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69화
26장 라모르 르와이얄(3)
“이로써 꿀과도 같은 휴식은 끝인가?”
레드가 불평을 하며 훈련장으로 뛰어나와 자신의 위치를 찾아갔다.
테일러의 명령에 따라 제이드 기사단이 소집되었다.
훈련장에 소집된 100여 명의 제이드 기사단원.
몇 번의 전투로 기존의 기사단원 중 적지 않은 수가 전사하였고,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신입 기사단원들이 지속적으로 충원되었다.
유리 사우스 국왕과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기사단답게 신입 기사단원의 충원은 원활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레드의 근처에 자리 잡은 케이트 경은 조금 걱정스러운 시선을 레드에게 보냈지만 레드는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멀쩡해.”
케이트 경이 레드의 몸 상태를 걱정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처음 케이트 경이 레드를 발견했을 때 그의 몸 상태는 심각했다. 그러나 성녀 실비아의 효과 좋은 신성 기도문 덕분에 빠른 시간 내에 회복할 수 있었다.
“다행이군요.”
케이트 경의 시선이 단상 위에 올라선 테일러에게 향했다.
다른 기사단원들의 시선도 테일러에게 향했다.
테일러의 곁에는 알버트가 완전 무장한 상태로 그를 호위하듯 뒤를 지키고 있었고, 테일러는 청색 망토를 두르고 철제 흉갑과 완갑, 견갑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허리에는 보급받은 검이 걸려 있었다.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왕국의 대장장이 길드을 그림자 기사단이 공격할 것 같다고 한다. 따라서 본 기사단은 대장장이 길드가 있는 레딘 남작령의 광산으로 향하여 대장장이 길드를 그림자 기사단으로부터 수호한다. 질문있나?”
줄을 맞춰 서 있는 기사단원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올렸다.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도록.”
“이번 정보는 확실한 것입니까?”
입을 연 기사단원은 수습 기사였다.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왕국 정보부는 잘못된 정보를 제이드 기사단에 전달한 전과가 있었다.
질문을 한 수습 기사는 그 잘못된 정보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온 자였다.
실제로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은 테일러에게도 제법 익숙했다.
제이드 기사단이 만들어지고 테일러가 기사단장으로 왔을 때부터 봤던 기억이 떠오르는 듯했다.
“우리는 국왕 폐하께 충성을 맹세한 기사단이다. 정보가 확실하지 않아도 우리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
테일러의 말에 수습기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 * *
사전에 연락도 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100여 명의 기사단이 깃발을 들고 모습을 드러내자 레딘 광산의 대장장이 길드는 난리가 났다.
제이드 기사단이 사우스 왕국기를 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군대가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대장장이 길드의 30명 정도 되는 경비대가 무장한 채 제이드 기사단의 앞을 가로막았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대치 상황이 시작되었지만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가까이서 확인하게 되자 처음의 긴장감은 눈처럼 녹아내렸다.
“테일러. 전혀 우리를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네. 미리 연락을 하지 않은 겐가?”
가이우스가 물었다.
“네. 워낙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 미처 통보를 하지 못했습니다.”
테일러가 대답했다.
암살 예상 시간은 적혀 있지 않고 오직 2월 중에 암살 작전이 실행될 것 같다는 정보만 있어, 누구도 라모르 르와이얄이 언제 암살당할지 몰랐다.
그래서 테일러는 신속하게 제이드 기사단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무력 돌파밖에 없는 건가?”
“미친소리하지 마세요. 레드. 저들도 사우스 왕국의 국민입니다.”
레드가 농담 삼아서 말하며 화살통에 손을 가져가자 옆에 있던 실비아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앙칼진 실비아의 반응에 레드는 손을 들고 항복 의사를 표했다.
“어떻게 할까요. 기사단장.”
르담 폴슨 경이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말했다.
용병 주제에 기사단의 앞을 막아선 게 조금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내가 나가겠다. 로펜 경. 기사단의 통솔을 부탁합니다. 알버트. 저와 함께해주시겠습니까?”
