 술병을 가져왔다.
술잔에 술이 가득 채워지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부딪쳤다.
“아니, 이런…….”
기세 좋게 술을 들이켠 테일러는 깜짝 놀라 술잔을 입에서 떼어 냈다.
사우스 럼주라고 메뉴판에 적혀 있길래 보통의 경우처럼 물을 섞은 사우스 럼주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물을 섞지 않은 아주 독한 사우스 럼주 그 자체였다.
독한 알코올의 습격에 목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며 테일러는 눈동자를 움직여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실비아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알폰스는 조금 독하다는 얼굴이었으며 가이우스는 독하다고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술잔을 비웠다.
3명의 고위 기사는 이런 독한 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술잔을 비웠다.
일리아도 술잔을 비웠지만 한 잔으로 크게 취한 듯 얼굴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테일러를 빤히 바라보며 미소를 그린 채 웃음소리를 흘렸다.
“하하하하하! 한 잔으로 그 꼴이 돼서 어쩌자는 것인가? 일리아?”
술에 취한 일리아를 가이우스가 큰 소리로 웃으며 비웃었다.
“가이우스. 많이 취한 것 같습니다만.”
알폰스가 안주로 나온 닭고기를 포크로 찍어 입가로 가져가 씹으며 말했다.
알폰스의 말대로 가이우스도 일리아를 비웃을 상황이 아니었다.
가이우스는 술에 약하면서도 고집이 세고 오기가 있어 술잔을 끝까지 비웠고, 결국 크게 취해버리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고위 마법사 꼬마가 많이 취했군.”
“뭐어어? 아니라네! 난 취하지 않았다네!”
살라다르 경의 말을 가이우스는 고개를 거세게 가로 저으며 부정했다.
“제가 그를 숙소로 데려가겠습니다. 더 이상 술을 먹이면 안 될 것 같군요.”
쟈크 경이 직접 나섰다.
“기사단장께서는 하이 엘프 아가씨를 숙소로 모셔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가이우스를 부축하며 쟈크 경은 일리아를 지목했다.
쟈크 경의 말을 듣고 테일러는 고개를 돌려 일리아를 바라보았다.
일리아도 가이우스 못지않게 취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테일러는 한숨과 함께 금발 머리를 쓸어넘기고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일리아. 숙소로 가시죠.”
“히히. 테일러다.”
일리아는 환하게 웃으며 테일러의 품에 안겨들었다.
주점에 오기 전에 갑옷을 벗었기 때문에 그녀는 테일러의 품에 그대로 뛰어들 수 있었다.
테일러의 넓은 가슴에 파고든 그녀는 얼굴을 마구 비볐다.
“오오. 보기 좋습니다. 기사단장.”
살라다르 경이 테일러를 놀렸다.
쟈크 경과 가이우스는 사라지고 없고 로펜 경은 뭐가 재밌는지 말없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알폰스는 안주를 집어 먹고 있었고 실비아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시선으로 일리아와 테일러를 번갈아 힐끔거렸다.
“우웅. 테일러어.”
“아무래도 일리아를 숙소에 데려다 주고 와야겠습니다.”
일리아는 도저히 술자리에 앉아 있을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테일러는 그녀를 숙소로 데려가기 위해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다른 짓 하지 말고 바로 오셔야 합니다.”
“그게 무슨…….”
살라다르 경이 장난끼 넘치는 목소리로 놀렸다.
처음 그 말뜻을 이해 못 했던 테일러는 뒤늦게 그의 말을 이해하고 얼굴을 붉혔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야!”
그렇게 대답한 후 일리아를 부축하여 숙소로 향했다.
술에 취한 일리아는 어미 품을 찾아 파고드는 어린 동물처럼 테일러의 품속에 계속 파고들었다.
덕분에 걷는 게 힘들었지만, 곧 여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관에서도 간단한 식사와 술은 팔고 있었기 때문에 주점이 가득 차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여행자나 대장장이, 광부 등이 1층에서 술과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오우. 기사단장님이 드디어 사고를 치셨군.”
술에 잔뜩 취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일리아를 부축하고 가다 보니 몸이 자연스럽게 붙을 수밖에 없었다.
하이 엘프와 이렇게 가까이 붙어서 걷는 것은 모든 남성의 부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광경이었고, 일을 끝내고 여관 1층에서 얌전히 술과 음식을 즐기고 있던 광부 한 명이 테일러를 놀렸다.
“장난칠 시간 없으니, 먼저 올라가겠어.”
그렇게 대답하고 계단을 오르다 보니 가이우스를 데려다 놓고 내려오는 쟈크 경과 마주쳤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 그래.”
쟈크 경의 말에 테일러는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대답하며 일리아를 방으로 데려갔다.
열쇠로 방문을 열고 일리아를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나가려는 순간, 일리아가 테일러를 침대로 끌어들였다.