“알겠소. 기사단장.”
“기꺼이 함께하겠습니다. 주군.”
로펜 경에게 기사단의 통솔을 맡긴 테일러는 알버트와 함께 말을 몰아 대장장이 길드 경비대를 향해 거리를 좁혔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방패와 창을 든 경비대가 양옆으로 갈라지고 제법 괜찮은 갑옷을 입은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고 반짝이는 대머리를 가진 남자가 걸어 나왔다.
“대, 대장장이 길드 경비대의 경비대장 필리카르다. 무, 무슨 일로 이렇게 군대를 이끌고 온 것인가.”
“눈앞의 상대가 기사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죄, 죄송합니다.”
스스로를 경비대장이라고 소개한 필리카르라는 이름의 용병은 처음에는 말을 더듬긴 했지만 높은 자세를 보였지만 테일러가 말투를 지적하자 금방 공대를 하며 말투를 정정했다.
“길드 마스터 라모르 르와이얄을 만나기 위해 왔다.”
“그, 그렇다면 굳이 군대를 이끌고 오실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가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는 국왕 폐하의 명령을 받아 그를 지키기 위해 온 것이다.”
테일러는 그렇게 말하며 명령서를 보여주었다.
필리카르는 명령서를 읽은 뒤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희안하군요. 방금도 군대가 도착했었는데…….”
필리카르가 수신호를 보내자 경비내는 몸을 가린 방패를 치우고 양옆으로 갈라져 길을 열었다.
“고맙군.”
테일러는 필리카르에게 감사를 표하고 대열로 돌아가 제이드 기사단과 함께 광산을 진입했다.
이미 군대가 도착해 있다는 필리카르의 말은 테일러에게 마음속에 조금 의심의 씨앗을 심었지만 그것은 아직 자라나진 않았다.
필리카르의 말대로 광산에는 이미 군대가 도착해 있었다.
다만 라모르 르와이얄을 만나진 못한 것인지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답답한 얼굴로 광장을 서성이고 있었고 50명 정도 되는 병력이 무장한 채 광산 마을의 광장에서 자리를 지키기 있었다.
길드 사무소에서 나온 듯 보이는 길드원은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광장을 서성이던 지휘관은 다가오는 테일러와 제이드 기사단을 발견하고는 크게 당황하여 눈동자를 이리 저리 굴렸다.
“누, 누구시오?”
“국왕 폐하 직속 제이드 기사단의 기사단장 테일러다. 경의 이름과 소속은?”
“저는 기사가 아닙니다. 경. 중앙 수비군의 하급 장교 카드로라고 합니다.”
상급 장교는 기사보다 조금 더 높았지만, 하급 장교는 기사보다 낮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카드로라고 소개한 하급 장교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높였다.
“테일러! 뒤로 물러나세요!”
그때 일리아가 바람의 정령 군주를 소환하기 위한 차원의 문을 열며 소리쳤다.
그녀를 신뢰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거짓말이에요!”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카드로가 검을 뽑아들었다.
그의 검에서 검은 마력검이 빛났다.
인간의 거짓말을 파악하는 하이 엘프 고유의 능력이 발동한 것이었다.
테일러 또한 검을 뽑아들어 카드로에게 맞섰다.
카드로가 검을 뽑아들자 그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력 검을 뽑았다.
검은 마력검이 여기저기서 빛났지만, 그 수는 5명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고용된 용병이나 암살자로 보였다.
최근 반도의 그림자 기사단은 연이은 패배로 인해 인적 자원이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라모르 르와이얄 암살이라는 중요한 작전에 그림자 기사단원을 6명밖에 보내지 못한 것이었다.
나머지는 급한 대로 용병과 암살자로 채워넣을 수밖에 없었다.
“전원! 검을 뽑아라!”
“기사단장을 지원하겠습니다.”
로펜 경이 명령을 내리고 살라다르 경이 두 개의 검을 뽑아들고 테일러를 향해 말을 몰았다.