일리아는 여성이었지만 하이 엘프였다.
그 힘은 인간 여성과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고, 레벨이 높아 인간을 초월한 신체 조건을 가진 테일러조차 기습으로 당해 미처 대응하지 못한 채 침대로 끌려 들어갔다.
일리아의 가슴에 안긴 테일러는 당황하여 얼굴을 붉힌 채 서둘러 있는 힘을 다 써서 빠져나왔지만,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일리아는 자신의 만행을 깨닫지도 못한 채 어느새 깊은 잠의 늪에 빠져 있었고 테일러는 그녀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흔들며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주점으로 돌아갔다.
테일러가 일리아를 숙소에 데려다 주고 올 사이에 적지 않은 수의 술병을 비웠는지 제법 많은 수의 술병이 식탁 위에 있었다.
테일러가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달려와 빈 술병을 회수해갔다.
쟈크 경이 테일러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웠고, 술자리는 늦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새벽에 숙소로 돌아온 테일러는 4시간도 쉬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으. 머리가 아프군.”
물에 타지 않은 사우스 럼주를 미친 듯이 들이켜서 그런지 전투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깨질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깨질 것 같은 머리.
비명을 지르는 위장.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방을 나서니 가이우스가 창백한 얼굴로 스태프를 노인의 지팡이처럼 사용하며 힘겹게 열린 문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테, 테일러. 살려주게나.”
가이우스는 나이는 어렸지만, 술에 익숙지 않은 몸에 독한 사우스 럼주를 퍼부은 결과로 고통받고 있었다.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인지 얼굴이 창백하고 입술을 덜덜 떨고 있었다.
테일러는 말없이 그를 여관의 1층으로 데리고 내려가 따뜻한 스프를 먹였다.
그리고 테일러 자신도 따뜻한 스프를 먹었다.
따뜻한 스프를 위장에 넣으니 비명을 지르던 위장도 조금 조용해졌다.
아직까지 머리가 계속 아파왔지만 위장이 비명을 지르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가이우스도 속이 편안해졌는지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가이우스. 알코올을 몰아내는 마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번에 사용하시는 것 같았는데…….”
“취기를 몰아낼 순 있지만, 숙취를 없애는 것은 무리네. 성녀의 축복이라면 모를까. 물론 비슷한 마법이 있긴 하지만 나는 배우지 않았어.”
가이우스의 설명에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나저나 테일러.”
스프를 다 비우고 어느 정도 상태 이상을 회복한 가이우스는 조금 전에 비하면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테일러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자 가이우스는 말을 이어가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자네도 마병기를 하나 가져보는 게 어떤가?”
“마병기 말입니까?”
가이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마병기. 이곳이 대장장이 마을 아닌가? 여기서 마법 부여를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무기를 만들어낸다면 내가 스승에게 마법 부여를 부탁해보겠네. 얼마 전에 자네가 쓰던 검이 부러졌지 않는가? 지금 쓰는 검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네.”
“아무래도 그렇지요.”
가이우스의 말에 테일러는 긍정했다.
전에 쓰던 검보다 지금 쓰는 검은 훨씬 좋지 않았다.
마병기.
무기를 다루는 전사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것이다.
테일러도 마병기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마침 이곳은 마병기를 제작할 수 있는 대장장이 라모르 르와이얄이 있는 곳이었다.
그에게 금화를 주고 부탁을 한다면 마병기를 만들기 위해 마법 부여를 견딜 수 있는 검을 제작해 줄지도 몰랐다.
마병기를 제작하기 위해선 검에 마법 부여를 해야 했는데, 검이 뛰어나지 못하면 마법 부여 과정에서 박살 나게 된다.
그 때문에 훌륭한 대장장이가 아니면 마법 부여를 견딜 만한 검을 만들 수 없었다.
라모르 르와이얄은 훌륭한 대장장이였다.
마법 부여를 견딜 수 있는 검을 제작할 수 있었다.
다만, 성격이 조금 별나서 테일러에게 검을 제작해 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참에 마병기 하나 만들게. 우리의 적은 강력하네. 마병기가 필요해. 알폰스도 하나 들고 다니는데, 리더도 하나 들고 다녀야지.”
“알폰스가 마병기의 주인이라는 말입니까?”
테일러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가이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이름은 모르지만, 그의 방패가 마병기라네.”
테일러는 몰랐지만 고위 마법사인 가이우스는 알폰스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가 든 방패가 평범한 방패가 아닌 마병기라는 것을 눈치챘었다.
알폰스가 가지고 있는 방패는 빛의 철벽이라는 방패로 신성력을 극대화해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단순한 효과였지만 신성력을 극대화시키는 수준이 보통이 아니라서 제법 유용한 마병기였다.
“라모르 르와이얄을 찾아가보겠습니다.”