양 쪽 진영이 부딪치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제이드 기사단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우선 말 위에 타고 있었고, 제이드 기사단의 기사단원들은 마상검술에 능숙한 정예들이었다.
창을 든 병사들이 있었지만, 방진도 제대로 갖추진 못한 창병대는 중무장한 기사에게는 크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테일러 또한 그동안 마상검술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에 익숙하지 못한 말 위에서 카드로를 압도하고 있었다.
카드로의 실력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테일러의 계속된 공격과 합류한 살라다르 경과 알버트의 합공에 난자되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테일러! 무사한 건가요?”
바람의 정령 군주와 함께 일리아가 뒤늦게 달려왔다.
그녀는 테일러의 안위가 걱정되는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테일러의 몸 이곳저곳을 훑었다.
“괜찮습니다. 일리아.”
테일러는 괜찮다고 했지만 일리아는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은지 그의 몸을 살폈다.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일리아가 수선을 떠는 사이, 전투에서 승리하였다는 알림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상태창을 확인했지만 짧은 전투라 그런지 레벨이 상승한 스킬은 없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소란이 일어나자 길드 사무소 문이 열리고 라모르 르와이얄로 추정되는 노인이 달려나와 폴짝폴짝 뛰었다.
“거룩한 제작의 장에서 무슨 칼부림이냐는 말이네!”
그는 널려 있는 시체를 보고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표정 변화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고위 기사 브로치를 차고 있고 나이가 가장 많은 로미오 로펜 경의 앞에 다가가 그에게 항의했다.
그를 지휘관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나는 지휘관이 아니오. 기사단장은 저분이라오.”
로펜 경은 차분하게 테일러를 지목했고 라모르 르와이얄의 날카로운 시선이 테일러에게 향했다.
그가 다가오자 테일러는 예의를 갖추기 위해 말에서 내렸다.
“자네가 책임자인가?”
“그렇습니다. 라모르 르와이얄.”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땅에서 무슨 싸움질인가! 그것도 같은 왕국군끼리! 이건 무슨 미친 짓이라는 말인가?”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라모르 르와이얄은 테일러와 제이드 기사단이 같은 왕국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사무소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일단은…… 허락하겠네.”
라모르 르와이얄이 허락하자 테일러는 쟈크 경에게 명령을 내려 잡은 포로 5명을 기사단원 10명과 함께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왕국 정보부에 넘기도록 했다.
쟈크 경이 기사단원 10명과 함께 포로 5명을 수도로 끌고 갔고, 제이드 기사단은 마구간에 말을 집어넣고 광산 마을 곳곳에 배치되었다.
테일러의 파티는 정리된 광산의 분수대 앞의 벤치에 모여 앉았다.
“주군이 걱정됩니다.”
따라가지 못한 게 한이 된 모양인지 알버트가 한탄했다.
그런 그를 보며 가이우스는 과자를 꺼내 씹었다.
“괜찮을 거예요. 그렇죠? 실비아.”
일리아가 알버트를 진정시키며 성녀인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분수를 바라보고 있던 실비아는 일리아를 살짝 바라보았다가 다시 분수로 시선을 돌렸다.
“알 게 뭐예요.”
“동생을 대신해서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알폰스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시간이 갈수록 내 환상이 깨지고 있어.”
아무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레드가 중얼거렸다.
처음 실비아가 레드의 여동생을 치료해주었을 때까지만 해도 성녀는 고고하고 고귀한 존재로 보았던 레드였지만, 실비아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의 환상은 깨지고 있었다.
그녀는 짜증도 잘 부리고 감정 기복이 심한 전형적인 ‘여자아이’였다.
모두가 떠들고 있을 때 기척을 느낀 알버트가 길드 사무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테일러가 머리가 아픈 듯 눈살을 찌푸린 채 걸어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알버트가 벤치에서 일어나 테일러에게 달려갔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분간 기사단이 주둔해도 좋다고 합니다. 길드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이죠.”