테일러는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처리해야 할 일들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기염을 토해내고 즉시 라모르 르와이얄을 찾으러 길드 사무소 안의 길드 마스터 집무실로 향했다.
노크를 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약해 보이는 인상의 라모르 르와이얄이 서류 정리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기사단장.”
“무기 제작을 의뢰하고 싶습니다.”
서류 정리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던 라모르 르와이얄의 손이 멈췄다.
그는 고개를 들고 테일러를 바라 보았다.
“좋아. 만들어주겠네.”
“네?”
생각보다 간단하게 승낙하자 테일러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라모르 르와이얄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단, 재료는 모두 자네 힘으로 구해오게나.”
“제 힘으로 말입니까?”
라모르 르와이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기사단의 힘을 빌려서도 안 돼. 금화를 써도 안 되네. 필요한 광석을 직접 캐라는 말이지.”
“하지만 저는 기사단 업무가 있습니다.”
“남는 시간이 있지 않은가? 그 시간에 광산으로 가게. 내가 장비는 빌려주겠네. 낄낄낄.”
테일러를 놀리듯 라모르 르와이얄은 웃었고 테일러는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기사단 업무가 있지만 남는 시간이 없지는 않았다.
아니, 최근 전투가 없는 탓에 남는 시간은 제법 많은 편이었다.
“알겠습니다. 조만간에 재료를 들고 다시 오겠습니다.”
“낄낄낄. 그래. 수고하게.”
테일러는 단호한 어조로 말한 뒤, 문을 열고 집무실을 나섰고, 그 뒤를 보며 라모르 르와이얄이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 *
바깥은 찬 바람이 매섭게 불어 추운 날씨였지만 광산은 상당히 더웠다.
두꺼운 군복과 튼튼한 갑옷을 벗고 얇은 옷 한 장 입고 등불에 의지한 채 곡괭이를 힘차게 휘둘렀다.
테일러의 레벨이 높은 덕분에 한 번 곡괭이를 휘두를 때마다 제법 많은 광석이 떨어져 나왔다.
“기사단장님. 솜씨가 제법이십니다.”
“광부 해도 되겠다. 하하하!”
광부들이 감탄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채광 스킬이 생성될 정도였지만 남은 스킬 슬롯이 거의 없는 탓에 스킬 등록은 하지 않았다.
아까운 스킬 슬롯을 채광 스킬로 채울 이유는 없었다.
[채광을 하였습니다. 경험치를 소량 획득하였습니다.]
조그만 철광석 하나가 벽에서 떨어져 나오고 알림음이 울렸다.
채광을 하는 것도 벌목을 하는 것처럼 아주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수레에 가득 담겨 있는 광석들을 내려다보며 테일러는 중얼거렸다.
대부분이 순도가 낮은 잡광석들이었지만, 틈틈이 쓸만해 보이는 광석도 눈에 띄었다.
이마에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닦아낸 뒤 테일러는 수레를 밀고 광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장 대장간으로 향했다.
찬 바람이 뜨겁게 달아오른 테일러의 몸을 식혀주었다.
지금은 라모르 르와이얄이 대장간에 있을 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장간에 가니 라모르 르와이얄이 대장장이들을 지휘 감독하고 있었다.
“아, 왔는가? 아주 볼 만하구먼.”
라모르 르와이얄은 땀으로 범벅이 된 테일러의 모습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테일러는 말없이 광석이 담긴 수레를 내밀었다.
라모르 르와이얄은 광석의 분류에 나섰다.
쓸만한 광석을 몇 개 추려낸 그는 발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뭘 그리 멍하니 있나. 어서 거들게.”
“알겠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테일러가 합류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주조가 시작되었다.
* * *
5월의 끝이 보일 때, 라모르 르와이얄은 마병기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매개체, 즉 검을 주조해냈다.
고위 마법사 가이우스의 간곡한 부탁으로 달려온 고위 마법사 론도셀 아키자 남작의 마법 부여로 하나의 완전한 마병기가 탄생하였다.
“뽑아보게나.”
라모르 르와이얄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마병기를 테일러에게 건넸다.
론도셀 아키자 남작과 테일러의 파티원들, 그리고 고위 기사 3명이 함께하는 가운데, 테일러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이 뽑혀 나오고 푸른 마나의 흐름이 모두를 덮쳤다.
깜짝 놀란 쟈크 경은 검을 뽑을 뻔했다.
“뭔가 힘이 느껴집니다.”
쟈크 경의 말이었다.
“주군. 마치 가이우스의 버프를 받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알버트가 보고했다.
“이름은 뭐라고 짓겠는가? 테일러 경.”
론도셀 아키자 남작이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물었다.
테일러는 검을 들어 올려 시선을 흩뿌린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쟁의 나팔.”
훗날 프랑츠 제국과의 전쟁에서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할 위대한 기사단장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의 나팔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